새로운 달 10월,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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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레위기 23:33-44(구약 183쪽)
설교제목: 새로운 달 10월, 집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35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36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37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41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44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교회학교 주관으로 10월 월삭기도회로 모였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금주에 튀르키예로 출타하셔서 제가 대신 월삭기도회를 인도합니다. 담임목사님은 토요일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모두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정말 가을이 온 것 같습니다. 가을을 생각하면서 오늘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다가온 가을을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를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오늘은 이에 관해 함께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초막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손 대대로 지켜야 하는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손 대대로 초막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보다 앞서 과연 초막절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초막절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초막절 얘기를 하려 합니다.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입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돼 오래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입니다.
쉽게 말하면요. 우리나라의 설과 추석과 같은 명절을 말합니다. 특히 초막절은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을 추수에 감사하여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입니다.
또한, 날짜도 거의 같습니다. 초막절은 유대력으로 7월 15일이고 추석은 음력 8월 15일입니다. 유대력도 음력과 비슷하기 때문에요. 올해는 동일하게 양력으로 10월 6일이 추석이고 초막절입니다. 하지만 기간은 차이가 납니다. 추석은 삼일이지만, 초막절은 일주일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34절을 같이 읽습니다.
레위기 23:34(구약 183쪽)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이렇게 초막절은 유대력 7월 15일입니다. 유대력은 태양력과 약 2~3개월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대략 가을 추수 후에 일주일간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처럼 추석과 초막절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으로 지키는 명절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나라의 명절입니다. 그래서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추석은 전통적으로 ‘성묘하고 차례’ 지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전통적으로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일주일간 지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또 ‘아르바 미님(אַרְבַּעַת הַמִּינִים)’이라고 해서 ‘4가지 식물을 들고 기도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초막절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유튜브로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초막절은 이름처럼 초막을 짓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현재의 팔레스타인은 아파트가 많습니다. 해서 그림처럼 베란다에 초막을 만듭니다. 마치 우리가 베란다에 샷시를 두르듯이 나무판자를 둘러 초막을 만듭니다. 혹 마당이 있는 집은 마당에 초막을 만듭니다.
그리고 초막의 지붕은 종려나무 가지로 덮습니다. 많은 유대인의 가정에서 같은 기간 이렇게 초막을 짓기 때문에요. 이 무렵에는 이집트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수입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초막과 더불어서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아르바 미님’입니다. 이는 ‘4개의 식물’을 뜻하는 히브리어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40절을 같이 읽습니다.
레위기 23:40(구약 183쪽)
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초막절에 준비할 4가지 식물을 말합니다. ‘아름다운 나무 실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무 가지’, ‘시내 버들’입니다. 현대 유대인들은 이 식물을 이렇게 준비합니다. 또한, 각각의 식물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아름다운 나무 실과는 히브리어로 ‘에트로그’라는 과일입니다. 에트로그는 그림처럼 유자나 레몬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맛도 좋고 향도 좋은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율법을 알고 선행도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두 번째, 종려나무 가지는 히브리어로 ‘룰라브’입니다. 룰라브에는 대추야자 열매가 열립니다. 그래서 룰라브는 맛은 좋으나 향이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율법은 알지만, 선행은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세 번째, 무성한 나무 가지는 히브리어로 ‘하다스’입니다. 하다스는 은은한 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다스는 맛은 없지만 향이 좋은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율법을 알지 못하나 선행이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시내 버들은 히브리어로 ‘아라바’입니다. 아바라는 버들가지로 아무런 특징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라바는 맛도 없고 향도 없습니다. 이는 율법도 모르고 선행도 모르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네 가지 식물을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꼼꼼하게 이뤄집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돋보기를 이용해서 흠이 없는지를 살핍니다. 마치 성경에서 제사를 드릴 때, 흠없는 제물을 바치는 것처럼 주의 깊게 고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된 네 가지 식물을 그림처럼 잡고서요. 동서남북으로 흔들면서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하나님께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합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초막절은 엄숙한 종교예식으로만 이뤄진 분위기는 아닙니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아이들도 함께 어울어진 축제의 분위기입니다. 이 장면은 앞서 말씀드린 식물을 담는 고리를 아이들이 만들어서 판매하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초막절은 어른과 아이들 또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즐기는 축제의 장입니다. 초막절은 일주일 동안 이어지지만 특별히 주목할 의식이 있는 것은 두 번입니다. 둘째 날과 마지막 일곱 번째 날입니다.
초막절 둘째 날에는 제사장들이 통곡의 벽에 모여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머리에 흰 천을 두르고 앞에 있는 사람들이 대대로 내려오는 제사장 가문에 속한 제사장들입니다. 또 자세히 보면 이것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는데요. 해외에 있는 가족들에게 기도를 영상으로 보내주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전통문화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는 것을 뉴스에서 방영하는 것과 같고요. 신년에 타종하는 것과 유사한 무게감을 가진 의식입니다. 또 이때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서 헬기가 뜨기도 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계속된 분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곳에서 충돌이 생기면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 있으니 매우 주의를 기울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 일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치러지고 그럴만큼 중요한 의식입니다.
한편 제사장들이 초막절에 하는 기도가 성경 구절에 나옵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입니다.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민수기 6:24-26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의 축복’이라 불리는 기도문입니다. 이러한 기도문을 통해 제사장들은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는 기도를 합니다.
또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에 그림처럼 바닥에 기도할 때 사용했던 식물을 내려칩니다. 앞서 말씀드린 아르바 미님 곧 4가지 식물 중에서요. ‘에그트론’이란 과일을 제외하고요. 3가지의 식물은 앞서 아이들이 팔던 고리로 하나로 묶어두었는데요. 초막절 마지막 날에 이 3가지 식물을 바닥에 내려쳐 부서버립니다. 반대로 맛과 향이 좋은 에그트론 먹습니다.
각각의 식물들이 맛과 향을 통해 상징하는 것이 있다고 했죠. 간단하게만 다시 말씀드리면, 맛과 향이 좋은 식물은 율법도 알고 선행도 하는 것으로 에그트론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나머지는 하나씩 부족했거나 마지막 시내버들은 모두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함을 상징하는 식물을 모두 바닥에 내려쳐 부서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결단하는 의식을 치릅니다. 또한, 이때 식물을 내려치면서 히브리어로 ‘호시아나’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우리가 아는 ‘호산나 곧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이 마지막 의식을 끝으로 초막절은 끝이 납니다. 성경에서는 이 초막절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아무런 노동도 하지 말고 이것을 자손 대대로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고요. 다음 세대에게 꼭 가르쳐 지키게 해야하는 것이 됩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초막절을 지키는 일이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 43절을 같이 읽습니다.
레위기 23:43(구약 183쪽)
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곧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구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 대대로 이를 기억하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초막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초막에서 생활하던 때를 재연하면서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이 때는 안식일과 같이 어떤 노동도 해서는 안 되고 거룩한 날로 구별하여 지켜야 했습니다. 더욱이 이 날을 자손 대대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일이 중요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사건을 오래도록 자랑하고 싶으셨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요. 하나님께만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전에 요한계시록을 연구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은 세상의 다른 신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음을 말입니다. 모름지기 신이라고 하면, 보통은 강력한 존재로 묘사되어 집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묘사됩니다. 그것도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예수님을 그냥 양도 아니고 어린 양으로 그것도 죽임을 당한 힘없는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체로 다른 종교의 신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에 반해 기독교는 힘이 없다 못해 희생당한 어린 양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유일한 점입니다.
여기에는 보다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은 힘이 없는 신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주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증거하는 많은 이야기들로 넘쳐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 구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는 말이 있고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 달려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지극히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편이 되어주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설령 세상에 다른 신이 있고 그 신이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있을 지라도요. 하나님만큼 확실히 우리를 구원할 신은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초막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를 기억하는 일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위해 집을 떠났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하던 때를 기억하며 초막을 짓고 거기에 일주일간 머물렀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그렇게까지 하진 않습니다. 대체로 초막에서 같이 식사하고 함께 교제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초막을 만들며 그곳에서 생활함으로 초막절을 지켜야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초막절의 의미를 기억하기 위해 일상적인 자리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집을 떠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는 실제로 가출을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베풀어주신 은혜를 되새기는 곳으로 가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그곳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 특정한 장소를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얘기하면 이해를 돕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혜를 되새기는 것은 예배의 자리 또는 기도의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집을 떠나 향할 곳은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가 있는 곳이 됩니다. 이와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일 또는 이와 같은 시간에 참여하는 일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가을을 맞이하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일상에 시공간에서 조금은 벗어나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를 경험하는 특별한 시공간으로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새로운 달 10월을 맞이하는 우리 성도님들께 임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