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함께함의 기쁨을 누립시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 전도서 4:9-12(구약 952쪽)
설교제목 : 추석, 함께함의 기쁨을 누립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제가 요사이 역사에 관심을 두다보니까요. 이런 것도 궁금해서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내일이 추석이잖아요. 더 정확하게는 오늘부터 추석연휴죠.
추석의 역사는 어떠할까요? 우선 추석(秋夕)이라는 말은요. ‘가을 저녁’이라는 뜻입니다. 또 순우리말로는 ‘한가위’라고 하지요. 이는 ‘한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뜻을 가진 까닭은 추석이 음력 8월 15일이기 때문입니다. 음력으로 7, 8, 9월이 가을인데요. 이 가을의 중간에 위치했다고 해서 한가위라고 불립니다.
추석과 같이 가을 추수 후에 행해진 축제는요. 당연히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축제는 아닙니다. 일전에 월삭기도회를 통해 이스라엘의 초막절을 소개했습니다. 초막절도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의미로 이뤄집니다. 그 외에도 세계 공통으로 추수 후에 여러 형태의 축제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의 추석의 유래는 신라시대로 거슬로 올라갑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요. 신라 3대왕 유리이사금 때에요. 두 공주에게 패를 나눠서 길쌈 곧 실짜기 대결을 시켰습니다. 음력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이렇게 한 달 동안 대결을 벌여서 이긴 팀에서 술과 음식을 사례하게 합니다.
또 이때 노래와 춤 여러 가지 놀이를 했습니다. 그 외에도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과 햇곡식 등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 행사를 ‘가배(嘉俳)’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말 ‘가위’ 곧 ‘가운데’에서 온 말입니다. 다시 말해 신라에서 시작했던 가배가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서 오늘날 추석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추석이 왕실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되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또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추석은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국가 행사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추석을 특별히 여겨서 사형집행이 금지가 되었고요. 병을 핑계로 추석제사에 나오지 않은 관리들이 파직되기도 했습니다.
추석이 공휴일로 처음 지정된 것은 1949년이고요. 그때는 당일 하루만 공휴일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6년에 추석 다음 날이 공휴일에 포함이 되었고요. 1989년에 현재와 같이 추석 전날까지 3일 연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석의 역사에 관해 공부를 하다가요. 더 본질적인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왜 가을 추수 후에 축제를 했을까요? 비단 신라에서뿐만 아니라 가을 추수 후에 축제를 벌이는 역사는 세계 공통으로 일어났습니다. 이에 관해 설득력 있게 다가온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가을 추수는 결국 생존과 관계되어져 있습니다. 주로 농사를 통해 먹고사는 고대인들에게 농사가 잘 되는 것 곧 풍요를 기원하는 것은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이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가을 추후 후에 축제를 벌인 것은 풍요에 기원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종교적인 차원으로 연결되어졌습니다.
또한 농사가 하늘의 도움을 통해 잘 되는 것도 중요했지만요. 능숙한 솜씨를 통해 생산량을 늘리는 일도 중요했을 것입니다. 오늘처럼 농기구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요. 사람의 노동력과 협동성이 농업 생산량을 늘리는 것에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니 가을 추수 후에 신라에서 벌어졌던 길쌈 곧 실짜기 대회는 대결 구도를 만들어서요. 서로 힘을 모아서 함께 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단결심과 기술력을 향상시키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추석에 관해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추석의 본질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에 있음을 말압니다. 제가 추석에 관해 이렇게 자세히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요. 오늘 추석을 생각하면서 추석은 가족과 함께라는 것에만 생각이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추석의 역사를 살피다보니 가족을 넘어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본래 추석이 만들어진 이유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일전에 대심방 중에 담임목사님께서 하셨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대략 50대 남성들로 이뤄진 공동체 심방에서 하신 이야기였습니다. 모두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지가 주된 고민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은 이제 끝이 보여가고 은퇴를 준비하거나 새로운 변화의 시점이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남은 삶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살지가 고민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에 관해 담임목사님은 자신이 오래 전에 겪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거에 버스 회사에서 일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는 버스 운전수가 되려면 시험을 치고 입사를 했습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또 선호되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통 버스 운전수는 회사에 오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운전수는 자신은 딱 5년만 일할 거라고 합니다. 당시로 분위기로써는 이상한 말입니다. 어떻게든 오래 남아서 일을 하려고 하니까요. 정해진 기간을 둔다거나 빨리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일을 5년만 할 생각이냐 물으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신은 함께 기도하는 사람과 더불어서 약속한 것이 있다고요. 각자 앞으로 5년 동안 돈을 모아 사업체를 만들고요. 그 사업체를 바탕으로 신앙공동체를 이루려고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깐 함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돌아가면서 전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계획이 실제로 잘 되어서요.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되고 전도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담임목사님이 그 남자 공동체에 속한 분들에게 도전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데요. 그 고민을 같이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하는 일을 한다면요. 미래가 근심과 걱정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동업은 절대 무조건 망한다는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임엔 틀림없습니다. 무조건 동업한다고 망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반대로 무조건 동업한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함께 모여서 같은 고민을 나누고 또 그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곳에서 공동체로 모여있지만, 실상은 공동체와 관계없이 신앙생활하고 있음을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함께하는 일에는 서툴거나 어떤 영역 이상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가령, 교회에서 같이 활동하는 것은 괜찮지만, 더 멀리 앞으로 함께 살아갈 것을 도모하거나 동업과 같이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것 따위의 일에 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우리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습니다. 앞서 얘기처럼 혼자서 사업을 하려면요. 그 버스 운전수 분도 5년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입니다. 또한, 어설픈 사업은 성공보다 실패를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럿이서 함께 모여서 같이 기도하면서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에요. 위험 부담은 줄고 또 보다 안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추석 연휴를 맞이하면서 이것이 우리가 돌아보았으면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요.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깨닫는 것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도 공동체의 놀라움 힘에 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4장 9~12절을 같이 읽습니다.
전도서 4:9-12(구약 952쪽)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은 특별한 해설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읽은 그대로 입니다. 혼자보다 함께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또는 삶에서 이와 같이 함께하는 것의 능력과 가치를 경험하는 일이 드뭅니다. 오죽하면 이 시대를 ‘각자도생’ 곧 ‘스스로가 제 살길을 도모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혼자보다 함께가 더 좋습니다. 그러다 저는 깨닫습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특별히 부모 자식 간에 늘 화기애애하지만 않습니다. 때론 작은 말실수가 서로의 관계를 깨트리고 기분 좋아야 할 명절 연휴를 고통으로 물들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공동체로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담임목사님이 일전에 또 이런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아는 어떤 선배는 유학을 가려다가 어떤 노숙인을 만나면서요. 유학을 포기하고 노숙인을 위한 공동체를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공동체를 방문했던 경험을 얘기해 주었는데요. 매우 놀라운 광경을 마주 했습니다. 어떤 이의 생일날 그 공동체 모였던 사람들이 전부 화려한 파티복으로 옷을 갈아 입고서요. 생일파티를 해주는 장면을 보았고요. 또 어떤 이의 장례식에 모두가 함께 상여를 만들고요. 상주가 되어서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공동체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교회에서 모여서 함께 하는 시간들이 이와 같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서로 마음을 나누고 서로 함께하는 것이 기쁨이 되고 그로 인해서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 수록 함께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능숙해지길 말입니다.
바라건대, 우리가 함께 하는 일에 힘쓰는 이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특별히 추석 명절을 맞이하며 가족들이 함께 모일 텐데, 함께하는 시간이 복되고 좋은 시간으로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