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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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들어가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이 말씀은 단순히 감정의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 근심은 절망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의 근심은 생명을 낳습니다.
그 차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바울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나누려 합니다.
지금까지 요약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였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첫 선교 사역은 선교합시다라는 구호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지만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선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 부르심의 뜻과 감당할 능력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보다는 내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인내할 때 분명 놀라운 열매가 있습니다.
1차 전도여행 마무리
더베까지 복음을 전한 바울과 바나바는 이제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기로 계획합니다. 그런데 가까운 길을 마다하고 심하게 핍박받았던 지역을 차례로 다시 방문합니다. 그리고 박해받는 성도들을 굳게 하고 교회가 자체적으로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장로들을 세웁니다. 그들은 높고 험한 타우로스 산맥을 거꾸로 넘어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와서 1차 전도여행을 마칩니다.
[지도1]
왜 가까운 길이 아니라, 먼 길을 되돌아 갔을까?
루스드라는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을 뻔한 곳이고 이고니온과 비시디아도 심한 박해를 받았던 곳입니다. 그런 곳으로 다시 가는 바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바울이 아니라 새신자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바울의 방문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힘든 것이 환난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하는 삶이 환난이다.
바울은 자신을 통해 성도들이 위로 받고 고난을 견디기를 원했다.
바울 입장은?
그 자리에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나를 보내신 이유가 있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시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보내심이 있다
왜? 바울 그가 고난을 견디었으므로, 그가 고난 중에서도 용기를 내었기에
거짓 교사들의 등장
다시 안디옥교회로 돌아온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서 목회에 전념하고 있었다. 14장 마지막 절은 그가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었다고 말씀한다. 그런데 유대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안디옥교회로 찾아왔다.
사도행전 15:1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율법주의자들이 나타났다.
논쟁으로 인해
사도행전 15:2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예루살렘에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교회회의인 예루살렘 회의의 시작점이다.
논의 내용은
이방 신자에게 율법(특히 할례)을 적용해야 하는가?
구원은 믿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율법 준수가 필요한가?
베드로의 논설
사도행전 15:10–11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안디옥교회 사태 해결
사도행전 15:23–26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거짓교사들이 일어나는 사태로 말미암아
이 사건을 통해 교회는 분열되지 않았고, 오히려 복음의 본질—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확실시 하게 되었고
사도 바울로 하여금 2차 전도여행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 라는 말씀처럼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모든 일을 다 마무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거짓교사들의 등장으로 인해 그의 마음은 바뀌었다.
왜냐하면 율법준수를 주장하는 거짓교사들이 그 개척한 교회에도 악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차 전도여행의 시작[지도2]
출발부터 좋지 않다.
사도행전 15:36–41 “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투어서 각자의 길로 가게 되었다.
왜 다투었나요?
그들이 가야할 곳은 핍박 가운데 고난을 견디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함인데
여정이 피곤하다고 중도에 하차한 마가가 동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다.
바나바는 마가와 배를 타고 1차 선교여행 때 첫 이적을 경험한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고향 다소를 통해 그가 고난 당한 지역으로 간다. 그리고 루스드라에서 디모데가 합류하게 된다.
좋은 일을 하고자 했으나 하나님이 막으신다
사도행전 16:6–7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러나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사역을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계속 구했습니다.[지도3]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사도행전 16:8–10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주님의 뜻을 확신하며 인내하는 것 중요하다
하나님은 막는 분이 아니라, 더 큰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계획이 막힐 때가 바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의 인생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돌에 맞았지만 다시 일어섰습니다.
거짓 교사들이 흔들었지만 복음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길이 막혔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갔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열심히 했는데 오해받을 때,
도무지 길이 열리지 않을 때—
그때 우리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낳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낳고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혹 막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는 증거입니다.
바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놓지 마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의 역사를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십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