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04

게으름과 친숙한 그대에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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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때문에 해고된 사람, 게으름의 선택/부주의

잠언 24:30–31 NKRV
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 즉 가시던 불이 퍼졌으며 거친 불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잠언 24장 30-31절

한 글자 일 때문에 해고된 사람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경리 담당 부서에서 커다란 공사를 발주하기 위한 서류를 바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사 입찰을 알리는 공고문이 신문 광고로 나갔고 여러 응찰차들이 공사를 따내기 위하여 평소처럼 입찰 전일까지 공사 보증금을 예치했습니다. 공사 금액의 10분의 1의 금액을 보증금으로 예치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저렴한 금액으로 응찰하는 업자에게 공사를 주기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엄격한 심사가 시작되었고 공사 입찰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전날까지 예치해야 할 공사 보증금을 당일에 들고 온 업자들이 응찰하게 해달라고 항의하였기 때문입니다.
담당 직원의 실수로 “이 공사에 응찰할 업체는 공사 금액의 10분의 1을 입찰 전일까지 예치할 것”이라는 공고문이 “...입찰일까지 예치할 것”이라고 잘못 타이핑되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결국 책임자는 징계를 받고 담당 직원은 ‘전’이라는 한 글자 때문에 잘 다니던 좋은 직장에서 해고되어야 했습니다.
바쁜 신문 광고 마감 시간에 쫓겨 저녁 끼니도 거른 채 열심히 일하다가 일어난 실수를 게으름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주의는 매사를 꼼꼼히 살피며 성실하게 처리하는 데 소모되는 육체와 마음의 노고를 아끼려는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이 부주의함을 게으름의 선택이라고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시간을 아끼는 지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귀한 인생을 낭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유능하게 살기 위해서는 삶의 지혜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이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이제 효과적으로 그분께 충성하면서 사는 방법들을 터득해야 하는데 이것은 지혜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영혼의 변화를 받고 성향이 바뀌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마음뿐 아니라 그 마음이 사령부인 그의 삶 전체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으로 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소유하게 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정서 뒤에는 반드시 ‘어떻게 해야 이 짧은 인생 동안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더 많이 삶으로 입증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따라붙어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복음의 진리들을 발견할 때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견딜 수 없는 후회로 가슴을 치기도 합니다. 몇 년 동안을 어떤 문제로 인해 영적인 성장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마치 기름칠해 놓은 바위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올라가다가는 미끄러져 굴러 떨어지고 올라가다가는 다시 미끄러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아주 간단한 복음 진리가 나를 그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에 그런 생각이 절실합니다. 이를테면, 누가 나에게 이런 진리를 가르쳐 주었더라면 인생을 그렇게 허비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슴 아프게 밀려옵니다.
실제로 저는 미국에 집회를 갔다가 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목사님으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제가 쓴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를 20년 전에 읽었더라면 목회 인생에서 10년은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백만 원만 달라고 하면 안색이 변하여 돌아서면서도 시간 좀 내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관대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큰 실수입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시간을 한 번 쓰면 다시 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에게도 게으르게 사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길이로 지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망을 가졌던 사람들은 모두 시간의 소중함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타오르는 열망을 펼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게으름에 관한 이 잠언의 지혜들은 우리의 인생을 아껴주기에 충분한 진리들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숙지하고 차근차근 정리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삶에 말할 수 없는 유익이 될 것입니다.

황폐한풍경

그럼 우선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증왕에’라는 말은 ‘옛날에’라는 의미입니다. 지혜자는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예전에 자신이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가면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자의 눈에 비친 그곳은 가시덤불이 퍼져 있고 거친 풀이 지면에 덮여 있고 돌들로 만든 담이 무너져 내려 있었습니다.
이 게으른 자의 밭이 무엇을 심어 놓은 밭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이 밭과 포도원은 폐기된 밭이 아니라 작물이 심겨져 있는 밭이라는 것입니다. 가시가 올라와 있고 거친 풀이 지면을 뒤덮었으며 돌담마저 무너져 내린 밭과 포도원을 어떻게 경작 중인 곳으로 볼 수 있는지 여러분은 의아해하실 것입니다. 정말로 용도 폐기된 밭이라면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이 아니라 ‘버린 밭’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밭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곡물이 심겨져 있었고, 포도원에도 포도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곡물은 양식이었고 포도는 물 대신 마시는 포도주의 재료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밭과 포도원은 게으른 주인에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런 곳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었던 것입니다.
이 밭이 취미 삼아서 꽃을 몇 송이 심어 놓은 밭이었다면 농사를 망쳤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밭은 그런 취미 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밭에 소출이 없고 포도원에 수확이 없으면 당장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핍절해지는 형편이었던 것입니다.

연약함을 핑계 댈 때의 위험.

그런데 이 생존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밭과 포도원에 거친 풀이 올라왔습니다. 가시덤불도 우거졌고 돌담은 무너졌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 밭 주인이 가지덤불 씨앗을 그곳에 뿌리고 거친 풀들의 종자를 구해 와 심었을까요? 포도원 주인이 망치를 들고 각종 짐승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아놓은 담장을 일부러 무너뜨렸을까요? 아닙니다. 농부는 가시덤불이나 거친 풀들이 자라는 일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 적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주인의 잘못입니다. 물론 그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정이 어떻다 한들, 그는 연약함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의 의무를 덮어버린 사람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연약함을 핑계로 자신의 의무에 대해 해이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연약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진짜 연약한 사람들은 자기의 의무를 태만이 행하지도 않거니와 ‘연약하다’라는 핑계 뒤에 숨지도 않습니다.
연약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고백하며 자신은 하나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가을날’이라는 시에서 노래한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내가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비료를 주고 물을 뿌리지만 농부인 나의 힘으로 농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셔서 이 포도로 영글게 해 주시옵소서’. 이런 기원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짜로 연약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태만해져서 의무를 성실히 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이라고 핑계 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파렴치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흔히 연약함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게으름의 악인데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연약함이라고 두루뭉실하게 포장하여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게으름에 부정직을 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기도의 의무를 감당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나태한 본성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 이라는 책을 읽으며 공부할 필요도 없고 짐승같이 사는 법을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게으른 육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기 편할 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분투하며 사는 삶을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버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떻게 연약함이란 말이 어울리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연약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었음을 강조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직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어쩔 수 없어서 나태하였습니까? 어쩔 수 없이 부주의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스스로 그러한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이렇게 연약함이라는 말로 자기를 위장하는 사람은 대부분 게으름에 위선의 죄를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게으름은 더욱더 교묘한 악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용서받기 힘든 악입니다. 왜냐하면, 게으름을 뼈저리게 미워하며 게으름을 용서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너무나 소수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으름을 이처럼 치명적인 죄악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게으름은 우리 영혼에 극심한 상처를 입힌 후에도 거룩한 삶에 대한 대적으로 파악되지 않습니다.

게으른 자, 마음이 모자라는 자.

포도원과 밭이 이렇게 황폐해진 것은 그곳을 경작하고 돌봐야 할 농부의 부주의함 때문이었습니다. 농부가 그 땅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방치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황폐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밭과 포도원의 주인을 ‘게으른 자’와 ‘지혜 없는 자’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지혜자가 땅의 임자와 상관없이 황폐해진 밭과 포도원만 보고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동일한 사람의 두 땅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땅과 그의 사람됨을 평행법으로 구사하여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여기서 이야기하는 밭과 포도원이 다른 상황이 아니라 같은 상황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지혜자는 게으른 자와 지혜 없는 자를 똑같이 보고 그를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게으른 자라고 하는 것은 언어적으로 꼼짝달싹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를 뜻합니다. 그리고 지혜 없는 자라고 번역된 부분은 히브리어 원문에는 마음이 모자라는 자로 되어 있습니다. 한글 번역대로 지혜 없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되기 위해서는 지혜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단어, 호크마를 써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마음(heart)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단어 레브를 쓴 것입니다.
레브는 해석적으로 볼 때 이해(understand), 판단(judgement) 등을 암시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NIV 성경에서는 지혜 없는 자를 판단력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말 성경의 번역은 그런 해석적인 순환을 거친 것 같습니다.
어쨌든 히브리어 성경이 갖는 묘사의 서정성을 살려서 이해하자면 게으른 자의 밭과 마음이 모자라는 자의 포도원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음을 다하는 사람에게 부어지는 지혜

중국에서 있었던 어느 전도자의 일화입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의 선교의 자유가 있을 때여서 그는 전도대원들을 이끌고 중국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수백 수천 명의 결신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우상숭배 문화에 젖어 있던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전 처음 복음을 듣고 그렇게 회심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의 깊게 그 전도자의 정도 방식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 지켜보다 보니 그가 사용하는 전도 방식들은 너무나 정교하게 잘 고안된 것들이었습니다. 그 전도자는 전문적으로 선교학을 익힌 사람도 아니었기에 어디서 그런 방법, 뛰어난 방법들을 배웠는지 궁금해진 사람들은 급기야. 그 전도자에게 묻게 되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를 쓰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연장의 역사를 더듬어 가다 보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오래전에 우리들이 지금 사용하는 거의 모든 연장의 기본 형태가 마련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연장의 역사를 보면 열심히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사람에 의해서 그것이 만들어졌지. 조금만 힘들어도 끈기 없이 금새 털고 일어나.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마음을 모두 실어 최선을 다하며 부지런히 살 때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연장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지혜의 가치

인생의 시간이 똑같다면 그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는 비결은 열심히 사는 것과 더불어 좋은 도구를 가지고 유능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저는 함께 일할 직원을 채용할 때에 제일 기피하는 사람이 불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성실하기는 한데 지혜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좋은 도구, 슬기로운 마음 없이 무조건 성실함으로만 덤벼서는 얻을 수 있는 열매가 매우 적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슬기로움을 타고 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타고난 명민함이 전혀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좀 부족하다고 해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고 그 일에 몰두하여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적어도 필요한 책을 살 때만큼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격을 보고 책을 사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책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진리를 읽는 사람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비싸서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거나 가격이 싸서 읽지 않아도 될 책을 읽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약 7년 전에 죄 죽임에 관한 공부를 하기 위해 원서로 된 박사 학위 논문을 샀는데 240페이지 정도의 얇은 책이 무려 6만 원이 넘었습니다. 솔직히 잠시 망설였습니다. 지갑을 만지작거리다. 그냥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가서 그 책을 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한 권을 더 샀습니다. 제 영적 생활에 지혜를 주는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권은 줄 치면서 보고 다른 한 권은 잘 보관해 두고 보고 있습니다. 지혜의 가치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읽는 것이 자신의 영혼에 지대한 도움이 될 수 있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아무리 비싸도 싼 것입니다. 책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지혜의 가치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의 부르심

본문에 게으르고 지혜 없는 자는 일부러 밭과 포도원을 망가뜨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주의함과 게으름으로 원치 않았던 결과가 초래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부주의한 것을 자신이 선택한 악의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도 그 부주의함 때문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부주의해졌다면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 스스로가 부주의함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부주의함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바로 게으름입니다. 부주의함의 선택을 피하려면 인간의 모든 기관이 활발하게 활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은 그렇게 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부주의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고 주어진 일에 마음을 기울이며 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사악한 행동인지 우리는 자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게으름이 자신에게 스며드는 것을 방조하는 것으로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간접적으로 파괴하는 행동입니다.
집중하지 않는 사람의 부지런함은 진정한 사람, 의미의 부지런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그 일이 기계적인 처리가 가능한 습관화된 일임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일하면서 그 일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도움을 사모하여 의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였지만 마지막은 하나님 없이 끝날 것입니다.
부주의함과 나태함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마십시오. 이것의 정체는 우리의 영혼에 해를 입히는 게으름이라는 죄입니다. 이 문제에 대항하여 이를 악물고 싸우십시오.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치열하게 주어진 일에 몰두하십시오. 그리고 바람직한 결과에 대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로 의뢰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을 지혜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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