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음은 숨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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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여러분, 건축가가 되고 싶은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사람이 정말 이 세상에는 없는…
이전에 그 누구도 건축하지 못한 멋진 집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그 멋진 집의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죠.
내가 정말 이 때까지 세상에 없던 멋진 집을 생각해 냈어…
이 설계도를 봐봐..
나는 이제 이런 멋진 집을 짓는 건축가야….
사람들이 그 설계도를 보고는…
야….정말…세상에 없는 멋진 집이라면서…감탄을 합니다.
그러더니, 이 사람이 또 다른 멋진 집을 하나 구상합니다.
그리고는 또 그 집의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리고는 또 자랑을 합니다.
나는 이런 집도 짓는 건축가야….
그리고는…또 다른 집을 구상합니다.
또 설계도를 그리고,
또 자랑을 하죠…
그렇게…이 사람은 계속해서…새롭고 멋진 집을 구상해 내고요..
또 계속해서 설계도를 그리고, 또 계속해서 자랑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사람이 이 사람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그 집들은 언제 볼 수 있나요?
그러자…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곧 지을 거야….나는 건축가거든….
여러분…이 사람이 건축가가 맞습니까?
멋진 집을 구상하고 설계도를 그리기만 하는 이 사람…..건축가가 맞나요?
아니죠…이 사람이 아무리 멋진 집을 구상하고, 설계도까지 그렸을 지라도…
그 집을 실제로 건축하지 않는다면…이 사람은 결코 건축가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믿음의 설계도를 멋지게 그려 냅니다.
하지만…..계속해서, 설계도만 그릴 뿐…..정작, 그 설계도를 따라 믿음의 집을 짓지는 않는 거죠.
오늘, 우리가 보고자 하는 야고보의 말씀의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야고보는 오늘, 말씀을 통해….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참된 믿음을 가르치기 위해..
야고보는 먼저, 참되지 못한 믿음을 이야기 하는데요…
야고보가 말하는 참되지 못한 믿음은 다름 아닌…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
그것은 바로… 집은 짓지 않고 설계도만 그리는 사람과 다르지 않죠.
설계도만 그려놓고, 집을 짓지 않는 사람을 진짜 건축가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믿는다고 하면서, 행하지 않는 사람을…. 진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짜 건축가가 되려면….설계도 대로 건물을 지어야 하죠.
마찬가지로…진짜 믿음의 사람,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믿음대로 행동하고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의 주제인 참된 믿음을 보기 전에요.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순서대로….참되지 못한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부터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서….먼저….그 믿음의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또, 17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그 결론을 어떻게 내립니까?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죽은 믿음이라는 겁니다.
여러분….결론만 놓고 본다면, 이 말은 너무 무서운 말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이라면….
너무 무섭고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그런데요….여러분,
여기서 죽은 믿음이라는 표현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a라는 사람이 죽었습니다….그러면....이 a라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인가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가요?
a라는 사람이 죽었다면….a라는 사람은 더이상,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죠.
그렇다면……어떤 사람의 믿음이 죽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존재하는 건가요?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존재하지 않는 거죠.
무슨 말입니까?
죽은 믿음을 가졌다는 말은 그 사람에게는 믿음이 아예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해가 되십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그러니까….
누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이 믿음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사실…믿음이란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믿음이란 건 없습니다.
누군가…믿음이 있는대도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사실, 그 사람에게는 어떤 믿음도 없는 겁니다.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다시 말해,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 믿음이 있어…하면서….행하지 않는다면….사실…그에게는 믿음이 없는데….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믿음을 야고보는 죽은 믿음이라 부릅니다.
여러분....죽은 믿음이 나타내는 특징이 있는데요.
야고보는 특별히..세 가지 특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 세 가지 특징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각자가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내 믿음은 살아 있나, 숨 쉬고 있나…
혹시…죽어 있는 것은 아닌가?
죽은 믿음의 첫 번째 특징은…. 말뿐인 믿음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야고보는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죽은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답니다.
말하자면….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어떤 노숙자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그 노숙자에게 누군가가 다가가서는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아이고…불편하시죠…. 평안히 지내십시오. 아이고…추우시죠…따뜻하게 지내십시오. 아이고….배고프시죠…..배부르게 지내십시오.
여러분….이 노숙자에게 이런 말이 도움이 됩니까?
이런 말을 할거면…차라리 그냥 말없이 지나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이런 말이 그 사람을 돕는 겁니까?
아니죠? 이런 말은….그 사람을 놀리는 겁니다.
여러분…..죽은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말뿐인 믿음…말만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믿음….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강에 있는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강은 깊은 강이고요. 이 사람은 수영을 할 줄 모릅니다.
첫 번째로 지나가는 사람이 그 사람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쯧쯧쯧.,…아니…조심히 건너야지…왜 빠졌냐?”
첫 번째 사람은 그렇게 꾸짖기만 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두 번째 사람이 지나갑니다.
두 번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보시오….팔을 젓고, 다리를 저어서 헤엄을 치시오.
그리고…저기 강가로 가서 나뭇가지를 잡고, 돌을 딛고 올라오시오”
두 번째 사람은 그렇게 방법만 알려주고 사라집니다.
세 번째 사람이 지나갑니다.
세 번째 사람은 말없이….직접 물에 뛰어들어서 그를 건져냅니다.
여러분….
첫 번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이죠.
이 첫 번째 사람처럼, 어떤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 사용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살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 그나마 도와주려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믿음은 자신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는 믿음이죠.
여러분….이 두사람의 믿음이 바로….말뿐인 믿음입니다.
말뿐인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 믿음이며…그것은 곧 죽은 믿음인 것이죠.
마치….건축가가 곧 지을거라는 말만하고, 실제로는 아무런 건물도 짓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세 번째 사람처럼, 자신이 직접 물에 뛰어드는 믿음이죠.
구체적인 행동을 하는 믿음….자신이 수고하는 믿음이죠.
여러분….우리의 믿음은 살아 있습니까?
수고하고 행동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말뿐인 믿음입니까?
죽은 믿음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죽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믿음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여러분….노숙자에게 평안히 지내십시오. 따뜻하게 지내십시오. 배부르게 지내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나마…공감이라도 해 주는구나…그래…말이라도 그렇게 해야지… 생각하십니까?
아니면…괘씸하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사람이라면….그냥 말만할 게 아니라…뭐라도 좀 도와줘야지...참 괘씸하다.
주머니에서 몇 푼이라도 꺼내 주고…
하다 못해..집에서 남은 밥이라도 좀 가져다 주고…
잘 안 입는 옷이 있으며…좀 가져다 주지….
이런 마음이 드십지 않습니가?
여러분…믿음은 공감하는 정도로는 믿음이 아닙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또 말씀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그래, 그 말이 맞아…그 말씀이 진리야..
그렇게 말씀에 공감한다고…. 믿음이 다 가 아니죠.
말씀에 공감하는 것은 마귀도 할 줄 압니다.
마귀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공감하고 인정하지 않습니까?
진짜 믿음은 공감한 만큼 움직이는 것이 진짜 믿음이죠.
노숙자의 아픔을 공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숙자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입을 것을 가져다 주는 것…
행함이 있는 믿음은 그렇게 보여지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만 존재하고, 생각 속에만 떠 다니는…믿음?
그렇게 행함이 없이…보여지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보이는 믿음입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보이십니까?
혹시…여러분의 믿음은 설계도만 있고, 실제 건물은 없는 보이지 않는 믿음은 아닙니까?
죽은 믿음의 세 번째 특징입니다.
죽은 믿음은 지식뿐인 믿음입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여러분….
사람들은 믿음이 좋다고 하면, 하나님에 대해, 성경과 말씀에 대해 잘 아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 말은 맞습니다.
좋은 믿음, 참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성경에 대해서도 충만한 지식을 가지게 되죠.
하지만, 반대로….하나님에 대해, 성경에 대해 지식이 많다고 해서…그것이 곧 좋은 믿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 대해 지식이 많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라 할 수가 없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지식뿐인 믿음과도 같습니다.
여러분…..마귀들도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 대해 얼마나 지식이 대단하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귀들에게도 믿음이 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심을 마귀들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권세를 마귀들도 믿고 두려워 합니다.
예수님이 귀신 들린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을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마귀들이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굴복하잖아요?
그리고….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장면을 보면…….마귀도 말씀을 인용합니다.
한 번 확인해 볼까요?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보시면…마귀가 시편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죠.
네….마귀도 말씀을 외운다는 증거죠.
마귀도 말씀을 이렇게 외우는데…우리도 좀 분발해야 겠습니다.
네….여러분..
마귀도요. 우리 못지 않게….하나님을 잘 알고 있고요…
말씀도 잘 알고 있고요…
심지어 믿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마귀들도….하나님을 알고, 믿고 두려워 떤다는 겁니다.
그런데….여러분...이렇게 말씀도 잘 알고…하나님도 잘 알고 믿음도 있는데….
여러분…마귀가 구원을 받습니까?
여러분….지식뿐인 믿음은 구원 받을 수 없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건축에 대해 모든 지식을 알아도요….
실제로 건물을 짓지 않는다면….건축가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믿음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믿음의 사람이 되는 게 아닌거죠.
실제로 행해야만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우리의 믿음은 지식뿐인 믿음은 아닙니까?
지식에만 머물지 않고, 행하는 참된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지금까지, 행함이 없는 믿음, 죽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본론으로 들어 가야죠.
그렇다면…참된 믿음은 무엇입니까?
야고보는 어떤 믿음을 참된 믿음이라고 가르쳐 줍니까?
야고보는 참된 믿음을 가르쳐 주기 위해…
구약에 등장하는 두 사람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야고보가 예로 들고 있는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과 라합이죠.
이 두 사람을 통해, 일어났던 실제적인 구약의 사건을 가지고…
야고보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이야깁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러분....아브라함이 언제부터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창세기 15장 5절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그에게 엄청난 약속을 주십니다.
어떤 약속이죠?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아질거라는 약속이죠.
여러분…이 약속이 언제 주어진 약속이죠?
아브라함이 75세 때….주어진 약속이죠.
우리가 잘 아는대로…이 때에 아직…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75세라는 나이가 자식을 낳기에 쉬운 나이는 아니죠….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때부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건가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으니….이 때부터 믿음의 조상이 된거 아닌가요?
결론을 말씀드리면…아닙니다.
왜냐하면…이 때…아브라함의 믿음은 온전한 진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었다면…..이스마엘을 낳지 않았겠죠….
네…아브라함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몇 살 땝니까?
86세 때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몇 년이 지난 땝니까?
10년이 지난 땝니다.
아마도…처음 몇 년 동안은 믿음을 지켰겠죠….
일년, 이년, 삼년…..
여러분이라면….몇 년 즘 지나면…그 믿음이 흔들리겠습니까?
십년이 지난다면…흔들릴만 하지 않습니까?
10년이 되도…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흔들리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결국….믿음의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나서….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 오시죠…
언제요?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땝니다.
그리고, 그 때 다시 약속을 주시죠.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면서…그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줍니다.
그때…아브함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창세기 17장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함의 반응이 어떤 반응입니까?
아들을 주시겠다고요?…..아닙니다…이제 저랑 아내는 아들을 못낫습니다.
그냥 이스마엘을 통해 별처럼 셀 수 없는 자손을 주십시오….라는 거죠.
여러분….이것이 믿음의 반응입니까?
이때……아브라함에게 믿음이 남아 있습니까?
없죠…믿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여러분…도대체 아브라함의 믿음은 언제 온전해 진 겁니까?
그는 언제 믿음의 조상이 됩니까?
오늘 본문…21절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언제라고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땝니다.
아브라함의 실제적인 믿음은 이삭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가….100세에 이삭을 낳고서야… 하나님이 진짜 믿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100센대도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나님이 이런 일을 행하신다고?
자기 인생에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는 걸 경험하고…
진짜로 이삭을 주시는 걸 보면서…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아브라함은 드디어…하나님을 제대로 믿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정말 믿음으로 살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그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이 바로.., 이삭의 사건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이 말씀처럼…아브라함은 행함과 함께 일하는 믿음으로 이삭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의 믿음은 더이상 말뿐인 믿음이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 순종하는 믿음이 되었고,
보이지 않는 믿음이 아니라…보이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어느날
내가 믿어야지 하고 결단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길고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실패가 있었습니다.
또 이삭을 바치는 어려운 시험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하나님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가신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도…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의 죽은 믿음을 살아있는 믿음으로, 참된 믿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22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여러분….야고보가 말하는 참된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행함과 함께 일하는 믿음…..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할 때…..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되고, 참된 믿음이 됩니다.
그리고….놀랍게도….그 믿음을 통해…아브라함은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축복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는 축복입니다.
여러분….하나님이 우리의 벗이 되어 주시는 건….그럴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강하시고, 우리는 약한 존재이니….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도 되어 주시고, 신랑도 되어 주시고 벗도 되어 주시는거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요….여러분…우리가 하나님의 벗이 될 수 있다? 혹시…상상이 되십니까?
아니…도대체 우리 뭐라고 하나님에게 벗이 되어 드립니까?
그런데….놀랍게도…..우리가 하나님의 벗이 되어 드릴 수 있답니다.
어떻게요?
우리의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는 믿음이 될 때….우리의 믿음이 온전해 질 때….
하나님이 …그래…그 정도 믿음이면 나의 벗이지….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이런 영광스런 칭호를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런 축복, 이런 특권을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네…..
여러분, 모두가 아브라함처럼….하나님의 벗 되시는 자리까지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런 믿음까지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25절 말씀입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여러분….아브라함은 존경 받는 인물이었죠.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 받을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라합은 어떳습니까?
여기서 야고보가 라합을 가리켜 그냥 라합이라 하지 않고, 기생 라합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기생이 존경받을 만한 직업은 아니죠.
라합은 기생일뿐 아니라, 이방인이었고, 여자였습니다.
여러분…야고보가 왜 굳이 라합이라는 인물을 예로 들었을까요?
다른 훌륭한 인물도 많은데….
히브리서 11장에 보면…믿음의 사람으로 언급되는 많은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중에 하나를 골라도 될텐데…
그런데…..여기서…야고보가 굳이…라합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겁니까?
우리의 다른 외적인 조건, 우리의 신분이나, 과거의 행적, 그 어떤 것도 믿음과는 상관이 없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직….참된 믿음은 그런 조건들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참된 믿음은 오로지….함께 일하는 행함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누구든지….행함이 함께 일하는 믿음만 가지면 라합처럼 된다는 겁니다.
라합은 비록 기생이며 이방인이었지만….
여리고를 정탐하러 왔던 사자들을 접대하고, 그들을 안전하게 숨겨주는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라합은 보아스의 엄마로…다윗의 고조 할머니로…
믿음의 계보를 잇는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우리도 행함과 함께 일하는 믿음으로 영광의 자리에 서야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라합처럼, 믿음의 계보를 잇는 영광스런 자리에 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믿음까지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마지막 26절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는 다시 한번 이 말로 끝맺고 있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이 없는 몸처럼…죽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영혼이 없는 몸....혹시…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좀비…좀비가 있죠…
영혼이 없이 몸만 살아서 움직이는 좀비.
여러분….좀비를 살아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좀비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인간으로서는 죽은 존잽니다.
우리의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좀비 신앙이 되고 말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많이 쓰는 표현이 있죠.
“주여”…주여…라고….
통성 기도할 때도…많이 외칩니다…”주여 삼창”
여러분….주여가 원래 무슨 말이죠?
주여가 줄임말 아닙니까?
무엇의 줄임말이죠?
“주인이여”…의 줄임말입니다.
“주님”이라는 말도 “주인님”의 줄임말이죠.
그래서…우리가 기도할 때…주여, 주여..라고 부르짖는게요…
원래.. 그 의미가 이런 거죠.
주인님, 주인님….말씀하소서….이 종이 듣겠나이다…
우리가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게…원래는 이런 의밉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죠?
말씀하세요…이 종이 듣겠습니다….가 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6장 46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네…..바로 이겁니다.
주여,주여 라는 것이
말씀하세요….이 종이 듣겠습니다….로 끝나면 안되고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하세요….이 종이 듣고…행하겠습니다….가 되어야 하는 거죠.
여러분….주여…라고 외칠 때….이런 의미로 외치고 계십니까?
혹시….주여…라고 외칠 때…..내 말좀 들어 주세요…
내 기도 요청 좀 들어 주세요…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네…우리는 주여라고 부르짖을 때…
대부분…이런 의미로 부르짖죠…
이것 좀 들어 달라고…이것 좀 해결해 달라고….
그런데요….오늘…야고보 말씀에 비춰 본다면….
우리의 기도의 습관이 우리의 믿음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듣고 행하는 믿음이어야 살아나는데…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행하려는 기도보다는…
내 음성을 하나님이 듣고….하나님이 행하게 하려는 기도가 된다는 겁니다.
좀….심하게 말하면…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순종하라고 하는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의 부르짖는 주여가…
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주여…..말씀하소서…
이 종이 듣고 행하겠나이다….
우리의 기도부터….행함이 함께 일하는 믿음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더이상 말뿐인 믿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믿음이 아니라,
또 지식뿐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을 넘어서고, 행함으로 보여지는 순종하는 믿음…..참되고 온전한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