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퍼펙트 데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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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본문: 에스라 7장 1-10절
제목: 나의 ‘퍼펙트 데이즈’
주제: 하나님의 손이 함께한 사람의 삶은 ‘퍼펙트 데이즈’다
[서론]
여러분에게 가장 ‘완벽한 날들’은 어떤 날입니까?
설교가 대박난 날, 가장 노래를 잘 부른 날, 청약에 당첨된 날, 좋은 대학이나 회사에 합격한 날…
우리는 이런 날들을 ‘완벽한 날들’이라고 부를 겁니다.
세상이 말하는 ‘완벽한 날’이란 뭔가를 성취하고, 인정받고, 보상을 받는 그런 날들입니다.
그런데 최근 칸 영화제에서 큰 주목을 받은 일본 영화는 전혀 다른 ‘완벽한 날들’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대도시인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남성입니다.
그의 하루는 매우 단순하고 반복적입니다.
일찍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좋아하는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듣고, 자전거를 타고 조용히 일터로 향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거의 말도 없이 묵묵히 화장실 청소를 합니다.
점심에는 공원에서 혼자 빛을 즐기며 편의점 도시락을 먹습니다.
퇴근하면 오래된 동네 목욕탕을 다녀와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의 하루가 너무 단조롭고, 평범하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어쩌면 이런 하루가 가장 완벽한 하루”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삶에는 깊은 내면의 질서와 평화, 자기 삶에 대한 분명한 주도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음으로 가득 찬 제국같은 도시 속에서 그는 오히려 고요하게 자신만의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듯 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에스라는 어떨까요?
그는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의 한 가운데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제국 속에서도 ‘천국’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 역시 ‘퍼펙트 데이즈’를 살고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의 삶을 이렇게 이끈 것일까요?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나만의 퍼펙트 데이즈’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본론1]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에스라입니다.
1-5절은 그의 족보가 길게 등장합니다.
그의 정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그의 조상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제사장 사독이 나옵니다.
더 위로 올라가면 대제사장 아론이 나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직계 후손으로서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에스라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예루살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에서 태어나서 그 곳에서 줄곧 자란 사람입니다.
그는 제국의 언어, 음식, 학문,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제국의 문화에 동화되어 자신의 뿌리를 잊고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국 속에서 태어나 살았지만, 제국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국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며, 말씀의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6절입니다.
“바로 그 에스라가 바빌로니아에서 돌아왔다.”
“바로 그 에스라”라는 이 짧은 표현 속에는 말씀을 지키며 살아온 한 사람에 대한 작은 찬사가 담겨 있습니다.
제국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된 한 사람, 그가 바로 ‘에스라’입니다.
물론 제국을 떠나 그가 향한 예루살렘은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디를 가든지 그의 몸은 결국 제국 안에 있지만 그의 마음과 영혼은 제국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을 택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과감히 오랫동안 살았던 제국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제국 안에 살면서도 제국에 속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는 제국의 권위보다 더 높은 권위에 헌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그 말씀을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페르시아 왕의 허락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런 에스라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의 족보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의 뿌리에는 누가 계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제국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제국 속에서 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제국의 질서와 명령에 따르기를 강요당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이 모든 세상 질서보다 더 높은 권위, 더 궁극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높은 권위로 인정하기에 오히려 세상의 질서도 존중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세상의 권위와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때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제국의 가치에 휩쓸려 제국에 속한 사람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예를들어, 제국의 가치관은 적자생존,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천국의 가치관은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낮음이 높음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국은 효율성과 성과, 결과를 절대적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쉼과 안식, 과정과 동기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속한 사람일까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곳이 제국일지라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천국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제국 한 가운데서도 천국에 시선을 고정하고 헌신한 사람, 천국을 목말라 한 사람, 그가 바로 ‘에스라’입니다.
그는 제국에서 살지만 제국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그였기에 자신만의 ‘퍼펙트 데이즈’를 살아갈 수 있던 것입니다.
[본론2]
그럼 하나님은 왜 이런 에스라를 주목하신 것일까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중에 왜 이 사람을 하나님의 뜻을 위한 도구로 삼으신 것일까요?
1절입니다.
‘이런 일들이 지나가고 난 다음이다.’
여기서 ‘이런 일’이란 1-6장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에스라서 6장까지는 성전 건축이 어떻게 완공되었는지 다루고 있습니다.
6장에서 성전은 마침내 완공되었습니다.
하드웨어는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60여년이 지났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이 있었지만 점차 신앙이 메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말씀의 사람을 준비시키십니다.
성전이 있어도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전을 성전답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지 않는다면 성전은 단지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드웨어 안에 소프트웨어를 장착하시기 위해 에스라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준비되고, 하나님 말씀에 헌신된 사람, 그가 바로 에스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은 성전이 세워진 그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으로 채우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이러한 에스라에게는 두가지 특별한 은혜가 주어집니다.
첫째, 에스라가 요구하는 것은 페르시아 왕이 뭐든지 다 들어줍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피셨으므로 왕은 에스라가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주었다.’
여기서 ‘주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피셨다’라는 표현은 원래 히브리어로는 ‘하나님의 손이 그의 위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눈에 보이는 손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와 함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움직여 에스라의 요청을 모두 받아들이게 한 것입니다.
둘째, 4개월의 여정을 거쳐 안전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9절입니다.
‘그가 바빌로니아를 떠난 것은 첫째 달 초하루이다.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펴 주셔서,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닿을 수 있었다’
제국의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은 긴 여정입니다.
4개월 동안의 광야와 황무지, 돌산, 모래언덕을 거치는 거친 여행길입니다.
도적들과 주변 민족들의 위협도 도사리고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단 한번의 사고없이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이 그를 잘 보살펴 주셨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선한 손’이라는 표현이 덧붙여져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에스라의 발걸음을 보호하셨는지 알려줍니다.
그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있었기에 그의 고된 여정조차도 ‘퍼펙트 데이즈’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럼 하나님의 손이 왜 에스라 위에 임하게 된 것일까요?
10절 말씀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주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지켰으며,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뭔가 특별한게 있던 게 아닙니다.
단지 그는 말씀에 헌신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날마다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삶에서 순종했습니다.
더 나아가 백성들에게 그것을 나누고 가르쳤습니다.
그것때문에 하나님의 손이 그의 인생 위에 머무르신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는 ‘퍼펙트 데이즈’를 살아갈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에스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에스라의 이름 대신 나의 이름을 넣어보면 됩니다.
‘하나님의 손이 내 위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지켰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그 말씀을 나누고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던지겠습니다.
우리에게 ‘퍼펙트 데이즈’란 어떤 날인가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계획한 일들이 다 잘 풀리고, 큰 성취를 얻은 그런 특별한 날인가요?
물론 그런 날들도 하나님께 감사한 날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이 말하는 ‘퍼펙트 데이즈’는 다릅니다.
오늘 말씀 속에 등장하는 에스라는 제국 속에서 엄청난 스펙이 있거나 엄청난 성공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어디에 있든지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힘껏 지키며, 사람들에게 나누고 가르치며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런 그의 인생에 하나님은 선한 손을 올리셨고, 그의 하루하루는 ‘퍼펙트 데이즈’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에 엄청난 기적이나 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며, 나누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손이 우리 인생 위에 있게 됩니다.
때로는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인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퍼펙트 데이즈’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 위에 있으며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이 천국을 향한 발걸음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화려한 제국 속에서 묵묵히, 소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그 삶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퍼펙트 데이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오늘 다시 한번 다짐합시다.
말씀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말씀을 따라 하루를 살아가며, 그 묵상의 은혜를 누군가와 나누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하루,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가기를 소망합니다.
그 날들 위에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에스라와 같은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함께걷는교회 모든 성도들이 그 한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