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으로 나아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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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와 샤워
냄새와 샤워
제가 올해 3월부터였죠? 감리교신학대학교에 교단청강생으로 수업을 계속해서 듣고 있는데요, 저번 봄학기 때에 화요일 오전 수업을 듣는데, 그 수업은 학생들이 많이 듣는 수업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에 수업을 딱 들으러 가니까, 엄청나게 땀에 절은 냄새가 난 겁니다. 그 냄새가 난 방향을 보니까 어떤 학생이 딱봐도 기숙사에서 사는지 안씻고 바로 수업에 온 것 같은 모습이더라구요. 제가 마음 속으로 “그래, 얼마나 바쁘고 피곤했으면 씻을 새도 없이 수업에 왔을까”하면서 자리는 멀찍이 떨어져서 앉았던게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때는 잘 안씻고 다녔었어요. 귀찮아서 그냥 학교 갈때에 꼬질꼬질하게 갔던게 기억이 났는데, 저랑 비슷하게 또 안씻고 온 친구한테서 냄새가 엄청 나니까, “아 나한테도 저런 냄새가 나겠구나”해가지고 그 때부터 씻고 다녔던 게 기억이납니다.
이처럼 저희가 보통 어디 외출하거나 특히 교회 올 때에는 샤워를 하고 옵니다. ...샤워하고 오시죠? 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안 씻으면 더럽고 냄새가 나기도 하고, 어떤 만남이냐에 따라서 잘 씻고 가는 것이 배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죠.
지난 시간부터 저희가 예배 순서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예배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마치 설날에 웃어른에게 세배하러 가는 것과 같다, 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럼 세배하러 갈 때에 샤워해서 더러움을 씻고 가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도 저희가 깨끗하게 씻는 행위가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거룩하심
물론 정말 저희 몸을 잘 닦고 씻고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이 예배에서 “깨끗해진다”라고 하는건 위생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말씀 5절말씀을 보시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시기를 하나님은 빛이시다,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라고 하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마치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과 같이, 약간의 흠과 죄와 악과 부정함이 없으신 거룩함이다 라는 것인데요,
그럼 한번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예배의 순간에 나아오는 저희들을 보시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보이실 까요? 하나님은 아무런 어둠이 없으신, 더러움이 없으신 거룩한 빛이신데, 예배에 나아오는 저희의 모습은 주중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죄를 범하는 모습으로 인해서 더러움이 묻어있는 모습을 보시지 않을까 생각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 있어서 꼭 필요한 순서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지는 것,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죄의 고백, 자비송, 용서의 말씀
죄의 고백, 자비송, 용서의 말씀
그래서 오늘도 새 예배서에서 제시하는 예배 순서를 보시면요, 지난 시간에 저희가 알아봤던, 경배 찬송 뒤에 이어서 죄의 고백, 자비송, 용서의 말씀이라고 하는 순서가 등장합니다. 아마 이거는 생소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제가 감신대 다닐 때에 들었던 채플 영상으로 보여드릴 텐데, 코로나 시기 때 찍은 거라 합창단이 부르는 자비송이 없어서 자비송만 다른 걸로 대체를 했습니다. 함께 보시죠.
[영상]
방금 보신 영상이 바로 죄의 고백, 자비송, 용서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순서입니다. 사실 이 죄를 고백하는 전통은 굉장히 오래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8-9절 말씀에서도 보시면,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약에 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면 스스로를 속이고, 또한 진리가 우리 가운데 없는 것이고,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성경에서부터 그 전통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자비송이라고 하는 것은 키리에 엘레이손, 이라고 하는 헬라어,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라고하는 가사가 들어가는 노래인데요, 이것 역시 성경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죠.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 Chapter 20
καὶ ἰδοὺ δύο τυφλοὶ καθήμενοι παρὰ τὴν ὁδόν, ἀκούσαντες ὅτι Ἰησοῦς παράγει, ἔκραξαν λέγοντες· ⸂
맹인 두 사람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데요, 이 고백, 키리에 엘레이손이라고 하는 고백이 초대교회에서도 예배 안에서 사용되고는 했습니다.
사도헌장(Apostolic Constitutions)이라고 하는 4세기의 글에서는 초대교회의 예배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너희 구도자여, 기도하라, 신자들이여, 외쳐라. 주여,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이 시기에 아마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에 응답할 때마다 키리에 엘레이손,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응답하는 것으로 예식 안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가톨릭 교회에서 본격적으로 미사를 드릴 때 사용하게 되는데요, 찬송가 632장에 나오는 가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는 가사를 사제가 말하면 회중들이 같이 말하는 구조로 중세 가톨릭시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미사에서 사용됩니다.
종교개혁이 있던 시기의 개신교회에서도 사실은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역시 1784년에 출판한 감리교인의 주일 예배서(The Sunday Service of the Methodists)라는 책에 똑같은 내용의 기도문을 넣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저희의 죄를 자백하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외쳤으면, 그 다음에 무엇이 필요하죠? 그냥 샤워를 열심히 한다고 사람이 거룩해지는게 아닌 것처럼, 죄를 고백하는 것자체가 저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용서해주셔야만이 저희가 깨끗해질 수 있는 거죠.
본문말씀 9절 말씀을 다시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바로 이 말씀, 하나님께서 저희를 용서하신다는 성경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저희가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가 용서해주는게 아닙니다. 읽는건 목사님들일 수 있어도,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용서해주시는 말씀이 선포되어지면서, 저희가 깨끗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되어지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교회에 나올 때 저희가 몸을 잘 씻고 오는 것처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 깨끗하고 거룩하게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교독, 삼위영가
교독, 삼위영가
그 다음에 알아볼 것은 교독과 삼위영가인데요, 거의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교독문을 읽는 것과 송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 순서는 꼭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먼저 교독문의 경우에는 그 기원을 구약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시편 136편을 보시면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구절이 있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하는 구절인데, 아마도 이 시편이 저희가 알고 있는 교독문의 형식으로 읽혀지거나 노래로 불렸을 겁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구절이니까 노래로 부르기 더 쉬웠을 거구요.
한 예시로 시편 95편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불렀을까? 상상하면서 재구성한 노래가 있는데요, 한번 들어보시죠.
[영상]
아마 그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만든것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렸던 유대인들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회당 중심의 예배를 드리던 유대인들의 전통에서도 유지됩니다.
중요한 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시편을 낭송하는 문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했다, 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어떠한 방식으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이 추측하기를 아무래도 바울이 스스로를 유대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말하기 때문에 유대교의 시편을 낭송하는 전통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기원후 4세기 쯤에 가서는 대대적으로 정착하게 되다가 가톨릭 교회에 가서는 아예 미사에서 노래의 형태로 교창하게 되는 형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다가 1549년에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라고 하는 책이 영국 교회에서 발매가 되면서 가톨릭과 분리된 개신교 예배서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요, 여기서도 역시 시편 말씀을 교독, 혹은 교창하는 형태의 예전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회에서도 시편을 교독하는 것이 자리 잡았는데요,
이때만해도 시편교독이라고 하는것은 읽기도 하지만, 노래로도 부르는 것으로 자리 잡았는데, 오늘날처럼 저희가 가지고 있는 새찬송가 맨 뒤에 교독문으로 부록처럼 자리잡게 된 것은 19세기에서 20세기 정도에 형성됩니다.
화면에 보이는 게 1907년에 작성된 찬송가집인데요, 맨 뒤쪽에 부록으로 교독을 위해 선정된 시편 및 성구(The Psalter and Scripture Selections for Responsive Reading)라고 하는 것이 실려있습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편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을 포함한 성경 구절을 교독, 읽는 것으로 자리잡게 된거죠.
그래서 여러분, 교독이라고 하는 순서는 그냥 성경구절을 읽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는 것은 읽는 것이지만, 그 본질은 하나님을 시편으로 찬양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또한 삼위영가, 많은 교회가 송영이라고 부르는 찬송의 시간인데요, 여러분 찬송가 3장, 4장, 7장에 보시면 왼쪽 위에 작사 시기를 2세기 정도로 말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이 시기에 완전히 저희가 지금 부르고 있는 형태가 정착한 것은 아니구요, “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을 돌리는 것, 삼위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의 형태가 처음 등장한 시기입니다.
물론 성경에도 성부 성자 성령이 같이 언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라 라고 말씀하시구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목사님들의 축도의 기원이 되는 사도바울의 축복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정확하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찬양, 혹은 영광이라고 하는 말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데요,
기원후 160년경에 순교한 순교자 폴리캅의 글에 보시면,
“당신(성부)과 함께,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곧 영원하시고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님과 함께, 지금과 다가오는 모든 시대에 영광받으소서. 아멘.”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2세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죠.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삼위 하나님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나중에 4세기에 있던 니케아 공의회에서나 명확하게 성부 성자 성령을 믿는다는 니케아 신경이 등장하게 되고, 저희가 알고 있는 찬송가 3장과 4장, 그리고 7장에 나오는 가사가 등장하게 됩니다. 라틴어로는 글로리아 파트리(Gloria Patri)라고 하는데요, 가사를 보시면,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송영은 많은 교회 전통에서 시편으로 찬양을 하고 나서 이 삼위일체 신앙으로 마무리짓는 형식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예시를 들자면요 전통적으로 교회에서 시편 1편을 낭송한다고 했을때, 이런 형태가 되는 겁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도다
성부 성자 성령께 영광돌리세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그래서 교독문과 송영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불려지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먼저는 시편으로 찬송하고, 또한 삼위의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찬양입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왔을 때의 상황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찬양하는 시편인데요,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다윗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나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14절 말씀이 있는데요,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것에 대해서 구원의 하나님을 높이 노래하리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교독과 송영이 바로 이 다윗의 고백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외칠 때에, 하나님께서 용서의 말씀을 들려주신 것에 감사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바로 교독과 송영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다윗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로 찬양하며 화답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냥 예배의 지나가는 순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기도 응답송
오늘의 기도, 기도 응답송
마지막으로 볼 순서는 오늘의 기도와 기도 응답송인데요. 사실 많은 교회들이 대표기도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데, 사실 대표기도는 굉장히 잘못된 표현입니다. 사실 예배는 하나님과 여러분 모두의 만남이에요. 목사님만 만나는거 아니고, 전도사만 만나는거 아니고, 기도자만 만나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대표기도”라고 하는 말을 써버리면, 다같이 기도하는게 아니라 대표 한명만 기도해버리는 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새 예배서에서도 오늘 함께 예배에 참석한 모든 회중들의 기도, 특히 오늘 예배를 위한 기도를 함께 드리자는 뜻으로 오늘의 기도라고 하는 표현을 씁니다.
그래서 오늘의 기도에는 어떤 기도를 하는 것이냐면, 특히 주일 예배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죠? 그래서 주일 오전 예배는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서 1년을 보내는 교회력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저희가 지금은 성령강림 후 제 22주간을 지나고 있는데요, 곧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과 그것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이번달 마지막 주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대림절 때에는 예수님의 나심을 기다리는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기도가 꼭 들어가야합니다.
그리고 대체로 여러분이 아시는 기도의 내용, 오늘 말씀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 중보하는 기도 등이 들어가면 좋은데요, 사실 처음에 저희가 살펴보았던 것, 죄의 고백과, 자비송, 그리고 용서의 말씀이 많은 교회에서 생략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생략했으면 꼭 오늘의 기도 안에 회중의 죄의 고백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야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기도 후에 기도 응답송을 하는 것이 그 기도에 대해서 저희 모두가 아멘하고 우리 기도를 들어주세요 하고 찬양대가 회중들을 대신해서 부르는 찬양인데요, 호산나 찬양대가 올해 부르는 기도송을 보시면
우리 기도 들으사 죄를 용서하시고 주의 사랑으로 채우소서 아멘
이런 가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휘자이신 유길상 집사님이 의도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에서 키리에 엘레이손이라고 하는 자비송이 빠진 부분을 만안교회에서는 잘 채우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1-5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사도바울이 기도에 대해서 말하기를 5절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그리스도 예수 한 분 뿐이라고 말합니다. 저희를 대표해서 중보하시고 기도하시는 분은 예수님 한분 뿐입니다. 다만 저희는 먼저는 이 예배에 함께 한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가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구원의 진리에 이른 것 같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에, 오늘의 기도는 오늘의 예배와, 오늘의 우리 교회와,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우리 나라와 민족과, 오늘의 세계 열방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런 기도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하는 기도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며 드리는 예배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우리의 이웃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죄의 고백, 자비송, 용서의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예배자가 되기 위한 과정입니다.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 앞에 저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함으로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는 것은 마치 깨끗하게 씻고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정결한 예배자로서 함께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는 예배자가 되어야합니다.
둘째, 교독과 삼위영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로 올려드리는 찬양입니다. 그냥 좋은 성경구절 하나 읽고, 익숙한 노래 하나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교독과 송영 자체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다윗과 같이 찬송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기도와 기도응답송은 모든 예배자가 함께 하는 기도입니다. 누군가를 대표로 세워서 그 사람이 기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하는 기도이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오늘의 예배를 위한 기도, 오늘의 교회를 위한 기도, 오늘의 나라와 세계를 위한 기도를 하고 함께 찬양으로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기도와 기도응답송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백함으로 거룩하고 정결한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감사로 화답하고, 예배를 위해서 또한 아직 죄인된 자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라며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