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장
이주혜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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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사도신경, 찬송가 384, 546장
우리가 민수기와 그 이전 본문들을 보면, 말 한마디가 진영 전체를 얼마나 크게 흔드는지 계속 보게 됩니다. 그만큼 ‘소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커요.
제가 그걸 몸으로 느꼈던 때가 2020년 마스크 대란이었어요. 2020년 초,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마스크가 꼭 필요했잖아요. 그때 잠깐,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아지는 바람에 ‘순간 부족’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오늘부터 약국에 마스크 없대요.” “마스크 공장도 멈춘다네요. 지금 사야 해요.” 마스크 없이 외출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보니, 이런 말들이 순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사재기가 번졌습니다. 진열대가 금세 비고, 약국 앞은 긴 줄로 가득했죠. 저도 ‘나 마스크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한 주가 지나자 물량이 다시 잘 들어왔습니다. 마스크가 부족하긴 했지만, ‘영구 부족’이 아니라 그 순간의 부족이었어요. 공급은 이어졌는데, “못 살 거다”라는 두려움과 무성한 소문이 마스크 대란을 더 키운 거죠.
소문은 바람보다 빨리 퍼지고, 듣는 우리의 마음은 갈대처럼 쉽게 흔들립니다. 소문이 커질수록 두려움은 더 커지고, 하나님 말씀은 작아집니다. 이 모
과장된 두려움
과장된 두려움
오늘 본문, 민수기 22장의 모압 평지가 딱 그런 상황이었어요. 오늘 모압왕인 발락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잘 보지 못하는 못합니다. 모압 왕이 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턱에 서자 어떤 반응을 보였냐면 3절에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번민할 정도로 두려움이 커지자 발락의 언어도 이렇게 과장됩니다. 그래 4절에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압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다면 신명기 2장 9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여기서 기억할 점이 있어요.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야기이고, 신명기는 40년 여정 끝에 모세가 과거를 설교로 재구성해 상기시키는 책입니다. 그래서 발락이 앞전에 모리아인에게 행한 일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와 소문에 눌려 번민할 때, 하나님이 주신 방향은 이미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니이다. 하나님의 언약적 의도는 이미 분명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어요. 말씀은 분명했지만, 과장된 두려움이 현실의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발락은 자신의 방식으로 방법을 모색하는데 돈과 권력으로 발람이라는 선지자의 ‘입’을 통해 현실을 바꾸려 합니다. 소문이 만든 그림이 번민을 낳고, 번민은 다시 조급한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사실 저희도 발락과 같이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마스크 대란 때 마스크 없으면 사러 나갈 수도 없고, 병원도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참 두려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리고 이제 아기를 갖게 되니까 주변에서 축하해주시지만 주변에 여러 말씀들을 해주세요. 콜라나 간장 많이 먹으면 아이가 검게 나온다고 하시고, 오이나 김같은 거 많이 먹으면 아이 얼굴에 점이나 주근깨 생긴다고 하시고, 커피는 한 방울도 먹으면 안된다고 하시는 여러말을 듣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순간 “그런가?”하는 제 자신을 발견해요.
그런데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리면 건강하게 다 먹으라고 하시거든요. 그래서 소문은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 처럼 무엇을 크게 듣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발락처럼 번민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크게 듣는 저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여지를 줌: 1차 사절단 + 2차 사절단
여지를 줌: 1차 사절단 + 2차 사절단
이제 사건의 흐름부터 따라가 볼게요.
먼저 1차 사절단입니다. 발락이 유프라테스 강변 브돌에 있는, 이름값 제대로 하는 점술가 발람을 딱 집어서 부릅니다. 말도 분명하죠. “와서 이 백성 좀 저주해 달라.” 심지어 복채까지 챙겨 보냅니다.
발람이 일단 하나님께 묻고 밤새 기다립니다(22:8). 그리고 하나님이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발람이 아침에 사절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니 아니하셨다.”(22:13)고 1차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래서 1차 제안은 거절로 끝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2차 사절단이 옵니다. 이번엔 1차 때와 다르게 급이 달라요. 더 높은 귀인들이 더 많이 오고, 보상 약속도 훨씬 커졌습니다. 말의 톤도 달라지는데 17절을 보면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발람이 이 말을 듣고도 거절을 합니다. 굉장히 멋지게 거절하는데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단호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는 말이 나옵니다(22:19).
이 한 문장이 문을 닫은 것처럼 보이는 말 뒤에, 살짝 비스듬히 열린 틈입니다. 겉으로는 거절했지만, 마음은 ‘혹시’라는 가능성에 기대어 기울기 시작한 것이죠. 이 작은 여지가 이미 발람도 알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흐리게 만들고, 결국 하나님이 길에서 직접 막는 일로 (22:22 이하) 넘어가게 됩니다.
성경에 귀한 사람들이 많지만, 여지 하나 때문에 무너진 이들도 많습니다. 사울왕도 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여지를 남겨뒀고, 솔로몬도 여호와를 사랑하나 신당을 남겨두는 여지를 두었고, 룻의 아내도 뒤돌아보는 여지를 두었을 때 소금 기둥이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틈을 보여주었을 때 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하나님이 성경의 말씀으로 이미 알려주셨지만 여전히 여지를 두고 틈을 준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이렇지 않을까? 하는 여지를 두는 거시 아니라 즉시 순종하고 들리는 소문에 마음의 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귀를 귀우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멈춤: 길에서의 제동 + 도착
멈춤: 길에서의 제동 + 도착
하나님이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하라.”
그런데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곧장 길을 떠납니다(22:21). 곧 이어,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이미 발람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말은 거룩한 것 같은데 속 마음은 이미 발락에게 가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 진노하십니다.
발람이 나귀를 타고 하는데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되요.
첫 번째: 나귀가 사자를 보고 밭으로 벗어납니다(22:23). 발람이 때리죠.
두 번째: 포도원 사이로 비집고 가다가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발을 담에 비벼 상하게 합니다(22:24–25). 또 때립니다.
세 번째: 더 이상 빠져나갈 데 없는 좁은 곳에서 사자를 보니까 나귀가 주저앉아 버립니다(22:26–27). 그리고 나귀를 때립니다.
그때가 되서야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여시고, 이어서 발람의 눈을 여십니다. 그러자 칼 든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이 깜짝 놀라 엎드려 지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말하죠.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이 말씀을 잘 보면 발람을 죽이려는 목적보다도 살리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주려고 막으신 게 아니라, 살리려고 멈추게 하십니다.
그렇게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졌을 때 모압왕이 발락이 아무리 좋은 것을 주고 극진히 대접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38절에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
라고 고백하며 변하게 됩니다.
저도 사역을 하다가 한번은 사역을 정리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역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주변에서는 “이 교회에서 충분히 했으니까 이제 다른 곳으로 가던지, 수련목 준비가 되는 교회로 가면 어떻겠냐”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버티라고, 아직 그만둘 때가 아니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렇게 되다보니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이쪽으로 자면 눈물이 이쪽으로 흐르고, 저쪽으로 자면 눈물이 저쪽으로 흐를 만큼 눈물로 기도하며 성탄절을 보내고 다음해에도 주님 주신 말음이니까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찬양팀에서 회식을 한다고 전도사들을 불러주셨어요. 그런데 그 회식자리에 갔는데 지금 제 남편인 안전도사님이 거기에 계신거에요. 그래서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사역을 그만했더라면 저에게 안전도사님은 없었을 거예요. 사역을 한해 더 하라는 말씀이 너무 힘들었지만 그 말씀에 집중하고 순종했더니 결혼을 1년만에 하게 되었습니다.
때로 사람들의 말이 크게 들리고, 들리는 소문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다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시고. 성경을 통해서 알려주셨는데 그 말씀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잘못된 길을 가면 멈추게 하시고 다시 돌이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으며 갈 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발람처럼 번민해서 하나님 말씀보다 다른 말들을 더 크게 들리거나, 또 발람처럼 이미 주신 말씀이 있지만 여지를 두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막으시고 다시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를 말씀 앞에 세우시니 감사합니다. 광야의 길에서 발람의 속도를 멈추시고 눈을 열어 주셨듯, 우리의 발걸음도 멈추게 하시고 방향을 바로잡게 하옵소서.
주님, 주변에서 하는 소문을 크게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작게 들을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두려움이 번민이 되어 판단이 흐려 졌고, 분명한 말씀 앞에서도 ‘혹시’라는 여지를 남겨 순종을 미루었던 지난 날들을 회개합니다. 우리의 어리석음과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신 말씀을 듣고, 보는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발람의 모습을 통해 막으심이 벌이 아니라 구원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길에서 멈추게 하시는 손길로 우리의 속도를 낮추시고, 보게 하시는 은혜로 눈을 밝혀 주시며, 다시 보내시는 명령으로 발걸음을 올곧게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은혜의 주님. 우리 공동체를 붙드시고, 가정과 일터와 사역의 자리마다 소문이 아니라 약속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두려움이 키운 말들이 아니라 복을 선포하시는 주의 뜻이 흐르게 하시고,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주권을 보게 하옵소서.
멈추라 하시면 멈추고, 보이라 하시면 보고, 가라 하시면 가는 순종하는 오늘 하루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늘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