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감사는 참된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에스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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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된 감사는 참된 회개에서 시작됩니다
[서론]
벌써 2025년이 거의 저물어 갑니다.
제게는 유난히 2025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올 한해 어떠셨나요?
어떤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저는 엊그제 용인에 있는 호스피스 병원을 다녀온 일이 깊이 기억에 남습니다.
함께 논문을 쓰던 목사님 한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이 몇해전 암에 걸리셨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악화되어 지금은 병원에서 삶의 마지막 자락을 보내고 계십니다.
한때 누구보다 활기차시고, 건강하셨던 분이신데 정말 너무 많이 야위셨더라구요.
제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모습이 떠올라 저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배에 복수도 많이 차서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시고 계셨습니다.
너무 담담하게 인사하셨지만 통증이 너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함께 가셨던 목사님들도 병원을 나서며 잠깐 동안 모두 말을 잃어 버렸습니다.
각자 마음이 싱숭생숭하기 때문이었겠지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인생이 결국 이런 것이구나. 뭔가 거창한 것 같아 보여도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구나.”
그렇지만 그 생각이 제게 삶에 대한 허무함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게 주어진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 작고 평범한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지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라는 단어를 쉽게 말하지만, 사실 참된 감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가 오늘 살펴볼 말씀인 에스라 10장은 사실 추수감사절 말씀으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눈물, 회개, 슬픔, 죄고백…마치 감사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 같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으로 설교해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말씀을 깊이 들어다보니 감사 설교를 하기에 굉장히 좋은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 이 본문이 진정한 감사가 넘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감사를 내게 좋은 일이 있을때만 가지는 감정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정직하게 고백할 때 비로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열매가 감사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이런 감사가 다시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1]
에스라서 10장은 에스라서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에스라와 백성들이 함께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아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지, 감사와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 속에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감사의 씨앗이 숨겨져 있습니다.
먼저 그 당시 상황을 좀 더 잘 살펴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1차 포로 귀환을 통해 예루살렘에 돌아와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였고,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에 착수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 후 에스라와 함께 2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귀환할 때 모든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4개월의 긴 여정도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현실은 기대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여 그 신앙이 무너지고 있던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앞장서 타락하고 있었기에 공동체 전체가 또다시 멸망의 길로 갈 위험에 처해 있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 사실을 보고받고 충격에 빠집니다.
자신의 옷을 찟고, 머리카락과 수염도 밀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성전 앞에 모읍니다.
10장 9절입니다.
‘사흘 안에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이 모두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 때가 아홉째 달 이십일이다. 온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 앞 뜰에 모여 앉아서 떨고 있었다. 사태가 이러한 터에, 큰 비까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홉째달 스무날이니까 지금 우리 달력으로 12월입니다.
겨울철 우기라서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 백성들이 성전 앞에서 벌벌 떠고있는 상황입니다.
단지 추위때문만이 아니라 말씀 앞에 자신들의 죄가 드러난 현실 앞에서 떨고 있던 것입니다.
그때 에스라가 말합니다.
10-11절입니다.
‘드디어, 에스라 제사장이 나서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이방 여자들과 결혼하였으므로,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의 죄가 더욱 커졌습니다. 이제 주 여러분의 조상의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그의 뜻을 따르십시오. 이 땅에 있는 이방 백성과 관계를 끊고, 여러분이 데리고 사는 이방인 아내들과도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이방 여자들과의 결혼을 끝내라는 것입니다.
너무 과한 요구 아닐까요?
그러나 이 결혼은 단순한 결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 그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한 데 있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첫 단계가 바로 이방 여인과의 결혼입니다.
공동체가 또다시 멸망의 길로 들어서느냐 마느냐의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 이런 에스라의 선포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12절입니다.
‘온 회중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백성들은 에스라의 말에 따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뒤에 보면 이런 결혼을 한 사람들의 명단이 등장합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감추고 싶을 수도 있는데 있는 그대로 다 드러냅니다.
에스라 10장 11절의 ‘죄를 자백하다’는 단어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이 ‘자백하다’는 히브리어가 ‘찬양하다, 감사하다’라는 단어와 동일한 뿌리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백하는 순간, 그 자리가 바로 감사의 자리로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참된 감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때 시작됩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죄와 무너진 삶의 영역을 그대로 놔둔 채 ‘감사제목’만을 찾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마치 곪아 있는 상처 위에 향수를 뿌려 고약한 냄새를 가리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잠깐은 괜찮아 보여도 상처는 더 깊이 썩어갑니다.
우리가 올 한해 주님께 반복적으로 짓는 죄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부터 회개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시작이 아닐까요?
올 한해 내가 넘어진 자리를 살펴봅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앞에 정직하게 나를 드러냅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짜 감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본론2]
물론 회개가 고통스럽고 힘든 일임은 분명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후회하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실제로 바꾸는 아픈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에는 언제나 선택과 행동의 대가가 따라옵니다.
44절입니다.
‘이들은 모두 이방 여자와 결혼한 남자이다. 이방 여자 가운데는 자식을 낳은 사람들도 있었다.’
3개월의 조사기간을 거쳐 이방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됩니다.
심지어 여기에는 자식을 이미 낳아 기르고 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헤어집니까?
눈물없이는 할수 없는 삶 전체를 뒤흔드는 매우 고통스러운 결단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고통과 대가는 그들을 죽이는 고통이 아니라 살리는 고통이라는 사실입니다.
곪은 상처 부위를 그대로 두면 온 몸이 감염되듯, 썩은 부위를 도려내야만 살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에스라가 “이미 이렇게 된 거니까 그냥 덮어두자”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이스라엘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다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단순히 후회하거나 슬픔을 느끼는 감정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삶을 돌이키는 행동, 즉 대가를 감수하는 순종이 뒤따라야 합니다.
아프지만, 그 고통이 우리를 새롭게 살리시는 하나님의 정화 작업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짚어야만 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들의 회개가 절대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4절입니다.
‘그러므로 대표를 뽑아서, 모든 회중의 일을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을마다 이방 여자와 결혼한 사람들에게는 날짜를 정하여 주어서, 그들이 자기 마을의 원로들과 재판장들과 함께 나오게 하고, 이 일 때문에 일어난 우리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을 조사해서 일괄적으로 처리한게 아닙니다.
마을의 원로들과 재판장들의 조사를 통해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방인과의 결혼이 문제였던 게 아니라, 우상숭배로 빠질수 있는 위험이 있는 가정이 선별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들의 회개가 강압이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마음이 찔린 사람들의 자발적 결단이라는 점입니다.
그럼 무엇이 이러한 자발적 회개를 가능하게 했을까요?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4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때입니다.
그 시간동안 에스라는 무엇을 했을까요?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회복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고 스스로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18절과 23절을 보면 제사장, 레위인들과 같은 지도자들이 먼저 솔선수범한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회개를 보며 백성들도 그 흐름을 이어간 것입니다.
완전히 영적 흐름이 바뀐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러한 영적 흐름을 만들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밀어붙이거나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각 가정의 상황을 살피고 말씀으로 분별하여 자발적으로 결단하도록 기다린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는 결코 강제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과정이자 동시에 우리의 자발적 반응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발적 회개에는 진짜 감사가 따라옵니다.
말씀안에서 스스로 돌이킨 회개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안과 감사가 흘러 넘칩니다.
참된 감사는 자발적 회개의 고통을 지나야만 꽃피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에스라 10장 말씀은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비가 내리는 차갑고 어두운 겨울날, 백성들은 벌벌 떨고 있고, 회개는 아프고 부담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비를 통해 그들의 죄를 씻기시고, 무너진 공동체를 정결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은혜의 해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사는 내게 좋은 일이 생겼을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감사는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참된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의 진실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흘러 나옵니다.
내 삶의 어두움과 무너진 자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회개의 자리에서 흘러
나옵니다.
회개는 분명 아픈 과정입니다.
때로는 대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우리를 죽이는 고통이 아니라, 우리 영혼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3개월의 긴 조사 기간을 거쳐 그들이 회개의 결단을 마친 날이 첫째달 초하루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새로운 해를 여는 날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날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리셋의 날’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기록된 사람들의 명단은 처벌받을 사람들의 부끄러운 명단이 아닙니다.
회개를 통해 공동체를 다시 살리고 새로운 출발을 만들어낸 은혜의 명단, 감사의 명단입니다.
이들의 자발적 결단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다시 하나님 앞에 설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 속에 서서 우리 안의 무너진 자리들을 돌아볼 수 있기 바랍니다.
숨기고 싶은 죄, 반복되었던 나의 연약함, 내가 짓눌리고 넘어졌던 자리들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드러냅시다.
고통스럽고 눈물이 나더라도 그 회개의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게서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참된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올해의 끝자락이 우리에게도 ‘리셋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개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은혜를 맛보고, 그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감사가 우리의 삶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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