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께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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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제가 주일예배 설교를 몇 번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교회 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분과 나누어 보려 고합니다.

1.사마리아, 장소적 배경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 께서 수가라는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십니다. 사마리아 는 북이스라엘 수도였으며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 합니다. 앗수르는 그들의 강한 민족성을 파괴 하기 위해 강제로 사람들을 이주 시켜 북 이스라엘 사람들과 지내게 하며 그들과 결혼하게해 정통성을 깨트립니다. 남유다 왕국은 그런 그들을 민족성을 지키지 못한 순결하지 못한 자로 보앗습니다.
오늘 본문은 보니 5절 과 6절에 사마리아 수가라는 지역에 대한 정보가 나옵니다.
수가라는 동네와 야곱이 그아들 요셉에게 준땅이 가깝다고 하며 6절에 야곱에 우물이 있다고 합니다. 야곱에 우물과 야곱이 요셉에게 준땅은 700M 정도 거리라고 합니다.
창세기 33:18–19 NKRV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야곱이 장막을 친 내용이 등장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와 얍복강에서 씨름하고 난뒤 가나안 땅 세겜성 앞에 장막을 치고 장막을 친 그밭을 돈을 주고 샀습니다.
광야 즉 척박한 곳이 많았던 이스라엘 지역에서 장막을 쳤다는 것은 다시말해 머물렀다는 것은 우물이 근처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 세겜땅을 야곱은 값을 주고 샀습니다
창세기 48:21–22 NKRV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그리고 그 세겜땅을 요셉에게 주었고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거라고 합니다.
여기서 빼앗은 거라고 하는 것은 아모리족속에 손에서 지켰다라는 의미입니다. 강도처럼 빼앗은게 아닙니다.

-값을 주고 산땅 칼과 활로 지켜낸 땅 (핏값으로 산교회)

야곱이 장막을 치고 값을 주고 산땅 그리고 그곳을 칼과 활로 지켰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등장하는 우물이 야곱의 우물 이며 이 야곱의 우물과 야곱이 요셉에게 준땅이 지리적으로 700M 거리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오늘 이야기에 장소인 수가라는 이땅은 결국 값을 주고 산땅이며 칼과 활로 지켜낸 땅이라는 겁니다.
주의 핏값으로 산 교회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들의 칭호같은 겁니다 . 주께서 희생의 대가를 치르시고 빼앗으신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지켜낸 자녀 입니다. 결국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의 자녀들을 찾아 오셔서 그사람의 죄값을 치르고 자기의 자녀로 만드시는 과정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의 삶속으로 들어가십니다.

2.교회 -자격없는자들의 모임

여러분 교회는 어떠한 자들에 모임입니까??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서 모이게 된것일까요?? 성도로써의 자격 이 있어서 우리가 이곳에 있을까요?? 구원이라는 시험에 합격한 자들입니까??
애초에 구원이라는 시험이 없을뿐더러 우리는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노아에 홍수때 시집가고 장가가고 한것처럼 그 삶이 다인 그렇게 살아가는것이 다인 것과 같이 우리는 영원한 삶을 몰랐으며
창조주가 우리에게 주신 인생을 이해할 실력이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예수그리스도 께서 핏값으로 사셨습니다.
어떠한 잘못 죄를 저질렀건 또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던 예수께서는 우리를 핏값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두 번 다시 끊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를 그분에 품안에 넣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핏값으로 이미 사셨으며 살것이며 값을 치루어 끌어 안을 자를 위해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 가십니다. 거기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물을 달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속 장면에 시간은 여섯시라고 나와있습니다. 유대시간으로 보면 여섯시는 정오입니다. 햇볕이 가장 강하게 내리 쬐는 시간입니다.
그 뜨거운 시간에 물을 길으로 왔다는 것은 힘들게 물을 이고 가야 하는데 폭염주의보가 내리면 우리는 그늘로 피해 쉬어야 합니다. 안그럼 일사병으로 목숨을 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뜨거운 시간에 물을 길으러 나아온 여인입니다.
사회적 약자입니다. 사마리아인 유대인이 손가락질 하는 사마리아 지역 사람 임과 동시에 그중에서도 약자인 그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다. 말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 나에게 물을 달라 할이유가 없는데??
요한복음 4:30–32 NKRV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말씀을 보아 양식을 가져온 제자들에게 다른 말씀을 하신 것처럼 사마리아여인에게 물을 달라하심은 필요를 말씀하시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겁니다. 그 무언가는 그 사마리아 여인의 영안을 열리게 하려는 겁니다.
양식을 가져온 제자들에게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내게 있다고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이러한 비밀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필요??교회의 필요?? 헌금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 필요한 중요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두드러지게 돈을 제외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코로나로 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사람이 줄어든것도 있지만 재정적 한계에 부딪혀 문을 닫은 교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돈을 냅니다. 헌금을 내죠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을 돈을 필요로 하시나요?? 우리가 금전적으로 도움을 드려야 할 분인가요??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린다며 헌금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물을 줄만한 자가 아닙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예수께 물을 줄만한 사람이 아님을 확인 합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를 구하실 분도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왜 헌금을 낼까요?? 내가 온전한 삶으로 십일조를 내며 온전한 삶으로 시간을 바칠만한 사람인가 라는 것을 확인 하는 자리라는 겁니다.
우리는 헌금을 낼 때 갈등합니다. 여러분은 갈등 안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갈등 했습니다. 1000원 2000원 5000원 10000원 저사람은 얼마 했지?? 십일조를 낼 때 갈등 합니다. 꼭 십분의 일을 내야 하나?? 이것 까지 십일조를 띄어야 하나?? 라는 생각들
우리는 헌금 십일조를 하려고 보면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될겁니다.
내가 가장 많은 지출을 하는 쪽이 내가 가장 마음을 많이 두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물질은 어느쪽으로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향해 봉사한다는 말은 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은 다른것들이 훨씬 중요할때가 많습니다. 지금 제가 하려는 말은 교회에 헌금하십시오 돈내놓으십시오 라고 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헌금을 할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확인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옷을 사고 놀러다니고 생색을 내는데에 훨씬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인 것입니다.

부끄러움이 발견되는곳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 하고 싶은신 것은 네가 누구냐 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합니다.
맞다 너는 남편이 이 없다 너는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말이 참되도다.
우리는 헌금 뿐아니라 여기까지 지적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아오면 주 예수를 주라 시인 하는 믿음의 자리에 나가면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나의 삶이 깨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가치관이 깨어지는 것이며 그분 앞에 부끄러운 것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끄러움이 없고 멋진곳일 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미워 하며 시기하며 경쟁 할겁니다. 그런 가슴아픈일이 일어납니다. 자신감 자부심을 가지고 교회에 나아오지만 교회의 봉사와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보면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 할겁니다. 우리가 우리스스로를 얼마든지 가리고 숨길수 있지만 말씀앞에 하나님앞에서 드러나고 깨어지게 됩니다.
스물 중반 어린나이에 사역했을 때 많은 전도사와 신학생들과 함께 한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서로 경쟁하며 비난하며 자신을 더 드러 내려 했습니다. 저도 제편을 만들고 뒤에서 남을 깍아 내리고 스스로를 높였습니다. 인정 받고 칭찬 받기위해 경쟁했습니다.
아! 제일 말썽을 부린사람이 나였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 들을 지나쳐 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드러나는 자리가 교회입니다. 예수님 앞입니다. 깨어지고 드러난 나를 보며 놀랍니다. 내가 이런 사람 이었구나...
교회는 멋진 사람들이 모여 멋지게 하나님에 일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사회에서는 한가닥 하는 사람이었는데 깨어지는 겁니다 드러나는 겁니다. 내가 사마리아 여인이구나 아 내가 죄인중에 괴수 구나
하나님이 이러한 신자에 못남이 드러나고 교회의 문제가 있게 하십니다. 여러일들을 맡기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가 누구인지 바로보게 하시려는 겁니다.
요한복음 4:39–42 NKRV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삶이 지적 받은 겁니다. 물론 이 사마리아 여인에 내용에는 사랑과 포용도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사마리아 여인이 지적을 받았습니다. 지적을 받을 때 내가 누구인지를 깨달아야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로 볼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신자란 스스로가 얼마나 죄인인지.. 인생에 답을 가지지 못한 자였으며
얼마나 처참한 자리에 있던 자인지 영적으로 깊이 깨달은 자입니다. 그때에 십자가의 구원이 온전하게 자신에게 풀어지게 됩니다. 나의 자랑은 배설물로 여겨지고 그리스도외에 자랑할것이 없는겁니다.
내가 깨어지고 깨우치게 되는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을 위해 무엇을 위대한 일을 하는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팔은 짧지 않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있는자 이며 전지 전능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을 달라며 사마리아 여인에게 오셨듯 다가오십니다. 그렇게 우리에 깨어짐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3.선수보다 관중이 많아지는 교회들(대형교회)

교회가 많아지고 대형화 되었습니다. 대형화 된이유에 대해 공감가는 내용이 한가지 있습니다. 교회안에 들어가 깊이 참여하는 것은 싫고 뒤에 앉아서 몰래 구경꾼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대한 실망 목회자에 대한 실망 이런 것들이 구경꾼이 되고 싶은 이유일겁니다. 교회에 너무 깊게 들어가지마라 적당히 라는 말도 있습니다.

관중으로 구경꾼으로 말하는 것은 쉽다. 선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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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지 외국에 스포츠 경기와 한국의 경기력을 비교하기도 합니다. 경기를 보며 답답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재로 뛰어보면 축구로 치면 우리는 공한번 만져보기 힘들겁니다. 뒤에서 관중으로 구경하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건 쉽습니다. 그런데 참여하지 않으면 성장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참여 하셔야합니다. 참여해야 드러날 것 들이 드러나고 깨어질것들이 깨어지는 겁니다. 실패해봐야 합니다. 나는 이정도 밖에 안되는구나를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핏값으로 산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그 안에서 드러나며 깨어지며 실패하십시오 그리고 실력이 생기면 사랑으로 서로 품어주면 됩니다.

4.우리가 할일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합니까?? 가만히 앉아있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각각의 역할과 직분을 주셨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이 일손이 부족하셔서 일까요?? 나좀 도와줘 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고쳐지고 훈련되어 우리를 부르신 목적지 까지 오라고 하시는겁니다. 도망가지 마시고 구경꾼이 되지 마십시오 교회의 할 일은 훈련의 시간이 주어진 것 과 같은겁니다.
위대한 일을 하라고 부르신게 아니라 위대해 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마리아 땅 처럼 핏값으로 샀으며 우리를 사망에서 지켜낸 그분의 보호하심속에서 하라는 겁니다. 그 곳이 교회입니다.
사람을 의식해 안되는 실력으로 자신을 가리는 것보다 하나님앞에 서서 내모든 것이 그분안에 안전하게 드러나길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수치와 부끄러움속에 스스로를 가렸습니다.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에덴에서 쫓겨 났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히십니다. 우리에게 부끄러움과 수치를 주려 하심이 아니오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만든 자녀들이니 그렇게 되길 원하는 겁니다. 여러분 아시겠지만 괜찮은척 하면 성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 사람들이 보기에는 소란스럽고 손가락질 받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과제를 내 주셨습니다. 모두가 같은 과제는 아닙니다. 각자의 과제를 찾아 다음단계로 나아가 우리를 부르신 목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미 지치고 힘들어 교회로 나아오신분들이 있을겁니다. 물론 하나님은 위로하시며 안아주시며 기다려 주시며 겸손하십니다. 잊지마실것은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기로 작정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겁니다. 그러니 이제 사마리아 여인을 부르신 자리 와 같이 그 부르심에 나아가 깨어지고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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