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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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해설

창세기 50:15–21 NKRV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45:5–8 NKRV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II. 하나님의 섭리와 용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고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셔서 넘치는 사랑이 창조로 나타났습니다.

A. 창조와 타락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심으로 각각의 사물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부여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과의 사랑의 사귐을 통하여 영광을 드러냅니다.
또한 창조물들을 다스리고 돌보는 사명을 통하여 영광을 드러냅니다.
창세기 1:28 NKRV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나아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듦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아담이 하와를 향한 세레나데에 잘 나타납니다.
창세기 2:22–23 NKRV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담과 하와의 혼인 관계를 통하여 하나 됨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보여준 첫번째 사례입니다.
히브리 문학에서 “무엇 중에 무엇”은 곧 비교될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최상의 것, 대체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백을 혼인 맥락에서만 이해하려 하는데 이는 그 고백에 담긴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도에서 멀리 벗어난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은 단순히 남편과 아내로서 고백을 넘어서서 인류 최초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고백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에도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시려는 인류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들이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써 그 고백은 깨어지고 죄악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심으로써 타락한 인류 사회를 사랑의 사회로 재창조하시려는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담의 고백은 단지 그만의 고백이 아니라 하와와 한 몸으로서 공유하는 고백이었습니다.
단지 혼인 고백이 아니라 최초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고백이라는 것은 다음 사실을 숙고함으로써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해집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는 고백이 유일하게 오직 그들 부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졌을까요?
아니면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나는 그들의 자녀인 가인, 아벨과 셋과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졌을까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이 그 고백은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가인 사이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며 가인과 아벨, 그리고 셋 사이에서도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 고백은 아담과 하와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인류 중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서도 상호 간에 빠짐없이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인류가 서로를 차별 없이 서로를 향해 "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구원 사역을 통해 되돌려 놓으시려는 인류사회는 모든 사람이 모든 이웃을 자기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사회였습니다.
이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살과 뼈가 몸 혹은 자신으로 환치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인류 타락이 없었다면 지금 현재 약 81억에 달하는 세계의 모든 인류가 서로 사랑하되 모든 이웃을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여기는 사랑으로 충만한 사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곧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계시로 이어졌습니다.
인류 창조의 목적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게 하였던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즉시 두 사람에게 구원 계시의 빛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주어진 계시의 빛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그들만이 아니라 이후에 태어날 인류에게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을 원시복음이라고도 부릅니다.
"내가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하시고" 창 3:15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처음 들리워진 복음입니다.
바로 메시아의 오심과 그로 말미암아 사탄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음으로써 인류가 구원받게 될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은 이 원시복음의 계시에 대한 믿음으로써 구원받았습니다.
이후로 이어지는 세대인 그들의 자손들에 관해 말하자면, 어떤 이들은 그 구원 계시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더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멸망하였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사 제도와 오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었습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일시적이고 제한적이기는 하였지만 인간들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궁극적으로 모든 죄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은 비록 타락하였지만 인간들이 은혜를 따라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따라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메시아로서의 여자의 후손에 출현을 기대하였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원 계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들과 공동체를 통해 보존되고 확장되어 왔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순수한 정도에 따라 시대마다 그 계시가 풍성하게 나타나기도 하였고 희박하게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계시가 풍성한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누리며 살았고 그렇지 못한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무지와 혼돈 속에서 영적으로 질식한 삶을 살았습니다.

B. 섭리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창조된 세상을 보존하시고 타락한 인류를 향한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단어는 오이코노미라는 것으로 집안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온 세상을 하나님의 집으로 본다면 창조된 집안의 사물들을 돌보고 구원하시는 일을 위하여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자유 의지,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예측하지 못할 일들을 사용하십니다.
섭리에 대한 내용들을 조금 더 작성하자.
그 후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으니, 이를 위한 중요한 분기점이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하심으로써 한 가정을 구원하시고 그 가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받게 하시고 나아가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과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따라서 구약 이스라엘 공동체는 육체의 혈통에 의해 연결되는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 가입하고 불신으로 인해 탈퇴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매우 개방적인 공동체이어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을 받은 백성들 중에서도 구원 계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약속으로 치자면 외인이요. 이방인이었던 사람들도 믿음과 할례로서 이방 공동체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든 인류의 전체를 사랑의 사회로 만들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좌절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셔서 구속사를 펼치심으로 그 계획은 더욱 촉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하여 족장 사회에서 이후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열방과 만민 가운데서 진실한 사랑의 사회를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은 가열차게 타올랐습니다.

C. 용서하는 요셉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오늘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손자에 해당하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인 사랑의 사회를 어떻게 섭리 가운데 이루시는지를 볼 것입니다.

a. 채색옷을 입은 요셉

채색옷은 야곱의 편애의 상징성을 가집니다. 장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계자에게 주어지는 채색옷을 요셉이 입었습니다.
채색옷을 입은 요셉은 4가지 이유로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불평하는 말과 시기심에 의해 죽음의 위기에 놓였다가 노예로 팔려갑니다.
첫째, 요셉은 아버지에게 형들의 불의한 일들을 고한 일 때문입니다.
둘째, 아버지 야곱의 편애에 따라 채색옷을 입혔기 때문입니다.
셋째, 요셉이 꾼 첫번째 꿈(열한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단에 절함) 때문입니다.
넷째, 요셉이 꾼 두번째 꿈(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자신에게 절함) 때문입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들을 하나님의 예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보통 꿈은 잊어버리거나 큰 의미를 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예언적인 성격을 담고 있습니다. 요셉이 온 땅의 치리자가 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요셉과 베냐민을 제외한 열명의 형들이 양치러 멀러 떠났을 때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의 상황을 알아보고 보고 받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가 일러 준 장소로 갔으나 형들이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거기에서 한 사람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만납니다. 그 사람은 형들이 있는 장소를 알려 줍니다.
형들은 멀리서 달려오는 요셉을 바라보며 시기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꿈꾸는자가 오는도다”. 우리가 요셉을 죽이면 그의 꿈이 헛된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죽이자고 결의합니다. 형들은 요셉의 꿈을 망가뜨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장자 르우벤의 중재로 빈 우물에 가두는 것으로 변경됩니다. 그랬다가 애굽으로 내려가는 상인들을 보면서 넷째 유다의 중재에 의해 죽이는 대신 노예로 팔아넘기자고 제안합니다.

b. 노예옷을 입은 요셉

결국 요셉의 채색옷은 벗겨져 동물의 피를 발라 아버지를 속이는 일에 쓰여졌고, 요셉은 노예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가족의 갈등으로 인해 고난을 당합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으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요셉은 노예 상인들에 의해 애굽의 군대 장관 보디발의 집에 팔려갔습니다. 보디발의 눈에 요셉이 들어왔습니다.
비록 노예옷을 입었으나 밖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 안에서 가정 총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이 보기에 요셉은 형통했습니다.
형통하다는 말은 고난이 없다거나 실패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과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오히려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요셉의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그의 가문을 통해 애굽 사람들의 집이 복을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디발 장군의 아내는 그의 용모가 준수함을 보고 눈짓하여 유혹합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칩니다. 왜냐하면 첫째 자기 주인에 대한 충성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요셉은 자신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유혹에 대하여 충성과 경외심으로 이겨냈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강제로 벗기려다가 요셉이 도망가자 그의 옷을 가지고 거짓 폭로를 이어갑니다.
결국 노예옷을 입고 있던 요셉은 그의 옷에 의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과거 형들이 요셉의 채색옷을 벗겨 거짓말을 할 때 이용했던 것처럼 보디발 장군의 아내도 요셉의 노예옷을 벗겨 거짓말을 할 때 이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사건들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드십니다.

c. 수의복을 입은 요셉

요셉은 보디발 장군에 의해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처해지게 됩니다.
비록 요셉은 더 낮은 곳으로 가서 환난 가운데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은혜를 입어 간수장을 도와 감옥 총무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왕궁에서 죄를 짓고 들어온 술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두 관리들을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두 관리들의 낯빛이 좋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이를 잘 살펴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두 관리들이 밤에 동시에 각각 꿈을 꾼 일이 있는데 해석할 길이 없어 두려웠던 것입니다.
요셉은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음을 말하며 그 꿈에 대한 내용을 말해달라고 합니다.
요셉이 들은즉 그것은 예언적인 꿈이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는 복권의 꿈임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떡맡은 관원장은 나무에 달려 죽게 되는 꿈임을 알려줍니다.
왕의 생일에 이 꿈은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술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d. 총리복을 입은 요셉

그러나 2년의 시간동안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의 꿈을 통하여 요셉이 생각나게 되었고 요셉은 왕 앞에 서게 됩니다.
바로는 두 가지 꿈을 연거푸 꿉니다.
첫번째 꿈은 살찐 암소 일곱마리가 바짝 마른 암소 일곱마리에 의해서 잡아 먹히는 내용입니다.
두번째 꿈은 한 줄기에서 튼실한 알곡이 있는 일곱개의 이삭이 동풍에 바짝 마른 일곱개의 이삭에 의해 잡아 먹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 꿈을 능히 해석해 내지 못할 때 요셉의 꿈 해석으로 도움을 받았던 술맡은 관원장이 생각난 것입니다.
요셉은 급히 바로 왕 앞에 불려가 꿈 이야기를 듣습니다.
요셉은 바로 왕의 꿈은 하나님의 예언적 꿈임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로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이 앞으로 오게 될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를 세워 흉년을 대비하여 목숨이 보존되고 나라가 세워질 것에 대비해야 함을 말합니다.
바로 왕은 요셉을 곧 바로 총리로 임명합니다.
2년 전 요셉이 곧 바로 석방되었다면 바로 왕을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술맡은 관원장이 생각나게 하시고 국가적인 큰 문제를 알리고 맡는 책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2년의 기간동안 더욱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해석하실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요셉이 한 일은 단지 꿈을 해석한 것 뿐이지만 바로 왕으로부터 은혜를 입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요셉을 향한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된 사건입니다. 요셉이 총리복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형들과 아버지를 만나 절을 받는 사건이 이루어지려면 7년의 풍년 이후 7년의 흉년 때의 일이 될 것입니다.
요셉을 통하여 사람의 생명이 보존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 회복되고 애굽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생명이 보존됩니다.
요셉은 흉년 때 찾아 온 형들을 여러 차례 시험하면서 그들의 진심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꿈이 현실화 됩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절을 하게 되고 후에 야곱을 비롯한 70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내려오면서 모두 다 요셉 앞에 절하게 됩니다.
야곱은 17년동안 요셉과 살다가 헤어졌는데 애굽으로 내려와 17년동안 요셉과 다시 살다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죽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지만 그것은 아버지 야곱의 영향력으로 된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죽자 다시 한 번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III. 결론 및 적용

오늘 우리는 용서하는 요셉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실현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사랑의 공동체, 사회를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창조와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요셉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도록 하고 용서를 통해 관계 회복을 하는 일을 통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가시는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만일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거나 다른 나라들이 흉년가운데 보존 받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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