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침묵이 주는 명령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1 viewsNotes
Transcript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요한 새벽,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는 이 시간에 주님의 전을 찾아오신 여러분 모두를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새벽 기도의 자리는 종종 우리의 가장 절박한 문제, 가장 아픈 상처를 가지고 나오는 자리입니다. "하나님, 내 문제가 너무 힘듭니다. 내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어쩌면 우리가 계속 살펴보는 욥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말씀은 욥기 24장입니다. 욥기는 성경 전체에서 '왜 의인이 고난받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처절하게 던지는 책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4장은 욥의 그 탄식과 항변이 절정에 달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욥은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 말씀이 욥기 전체의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이 절망의 노래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지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욥기 23장과 24장의 연결 (말씀의 위치) - 오늘 본문 24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로 앞 장인 23장과 반드시 연결해서 보아야 합니다. 욥기 23장과 24장은 하나의 긴 호흡으로 이어진 욥의 연설입니다. 23장에서 욥은 '나'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그는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고 부르짖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만나서, 일대일로 독대해서 나의 이 억울함과 결백함을 변호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는 앞을 가도, 뒤를 가도, 왼쪽, 오른쪽을 둘러보아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고 절규합니다. 23장은 철저히 '개인적인 고통'의 문제이며, "하나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만나 주십시오"라는 '나' 중심의 탄식입니다. 그런데 23장에서 하나님을 찾는 데 실패한 욥의 시선이, 24장으로 넘어오면서 폭발적으로 확장됩니다. "나"의 고통에만 매몰되어 있던 욥이,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본문 강해 1: 세상의 불의를 고발하다 (1-12절) - 24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왜 심판의 날을 정해놓고 악인들을 당장 벌하지 않으십니까? 왜 악인들이 저렇게 득세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라는 항의입니다. 그리고 욥은 자기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세상의 불의를 고발하기 시작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양 떼를 빼앗아 기르며 / 고아의 나귀를 몰아 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 가난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 세상에서 학대 받는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 그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 같아서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 빈 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음식을 내는구나 2절 "어떤 사람은 땅의 경계표를 옮기며..." 이것은 오늘날로 치면 서류를 위조해서 남의 땅을 빼앗는 파렴치한 범죄입니다. 3절과 4절은 더 기가 막힙니다. 그들은 고아의 나귀를 몰아가고, 과부의 소를 볼모로 잡으며, 가난한 자들을 길에서 몰아냅니다. 아시는 것처럼 고아와 과부는 구약에서 가장 힘이 없는, 약자의 대표자들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 약속이 되어 있는 이들을 짓밟는 자들이 있습니다. 5절 이하를 보면, 그 결과 가난한 자들은 거친 광야의 "들나귀"처럼 내몰려 먹을 것을 찾아 헤매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7~8절.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 산중에서 만난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7절과 8절입니다.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고, 추워도 덮을 것이 없으며, 산중의 소나기에 젖으며 가릴 곳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현실입니까? 그런데 욥의 고발 중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10~11절입니다.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곡식 이삭을 나르나 굶주리고 /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이 굶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의 담 사이에서 기름을 짜며 목말라 하면서 술틀을 밟느니라". 자신들을 착취하는 악인들의 담벼락 안에서, 그들을 위해 기름을 짜고 포도주 틀을 밟고 있습니다. 가장 굶주린 자가 가장 풍요로운 것을 만들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욥이 본 '구조적인 악'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욥은 이 모든 현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며 하나님을 향해 절규합니다. 12절입니다. 성 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구절의 핵심은 “하나님이 정말 보지 않으신다”가 아니라, “현실을 보면, 마치 보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진다”입니다. 히브리 원어로 보면 “하나님이 그들을 ‘어리석다’ 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즉 “지금 당장 악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는 뉘앙스입니다. 하나님, 왜 저 악인을 당장 심판하지 않습니까? 이런 간구, 또는 원망처럼 느껴집니다. 욥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상실된 것이 아닙니다.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정의가 세상 속에서 너무 발견되지 않는 것 같아, 믿음이 있는 자신에게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깊은 혼란 속에 있음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즉, 욥의 고백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분명히 의로우신 분이신데, 지금 제 눈에는 그 정의가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오래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때가 있지 않습니까? 정직하게 살려 했는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은 없고, 오히려 악한 자가 웃으며 사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마음에도 이런 탄식이 올라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안 하시는 것 같습니까?” 그러나 이 순간, 우리가 이 상황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욥은 여전히 하나님께 말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계속 간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으로 인한 원망, 고통, 답답함, 그 눈물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다행인지 모릅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모든 것의 형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의 주인되심을 진실로 믿기에, 오늘 내게 주어진 힘겨운 현실, 또는 불의한 현실을 두고, 하나님은 없다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하나님께 질문하고, 따지기도 하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신앙의 깊이이기도 합니다.
메시지 1: 고난은 '세상의 민낯'을 보라는 초대장입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이, 그리고 욥의 모습이 욥기 전체에서 빛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욥의 위대한 신앙적 성숙이 일어나는 지점입니다. 욥은 왜 고난받았습니까? 욥의 친구들은 죄 때문이라고 했지만, 욥기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욥은 이제 자신의 고통과 고난의 원인을 찾는 것에 집중하기 보다, 이제 그의 시선이 자기 자신에서 세상으로 확대됩니다. 자신보다 먼저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시선이 확대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욥은 엄청난 부자로 묘사되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가장 깊은 절망의 바닥으로 내려보내셨습니다. 이 역시 온전한 설명을 다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오늘 말씀과 그의 삶을 연결하다보니, 지난 세월, 부족함 없는 인생이, 오히려 그에게 부족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자신의 삶 안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그 밖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하나님께서 보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역설적인 축복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시야를 '나'에게서 '이웃'에게로 넓히는 창문입니다. "왜 나만..."이라는 질문이 "왜 저 사람도..."라는 질문으로 바뀔 때 , 비로소 우리의 고난은 성숙의 재료가 됩니다. 우리가 이 새벽, 나의 고난을 두고 기도하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기도의 지경이 넓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말이 무슨 이야기입니까? 나와 동일한 형편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려집니다. 기도가 나를 향하여 집중하고 있다가, 고통당하는 이웃을 보게 하는 경험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그래서 나의 기도의 영역이 이웃을 향하여 이동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늘 말씀드립니다. 누구도 고난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로 기도밖에 할 수 없어 힘겨운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순간에 놓인 우리릍 통하여 주변에 신음하는 이웃들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은혜들이 우리에게 체험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메시지 2: 하나님의 침묵은 '행동하라'는 명령입니다. - 오늘 본문 속에 욥이 던진 12절의 말씀은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참상을 보지 아니하시느니라."(12절)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무관심하고 무능하신 분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욥기 24장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욥의 이 고발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지 않는다고 오해받고 있다"는 절규입니다. 즉, 이 12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암묵적인 요구를 담고 있습니다. "성 중에서 억울하게 죽어 가는 사람들을 아무도 돌보지 않는구나. 이 참상을 그대로 방치하면, 사람들은 내가 없다고 오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 하나님을 아는 너희가 나의 마음으로,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이 불의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기 24장은 이 세상의 아픔과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믿음인양 행동하는 것을 거부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욥이 떠올린 고통 받는 자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올리게 하신 것입니까? 아니 왜 세상 속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보여진 것입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향하여, 그리고 오늘 우리를 향하여, 너희들이 나의 마음으로 저 이웃들에게 가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저 가난한 자, 억눌린 자들을 돌보지 않으면, 세상은 하나님을 오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불의와 고통을 외면하는 분으로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정금'의 믿음으로 '간격'을 채우십시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합니까? 남포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박영선 목사님은 욥의 고통을 '철길의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이쪽 레일에, 하나님은 저쪽 레일에 계신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제발 이 간격을 없애 주십시오.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 저 악인들을 당장 심판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간격을 유지하십니다. 왜입니까? 철길은 반드시 '간격'을 두고 평행해야만 기차가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그 '간격'은 우리가 절망하고 포기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간격'은 하나님이 무능해서 비어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 '간격'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라고 맡기신 '사명의 공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간격 사이로 뛰어들어,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청지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그 고통스러운 간격을 채우며 살아갑니까? 그 답이 욥기 23장 10절에 있습니다. 비록 23장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데는 실패했지만, 욥은 이 위대한 고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아멘. 이것이 오늘 욥기 24장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왜 행동합니까? 우리가 왜 이웃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고, 이 세상의 불의와 씨름하는 이 모든 사명의 길을, 주님이 알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스러운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정금같이 빚어가고 계십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의 기도가 "나"의 문제를 넘어 "이웃의 참상"을 끌어안게 하시고, 그 '간격'을 채우는 사명자로 결단합시다. 그 길을 걷는 우리를 '정금'으로 빚으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