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를 대함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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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Ⅰ. 서론
오늘 말씀을 보니 바울은 고린도교인 들에게 신령한 자들과 같이 대할수가 없어서 육신에 속한자 곧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라고 합니다.
이같이 말한 이유는 이들안에 분쟁이 있어서 입니다. 그 분쟁은 분파가 나뉘어짐으로 인한겁니다. 그리고 분파가 나뉘어질 뿐 아니라 고린도 교회는 여러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신령한 자라생각하며 성숙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속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우월주의 에 빠져있는겁니다. 그러나 뭔가 고귀하고 신비한것 신령한것을 따르는 같지만 분쟁과 분파가 생겨나는 그들을 향해 바울은 어린아이 라 표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젖으로 먹인다는 것은 그들이 기초 기본 도 안되어 있다는 겁니다.
참된 신자는 무엇일까요?? 성숙한자는 무엇이며 ?? 성령을 따르는 자는 무엇일까요 영적이다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Ⅱ. 본론
Ⅱ. 본론
1.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영적 우월주의
1.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영적 우월주의
분쟁과 분파가 나뉘었다는 것은 자신들이 옳다 입니다. 물론 교회안에 누군가는 틀리고 누군가는 맞을수 있습니다.
중요한건 그것으로 자신이 옳다 주장하며 분쟁과 분파가 나뉜다면 그 옳음을 주장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를 따르며 십자가로 구원 받았으며 그렇게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는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반석위에 세워 졌습니다.
이 고백안에는 십자가의 구원하심과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 께서 머리 되십니다.
십자가의 가치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신일은 우리를 하나님과 다시 연합되게 하신것이며 서로 함께 연합되어지게 하신겁니다. 관계의 회복입니다. 죄사함은 하나님과에 관계적 회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네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신앙 생각 교리 등이 옳다고 배척하며 분쟁하며 분파가 나뉘는 것은 교회의 본질과 십자가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겁니다.
신령하다는건 영적이라는건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겁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를 영적이라 칭하면서 서로 나뉜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어린아이라 한겁니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가 된것입니다. 서로 잘났다 하는겁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죄인 입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은혜가 은혜 되는 겁니다. 나 잘났다고 하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가 설 자리를 빼앗는 겁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자랑 할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설수 없다는 것은 신자가 된 우리가 제일 잘알지 않겠습니까..
2. 시기와 분쟁의 본질 – ‘열심’의 문제
2. 시기와 분쟁의 본질 – ‘열심’의 문제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시기와 분쟁은 왜 일어날까요 열심에서 시기가 발생합니다. 시기는 헬라어로 젤로오 라고 하는데 젤로오는 젤로스라는 열심이라는 단어에서 나온겁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바울은 자신의 열심이 교회를 박해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옳다 여기는 것으로 그열심으로 교회를 박해 한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심으로 그것을 충성과 헌신으로 여겨 자신의 신앙을 증명 하려 합니다.
그런데 그 열심이 시기를 낳는 겁니다. 그 열심이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겁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합니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으로 나아가야합니다.
3. 하나님의 열심과 십자가의 본질
3. 하나님의 열심과 십자가의 본질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바울은 자신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열심으로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은 이런겁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버려두지 않겠고 놓아두지 않겠다 나는 타협하지도 않겠다 내가너를 어찌 포기 하겠느냐
하나님의 열심은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여러분 오늘 고린도의 분파는 그들의 열심이 시기와 분쟁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신의 열심으로 십자가를 놓쳤습니다.
패를 갈라 자기를 증명 하는 것과 그러한 배타적 자세는 십자가를 외면하는겁니다. 분쟁 분파 패를 갈랐다는 것은 서로 옳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 옳음으로 열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옳고 그름보다 용서와 사랑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자랑이 흠이 없다 악습이 없다가 아니라 우리교회는 이프로그램 저프로그램이 좋아가아니라 용서와 사랑 인겁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전면에 내세우며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를 하는 교회는 우리교회는 용서와 사랑이 넘처 라는 말이 나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가치가 아닌 다른 것을 꺼내어 그럴싸한 말들을 늘어 놓으며 사람들이 듣고 혹할 만한 주장들로 십자가가아닌 것들로 패가 갈린다면 틀린겁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애초에 화합과 연합입니다. 꺠어짐분리 분열이 아닙니다.
4. 신자는 ‘예수 안에 있는 것’으로 살아간다
4. 신자는 ‘예수 안에 있는 것’으로 살아간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 우리가 열심을 낼게 없습니다. 우리가 자랑 할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모든것이 예수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예수안에 있습니다. 나는 분노로 원망으로 가득차 있을때에 너무나도 다행인 것은 우리에게 영광과 존귀 은혜 가 있는게 아니라 예수안에 있는겁니다. 여전히 예수안에서 있어 성실하며 타협 되지 않는겁니다.
내 안에 있으면 금세 사라지며 잃어 버릴 것들이 예수안에 있어 보존됩니다. 나의 어떠함 과는 상관없이 예수안에 있기에 우리가 그것을 누리는 겁니다.
우리의 실력과 열심은 기독교에 정수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안에 있을 때 가능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모르고 회개 하지 않았을 때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신 것 같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예수안에 있습니다.
내안에 있는 것이 아닌 예수안에 있기에 이루어지는 겁니다 (고전1:29) 자랑 영광 안심 같은것들이 나에게 부어지는 것이 아닌 예수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 예수안에 있는 것으로 살아가며 그래서 나에 자랑이 아닌겁니다
.
나의 열심이 아닌 겁니다. 그 열심은 시기가 되어 분쟁이 되고 분파가 됩니다. 그러니 내안에서 찾지 마시고 예수안에서 찾으십시오 예수안에 모든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구원으로 모이게된 교회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용서와 사랑 이며 연합이며 사랑의 관계 입니다. 이것보다 중요한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옳음이 정의가 앞섰다면 우리는 모두 심판을 면치 못했을 존재이나 하나님에게 그러한 것들 보다 앞선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Ⅲ. 결론
Ⅲ. 결론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영적이다’라는 자기 주장과 ‘옳음’을 앞세우는 열심이었고, 그 열심은 시기와 분쟁과 분파를 만들어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하며, 참된 신령함은 십자가의 정신—사랑, 용서, 연합—을 따르는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신자는 자기 안이 아니라 오직 예수 안에 있는 것으로 살아가야 하며,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 십자가의 은혜가 교회를 세우는 힘임을 강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