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를 대함 같이 (2)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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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오늘 말씀을 보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령한 자들과 같이 대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그들 안에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쟁은 ‘내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 즉 자신들의 기준과 관점에서 판단한 옳고 그름 때문에 분파가 나뉘어져 생긴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신령하고 성숙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성령에 속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영적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추구한 신령함은 실제 신령함이 아니라, 자기 기준에서 출발한 신령함, 즉 진리보다 자기 판단을 앞세운 영성입니다. 그래서 분파가 생긴 것입니다.
분파란 “저 사람이 맞다”, “나는 이 사람의 편이다”라는 내 생각의 옳고 그름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충돌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뭔가 신비하고 고귀한 것을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기준을 높여 분쟁을 만든 그들을 향해 바울은 어린아이라고 표현합니다. 젖으로 먹인다는 표현은 그들이 기초조차 안 되어 있는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자는 무엇이며, 성숙한 자는 누구이며, 성령을 따라 사는 신령한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Ⅱ. 본론

1.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영적 우월주의

분쟁과 분파가 나뉘었다는 것은 결국 “내가 옳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여기서 ‘옳고 그름’은 객관적 진리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 판단한 옳고 그름, 내 시각에서의 옳고 그름”**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은 틀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옳음을 절대화하여, 그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배척하거나, 분쟁을 일으키고, 분파를 만든다면 그 ‘옳음’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진리가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해석하는 내 마음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구원받았고,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비다.십자가의 고백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할 뿐 아니라, 서로도 연합하게 합니다. 십자가의 본질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 자기 기준, 자기 교리가 더 옳다고 주장하며 다른 이를 배척하는 태도는 교회의 본질과 십자가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신령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 영적이라 칭하면서 서로 나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어린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가 된것입니다. 서로 잘났다 하는겁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은혜가 은혜인 이유는 우리가 아무 자랑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랑은 십자가의 영광을 빼앗는 것입니다.
신자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입니다.

2. 시기와 분쟁의 본질 – ‘열심’의 문제

고린도전서 3:3 NKRV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시기(ζῆλος)는 원래 ‘열심’이라는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즉, 잘못된 열심은 시기와 분쟁을 낳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자신의 옛 열심을 말합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그 열심은 하나님을 위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의의 열심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우리의 열심을 충성과 헌신으로 여겨 신앙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나온 열심은 반드시 비교와 경쟁을 낳고, 그것이 시기가 되며, 결국 교회를 병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열심과 십자가의 본질

고린도후서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바울은 자기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행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사랑과 신실입니다.
호세아 11:8 NKRV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에서 하나님은 “내 긍휼이 불붙듯 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는 사랑, 버리지 않는 은혜를 가지십니다.
고린도의 분파는 그들의 열심이 시기와 분쟁으로 변질된 모습입니다. 자기 열심은 십자가를 놓치게 합니다. 당을 지어 서로를 배척하는 태도는 십자가를 외면 하는겁니다. 십자가는 화합과 연합의 상징입니다. 교회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4. 신자는 ‘예수 안에 있는 것’으로 살아간다

고린도전서 1:2
고린도전서 1:29–31 NKRV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 지혜 → 예수 안에 ● 의로움 → 예수 안에 ● 거룩함 → 예수 안에 ● 구원 → 예수 안에
신자는 자기 안에서 답을 찾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는 한계와 분노와 원망이 있지만 예수 안에서는 변하지 않는 은혜가 있습니다.
여전히 예수안에서 있어 성실하며 타협 되지 않는겁니다.
내 안에 있으면 금세 사라지며 잃어 버릴 것들이 예수안에 있어 보존됩니다. 나의 어떠함 과는 상관없이 예수안에 있기에 우리가 그것을 누리는 겁니다. 우리의 실력과 열심은 기독교에 정수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안에 있을 때 가능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모르고 회개 하지 않았을 때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신 것 같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예수안에 있습니다.
내안에 있는 것이 아닌 예수안에 있기에 이루어지는 겁니다 (고전1:29) 자랑 영광 안심 같은것들이 나에게 부어지는 것이 아닌 예수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 예수안에 있는 것으로 살아가며 그래서 나에 자랑이 아닌겁니다
. 나의 열심이 아닌 겁니다. 그 열심은 시기가 되어 분쟁이 되고 분파가 됩니다. 그러니 내안에서 찾지 마시고 예수안에서 찾으십시오 예수안에 모든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구원으로 모이게된 교회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용서와 사랑 이며 연합이며 사랑의 관계 입니다. 이것보다 중요한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옳음이 정의가 앞섰다면 우리는 모두 심판을 면치 못했을 존재이나 하나님에게 그러한 것들 보다 앞선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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