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야 보이는 하나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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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야 보이는 하나님 나라
누가복음 21:5–19 NKSV
5 몇몇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서, 아름다운 돌과 봉헌물로 꾸며 놓았다고 말들을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7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이런 일들이 언제 있겠습니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다’ 하거나, ‘때가 가까이 왔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가지 말아라. 9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종말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10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이 일어나 민족을 치고, 나라가 일어나 나라를 칠 것이다. 11 큰 지진이 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이 생기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일과 큰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고,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겨줄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13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므로 너희는 변호할 말을 미리부터 생각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15 나는 너희의 모든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16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줄 것이요, 너희 가운데서 더러는 죽일 것이다. 17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골로새서 1:11–20 NKSV
11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여러분이 빛 속에서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13 아버지께서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14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15 그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1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20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말라기 4:1–2 NKSV
1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용광로의 불길같이, 모든 것을 살라 버릴 날이 온다.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일을 하는 자가 지푸라기같이 타 버릴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불이 그들을 살라서, 그 뿌리와 가지를 남김없이 태울 것이다. 2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1.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성전 앞에서 시작되는 복음

질문을 먼저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종말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까? 또 종말이 어서 빨리 오면 좋겠습니까?
질문의 답은 남겨두고
본문은 제자들의 감탄으로 시작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서, 아름다운 돌과 봉헌물로 꾸며 놓았다고 말들을 하니…” (5절)
이 성전은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었습니다.
헤롯 대왕이 주전 19년경부터 다시 짓기 시작한, 기존 성전보다 두배나 더 큰 건물이었습니다.
역사 자료에 따르면, 성전 건물은 비교적 빨리 완성되었지만,
부속 건물과 넓은 뜰, 회랑까지 포함한 전체 공사는 주후 62–64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거대한 석재, 하얀 돌, 황금과 봉헌물로 치장된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건물”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6절)
실제로 이 성전은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주후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이제 다 끝났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던 건물과 시스템, “저건 절대 안 무너지겠지”라고 믿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며 이렇게 느낍니다.
“이제 마지막이다. 종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무너짐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종말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9절)
여기서 예수님은 두 개의 메타포를 던지십니다.
종말의 메타포: 무너짐, 붕괴, 혼란
하나님 나라의 메타포: 세워짐, 충만, 도래
우리는 종말을 “세상이 끝나는 이야기”로 이해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종말은 하나님 나라가 충만하게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17:21 NKSV
21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요한복음 12:31 NKSV
31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무너지는 것과 세워지는 것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안에 무너져야 할 것이 반드시 무너져야만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두개가 동시에 세워질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서 12:26–27 “26 그 때에는 그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약속하시기를, “내가 한 번 더,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들겠다” 하셨습니다. 27 이 ‘한 번 더’ 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다시 첫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은 종말이 오길 원하십니까?

2. 종말은 “끝”이 아니라 가짜 안전이 벗겨지고 “진짜가 드러나는” 사건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무너짐”은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언어가 아닙니다.
오히려 “무너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정성 들여 세워놓은 종교적 시스템의 붕괴
제도와 전통 안에 숨겨 둔 안전망의 붕괴
“나의 신념”이라는 견고한 성의 해체
종교적 언어로 자신을 포장하던 가면이 무너짐
예수님은 먼저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8절)
“전쟁과 난리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9절)
전쟁, 기근, 역병, 지진, 핍박…이런 것들을 볼 때 사람들은 “끝이다!”라고 말합니다.
한국 교회도 한때 “마지막 신호” 라는 책을 가지고 온 교회를 돌아다니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기근 등을 종말의 징조라며 떠들고 다니던 데이비드차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온 교회가 곧 종말이 온다며 공포감에 사로잡혔었지만 결국은 횡령과 사기로 끝나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종말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9절)
징조 자체가 종말이 아닙니다.
징조는,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신뢰하고 있는지 드러낼 뿐입니다.
마태복음 7:24–27 “24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증시의 불안을 보며 징조로 여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치를 보며 징조로 여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난들을 보며 징조로 여길 수 있습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이 부분이 강합니다.
이스라엘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지진과 전염병, 경제적인 변화들이 일어나면 종말이 왔다고 공포감을 조장합니다.
이것을 “확증편향”이라고 하죠. 봐 맞지 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강화합니다.
징조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어떤 사건을 분석하는데 사용하면 안된다.
-나의 사고가 깨어나는데 사용해야 한다. 내가 너무 몰입했나?
-때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것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나를 둘러싼 거짓된 껍질들이 벗겨지고 진짜가 드러나는 사건이 바로 종말입니다.

3. 무너짐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 – 심판과 치유, 붕괴와 새 성전

말라기 4장은 불타는 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말라기 4:1–2 “1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용광로의 불길같이, 모든 것을 살라 버릴 날이 온다.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일을 하는 자가 지푸라기같이 타 버릴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불이 그들을 살라서, 그 뿌리와 가지를 남김없이 태울 것이다. 2 그러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
같은 날이
어떤 이에게는 심판의 불이고, 어떤 이에게는 치유의 햇빛입니다.
같은 날이 어떤이에게는 종말이고 어떤이게는 새날입니다.
누가복음 21장도 같은 구조로 흘러갑니다.
성전은 무너집니다. – 종교적·민족적 기득권의 붕괴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성전이 세워집니다.
예수님은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9–21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골로새서 1:17–20 “17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교회라는 몸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근원이시며,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이는 그분이 만물 가운데서 으뜸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19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안에 모든 충만함을 머무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고, 20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종말이 오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다시 세워지고 재정렬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2:26–27 “26 그 때에는 그의 음성이 땅을 뒤흔들었지만, 이번에는 그가 약속하시기를, “내가 한 번 더,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흔들겠다” 하셨습니다. 27 이 ‘한 번 더’ 라는 말은 흔들리는 것들 곧 피조물들을 없애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전이 무너져야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보입니다.
권력이 무너져야 누가 진짜 왕인지 드러납니다.
세상의 안전이 무너져야 누가 우리의 보호자인지 분명해집니다.
나의 자아가 무너져야 내가 누구에게 속했는지 드러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이 무너지고 새롭게 교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2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22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요한계시록 21:22–23 “22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며,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입니다.”

4. 위기와 상실은 교회가 가장 교회다워지는 “증언의 자리”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와 배신, 상실을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왕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12절)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줄 것이요,
너희 가운데서 더러는 죽일 것이다.” (16절)
그런데 이 다음 구절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3절)
우리는 보통 간증을 “잘 된 이야기, 응답받은 이야기, 성공 스토리”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합니다.
“전쟁, 지진, 질병, 핍박, 상실의 순간이 바로 증언할 시간이다.”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는 **‘삶으로 설교’**는 성공담을 늘어놓는 자리가 아니라,
상실과 고통 앞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용기를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신학자 하워드 서먼
고난을 통과한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묘한 광채와 평온이 깃들어 있고, 그들의 관계에는 마주치는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 주는
관용과 생기가 있다.”
상실이 사람을 망가뜨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오히려 빛과 관용을 비추는 얼굴로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요즘 개인적으로 상실과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중인데 이 시간들을 통해 빛과 관용이 가득한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교회음악가 **토머스 도시(Thomas A. Dorsey)**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재즈연주자로 살다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음악가로 살기 시작합니다.
부흥회에서 특송을 하던 중에 임신중이던 아내가 아이를 놓고 죽었다는 전보를 받게 됩니다. 또 이튿날 아이마저 죽게 됩니다
그는 모든 사역을 멈추었습니다.
깊은 절망 속에서 시간이 흐른 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조용한 방에서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한 기도가 곡이 되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 노래가 바로 “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입니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고난이 끝난 뒤에가 아니라, 고난의 한복판에서 증언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다 끝난뒤에 증언하기보다
아직 여전히 뭔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 같지만 이 가운데서 주님을 붙들고 오히려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담대함을 증거하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변호할 말을 미리부터 생각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나는 너희의 모든 적대자들이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 (14–15절)
이 말씀은 “준비하지 마라”는 말이 아니라, 모든 것을 네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는 초대입니다.
‘내 말’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말과 지혜에 자신을 열어 두라는 초대입니다.
누가복음 12:11–12 “11 너희가 회당과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12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사도행전 4:13 “1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그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베드로전서 3:15 “15 다만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위기는 교회가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다.
교회가 가장 교회다워지는 시간이다.
종말은 교회의 시험이 아니라,
복음이 가장 선명해지는 무대이다.

5.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주권 안에서의 안전, 그리고 인내의 영성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7절)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8절)
“너희는 참고 견디는 가운데 너희의 목숨을 얻어라.” (19절)
이미 16절에서 “너희 가운데서 더러는 죽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18절은 “피해가 전혀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너의 삶과 죽음, 존재 전체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약속입니다.
상황의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 주권 안에서의 안전입니다.
시편 98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편 98:1 “1 새 노래로 주님께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시다. 그 오른손과 그 거룩하신 팔로 구원을 베푸셨다.”
우리를 지키는 것은 철옹성 같은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팔입니다.
그래서 인내는 단순히 “참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존재의 근력입니다.
히브리서 10:36 “36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서, 그 약속해 주신 것을 받으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야고보서 1:3–4 “3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4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로마서 8:35–39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6. 우리 공동체에 대한 적용 – 틈새에서 피어나는 하나님 나라

움직이는교회는 코로나라는 큰 붕괴의 시기,
기존 교회의 모순과 상처 속에서 틈새처럼 시작된 공동체입니다.
큰 성전 건물도 없고
복잡한 제도도 없고
종교적 관습을 그대로 답습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낡은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서 피워 올리신 하나님 나라의 작은 싹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의 길은 세상의 교회들이 말하는 “성공의 속도”와는 다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내는
성공의 속도를 추구하지 않는 인내
공동체적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
일터와 마을 한가운데서 교회적 존재로 서 있으려는 인내
환대와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인내
어레 이희송일감독님과 대화나누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시대는 심각한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이 위기를 어떤 사람들은 지구의 종말을 말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할필요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냥 조금씩 조금씩 해 나가면 된다.
어떻게 살것인가 고민하며 살면된다.
그런데 이 위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것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함께, 공동체성이 강화되면 어떤 위기든지 함께 인내하며 이겨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8 “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무너지는 세상 한복판에서,작고 느리지만,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끝까지 버티고, 사랑하고, 증언하는 공동체.
그것이 이 시대에 부르심을 받은 선교적 교회의 모습, 움직이는교회의 모습입니다.

결론 – 종말은 무너짐의 이야기이지만, 하나님 나라는 세워짐의 이야기이다

오늘 예수님은 종말을 말씀하시면서 파괴의 언어를 넘어 새 창조의 언어를 들려주십니다.
종말은 무너짐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충만이다.
종말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다.
무너져야 새롭게 세워진다.
신약학자 톰 라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말은 달력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들어오는 방식에 대한 신학적 언어다.”
그렇습니다.
종말이 와야 하나님 나라가 충만해집니다.
종말은 하나님을 가리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종말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두려움이지만, 하나님께는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토록 기다리신 그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위기는 실패나 두려움이아니라, 교회가 복음으로 답해야 할 ‘증언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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