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6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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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기념비

Joshua 4:1–14 NKRV
1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10 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 서 있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13 무장한 사만 명 가량이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

설교문: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세운 반석"

본문: 여호수아 4:1-9 (개역개정)

1. 도입: 질문을 유발하는 삶 (5-7분)

오늘 본문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 불가능해 보였던 요단강을 건넌 직후의 이야기입니다.

2. 본론 1: 보이는 돌 - 삶으로 증명하라 (7-10분)

(이전과 동일) 먼저, '보이는 돌'입니다.
하나님은 12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뽑아, 요단강 바닥에서 돌을 하나씩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이 처음으로 발 딛고 잠잘 곳, 즉 '길갈'에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8절)
왜 하필 '길갈'입니까? '길갈'은 그들의 일상이 시작될 곳입니다. 전쟁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할 삶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교회 안, 혹은 기도원에서의 특별한 감동에 머물길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의 '길갈', 즉 우리의 캠퍼스, 우리의 직장, 우리의 가정 한복판에 세워지길 원하십니다.
왜 이 돌을 세우라고 하셨습니까? 목적은 분명합니다. 6절과 7절입니다.
Joshua 4:6–7 NKRV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질문을 부르는 삶'이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스펙을 쌓고, 똑같은 방식으로 성공하려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즐긴다면,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택하고, 피곤하더라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남을 비방하는 대신 축복하고, 내 것을 챙기기보다 기꺼이 나누는 '구별된 삶'을 살 때, 세상은 우리에게 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삽니까? 그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와같이 '보이는 돌'은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청년들이 각자의 길갈에서, 삶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걸어 다니는 기념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보이는 돌', 당연히 필요합니다.

3. 본론 2: 보이지 않는 돌 - 중심으로 서라 (10-12분)

(이전과 동일)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은,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이상한 기념비를 소개합니다.
Joshua 4:9 NKRV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보이는 돌'은 "하나님이 명령하셔서"(1-3절) 세웠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돌'은 "여호수아가 " 세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기보다, 은혜에 감격한 여호수아의 자발적인 순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위치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위치가 어딘지 아는가? ‘요단 가운데’이댜. 여러분, 이 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18절을 보면, 백성들이 다 건너고 제사장들이 강에서 나오자마자, 요단강 물은 즉시 원래대로 돌아와 강둑에 넘쳤습니다.
이 말은, 여호수아가 세운 이 12개의 돌은 세워지자마자 곧바로 거센 물살 속에 잠겨버렸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아니, 기념비라는 것은 '보라고' 세우는 것 아닙니까? 아무도 못 본다면 그게 무슨 기념비입니까? 이게 무슨 의미 없는 행동입니까?
성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에 잠겨 있으면 정말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보통 내가 못 보면, 남들도 못 본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사람은 못 보지만, 하나님은 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못 보실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기에 여호수아가 아무도 볼 수 없는 물속에 기념비를 세운 것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보시라고 세운,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순수한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둘러보시다가, 요단강 깊은 물속에 잠겨 있는 그 12개의 돌을 보실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실까요? "그래, 내 사랑하는 여호수아가, 내 백성이 나를 이렇게 사랑했지. 그 순종을 내가 기억한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는 '길갈의 돌', 즉 남들에게 보여지는 헌신과 열심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정말 주목하시는 것은, 우리 심령 가장 깊은 곳, **아무도 보지 못하는 '요단강 한가운데'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돌'**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드리는 눈물의 기도, 세상과 타협하고 싶은 유혹 속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을 택하는 그 마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섬기는 그 헌신.
사람은 몰라줍니다. 때로는 부모님도, 목사님도, 친구들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하나님은 그 보이지 않는 중심의 돌을 지금도 보고 계십니다.

4. 클라이맥스: 두려움 속에서 지켜낸 자리 (수정된 부분) (10-12분)

그런데 왜 하필 그 자리였을까요? 9절은 그곳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섰던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돌'은, 사실 백성들보다 제사장들에게 더 특별한 의미였습니다.
여러분, 이 기적은 영화 <십계>처럼 모세가 지팡이를 내리치자 바다가 "쫙"하고 단번에 갈라지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늘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십니다.우리는 모세의 홍해 기적도 단번에 일어난 줄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Exodus 14:21 NKRV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하나님의 기적은 단번에도 일어 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요단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Joshua 3:13 NKRV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 물을 밟아 서있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요단 물이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가 마치 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멈춰 한쪽에는 물벽이 생기면서 물이 끊어져 강바닥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였다.
Joshua 3:14–16 NKRV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6절을 잘 봐야 한다. 위에서부터 흘러내린더 물이 그쳐 어디에 쌓였다고 기록되어 있는가? 아담 성읍 변두리에 물 벽이 쌓였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지역에서 멀리 있는 아담 성읍에서 물벽이 생겼다는 말이다.
성서고고학자들으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려하는 지역에서 아담 성읍까지의 거리는 약 30km 라고 주장한다.
다시말해 제사장들이 물에 발을 담갔을 때, 기적은 30km 떨어진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 말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제사장들이 거센 물살에 발을 담그는 순간, 그들 눈앞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30km 밖에서 물이 막혔다는 것을 그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물이 빠져나가고 강바닥이 드러나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을 그 시간을 그저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은 '마른 땅'을 보고 건넜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굳건히 서 있는 것을 '보고' 건넜습니다. 백성들에게는 '보이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무런 '보이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의지할 것은 어깨에 멘 '언약궤'(하나님의 말씀)와 "발을 담그라"는 '명령'뿐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이 다 건너가는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물벽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어떻게 물이 멈춰진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이다. 그래서 어쩌면 제사장들은 더 긴장하고 두려웠을 수 있다. 무엇이 없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으면 그들은 두려움가운데 휩싸일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여호수아가 세운 이 '보이지 않는 돌'은, 바로 그 자리,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보이지 않는 약속을 붙들고, 죽음의 두려움과 싸워가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냈던" 제사장들의 위대한 믿음을 기념하는 돌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을 위해 '길갈'에 돌을 세웠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의 그 위대한 순종을 아시기에, 오직 그들(제사장들)과 하나님만이 아는 그 자리에 '보이지 않는 돌'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주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이 아시지요."

5. 결론: 당신의 '보이지 않는 돌'은 무엇입니까? (5-7분)

(이전과 동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두 개의 돌을 모두 세워야 합니다.
'보이는 돌'(길갈)만 있고 '보이지 않는 돌'(요단)이 없다면,그것은 기초 없는 건물과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화려한 신앙생활처럼 보일지라도, 작은 시련의 물결만 덮쳐도 무너져 내리는 '종교 생활', '바리새인의 위선'이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돌'만 있고 '보이는 돌'이 없다면,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나는 마음으로만 믿어"라고 말하지만, 삶의 '길갈'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아무런 증거도 없는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둘 다 세우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여러분의 '요단강 한가운데', 즉 심령 가장 깊은 곳에 '보이지 않는 돌'을 세우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보시는 그곳에서, 말씀과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반석을 세우십시오.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이, 요단강 한가운데 선 제사장 같습니까? 분명히 말씀 붙들고 순종의 발을 내디뎠는데, 내 눈에는 아무 증거도 보이지 않고, 상황은 여전히 두렵고, 30km 밖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같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이 '결과'(길갈)에 도달했는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과정'(요단강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말씀을 붙들고 '서 있는지'**를 보고 계십니다.
아무도 나의 이 믿음의 싸움을 몰라준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그리고 그 믿음의 싸움이야말로, 하나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보이지 않는 기념비'가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사람에게 보여주는 '길갈의 돌'을 쌓기 전에, 하나님만 보시는 '요단강 바닥'에 먼저 믿음의 반석을 세우는, 그래서 그 견고한 기초 위에 삶의 증거들을 쌓아 올리는, 복된 청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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