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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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교
제가 2015년에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입학할 때부터 만으로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말은 즉슨 제가 간사로 처음 사역을 시작한 이후로 제가 사역을 시작한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는 뜻인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에 제천제일교회에서 어린이부 간사를 했었는데, 아직도 그때 아이들에게 처음 말씀을 전해야했던 기억이 납니다. 원래 담당하시는 전도사님이 말씀을 전하셔야했는데, 시간이 되도 안오셔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나가서 말씀을 전해야 했거든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아서 얼떨결에 즉흥적으로 성경말씀을 아이들에게 풀어서 설교를 했는데, 저 멀리 전도사님이 헐레벌떡 들어오시는게 보여서 아이들에게, “자~ 이제 전도사님이 오셔서 말씀 전해주실 텐데 힘찬 박수로 맞이해볼까요~!” 하고 마이크를 넘겨 드리고나서 저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그날 아침에 먹은걸 다 게워냈던게 기억이 납니다. 사실 아무리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대부분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부담없이 말씀을 전할 수 있었는데, 저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을 만나는 걸 무서워하고 싫어했어서 굉장히 부담이 컸던것 같아요. 그래서 그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랬던게 기억이 납니다.
2018년에는 인천에 있는 한 작은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했는데요, 딱 전도사로 부임하자마자 담임목사님이, “자네가 주일 1부 예배 맡게”라고 하시는거예요. 그러니까 1부 예배의 인도부터 말씀까지 전부 덜컥 맡아버리게 되었는데요, 물론 1부예배가 주로 교사분들, 그리고 중고등부 정도 되는 아이들이 주로 말씀을 듣는 층이라서 큰 부담은 없었지만 처음으로 어른들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해야하다보니까 부담감이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주일 말씀 하나를 딱 전하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성경을 붙잡고서 열심히 준비하고, 그렇게 3년 동안 매주 1부예배 때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훈련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만안교회에 와서는 지금 여러분들께 말씀을 전하는 것처럼 수요예배 말씀을 전하고 있고, 또한 월요일 새벽기도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요, 특히 이 수요예배 때는 제가 강해설교의 형식으로 제가 신학교때부터 배우고 공부한 것들을 성경말씀과 함께 전달해드린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사실 제가 뭐 대단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전해드리는 게 아니라 저도 많이 잘 모르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어서 책을 여러권 찾아보고 역사를 공부하고 하면서 같이 알아보는 시간으로 지내고 있는데요,
근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제가 말씀을 한 주간 동안 아주아주 열심히 준비해서 전해드리면 여러분 표정이 벌써 아득해져가는게 보입니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하는 표정으로 몇 분은 꾸벅꾸벅 하는 모습도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시간이 너무 촉박하거나 해서 평상시보다 열심히 준비를 못한 날에 말씀을 전하면 끝나고 인사드릴 때 은혜받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제가 그렇게 수요 예배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느낀 것이, “아, 이 설교 단상에서 말씀을 전해드릴 때, 나의 머리와 이성과 공부로 전해드리는 게 아니라,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공간을 비워두는 것이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성경을 읽고 주석하고 말씀을 전해드리기 위해서 제가 노력하는 건 맞지만, 이 말씀이 전달되는 것은 제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셔서 여러분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말씀 = 예수 그리스도
말씀 =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여러분, 예배의 순서 가운데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날 개신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은요, 무슨 목사님들이 설교를 잘 준비하기 때문에, 좋은 말씀이기 때문에, 좋은 성경공부이기 때문에 전하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설교를 잘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죠.
오늘 본문말씀이 바로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말씀인 골로새서 3장 1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본문말씀에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설명하나요?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성경봉독이 되었든지 간에, 설교가 되었든지 간에, ‘말씀’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가장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셔서, 곧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된 것, 바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찾아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믿는 자들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심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래서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수요예배 시간에 누차 말씀드린 것처럼, 먼저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바로 성경말씀이다, 라고 전해드린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라고 하는 것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성경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배 중간에 있는 말씀의 시간은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들의 설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시간인 것입니다.
성경봉독
성경봉독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새 예배서를 통해서 저희가 예배 순서를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새 예배서에서 제시하는 성경봉독 시간을 보시면, 특이하게 구약, 서신서, 복음서를 따로 읽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이런 순서로 되어 있을까요? 여러분 성경봉독을 예배 시간에 왜 할까요? 보통은 설교를 위해서, 그 날 설교에 맞는 본문을 읽는 것이 보통입니다. 저희도 오늘 골로새서 3장 16절 말씀을 읽었잖아요? 오늘날에는 그렇게 성경 봉독 시간에 설교주제에 맞는 말씀을 골라서 읽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원래 성경봉독 시간은 설교를 위한 말씀을 읽는 시간이 아닙니다. 과거 유대인들의 ‘예배’라고 불리는 것은 성경말씀을 읽는 것 자체가 거의 전부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토라라고 불리는 모세오경의 일부분을 읽고 예언서들 중에서 한 부분을 읽는 것이 중요한 전통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 드리는 예언서는 저희가 알고 있는 예언서가 아니라, 제가 이전에 유대교 성경의 예언서는 조금 다른 순서로 이루어진다고 말씀드렸죠?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가 전기 예언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열두 소선지서가 후기 예언서로 나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예언서를 읽는 전통을 하프타라라고 해서 한 사람이 예언서의 한 부분을 사람들 앞에서 읽는 전통이 있습니다.
영상을 하나 보여드릴텐데, 뉴욕에 있는 Central synagogue, 번역하면 중앙 회당이라고 하는 곳인데, 그곳에서 유대교 성경의 예언서 중 하나인 열왕기상 말씀을 읽는 하프타라가 있습니다. 제가 자막을 달아서 편집했는데요, 함께 보시죠.
[영상]
제가 이 영상을 보여드린 이유가, 예수님께서도 저렇게 회당에서 예언서를 읽는 하프타라의 전통을 따르시는 모습이 복음서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말씀에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있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셨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대략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읽으셨는지 이제 누가복음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어느정도 상상하실 수 있을거예요.
바로 이렇게 모세오경과, 예언서의 말씀을 읽는 유대교의 전통에서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초대교회에서는 예언서 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쓴 글들, 저희로 따지면 신약성경을 주일날에 읽는 전통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라고 하는 2세기의 한 인물은 그의 글에서 주일날에 어떤 예배를 드리는지에 대해서 적은 기록이 있는데요,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 Martyr, 90–100 AD – 165 AD): 첫번째 변증 67
“주일에는 도시나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도들의 회고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습니다. 그런 다음, 낭독이 끝나면 회장이 이러한 선한 것들을 본받도록 말로 가르치고 권고합니다.”
여기서 사도들의 회고록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사도행전 같은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돌아보면서 쓴 글들, 복음서와 서신서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하프타라로 예언서를 읽은 전통을 따라서 선지자들의 글을 읽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낭독이 끝나면 회장, 그 모임의 장이 되는 사람이 말로 가르치고 권고하는 설교의 형식이 있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 전통 내에서 성경봉독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설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경봉독 자체가 예배 내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에 포함된 순서가 아니라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교회 전통에서는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서 읽기도 하고, 아니면 새예배서에 나온 것처럼 구약, 서신서, 복음서로 읽기도 하고, 어느 전통에서는 여기에 시편을 따로 추가해서 읽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예배서에서는 성경봉독 시간에 다같이 일어나서 말씀을 들을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요, 이건 성경에서도 등장하는 모습이죠.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느헤미야서에서는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성전과 성읍을 다 건설한 후에, 모세의 율법책, 곧 토라를 에스라가 읽어주는 장면이 등장하는 데요, 이 때에 책을 펼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섰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일어서서 듣는 것이죠.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래서 본문말씀에서도 그냥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풍성히 거하기를 원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경봉독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 가운데 거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께서 저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냥 설교를 위한 본문말씀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가운데 찾아오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담긴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찬양
두번째 저희가 알아볼 순서는 바로 찬양대의 찬양 순서입니다. 본문말씀을 다시한번 한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서서 성경봉독을 통해서 저희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었잖아요? 그 말씀에 응답하는 것이 바로 찬양대의 찬양입니다.
사실 저희가 맨처음 오르간 전주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예배 순서를 잘 살펴보시면요, 마치 하나님과 저희들의 대화의 형식으로 계속해서 이어져있습니다. 전주와 입례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예배로 부름과 기원으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초청해주시고, 다시 하나님께 경배찬양을 올려드렸죠. 그리고 저희의 죄를 고백하면서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서, 하고 하나님께 외치면 하나님께서 용서의 말씀으로 저희를 용서해주시고, 저희가 거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독과 삼위영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직접 말씀해주시는 성경봉독을 마쳤으면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면서 찬양하는 순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아까 저희가 읽은 느헤미야 말씀에서도 보시면,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의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나고, 하나님을 송축하고 경배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저와 이주혜 전도사님이 만안교회에 처음 왔을 때, “어? 예배 순서를 왜 이렇게 했지?”싶은 부분이 참 많았는데요, 이번주 주보에 있는 주일 예배 순서를 함께 보시면요, 지금 오르간 전주부터 후주까지 이렇게 예배순서가 있는데요
전주, 입례 이부분은 저희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순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부름은 성경말씀을 읽고서 또한 하나님께서 저희를 초청해주시기를 기원하는 순서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저희를 부르시는 순서입니다.
그런데 보시면 예배로 부름 이후에 <찬양, 교독문, 사도신경, 송영, 대표기도, 찬양, 특별찬양>까지가 다 저희들이 하나님께 말을 건네는 순서입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살펴본 새 예배서의 순서를 보시면 다 하나님과 저희들이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대화하듯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거기에 화답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화답하고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 만안교회의 예배 형식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틈이 많이 없고 거의 회중들의 말만 들어가 있는 상태다 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꽤 많은 교회가 성경봉독을 먼저 하고서 찬양대의 찬양으로 이어지는데요, 그냥 순서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화답하는 찬양을 찬양대가 하는 겁니다. 또 거기서도 특별찬양이나 특송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찬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찬양대가 찬양할 때에 저희는 그냥 구경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안교회 주일예배 때도 가사를 자막으로 띄워드리고 있는데요, 호산나 찬양대가 찬양할 때에 저희도 그 가사를 묵상하면서 마음으로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하면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호산나 찬양대가 특별한 찬양을 불러서 찬양대끼리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저희 모두의 찬양을 대신해서, 말씀에 화답하여 찬양대가 부르는 것이죠.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함으로 찬양으로 화답하며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호산나 찬양대가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릴 때에 그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하면서 함께 마음으로 찬양 올려드릴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설교
마지막으로 알아볼 것은 설교시간인데요, 본문말씀을 다시한번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피차 가르치며 권면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성경에서도 ‘설교’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일들이 아주아주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을 저희가 ‘산상수훈’이라고 불리는데, 그 수훈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설교죠.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전하시는 설교를 수차례 하셨구요, 사도행전에서도 사도들의 설교가 수도 없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특히 사도행전 3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서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일어나 걷게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그 이후에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놀랍게 여기니까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특히 그 내용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인 것을 볼 수가 있죠. 여기서 베드로가 신명기 18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다, 라고 선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신명기 말씀은 구약의 말씀이고,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내용을 기록한 것인데, 모세를 통해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다, 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한 성경말씀, 그리고 그 성경말씀을 통해서 선포되어지는 말씀까지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신 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설교라고 하는 것은 그냥 단순히 성경을 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성경, 그리고 그 성경을 오늘날의 저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어지는 것이 바로 설교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제가 하는 말이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 설교가 곧 예수님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구요, 선포되어지는 이 말씀, 설교 뒤에 있는 성경의 말씀을 보고, 성경 뒤편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바로 설교의 자리입니다.
그렇다보니까 저도 설교를 준비하면서 은혜받을 때가 참 많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오늘 나와 만안교회에 이런 말씀을 주시는구나!”하고 깨달을 때에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도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발견할 때가 참 많습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시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설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냥 목사님들의 말씀, 전도사들의 말씀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성경의 말씀, 그리고 성경 너머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저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결론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성경봉독은 설교를 위한 구절을 읽는 것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 바로 성경인 것 처럼, 그 성경말씀을 통해서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저희 가운데 거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성경봉독을 하시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히 받들어읽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합니다.
둘째, 찬양대의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특별찬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같이 들은 것처럼, 저희가 찬양대와 함께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날 들은 말씀을 다시한번 묵상하면서 찬양의 가사를 함께 묵상하며 하나님께 감사로 화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되어지는 자리입니다. 그냥 목사님들의 말씀이 아니라, 전도사의 말씀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것입니다. 설교 뒤편에 있는 성경말씀, 그리고 성경 말씀 뒤편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간이 바로 설교 시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찬양대와 함께 말씀에 감사로 화답하고,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세상에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