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21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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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84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오늘도 은혜로 우리를 깨워 주시고 주님의 얼굴을 먼저 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어지럽고 분주한 생각을 잠잠케 하셔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교만과 욕심을 내려놓게 하시고, 겸손히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이새벽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몸과 마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기억해 주옵소서.
육신의 통증 속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주님의 손이 닿아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게 하시고,
마음이 무겁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의 평안과 새 힘을 부어 주옵소서.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몸과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새로운 힘을 주셔서 아픔이 점점 사라지고 평안한 일상이 회복되게 은혜 내려 주옵소서.
이시간 주님께 올려드리는 예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예물 드린손길마다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더하셔서
기도의 제목들이 주님의 때에 아름답게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바로 '친밀했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화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가정에서 가족들과 평화롭기를 원하고, 일터에서 동료들과 협력하기를 원하며, 교회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의 바람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가장 사랑해야 할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고, 심지어 사랑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납니다. 관계가 깨집니다.
그래서 그런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보통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상대방의 성격이 이상하다거나, 상황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다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야고보 사도는 전혀 다르게 주장합니다.
싸움의 원인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왜 우리 삶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문 배경: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놓인 성도들
2. 본문 배경: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놓인 성도들
야고보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로마 제국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민자들로, 극심한 차별과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조차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과 5장을 보면, 힘 있는 부자들이 가난한 성도들을 법정으로 끌고 가, 품삯을 주지 않고 착취하는 상황이 나옵니다. 이처럼 당시 성도들은 극심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 억울하고 분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밖에서 받은 상처가 교회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무시당한 설움을 교회 안에서라도 보상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서로 높아지려는 주도권 싸움을 벌였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세상을 향한 동경'이었습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모으고, 힘을 길러서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세상적인 생각이 교회 안에 퍼져 있었습니다.
결국 당시 교회는 밖으로는 핍박을 받고, 안으로는 서로 시기하고 다투며, 어떻게든 세상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3. 문제의 진단: 내 안의 '정욕(헤도네)'
3. 문제의 진단: 내 안의 '정욕(헤도네)'
이런 상확 속에서 야고보 사도는 1절 말씀을 통해 싸움의 진짜 원인을 지적합니다.
야고보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는 싸움의 원인이 로마의 압제도 아니고, 가난 때문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로 우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욕'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성적인 욕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뜻은 쾌락, 즐거움, 만족을 추구하는 모든 욕망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쉬운성경은 이것을 "너희 안에서 싸우고 있는 욕심"이라고 번역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다투고, 관계가 깨어지고, 마음에 평안이 없는 이유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채워지지 않는 욕심이 있고, 가지고 싶은데 얻지 못할 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시기하고 심지어 싸우기까지 한다는 것 입니다.
2절을 보면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앞에서도 말 한 것처럼 당시 성도들은 물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원했고, 인정받기를 원했고, 안정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쉽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향한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찼고, 공동체는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있는 정욕, 욕심은 심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심지어 기도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3절을 보면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런데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기도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이 새벽,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지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4. 영적 현실: 세상과 벗 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된 것
4. 영적 현실: 세상과 벗 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된 것
야고보 사도는 4절에서 더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성도들을 향해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부릅니다.
간음한 여인들'이라는 표현은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된 비유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 선지자들은 이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기에 야고보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결혼 관계와 같다는 것입니다.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그것은 간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방식, 세상이 주는 만족을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영적 간음입니다.
당시 성도들은 로마 사회에서 사아남기 위해 세상의 방식을 따라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신앙을 숨기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살았습니다. 야고보는 그런 이들에게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보시며 질투하십니다. 오늘 본문 5절에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주신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히 소유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반은 하나님의 것이고 반은 세상의 것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5. 해결책: 더욱 큰 은혜와 겸손
5. 해결책: 더욱 큰 은혜와 겸손
그렇다면,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 욕심을 따르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려는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것입니까?
네!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우리의 죄와 욕심은 큽니다. 우리가 세상과 짝하며 하나님을 배신한 죄도 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실패와 연약함을 덮고도 남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끝내시는 분이 아니라, 그 죄를 덮을 더 큰 은혜를 준비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이 큰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단 하나입니다. 6절 하반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내 힘으로 내 삶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모든 태도입니다.
반면 겸손은 내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욕심과 내 방법으로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는 연약하고 죄인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필요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6. 적용: 항복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6. 적용: 항복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겸손한 것이며, 어떻게 해야 싸움을 멈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본문 7절부터 10절까지 아주 명확한 행동 지침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7절)
첫째, 하나님께 복종해야 합니다. (7절)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어는 군사용어로, 지휘관의 명령 아래 자신의 위치를 잡고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싸움을 멈추는 첫 번째 단계는 내가 내 인생의 지휘관이라는 착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 내 계획, 내 감정을 주장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지휘 아래로 들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둘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7절)
둘째,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7절)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할 때 비로소 마귀를 대적할 힘이 생깁니다.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약속합니다.
우리의 싸움 대상은 남편이나 아내, 직장 동료가 아닙니다.
그들 배후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부추기고 관계를 깨뜨리려는 마귀가 진짜 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8절)
셋째,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8절)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입니다. 본문 8절에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당시 성도들은 세상의 힘을 가까이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도망치라고 말합니다.
싸움을 멈추는 비결은 이를 악물고 참는 인내심이 아닙니다. 하나님 품으로 파고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사람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욕심, 즉 '정욕'대로 살기 위해 아버지 집을 떠나 세상으로 갔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한 실패였습니다. 그가 다시 사는 길은 단 하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10절 말씀처럼 **"주 앞에서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탕자는 "나는 아들의 자격이 없습니다. 품꾼으로 써주십시오" 하며 아버지께 항복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이 약속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달려가 입을 맞추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다시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7. 결론
7.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누군가와의 갈등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으십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상대방 때문이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나의 자존심, 나의 욕심 그리고 세상의 방식으로 이기려 했던 마음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책망만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실패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은혜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과 싸우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힘으로는 이 마음의 전쟁을 끝낼 수 없습니다. 주님 도와주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 앞에 엎드릴 때, 마귀는 도망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기꺼이 안아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더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유하시고, 풀리지 않았던 관계를 풀어주시며, 우리를 다시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내 삶의 모든 주권을 주님께 드리고 그 주님만 따라가 우리가 상상 할 수도 없는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이 새벽에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툼의 근원이 밖이 아니라
우리 안의 욕심과 교만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삶을 살게 하시며,
무엇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한 날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 가운데 평안을 더하여 주시고,
말씀 앞에서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사람과 다투기보다 주님께 항복하는 길을 선택하게 하셔서 오늘도 매순간 승리하는 하루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오늘 담임목사님을 포함한 31명의 성도들이 남아공에서 귀국합니다.
돌아오는 모든 여정을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한 사람도 다침 없이 한국 땅에 무사히 도착하게 하옵소서.
그들의 수고가 열매로 맺히게 하시고 돌아오는 길에 주님의 평안으로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