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3장1-32절 (25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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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사로잡힌 사람들
하나님 나라에 사로잡힌 사람들
오늘 3장에 나온 느헤야가 그런 사람들이고, 성벽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이 제가 되고 싶어서 사심을 담은 제목을 정했습니다 .
서론
유대인의 성경은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한권의 책입니다.
두 책은 모두 심판 받았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어떻게 회복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핵심은 여호와께서 임하여 다스리는 하나님나라로 회복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하나님 나라로 회복하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사역하는 영역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키 느 1–6장 느헤미야 중심의 3차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
에스라서가
에스라는 b.c. 458년 아닥사스다왕7년에 , 2차 포로귀환을 이끈 제사장겸 학사 입니다.
느헤미야는 그후로 13년 후인 b.c. 445년 아닥사스다왕 20년에, 3차 포로귀환 이을 유대지역 총독 지도자 입니다. (444년 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
느헤미야는 성전을 둘러싼 성벽을 재건하며, 성전을 보호하며, 하나님의 도시로 불리는 예루살렘 회복에 힘썼습니다.
결국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종교적 영역, 사회적 영역, 경제적인 영역 모든 삶의 영역을 조직적으로, 제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힘썼습니다.
본론
1절에 느헤이야는 아닥사스다왕 20년 니산월 (유대력으로 첫번째 달, 태양력으로는 3-4월) 에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과 왕의 허락으로 예루살렘의 총독자격으로 오게 됩니다. (5장14절)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오기 몇년 전에 애굽과 페르시아 관계에 마찰이 생겼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근처에 믿을만한 사람이 총독으로 있기를 바랬는 우연히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가겠다고 요청한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우연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셨다고 합니다.
수산은 오늘날 이란의 남서부지역으로 예루살렘까지 약 3000km 정도 되며, 국경, 산악 지형, 사막, 날씨, 휴식일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3개월 이상 걸렸을것입니다.
왕궁의 술관원이라는 편한 보직을 버리고, 사서 고생하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자원하였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 예루살렘의 회복, 하나님 나라의 회복 이었습니다.
먼저 예루사렘에 돌아온,유대 사람들은 몸은 예루살렘에 성전에 있으나, 마음은 페르시아 왕궁과 편한 직책을 맡기를 사모하는데, 느헤미야는 호화와롭고 평화로운 왕궁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자신의 고향, 예루살렘,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집중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예배당에 몸은 와 있는데,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근심과 슬픔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 떄문에, 주님이 더디오시는 것 때문에 근심하고, 슬퍼합니까?
저도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느헤이먀와 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더욱 사로잡혔으면 좋겠습니다.
금요일 저녁 기도회는 몸이 많이 피곤한 시점입니다. 집중하기 위해서 에너지가 많이 소비됩니다. 육체는 힘들지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 사로잡히는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느헤미야 3장에서는 그동안 느헤미야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이 마음을 주셨던 성벽 재건이 구체적으로 실행합니다.
3장은 완성된 성벽공사의 요약 보고서와 같고, 4장에서 6장은 성벽공사 과정의 상세 기술 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6일 창조를 말씀하시고, 2장에 또다른 창조의 기사가 아니라, 사람과 에덴 동산을 더 자세하게 기술하는 문학기법입니다.
[성벽 사진 ppt]
성벽의 크기는 정확하게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고고학적으로 남아있는 흔적들과 당시 고대 성벽을 기준을 볼때, 총 4km 둘레로, 높이는 약 7-8미터, 혹자는 4-5미터 라고 하기도하고, 성벽 넓이는 2.5 m 정도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사진을 좀 보면서 말씀을 읽으면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수 있습니다. => [PPT1 사진]
일산 호수 공원만한 둘레의 성벽을 52일만에 지은것입니다. 외벽두께 2.5m, 높이 2.5 층 , 둘레 4km, 대략 호수 공원 산책 코스 전체를 2.5 층 벽으로, 주욱~ 두른것과 같습니다.
북쪽의 ‘양문’ 을 시작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소개합니다.
10개의 문, 4개의 망대, watch tower가 건축되는데, 작은 출입구가 아니라, ‘방어 시설을 갖춘 정문’ 형태였습니다. 폭이 3-4미터, 높이가 6-7미터 될 정도로, 수레와 말이 들어갈만한 큰 출입구였습니다.
고대 성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도시의 심장이었습니다.
상업적 중심지 – 장터, 세금 징수, 거래 / 사법의 자리 – 장로들이 재판을 하는 곳 / 방어의 초점 – 적이 가장 먼저 노림 / 신앙의 상징 – 백성이 말씀을 듣는 곳(느 8장의 수문 광장) 이기도 했습니다.
느헤미야 3장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각 구역별로 누가 건축했는지, 그들의 출신 지역과 직업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에 기록된 성벽 건축자들은 매우 다양한 출신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성벽 재건은 신분과 직업을 초월한 전 민족적 참여 프로젝트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신분과 직업과 국가를 초월하는 전세계적 프로젝트입니다.
전도와 양육,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사는 조직, 구조, 문화를 만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은 천사도 돕고있는 전 우주적인 프로젝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있어서, 물리적으로 회복하는 성벽 재건에 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공사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데 어떤 사람도 하찮은 사람이 없고, 어떤 역할도 귀하지 않은것이 없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 모두가 그 위치에 적합하고, 그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벽을 세워야함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씩 보면서 의미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하다가 여러분이 졸면 그만 하겠습니다. ^^
문과 성벽, 망대를 지을때 건축, 중수, 보수가 나오는데,
-건축: 무너진 기초부터 새롭게 세우는 것
-중수: 기존 구조를 강화하여 튼튼하게 하는 것 ,
-보수: 깨진 틈을 메우고 세밀하게 수리하는 것, 가벼운 보수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성벽은 외부 공격으로 부터의 보호, 성문은 일상 출입과 통제, 망대는 늘 분별하며 깨어있음, 성루는 실천적 싸움의 현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 pp2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북동쪽 성전 구역. 희생 제물로 바칠 양들이 들어오는 문입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가장 먼저 건축했습니다.
회복의 시작은 언제나 예배로 부터 시작됩니다. 단순히 말씀, 기도,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가치 있게 모시는 마음의 예배입니다.
한 장소에서 모여서 말씀듣고, 찬송하고 기도를 하는 행위를 넘어, 마음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가장 가치 있는 분, 나의 모든것과 바꾸어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그 중심으로 말씀을 듣고, 고백하고, 노래하고, 기도하고, 순종하는 예배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절대 가치가 되시고, 절대 사랑이 되시면, 중심이 되시면 모든 삶이 정돈 됩니다. 질서가 잡힙니다.
또한 저를 포함하여, 영적 지도자들, 리더들이 솔선수범하여 공동체 회복 사역에 앞장서야 함을 교훈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는 예수님께서 먼저 본이 제자들의 본이 되셔서 죄인들의 발을 닦아 주시고, 물고기를 구어주시고, 떡상을 차려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저희 죄까지 닦에 주셨습니다.
이렇게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먼저 섬길때, 주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날것입니다.
작은 실천으로는 서로를 먼저 반갑게 웃으며 환영해주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환영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죽지 않고 또 만나서 반갑습니다. ^^ (해볼까요) 사실 우리는 늘 헤어짐을 담보로 하고 만나고 있습니다. 주님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때 우리를 환하게 영접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성문을 중심으로, 벽을 세웁니다.
여리고 예루살렘 동쪽 27km 지점의 , 요단강 근처 도시 입니다.
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와서 성벽을 건축하였습니다. 지역과 상황이 달라도 교회와 전도와 양육을 위해서 먼거리를 이동하며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어문은 물고기 문인데, 북쪽 성벽. 근처에 어시장이 있어, 북쪽에서 들어오는 물고기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하고, 물고리를 파는 장소가 가까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들보 ppt
들보는 천장을 바치는, 지붕을 바치는 가로 막대기 입니다. 문짝은 문이고, 빗장은 문이 열리지 않도록 막는 가로 막대기 입니다. 고대의 자물쇠는 찾아봐도 어떤 모양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굉장히 튼튼하게 물을 걸어 잠그는 전문적인 장치입니다.
오늘날도 문을 만들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는 일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하스나아의 위치는 불명확하지만, 이 사람들은 전문 기술자로 불수 있습니다
전문직을 주신것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라고 주신것입니다.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어문을 중심으로 문에 붙여서 벽을 이어서 쌓았습니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드고아는 예루살렘 남쪽 16km 떨어진 지점입니다.
평민들은 헌신하는데, 귀족들은 참여하지 않은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분과 재물을 사용하지 않는것은 자기를 위해 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에 쌓을 기회를 잃는것을 보게 됩니다. 귀하게 가치 있게 여기는것들을 주님나를 위해 사용할때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님과 복음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한것은 하늘에 쌓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옛문은 건축하지 않고, 중수 하였습니다. 어느정도 형틀이 갖춰져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래된 문, 다윗시대부터 존재하던 문, 성전과 성읍중심부로 들어가는 주요 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2000년전에 그 복음입니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복음, 새로운 진리를 들고 나오는데, 우리가 가진 옛 복음,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의 복음에 집중하여 더욱 중수하여야하겠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이면, 그리스도는 무엇인지? 한번 글로 작성해보시면, 생가보다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와 내가 무슨 상관인지, 새롭게 된것은 무엇인지? 글로 작성해 보시면, 더욱 풍성해 지실것이니다.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고
기브온은 북서쪽 10km이고 미스바는 북쪽 12km 지점입니다.
가까운 지역간에 연합하여 중수 하였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금장색은 금세공업자입니다. 금을 가공하는 사람들입니다.
향품장사는 향을 파는 사람들인데, 력셔리 사업하는 분들입니다.
8절 끝에 보면 넓은 성벽까지 중수 하였습니다. 역시 주님께서 돈을 많이 주시면, 많이 써야함을 볼수가있습니다.
여기서 주님 허락하시면 부자가 되셔서,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많이 사용하셔서, 하늘에 쌓으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남북인지, 동서인지는 알수 없지만,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반으로 나누어서 관리하도록했습니다.
지역의 정치, 행정 지도자들도 성벽 재건에 동참하였습니다.
오늘날 정치와 신앙을 분리하려고 하는 것을 볼수가 없습니다.
정치 얘기 하지마, 신앙만 얘기하자.
물론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이기 때문이지만,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의 조서를 통해서, 술관원 느헤미야의 정치적 신분을 사용하셔서, 정치적으로 합법적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정치인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자고, 깃발을 세운것입니다.
신앙과 정치를 분리할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정치를 분별할것입니다.
물론 정치적인 위치에 놓이게 하신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1장에서 이미 밝혔습니다.
하나님은 정치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 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여다야가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알수 없지만, 처음 나오는 표현이 자기 집과 마주한 곳을 중수하였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 근처를 중수 하도록했습니다.
꼭 언어가 다른 이방문화권에, 외국에, 혹은 저 멀리가지 않아도, 집 건너편, 가까운 이웃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울수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 세계관으로 사는것을,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것을 보이며, 나눠먹고, 도와주면서 , 전도하고, 양육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울수 있습니다.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
화덕 망대, 풀무 망대라고도 합니다. 불로 연단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망대는 외부의 적군을 감시하는 경계초소 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말씀으로 분별하며 이 시대의 유행을, 정치적 풍조를, 문화를, 종교의 흐름, 교육의 흐름을 파수꾼 처럼 지켜보는 눈이 있어야하겠습니다 저에게 매우 없는것인데, 그래도 담임 목사님이 한번씩 상황을 나눠주셔서 그때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러한가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 나라는 은사별로, 공동체로 세워갑니다.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
12절에 3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여자들입니다. 고대에 여자들이 사역한다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여성들도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참여한다는 것을 2500년 전에 보여주셨다는것이 놀랍고, 감사한일입니다.
이름이 나온 몇 사람이 지은것이 아니라, 이름이 나온것은 그 부분을 지을때 리더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3절에 있는 할로헤스의 딸들도 여성들도 리더로, 주역으로 사역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성 분들이여, 주님을 사랑하면, 복음에 집중하면 주역으로 사역할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사모님이 증이시네요. ^^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서남쪽 성벽. 힌놈 골짜기로 통하는 문으로, 느헤미야가 밤에 성벽을 정탐할 때 나갔던 문입니다.
남쪽 성벽. 성 안의 쓰레기, 오물, 찌꺼기를 밖으로 버리고 처리하던 문입니다.
1000규빗은 450 미터 입니다. 예루살렘 성벽 10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길이 입니다.
하눈은 개인의 이름이고, 사노아 는 예루살렘 서쪽 약 25km , 유다 산지의 저지대 지역 사람들입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연합하여 엄청난 길이의 성벽을 중수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제법 먼거리에서 와서, 한 사람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똘똘 뭉쳐서 가장 긴 성벽을 중수 하였습니다. 은혜와 마음만 있으면 상황과 조건의 제약을 얼마든지 뛰어넘을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벧학렘은 남쪽 6km 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본문은 똥문, 거름 문이라고도 합니다. 남쪽 성벽. 성 안의 쓰레기, 오물, 찌꺼기를 밖으로 버리고 처리하던 문입니다.
똥을 버리러 가는 문이라고 할지라도, 자물쇠와 빗장을 갖춥니다.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서 작은일, 하찮은 일을 한다고 해서, 영적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작고 하찮아 보이는 일도 절대 없어서는 안될 귀한 일입니다.
초청잔치, 성탄축하, 가정안에서, 쓰레기 하나 줍고, 장난감 하나 재자리에 가져다 놓는것 아주 귀합니다.
앞으로 아이를 키울분들이 계시겠지만, 아이들 똥기져귀 갈아 주는것? 화장실에서 똥 다쌌어요 ! 닦아주세요! 외치면 달려가서 닦아주는것! 매우큰 이웃 사랑입니다. 제자훈련이라는 것이 양육이라는것이 우리 멤버들이 싸질러놓은 똥을 치우는 일 같기도 합니다.
똥을 치우듯이, 쓰레기를 치우듯이, 죄와 탐욕, 세속의 가치관을 빨리 빨리 버리는것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새로운 삶을 사는데, 가장 급하게, 자주 해야하는 귀한 일입니다.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었으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 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남동쪽 모퉁이. 실로암 못과 엔로겔 샘 같은 수원지로 연결되어 물을 길어오는 문입니다. (15절)
사진 보시면 이 부분에 다윗성이 있고, 계단이라고 써있는 것을 볼수 있습다.
우리는 늘 목마릅니다. 우리가 원하는것을 하고, 채울수록 목마릅니다.
십자가를 통해 내가 죽었고, 내가 주님 안에 산다. 결핍에 허덕이는 내가 죽었다. 나를 위해 사는 내가 죽었다 선포하고, 모든것으르 가지신, 하나님의 성품,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절제, 신실 , 지혜, 의, 거룩 모든것이 충만하신 그분의 것이 내것이 되었다. 그분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 묵상하면, 어느새 부족함 없는 우리를 발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면, 두려움과 의심과 결핍을 느끼니, 십자가와 그리스도를 자주 묵상해야합니다.
사랑에 목마르다. 능력에 목마르다. 인정에 목마르다? (내 사랑하는 아들, 내가 기뻐하노라)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벧술도 먼지역인데, 남쪽 25km 지점입니다.
다윗의 무덤 근처와 인공 연못과 용사들의 집까지 성벽을 중수 하였습니다.
이 명칭은 아마도 과거 다윗 시대나 그 이후에 왕실 근위대나 정예 군인들이 주둔했던 병영이나 특별 거주 구역을 가리켰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용사는**는 다윗의 30인 용사처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전사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입니다. 그런데 용기 있는 사람이 많지가 않아보입니다.
용기는 사랑할때 생기는데, 주님을 목숨처럼 사랑할때 용기가 생깁니다.
그런 사랑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먼저 사랑해주셔서, 빌라도 앞에서도 용기있게, 채찍과 십자가 형벌 앞에서도 용감하게 맞서 싸워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사랑, 우리의 용기가 되십니다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그일라는 예루살렘 남서쪽 20-25km 입니다.
레위 사람들이 합류 했습니다. 성전 봉사도 하지만, 하나님의 도시를 건설하고, 외부의 적을 막는 성벽을 건축하는 일까지 투입하였음을 봅니다.
그 다음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미스바는 아까 북쪽으로 12km지점 이라고 했습니다. 성 굽이는 모퉁이 입니다.
7절에서는 미스바의 일반 시민이었고, 15절과 19절에는 미스바의 지도자의 아들입니다. 이 군기고 (무기고) 맞은편 까지 중수 하였습니다.
미스바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는데, 헌신에도 특정 지역의 쏠림 현상을 볼수있습니다.
열정적인 사람 옆에 있으면, 열정적인 사람이 되고, 믿음 있는 사람 옆에 있으면 믿음있는 사람이 될것입니다.
내가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확신하고, 작은 순종할때, 우리 옆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어느새 붙어있을것입니다.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 예루살렘이 지형이 높낮이가 달랐음을 알수 있습니다.
같은 제사장이지만, 누구는 산동네에 살고, 평지에 살수 있습니다.
거주의 차이 있습니다. 불평하지 말고, 허락하심으로 알고 감사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누가 제사장이더라, 누가 믿는 사람이라더라. 소문 나게 살고, 소문 내면서 사는것도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내가 실천적 그리스도인이 되는 장치로서 좋겠다 싶습니다. 믿는 사람 티를 내십시오.
제가 오늘 3층 학원 원장님께, 마지막 인사로 주님께서 번창하게 해주시길 원합니다. 라고 첨으로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부담 스러웠습니다. 말과 행동을 더 잘해야겠네…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집맞은편, 집가까운 부분을 중수하는데, 이것이 느헤이먀가 성벽재건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곳 가까이있는 부분을 담당하도록,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교회 가까이 사는 것은 복이고, 교회로 인도하기가 더 유리합니다.
꼭 교회로가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붙여주신 사람, 가족, 친척, 이웃, 회사동료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고, 성숙한 자들로 자라도록 돕는다면, 배가의 원리처럼, 한 사람만 자기 지역,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해준다면, 하나님 나라가 더 빠르게 확산될것입니다.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시위청이 뭔가? 시위청은 왕실의 안전과 보호를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이었습니다.
왕실 경호 부대 막사나, 왕궁에 부속된 감옥을 의미합니다.
시위청은 왕실의 안전과 보호를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시위대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주요 역할로는 ① 왕궁 파수 ② 왕실 보물 창고 경비 ③ 왕의 병거나 마차 호위 ④ 왕 경호 등이 있었습니다 .
우리가 주님의 말씀과 하님의 백성 답지 못할때 징계도 피할수 없음을 기억해야하겠습니다. 편하게 살기 원하는것은 욕심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때 느헤미아처럼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되게 하실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아겠어요. 그것이 결혼 아닙니까? 결혼은 사서 고생하는것입니다. ㅋ
그러나 그모든 징계는 하나님게로 마음을 온전히 돌이키기 위한 사랑의 맴배 임도 잊지 않아야 겠습니다.
(그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민 망대까지 이르렀느니라)
동쪽 성벽 (성전 근처). 짐작컨대 물을 공급하거나 정기적으로 율법을 낭독하는 데 사용된 광장과 연결된 문입니다. (26절
망대는 WATCH TOWER 경계초소 입니다.
내민 망대는, 내민의 원어는 ‘나아가다’, ‘튀어나오다’ 라는 뜻으로, 이 망대는 성벽 앞쪽으로 튀어 나온 망대 였습니다. 내민 망대는 나아가 예수께서 누가복음에 언급하신 무너져 18명의 사람을 죽게 한 실로암 망대(눅 13:4) 일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Major Contributors and Editors, “실로암 망대”, in Lexham 성경사전, ed John D. Barry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20년).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드고아 사람들은 이미 5절에 어문 주변 성벽을 공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부분을 더 자원하여 공사를 하였습니다. 한 부분 맡아서 완수하는것도 힘들었을텐데, 다른 부분까지 맡아서 성벽을 세웠습니다.
1인 다역으로 섬겼다고 할수 있습니다. 여기 게신 분들이 1인 다역으로 섬기는 분들이십니다. 그 섬김에 주님의 나타나심과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동쪽 성벽. 군마들이 출입하던 문입니다.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동쪽 성벽. 성전과 가까운 주요 문 중 하나였습니다.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일반적으로 느헤미야 3장에서는 “○○의 아들 ○○”의 형태로 기록합니다.
그런데 “여섯째 아들” 이라고 순위까지 밝히는 경우는 이 구절이 유일합니다.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서 아들 중 서열이 뒤로 갈수록 사회적 영향력과 상속권이 줄어듭니다.
장자 = 가문의 대표, 막내 또는 마지막 아들 = 영향력 적었고, 숫자를 세다가 놓치지고 할만큼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그 평범한 여섯째 아들 여디야의 이름을 기록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은 ‘지위·나이·가문·서열’과 상관없이 모두의 몫임을 증언합니다.
세상은 엘리트만 귀한 일에 참여 시켜주지만, 하나님은 가장 약한 사람에게도 주님의 일을 맡겨 주셔서, 영광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느헤미야 3장이 의도적으로 목수, 금장색, 장사꾼, 지도자, 심지어 막내 아들까지 다 기록한 이유일 것입니다.
내가 약하다고 생각하고 볼품업사고 생각하고, 지식, 학력, 경제력, 모든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맡기실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의 순종을 기억하십니다. 공동체 회복은 소수 지도자의 능력이 아니라 ‘다수의 작은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벽 재건은 하늘에 서 뚝떨어진 기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묵묵한 땀방울이 만든 결과 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가정·사역도 “이름 없는 사람”의 헌신으로 세우집니다. 이름 없는 교사, 숨어서 기도하는 성도, 평범한 가정의 부모, 작은 자리의 실천들이 하나님의 성벽을 세우고 있습니다.
볼품 없는 자라고 느껴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껴질때, 주님만은 내 이름을 기억해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과 함밉갓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은 ‘계수하다’, ‘점호하다’ 라는 의미로 병사들의 집결와 관련된 문이라고 합니다.
성루는 '높은 것’을 뜻하는데, 계단, 또는 2층방을 의미하기도합니다.
문과 벽이 없이 경치를 볼 수 있도록 높게 지은 다락 건물입니다. 경복궁의 경화루를 떠올렵보면 됩니다.
경화루는 경치 구경용이지만, 예루살렘 성루는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화살, 돌, 뜨거운 물 등을 던져 적을 막기도 했습니다. 즉,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 전투용 거점이었습니다.
성벽 재건을 볼때, 단순한 삶의 터전을 안전하게 구축한것이 아니라, 병사로서, 하나님의 영적 전쟁에 실전 참여 하였음을 봅니다.
우리들의 눈은 이땅이 경치구경가고, 피조물을 감상하는데만 사용하면 안됩니다.
눈을 뜨고, 인본주의적 가치관, 세계관을 분별해내는 영적 싸움의 무기로 사용해야합니다. 유튜브, k-POP , 문화, 예술이라고 하는 것들을 분별력있게 걸러내야합니다. 볼것은 보고, 안볼것은 안봐야합니다.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마지막으로 처음 시작했던 양문으로 성벽이 이어지며 성벽이 완성되었습니다.
금장색은 금세공업자, 금을 다루는 기술자 입니다. 이미 설명 했습니다. 돈이 더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건축비를 내고, 더 많은 건축을 하였음을 볼수 있습니다.
또한 돈 만있다고 하는것이 아니라, 드고아 사람들 처럼, 자원하여 더 섬기려고하고, 더 섬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부자와 가난한자, 권력층과 소외층 모두를 통해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여 줄까? 주님을 뵙기 원합니다. 다시 오셔서 주님의 나라를 완전하게 세우소서! 라고 진심으로 우러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있을때 ,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그리스도만 전파된다면, 누가 전하든 무슨 상관이요. 잃어 버린 영혼이 생명을 얻는 다면, 누가 수고한들 어떠하리, 누가 칭찬을 받든 무슨 상관이요.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소유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는데, 여기서 조금 가난하고, 권위가 없는게 무슨 문제가되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보도블록이 있다는것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길바닥은 황금, 순금으로 되있습니다. 황금이 돌처럼 굴러 다니는데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요즘 금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달러도 못믿고, 원화도 못믿어서, 금을 사야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이땅에서 금을 많이 소요한 부자라고 해도, 하나님 나라의 길바닥에 널린게 금인데, 무슨 부요를 자랑하겠습니까?
성벽재건에 쓰임 받는것은 특권입니다. 1,2,3차 포로귀환 기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동참하는 것은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연히 어쩌다 성벽을 짓는데 동원된것 같지만,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 속에서 된것입니다.
우리는 종교적 직분이나, 사회적 어떤 직분, 어떤 위치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질서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드러나도록, 작은 실천을 한다면, 내가 있는 곳에서, 그 시간에 하나님 나라를 세울수 있을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알수 있는것은 직업이 무엇이었느냐? 돈을 많이 가졌느냐?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성벽재건에 실제로 시간과 체력을 사용하였느냐 입니다.
5절에 어떤 유력한 사람, 돈도 많고, 지도층이면서도 성벽재건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31절에 성전 막일꾼, 육체 노동자이면서도 성벽재건에 참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복음과 성도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될것입니다.
최후의 날에 이름이 불려 지면서, 누구누구는 , 주님을 위해서 00일을 했지, 00에 참여 했지?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사람이 알아 주지 않아도, 우리가 있는 지금, 오늘,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제자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여기소서.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제가 기도하고, 이어서 목사님의 인도로 합심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제목 3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안에 사는 새로운 나라는 정체성을 자주 잊는데, 객관적인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사역을 떠올리며 확고한 정체성의 성벽을 칠수 있도록
일상에서 나의 미래, 나의 안정, 내 가정의 보장에 붙잡힐때가 많은데, 성령님께서 생각의 문을 지켜주셔서,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마음에 붙잡힌 일상을 살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를 전 세계적인 연합속에서 세워가고 계심을 바라봄과 동시에, 내 집, 내 주변의가까운 이웃부터 기도하며, 전도하고, 양육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고,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할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