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쌓아가야 할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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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느헤미야 4장
제목: 내가 쌓아가야 할 성벽
[서론]
먼저 통계자료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 무속인 수가 얼마일까요?
놀랍게도 약 80만명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비해 4배가량 많아진 숫자입니다.
목회자 수가 약 10만명 남짓인거에 비해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무속이용률이 20퍼센트가 넘는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5명중 1명은 점보고 무당 찾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무속을 찾는 거야 세상의 현실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심각한 영적 문제입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신앙 약화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겪고 있는 ‘세속화’의 민낯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속화란, 쉽게 말해서 교회가 점점 세상, 제국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다닌다는데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욕심많고 더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저 사람이 교회다닌다면, 나는 절대 교회 안 갈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운데 퍼진 세속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세속화는 교회 밖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묘하게 자리잡아 교회를 황폐화시킵니다.
복만 좇아가는 기복주의 신앙은 세상 제국의 가치관과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의 대형화와 성장주의도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가치관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예배자가 아닌 소비자가 되어 자기 만족에만 치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수 있을까요?
세상 제국의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지킬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나눌 느헤미야 4장 말씀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론1]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무너졌던 성전이 재건된 후 약 7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성전은 다시 세워졌지만 그 성전과 성읍을 둘러 싸고 있는 성벽은 여전히 무너진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합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성전이 이미 세워졌는데, 왜 성벽 세우는 일까지 꼭 필요한 것일까요?
단순히 겉모습이 안 좋아보여서 일까요?
아니면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시도일까요?
둘다 아닙니다.
당시 유다는 왕도 없어 독립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독립이나 외관상의 이유가 아닙니다.
그가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려는 진짜 목적은 무너진 성벽이 곧 이스라엘의 무너진 정체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성벽이 무너져 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벽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존재’라는 표시이자 경계입니다.
그러므로 성벽은 단순한 방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앙의 표지이자 믿음의 경계선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벽을 다시 세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기득권을 누리며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산발랏과 도비야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까지 완성하면 그들의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느헤마야를 공격할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왕의 정식 허락을 받아 성벽을 다시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심리전을 선택합니다.
2-3절입니다.
‘자기 동료들과 사마리아 군인들이 듣는 데에서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이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냐? 하루 만에 일을 끝낸다는 거냐? 불타 버린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다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거냐?”하고 빈정거렸다. 그의 곁에 서 있는 암몬 사람 도비야도 한마디 거들었다. “다시 쌓으면 무러 합니까? 돌로 성벽을 쌓는다지만, 여우 한 마리만 기어 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겁니다.”
이 말들은 단순한 조롱과 모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능력을 모욕하여 낙심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너희는 제대로 지을 능력도 없어. 그리고 지어봤자 또다시 곧 무너져버릴거야.”
이러한 조롱과 모욕을 통해 백성들을 낙심시켜 스스로 포기하게 하려는 전략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이러한 방해가 없을까요?
여전히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대로 살아갈때 세상은 그것을 불편해합니다.
정직하게 살고, 타협하지 않고,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그렇게 살아서 뭘 할수 있어?, 너만 유난 떨지말고 적당히 해. 세상 흐름에 맞춰 살아야지 살아남지.”
이것이 세상이 교묘하게 우리들의 정체성을 흔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더 위험한 방해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옵니다.
바로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네가 이렇게 한다고 뭐가 바뀌겠어?, 계속 이렇게 어떻게 살아, 너무 힘드니까 적당히해.”
이런 내면의 잡음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방해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은 어떨까요?
느헤미야는 기도합니다.
4-5절입니다.
그들이 하는 욕이 그들 자신에게 돌아가게 해주시고, 그들이 노략을 당해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가 심한 저주같습니다.
이런 기도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십시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직접 보복한게 아닙니다.
그는 욕하거나 그들과 대항해서 싸우지 않습니다.
기도 속에 모든 감정을 쏟아놓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세상 제국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려 할때 사람들은 불편해 합니다.
사탄은 조롱하며 우리를 낙심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며 나의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여전히 세상의 수많은 잡음들은 우리를 흔들어 놓으려 합니다.
그럴때 느헤미야처럼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멈추지 말고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성벽을 쌓아가며 나아가야 합니다.
[본론2]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함께 계속 성벽을 쌓아 올립니다.
그러자 원수들도 가만있지 않습니다.
조롱이 통하지 않자, 이제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수위를 높입니다.
8절입니다.
다른 민족들과도 손을 잡고 기습공격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상황이 매우 심각해진 것입니다.
이러한 위협이 백성들 사이에 공포로 번지기 시작합니다.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두려움이 노래가 되어 퍼질 정도입니다.
“결국 성벽도 쌓지 못하고, 우리는 모두 죽을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낙심과 절망이 입술에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근처에 사는 백성들이 10번씩이나 느헤미야를 찾아옵니다.
원수들이 자신들을 칠 것이라는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공동체 전체가 두려움으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두려움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는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한 농부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손을 흔드는 한 여인을 자신의 마차에 태웁니다.
그 여인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얼굴을 가리고 있길래 농부가 답답해서 이름을 묻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자신의 이름이 콜레라라고 대답합니다.
농부는 너무 놀라 마차에서 내려 버렸습니다.
농부는 왜 우리 마을로 들어가려는 거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태연하게 걱정말라며 딱 10명만 죽이겠다고 대답합니다.
농부와 여인은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딱 10명만 죽이기로 약속하고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마을 앞에 이르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입니다.
화가난 농부가 당신이 죽였느냐고 따지자 콜레라 여인은 자신이 한게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어떻게 된 일일까요?
마을 사람들은 콜레라 여인이 온다는 소식만 듣고도 두려움에 스스로 죽어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실체가 없지만 사람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독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협에 대해 느헤미야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14절입니다.
백성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귀족들과 관리들과 그 밖의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 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하니, 싸워라.”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1)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격려합니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두려우신 분임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이 적들보다 크시고, 그 어떤 공격보다 강하신 분임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잊기 때문에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이 일이 가족공동체를 위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2) 사랑하는 이를 위한 헌신이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깨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느헤미야의 격려때문인지 놀랍게도 하나님은 원수들의 음모가 들통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거대한 제국인 세상과 싸워나갈때 두려움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럴때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결국 사랑하는 가족과 교회공동체를 위한 헌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론3]
그럼 느헤미야는 이제 하나님만 믿고 아무 것도 안해도 될까요?
“하나님이 지켜주시겠지” 하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손 놓고 있어도 될까요?
아닙니다.
16-17절입니다.
“젊은이 가운데 반은 일을 하고, 나머지 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을 하였다.”
“짐을 나르는 이들은, 한 손으로는 짐을 나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기를 잡았다.”
물론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굳게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의 책임도 준비도 철저히 감당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한 손에는 도구를 한 손에는 무기를 쥐어 줍니다.
성벽을 쌓는 일과 성벽을 지키는 일을 동시에 하게 만듭니다.
23절입니다.
“나도, 나의 형제들도, 내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들도, 나를 따르는 경비병들도,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옷을 벗지 않았으며, 물을 길러 갈 때에도 무기를 들고 다녔다.”
어느 누구 할것 없이 모두 밤낮으로 경계태세를 취합니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습니다.
물론 너무 피곤한 삶입니다.
그러나 항상 깨어있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편안한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대충 신앙생활을 하는 길이 아니라, 치열하게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다 하시겠지”라고 생각하는 게으른 기대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기도와 동시에 나의 최선을 통해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사람들은 한주 동안 죽으라 일하고 일요일에 푹쉽니다.
아침에는 미라클 모닝이라고 말하며 책읽고 자기계발하기 바쁩니다.
그러니 일요일에 예배드리고, 아침마다 성경을 묵상하는 일을 어리석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의 성벽을 쌓는 일임을 말입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하루 하루가 세상 제국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치열한 전쟁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 시대처럼 우리에게도 두 개의 손이 필요합니다.
한손에는 성벽을 쌓는 일상의 도구가, 다른 한 손에는 우리를 지키는 영적 무기인 말씀이 필요합니다.
이 두 손으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갑니다.
제국의 유혹과 방해가 끊이지 않는 시대, 믿음의 공동체는 항상 깨어있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세속화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 서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상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그 속도와 효율, 성과 중심의 가치관이 교회 안에도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흔들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속은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에 빠르게 답을 알려주고 확실히 위로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슬그머니 들어온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인 느헤미야 4장은 이러한 우리의 질문에 좋은 해답을 제시합니다.
1) 느헤미야는 조롱과 방해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성벽을 쌓아갔습니다.
2)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갔습니다.
3) 한 손에는 도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성벽을 쌓아 올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끊임없이 흔들고 조롱하며 포기하게 만들려 합니다.
“적당히 세상에 맞춰 살아야지, 신앙도 결국 내가 잘되기 위한 거 아냐?”
밖에서 안에서 들리는 이런 교묘한 속삭임은 우리의 믿음을 흔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맞춰 살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제국이라는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 아침마다 묵상하는 성경 말씀,
단순함, 관대함, 손해, 섬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성벽을 한줄 한줄 쌓아올리는 벽돌들입니다.
이 전쟁은 고되고 힘든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수고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 나라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를 조롱하고 방해하는 세상 제국은 결국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하는 거룩한 건축현장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부름받은줄 믿습니다.
나의 무너진 성벽의 틈을 매우고 보수하여 하나님 나라의 성벽을 날마다 쌓아나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