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의 비밀: 거절당한 중보자와 십자가의 영광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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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17:1-9
🌟 서론: 종의 모습 뒤에 감춰진 영광의 실체
🌟 서론: 종의 모습 뒤에 감춰진 영광의 실체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는데, 거기서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종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실상은 거룩하고 존귀한 성자 하나님이시며, 그 영광의 실체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같은 일, 지금 너희가 눈으로 본 일을 비밀로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변화산 사건의 의미를 두 가지 질문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왜 예수님은 이 같은 일을 비밀로 하셨을까?
왜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이 메시아 구원자이신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 본론 1: 거절당한 중보자들, 모세와 엘리야
📖 본론 1: 거절당한 중보자들, 모세와 엘리야
1.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
1.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
오늘 말씀에 모세와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이 둘은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구약은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율법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것이며, 선지자의 대표성은 엘리야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에 있는 자들이며,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예수님의 양옆에 서 있다고 일반적으로 해석합니다.
2.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 거절과 중보의 신비
2.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 거절과 중보의 신비
그러나 오늘 이것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비밀로 하시라던 것, 곧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신비)**이 무엇인지가 엘리야와 모세를 통해 더 자세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비밀은 대부분 '시크릿'이 아닌 '미스터리'입니다. 비밀은 알려주면 알 수 있지만, 신비는 알려줘도 말을 해줘도 모르는 것입니다. 엘리야와 모세는 그 신비가 무엇인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거절당한 경험: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모세에 관해 설교하듯,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절한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절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북왕조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바알을 섬기는 왕에게 쫓기며 하나님의 종들이 다 죽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철저히 이스라엘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절, 거부, 배척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둘이 지금 변화산에서 예수님 양옆에 서 있는 겁니다.
중보자의 위치: 거절당한 것만이 공통점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중보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중재한 중보자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한 율법을 받아오고, 백성의 잘못을 위해 하나님 앞으로 가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한 중보자였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라기 4장에 기록된 것처럼, 그는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화해와 중보의 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비밀이며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화해와 구원을 위해 보냄받았으나 거절당했습니다.
📖 본론 2: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한 이유
📖 본론 2: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한 이유
1.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속죄 제물 (이사야 53:1-3)
1.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 속죄 제물 (이사야 53:1-3)
왜 그들은 거절과 배척을 당하였을까요? 이사야 53장 1~3절을 보십시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겁니다. 왕 같은 카리스마로 압도하고 사람들을 확 끌어당기며 굴복시킬 리더십, 이러한 모습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의 압제 가운데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백마 타고 그들을 로마에서 구해줄 그러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고 권세도, 영광도 가지고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그는 로마에서 자신들을 구원해줄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외면했고 생각도 안 했습니다. 모세도 바로에게 쫓기다 광야에서 40년 다 늙어서 지팡이 들고 왔을 때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왕자여도 될까 말까 한데 말입니다. 엘리야도 쫓기며, 숨어 지내며 그들을 두려워했던 자입니다. 볼품없었습니다.
2. 정치적 구원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위해 (이사야 54:4-6)
2. 정치적 구원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위해 (이사야 54:4-6)
그가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오신 것은 속죄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에 갇혀 결과가 사망밖에 남은 것 없는 인류를 영원한 생명으로, 완전한 사랑과 통치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교제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제물로 오셨습니다. 죽기 위해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 사상 아래,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자기들의 틀 안에 가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 본론 3: 오늘날 우리의 오해와 거룩함의 가치
📖 본론 3: 오늘날 우리의 오해와 거룩함의 가치
1. 보상을 세상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현대 기독교
1. 보상을 세상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현대 기독교
이러한 오해가 우리 성도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것 자체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해가 안 가서입니다. 영적인 부분에 대해 인간은 완전히 깜깜합니다. 믿고 나서도 원래대로 돌아가려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은 어떠한 보상을 세상적인 것들로 오해합니다. 물질로 오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다는 게 무엇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구원을 얻지 못한 모습은 죄와 사망을 거부할 수 없고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와 사망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거부하려 하고, 죄를 멀리하려 합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보상입니다.
죄가 만연한 세상에서 우리는 죄에 물들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죄가 우리를 속이는 것을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은 물질에 있다고 하고, 우리의 행복은 이 세상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고 보니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그분을 알려주시고, 세상을 다시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과 영광은 거룩함에 있습니다. 세상과는 구별된 하나님 아버지를 닮는 것에 있습니다. 그분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치이며 복입니다.
2. 베드로의 실패와 십자가의 필수성 (마 16장)
2. 베드로의 실패와 십자가의 필수성 (마 16장)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가 실패한 것이 무엇입니까? 위대한 고백을 해놓고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합니다. 그분이 왜 오셨는지,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몰라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 놓치는 겁니다. 십자가를 고백했으니 이제 세상 앞에 보상해 달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게 해 달라는 겁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십자가 없이는 복도 보람도 자랑도 영광도 영생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시면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겁니다. 생명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가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현대 기독교, 즉 우리의 병은 자기가 고백한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그 말에 담긴 내용을 모릅니다. 이것은 마치 눈썰매장에 수영복을 입고 간 것이며, 수영장에 등산복을 입고 간 것이고, 노래방에 턱시도를 입고 간 것과 같습니다.
✨ 결론: 신비의 깨달음과 증인된 삶
✨ 결론: 신비의 깨달음과 증인된 삶
1. 우리가 죽었기에 신비인 구원
1. 우리가 죽었기에 신비인 구원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 된 것이 왜 비밀입니까? 우리가 죽었기 때문에 신비인 겁니다.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하나님을 떠나 있었기에 구원의 필요성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5~6절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졌듯이, 우리도 그냥 비추이는 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우리를 재창조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 우리가 종노릇 하노라. 예수가 누구인지 증거하러 다니노라. 그리고 그것만을 우리 삶의 내용으로 삼노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영혼이 깨어나야 하는 일... 그러나 사람이 드러나면 그 사람을 바라보거나 그 사람의 영광을 빼앗으려 들겁니다. 자신의 영혼이 깨어나 거듭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겁니다.
2. 십자가가 나타내는 권세와 영광
2. 십자가가 나타내는 권세와 영광
예수님이 나타내신 권세와 영광은 십자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잃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함과 생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