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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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빌립보서 4:10-13 (고린도후서 6:1-10, 빌립보서 3:17 참고)

🌟 서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의 오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 말씀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어려울 때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못 할 게 무엇입니까?!"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바울이 지금 어떤 처지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빌립보 교회 안의 어려움에 대하여 도움을 줄 수도 없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상황과 바울의 고백이 맞지가 않습니다. 단순히 주님이 내게 능력 주시니 주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내가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잘된다'라는 식의 말과 생각에 속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큰 권세를 가져야 하는 것처럼,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 잘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들 가운데 우리는 나의 욕심과 나의 야망, 나의 바람들을 신앙과 연결시킵니다. 이 말씀을 나의 비전, 야망, 꿈, 필요 등으로 연결해 버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내용과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놓치고 막연한 믿음과 자신감만 갖고 있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바를 우리는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 본론 1: 자족과 순종으로서의 능력

1. 궁핍과 풍부 사이의 항복 (빌 4:11-12)

바울의 고백을 다시 봅시다.
너희가 나를 위해 이것저것 애쓰고 힘써 준 것에 나는 고맙고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궁핍하지는 않다. 어떤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할 수 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
배고픔과 배부름, 궁핍과 풍부, 이 사이에 거리, 그 괴로움이 바울에게는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이러한 거리로 생기는 고통으로 신앙이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어려움과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 기도합니다. "왜 안 들어 주시지? 왜 이러시지? 이건 뭐지? 나한테 왜?"
우리의 신앙은 '주님 내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작정하고 비전을 향해 가려는 의지를 갖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과 신앙은 세상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계획 그 뜻을 발견하며 갈망하며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도 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바라보시고 이끄심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모든 일, 모든 계획, 모든 역사,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그 사랑 등을 맞닥뜨리면서 생기는 순종과 항복입니다.

2. 능력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주님, 내가 이렇게 살기 위해, 주님 내가 비전을 이루고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서 선한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 능력 주세요? 아닙니다. "내가 제 인생을 드립니다. 헌신합니다. 주님 그러니 보응해 주세요. 왜 이러십니까? 보상해 주셔야죠. 나 이렇게 주님 앞에 살아갔는데 주님 이게 뭐예요?"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다짐과 계획으로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예수 안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는 것은 **'예수 안에서'**라는 겁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능력과 내용이 예수님에게만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목적과 방향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 본론 2: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의 실체

1. 고난 속에서 반응하는 모든 일 (고후 6:1-10)

그러면 그 예수님 안에서는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6장 1절부터 10절의 내용을 오늘 본문과 연결해 봅시다. 빌립보서 4장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방금 읽은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모든 일 가운데 반응하는 것, 행동하는 것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과 공갈과 위협 속에서 고린도후서 6장이 열거한 것처럼, 환난, 궁핍, 고난, 매 맞음, 갇힘, 난동, 수고, 금식, 더러움, 지식, 오래 참음, 자비, 성령의 감화, 거짓 없는 사랑... 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바울이 말하는 모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견디며 행하는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살아내는 능력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는 십자가 안에서임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오신 겁니다. 그가 얼마나 초라했는지, 그 고통과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모든 것을 견디고 행하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셨습니까? 고린도후서 6장 6절에서 9절에 나온 내용 이상을 하신 겁니다.
빌립보서 3장 1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1장 24절에서 27절의 내용을 본받으라는 겁니다. 바울은 현실을 도피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끝까지 걸어왔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본받으라는 겁니다. 십자가를 살아내는 겁니다.
쓸모 있게 되는 것, 하나님의 큰일에 중심이 되는 것, 비전을 갖고 성취하는 것에 관심이 있고, 이러한 고난 속에 그리스도의 방법, 십자가를 살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오해하고 있거나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신앙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나의 쓸모를 확인하고 나의 비전의 크기를 비교하고 하는 것은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이나 교회 안에서 확인을 받는 것을 신앙으로 오해하는 겁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들, 말씀으로 읽었던 사도 바울의 모습이 신앙입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십자가를 똑바로 응시하는 겁니다. 십자가가 무엇인지 대면하는 겁니다. 나의 진심, 열정이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수를 아는 것이 신앙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결론: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남

우리의 판단으로는 지금 나의 상황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고 만들어낼 수 없을 것 같아도, 죽음으로 승리를 만들어내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죽음이 생명이 된 겁니다. 부활이라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순수한, 올바른, 좋은 생각이라도 나의 결심과 결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내가 유익한 결과를 낼 수 있어"라고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바울은 지금 이러한 우리의 잘못된 신앙을 꼬집고 있습니다.
"나도 저런 환경에서, 나도 저런 부모 밑에서, 나도 저 나라에서 있었다면 더 멋지게 하나님나라를 위해 쓰임받을 수 있었는데. 저 사람은 저래서 저렇게 된 거고"라는 것으로 나의 책임을 피하지 마십시오. 내가 걸어가야 하는 곳은 저 사람처럼이 아니라, 누구처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채워가고 있는가, 자라나고 있는가를 보셔야 합니다.
십자가를 짊어졌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궁핍과 풍부와 고난과 평안과 상관없이 나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가입니다. 내게 모든 것이 주어지면 우리는 바보가 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1장 1절~2절처럼, 예수님이 아니면 그리스도 아니면 우리의 신앙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부르셨고 그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실패와 미련함과 오만함, 무지함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게 우리입니다. 예수님 없이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자가로 시작된 겁니다.
고린도후서 6장 12절~13절의 말씀은 나는 너희를 예수 안에서, 그 사랑 안에서 존귀한 자로 본다. 너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아들이며 예수님의 신부이다.
이것으로 설교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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