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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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헤세드의(선을 넘는 사랑) 사랑을 시작할 때 하나님은 배후에서 일하신다. 선을 넘는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선을 넘는 사랑을 누리게 하신다.
우리가 헤세드의(선을 넘는 사랑) 사랑을 시작할 때 하나님은 배후에서 일하신다. 선을 넘는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선을 넘는 사랑을 누리게 하신다.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세상이 말하는 감정적이고 도파민이 터져나오는 사랑과 다릅니다. C.S 루이스가 말한 것처럼 의지적인 행동에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은 상대의 반응과 무관하게 나타나죠. 나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해도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상대와 다투거나 무시당하거나 외면당할지라도 침묵으로 복수하거나 애정을 거두지 않는 것, 불공평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저는 선을 넘는 사랑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정도 관계에서는 이정도까지 사랑할 것을 기대합니다. 선이 있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의 사랑은 그런 선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사랑에 충만할 때 대게 사랑하려고 합니다. 선을 넘는 사랑을 행하죠. 그리고 우리는 곧 실망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행한만큼 사랑이 돌아오나요? 그럴리가요.
사랑해도 아무런 보답이 없을 때 우리는 어디서 사랑할 힘을 얻게 될까요? 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그것은 희망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안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희망. 그분이 배후에서 일하신다는 희망이 우리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저는 오늘 룻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선을 넘는 사랑을 행할 때 배후에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일하심은 선을 넘는 사랑을 행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또한 선을 넘는 사랑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몇가지 적용을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제 설교 진행이 본문의 이야기를 설명해드리고 마지막에 몇가지 결론을 정리해주잖아요? 그러니 중간에 노트안적으셔도 돼요. 다 정리해주니까. 편하게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들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지금 너무 공격적이게 무서워요. 표정도 푸시고 안웃겨도 많이 웃어주세요. 그래야 제가 긴장이 풀려요.
본문으로 들어가기전 룻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듭니다. 베들레헴은 직역하면 빵집이라는 뜻인데, 빵집에 빵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은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사갑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서 벗어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땅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잖아요. 따라서 땅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다는 것은 곧 그들의 믿음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압으로 간 이들은 잘 살았을까요? 어느정도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십년의 시간동안 남편은 죽었구요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살기 위해 모압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먹었지만 죽었습니다.
결국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여자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이야기는 약 3100년 전, 역시가들이 말하는 철기 시대였다구요. 여자들은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즉, 남편과 아들이 죽었다는 것은 곧 먹고 살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막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말하죠. 얘야 너희는 아직 젊으니 여기 남으라. 여기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거라. 나를 따라온다고해도 너희에게 남는 것은 하나도 없어. 이 이야기를 들은 오르바는 떠나구요. 룻은 어머니와 함께 떠나기로 합니다.
그래서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1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어떻게 될까요? 고향, 친척, 친구, 문화 모든 것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따라간 룻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본문의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새번역으로 같이 보겠습니다. 1:22절을 제가 읽어드릴게요.
22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여인인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는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22절 문장의 뉘앙스는 마침, 우연히 그들이 보리를 추수할 때 베들레헴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사람들은 우연을 믿지 않았고 제비조차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22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뭔가 희망이 싹트는 순간이죠.
그리고 저자는 자연스럽게, 마치 꼬꼬무 이야기처럼 그런데 그곳에는 보아스라는 엘리멜렉의 친족이 있었대~라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죠.
2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2 어느 날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밭에 나가 볼까 합니다. 혹시 나에게 잘 대하여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진 이삭을 주울까 합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그래, 나가 보아라.”
먼저 이스라엘의 제도를 이해해야 하는데요. 모세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확할 때 좀 남겨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최소한 굶어죽는 사람은 없도록 한 복지제도였죠.
룻은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이삭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이삭을 주우러 나가지 않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나오미의 말에 집중하죠. 이들은 나오미가 완전한 절망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너무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으면 밥도 안먹잖아요. 나오미는 지금 남편과 아들을 다 잃은 큰 충격에 빠져 절망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룻은 그런 나오미를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이삭을 주우러 나가기로 한 것이죠. 이 장면을 두고 『사랑하다, 살아가다』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룻이 일방적 사랑을 베푼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한 번은 룻이 곁에 남겠다고 헌신했는데도 나오미가 감사하지 않았을 때였고, 또 한 번은 나오미가 성문에서 룻을 무시했을 때였다. 그리고 지금이다.”
앞서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룻은 나오미에게 선을 넘는 사랑을 계속해서 실천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오미는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룻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어머니를 택하여 가겠다고 할 때에도 룻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도착한 나오미는 성문앞에서 “나를 괴로움이라고 불러라. 하나님이 나를 괴롭게 하셨다. 내가 가득찬 채로 이곳을 떠났는데 하나님은 나를 텅 비어서 돌아오게 하셨다”라고 절규합니다. 근데 생각해봅시다. 곁에 룻이 있었다구요. 나오미의 말을 들은 룻 입장은 어떨까요? 나오미가 나는 아무것도 없어요. 하는데 그럼 룻 입장에서 그럼 나는 뭐야. 나는 뭐 공기인가?
그리고 절망에 빠진 지금이죠. 그래 가던지 말던지.
그러나 룻은 한순간도 사랑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온종일 손익을 따져가며 나오미에게 그렇게까지 한 게 억울하다고 투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도 룻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먹으려는 의지도 없는 깊은 절망에 빠진 그녀를 위해 나서는 것이죠.
누구의 밭으로 가야할까. 고민하며 성문을 나서던 룻의 눈에 널따랗게 펼쳐진 밭이 보였고 룻은 그곳으로 갑니다. 누구의 밭이였을까요?
3 그리하여 룻은 밭으로 나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그가 간 곳은 우연히도, 엘리멜렉과 집안간인 보아스의 밭이었다.
4 그 때에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 성읍에서 왔다. 그는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 하시기를 비네” 하면서, 곡식을 거두고 있는 일꾼들을 격려하였다. 그들도 보아스에게 “주님께서 주인 어른께 복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고 인사하였다.
3절과 4절에는 우연히도와 마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룻은 운좋게도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들어갔는데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보아스도 그 밭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배후에서 일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필연이 나타나는 것이죠. 보아스는 아마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농장과 땅을 소유하고 있을 지라도 늘 농장과 땅에 가지는 않을 겁니다. 마치 대기업 사장님이 늘 출근하는 건 아니잖아요. 출근한다고해도 늘 방에 없잖아요. 사장님이 회사에 출근해서 회사 일을 하는게 아니라 사업 따내로 다녀야죠.
보아스는 아무 때나 밭에 있지 않았다구요.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갔는데 마침 우연히도 보아스도 그 밭에 있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선을 넘는 사랑을 행할 때 하나님이 배후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만나게 하시죠.
5절입니다.
5 보아스가 일꾼들을 감독하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저 젊은 여인은 뉘 집 아낙인가?”
6 일꾼들을 감독하는 젊은이가 대답하였다. “저 젊은 여인은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사람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봅니다. 그리고 어느 집안의 사람이냐 묻습니다. 이에 대해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히브리어 교수 리비 그로브즈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이것은 당시 사회에서 굉장한 위험적인 요소다. 룻 옆에 남자가 있다면 그녀의 지위가 무엇인지, 가정의 아내로서 정숙한 여자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다른 사람은 누구든지 그녀를 그렇게 대해야 했다. 그러나 옆에 남자가 없다면 그녀는 정숙한 여자가 아니라는 뜻이며 그녀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었다. 남자가 함께 있다는 것은 그녀를 보호자 없이 내보내지 않을 만큼 집안에서 신경을 쓴다는 신호였다. 그녀를 건드리는 사람은 그 집안에서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인 여자는 보호해 줄 집안이 없거나 집안에서 신경을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따라서 그녀를 욕보여도 아마 무사했을 것이다.”
룻은 남자의 보호자가 없어 성적으로 취약했고, 돈이 없어 재정적으로 궁핍했으며, 친구가 없어 외로웠고, 나라가 없어 차별당하기 쉬웠습니다. 릇은 보호자나 남편이나 소속 지파나 집안이 없었죠. 만약 불량배를 만나게 되어 봉변을 당하거나 범죄를 당한다면 (이때가 사사시대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사기를 읽으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룻은 그냥 재수가 없는 날인거에요. 법적인 보호나 혹은 보상을 받을 수가 없는 상태예요.
사전 조사를 마친 보아스는 이제 널따란 바에서 룻에게 직접 다가갑니다.
8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였다. “여보시오, 새댁,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이삭을 주우려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마시오. 여기를 떠나지 말고, 우리 밭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바싹 따라다니도록 하시오.
9 우리 일꾼들이 곡식을 거두는 밭에서 눈길을 돌리지 말고, 여자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줍도록 하시오. 젊은 남자 일꾼들에게는 댁을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겠소. 목이 마르거든 주저하지 말고 물단지에 가서, 젊은 남자 일꾼들이 길어다가 둔 물을 마시도록 하시오.”
우리가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친구가 야~ 내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라고 한다고 해서 정말 내집처럼 옷 소파에다가 그대로 다 벗어던져놓고 냉장고 문 열어서 음료수 꺼내먹고 안방 침대에가서 누워요. 그럴 수 있나요? 사실 밭 농장의 주인이 편하게 지내요 라고 한다고 해서 룻이 편하게 지낼 수 있어요? 처음 온 곳, 처음 만나는 사람들 얼마나 눈치보겠어요. 긴가민가 해도되나? 안되나?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그런데 보아스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도록 굉장히 구체적으로 명령합니다. 명령을 다시 한번 봐볼까요.
1.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라.
2. 여기서 떠나지 말라.
룻은 고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얻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내일은 또 어디서 일하지? 내일도 먹을만큼 벌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털어놓게 됩니다. 우리는 알잖아요. 일용직, 계약직이랑 정직원의 차이를요.
3.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보아스는 룻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한거죠. “내 밭에 있는 한 아무런 피해도 없을 것이다. 남자를 피해 여자들과 함께 있어.”
4. 그들이 베는 밭을 보라.
5. 그들을 따르라.
6. 내가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일꾼들에게도 확고한 입장을 정리했어요. 룻은 우리편이다. 우리 공동체다. 건들지 말라. 만약 룻을 건들인다면 그것은 곧 나를 건들이는 것과 똑같이 여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악을 눈감아 주는 사람이 아니다.
7. 목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마시라.
뿐만 아니라 보아스는 점심시간에 룻이 함께 그리고 배불리 먹도록 합니다. 겸상을 하는 거죠. 제가 주석을 보는데, 당시 이스라엘에는 16개의 신분제로 나눠져 있었다고 합니다. 보아스의 지위가 4번째인 씨족의 우두머리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룻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16번째 가장 낮은 이방인 여자에 해당했습니다. 그니까 이 둘의 신분차이를 본다면 겸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선을 넘는 행동인 것이죠.
그리고 보아스는 다시 일을 하러 가는 종에게 조용히 속삭입니다. 곡식을 베다가 어어어 어이쿠. 손이 미끌려버려 떨어뜨려버렸잖아. 이거 참.. 어쩔 수가 없네. 하고 곡식 다발을 땅에 뿌리라고 합니다. 엄청난 츤데레 아닙니까?
룻은 베들레헴에 들어설 때도 두려웠고 혼자 과감히 밭으로 나갈 때도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을 넘는 사랑의 대가가 느껴지는 것이죠.
13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여기서 룻이 말하는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의 원문을 직역하면 가슴에 대고 말씀하셨다는 말이에요. 사실 룻도 자신의 남편을 잃었어요. 나오미만 남편과 아들을 잃은 절망에 빠진게 아니에요. 룻도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경험했다구요. 그런 그녀의 마음에 닿는 사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룻이 나오미를 향해 선을 넘는 사랑을 베풀었을 때, 그리고 3번이나 차갑게 무시당하고 무반응으로 다가왔을 때 그녀의 행동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11-12절 말씀을 볼까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우리가 선을 넘는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차갑게 외면 당하고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외로움을 느낄 때. 우리가 행하는 그 모든 일들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보아스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행한 모든 일에 보답해주시기를 원할 것입니다. 온전한 상을 주시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룻은 그 보답을 온전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적용입니다. 여러분, 이 적용이 오늘 여러분의 기도제목이 되면 좋겠습니다.
첫째, 선을 넘는 사랑을 행하십시오. 요한일서 4:7-12 함께 읽겠습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우리가 선을 넘는 사랑을 행할 때, 다시말하면 상대의 반응과 무관한 사랑을 행할 때, 상대가 무시하고 외면해도 나의 애정을 거두지 않을 때, 불공평한 사랑을 행할 때 12절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이 온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여러분, 지지 마십쇼. 사랑을 베푸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십시오.
두번째,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룻의 사랑은 주변 사람들이 보았으며 심지어 보아스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하나님도 보고 계셨죠.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룻에게 응당한 보답이. 온전한 상이 돌아가기를 누구보다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분은요. 사랑이 짓밟히는 것을. 그것도 자신에게 행한 사랑이 짓밟히는 것을 하나님은 가만히 보고 계실 수가 없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을 넘는 사랑 그 자체시니까요. 만약 우리가 사랑을 행하고도 보답을 받지 못한다면 오히려 하나님께 하나씩 사랑의 빚을 지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고아와 가난한 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을 행할 때 인내하십시오. 견디십시오. 오히려 하나님께 빚을 지운 거라고 기뻐하십시오. 야 해도 소용없더라. 라고 낙담하지 말고 또 사랑하십쇼. 사랑은 오래참음입니다.
우리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