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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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5:12-21
롬 5:12-21
찬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오늘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참 신기한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 대부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삶을 돌아보면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평생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스승의 한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어떤 한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절망의 문턱에서 사람을 다시 살려내기도 합니다.
또 반대로,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거나, 큰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지만, 사실 우리의 삶을 바꿔놓는 것은 언제나 ‘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선함이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한 사람의 기도가 가정을 붙들고,
한 사람의 믿음이 교회를 세우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단지 우리의 개인적인 인생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운명 자체가 ‘한 사람’으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죄가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왔는지,
죽음은 왜 우리를 떠나지 않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
성경은 이 모든 이야기를 아주 간단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본문은 우리에게 두 사람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 때문에 사망이 들어왔고,
또 한 사람 때문에 생명이 흘러들어온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도대체 이 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한 사람의 선택과 순종이 어떻게 이렇게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많은 사람’을 먼저 찾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단 한 사람,
그분의 뜻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이 질문을 품고 말씀으로 들어가 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나를 어떤 한 사람으로 부르고 계실까?”
이 마음으로 로마서 5장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앞부분에서 인류 전체가 죄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도덕적으로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모두 “죄 아래 있다”(3:9)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가져옵니다.
“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는가? 그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성경은 죄를 단순한 실수나 약함으로 보지 않습니다.
죄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인류 전체가 하나님과 단절되며 시작된 거대한 사건입니다.
그 한 사람의 선택이, 그 한 사람의 타락이,
모든 사람을 죄와 사망 아래 두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2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죄가 들어오자 사망이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왕처럼 군림했습니다.
14절을 보면 아담 이후 사람들은 아담처럼 율법을 어기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죽음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아담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단지 첫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류의 대표였습니다.
대표가 무너지자, 그 아래 있는 모든 사람도 함께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실체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아담 안에 속해 있는 죄와 사망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이라는거에요.
우리는 때로 현재 눈에 보이는 행동을 가지고 사람들을 평가합니다. 나 자신을 평가합니다.
나름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하지요.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야,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더 깊은 진단을 내려줍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 아래에서 태어난 존재다.”
이 고백이 있어야 은혜가 깊어집니다.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죄의 문제를 정확히 보아야, 은혜의 깊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얼마나 깊고 넓게 흘러왔는지를 보아야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더 크고 더 강하게 흘러오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담 아래에서 태어난 죄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앞에서 겸손하며 죄에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새벽, 아담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죄의 무게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겸손히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오늘 말씀은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이 인류 전체를 죄와 사망 아래 두었다고 말한 후, 곧바로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앞에 세우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지 “한 사람 대 한 사람”이라는 숫자의 비교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핵심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에 있습니다.
15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둘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영향이지만, 아담의 죄와 그리스도의 은혜는 결코 같은 무게가 아닙니다.
죄는 한 번의 불순종이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는 한 번의 순종을 넘어
그분의 전 생애와 십자가에서 드러난 완전한 순종과 희생입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점은 단 하나입니다.
죄가 깊지만, 은혜는 더 깊다.
죄가 넓지만, 은혜는 더 넓다.
죄가 강하지만, 은혜는 더욱 더 강하다.
그래서 바울은 15절 후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그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 넘쳤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두 단어를 반복합니다.
“더욱”, “넘쳤다”
이것이 복음의 정수입니다.
우리는 종종 죄의 무게가 너무 커보여서,
내 과거가 너무 어두워서,
또 내 상처가 너무 오래되어서,
“나는 은혜를 누리기엔 너무 늦은 사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느니라”(20절)
우리의 죄의 크기보다,
상처의 깊이보다,
실패의 횟수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크고,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바울은 단지 죄에서 벗어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통치 아래로 옮겨졌다고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는 사망이 왕 노릇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은혜가 왕 노릇합니다.
은혜가 나를 다스리고,
은혜가 내 삶을 이끌고,
은혜가 내 실패를 넘어 다시 일으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은혜 안에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넘어,
하루하루 “은혜가 나를 다스리게 두는 삶”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 우리의 마음에 이러한 마음이 있었으면 합니다.
죄보다 은혜가 더 큽니다.
상처보다 은혜가 더 세며,
넘어진 자리보다 은혜가 더 깊습니다.
나는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흘러온 이 넘치는 은혜를 기대하며
오늘을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와 사망의 역사를 보여준 후,
이제 그 모든 흐름을 완전히 되돌려 놓으신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눈앞에 다시 세워줍니다.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19절에서 바울은 결정적인 선언을 합니다.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여러분,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대조가 아닙니다.
‘죄의 역사’와 ‘은혜의 역사’가 각각 ‘한 사람’을 통해 흘러갔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한 사람을 통해 흘러 들어왔고,
구원도 한 사람을 통해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 말은 결국 이렇게도 들립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그리스도께서 그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순종, 그분의 눈물, 그분의 십자가, 그분의 사랑이 우리 모두를 살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우리도 이제 그리스도처럼 이 땅에 보내진 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날도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의 숫자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신실한 한 사람을 원하십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세상 속에서도 이러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한 사람은 거창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맡기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그분의 향기를 내는 한 사람이면 됩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듯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전해지는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근본이 죄 아래 있는 존재임을 다시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우리도 그 죄의 영향 아래 태어난 연약한 존재임을 겸손히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
죄보다 크고, 사망보다 강한 은혜가 우리에게 흘러왔음을 믿습니다.
넘어진 자리에서도 다시 일으키시는 은혜,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은혜를 오늘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제 우리도 그리스도를 닮아
이 땅에서 ‘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가정에서 한 사람의 기도,
교회에서 한 사람의 충성,
일터에서 한 사람의 정직과 사랑이 되게 하옵소서.
작은 순종 하나가 누군가에게 생명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이 새벽에 주 앞에 나아온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고,
오늘 하루도 은혜가 우리 삶을 다스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걸음과 생각과 말을 인도해 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