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새벽_예레미야서 1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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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도입 
제가 20대 초반일 때, “삐삐”가 유행을 했습니다. “삐삐”가 울리면 가까운 공중전화에 가서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 때는 공중전화 부스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곤 했습니다.
자신의 “삐삐”에 인사말을 녹음해 둘 수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멘트, 음악, 효과음 등을 녹음할 수 있었는데, 저는 카세트로 음악을 깔아놓고 제 목소리를 입히는 식으로 인사말을 녹음했습니다. 
제 "삐삐"의 인사말을 듣고 자기 것도 녹음해 달라며 교회 친구나 동생들이 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녹음 한 번 해 주고, 밥 한 번 얻어 먹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삐삐”가 유행일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걸어다니면서 전화를 하는 날도 오겠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티폰이 나왔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휴대폰이 나왔습니다. 
문명의 발달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아이폰이나 갤럭시폰 등 스마트폰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전화통화 뿐만 아니라, 궁금한 것을 실시간으로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폰이 미국에서 출시된 게 2007년이고, 우리나라에 보급 되기 시작한 게 2009년입니다. 20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편리하게 소통하고,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대는 소통이 잘 안 되고, 거짓 정보가 가득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전화로 말하는 것은 불완전합니다. 그런데 전화로 통화하는 것에 비해, 문자를 주고 받는 것은 더욱 더 불완전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메시지를 해석합니다. 결과적으로 너무 많은 오해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성경이 그렇습니다. 성경은 말하는 사람의 몸짓과 음성을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그저 글자로 적혀있는 것을 읽고, 그 내용을 판단해야 합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데 큰 장애물은 언어의 장벽입니다. 성경은 구약은 아람어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알게 모르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멘", "샬롬"은 히브리어이고, "로고스", "카리스"는 헬라어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읽고 해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시간도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읽지만, 아무리 잘 된 번역이라고 해도 원래의 느낌과 의미를 100% 전달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원문에 맞게 이해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번역본을 함께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개역개정 옆에 새번역이나 쉬운성경을 놓고 읽으면, 본문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10절은 예레미야의 탄식을 소개합니다. 10절을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아! 어머니 원통합니다.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세상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을 진 일도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저주합니다.”
예레미야는 조국의 멸망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 자체로도 힘든 일이었는데, 아무도 그 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다 예레미야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의 입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습니다. 
11절은 예레미야의 탄식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여호수아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예레미야를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예레미야가 복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욥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자들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제발 자신들을 용서하고 복을 빌어달라고 애원하게 하실 것입니다. 
11절에서 바로 20절로 넘어가면 문맥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그 사이에 있는 12절부터 19절까지는, 하나님이 남유다에게 주시는 말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 그리고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말씀이 나오는데, 문맥이 자연스럽지 않고 뒤섞인 느낌을 줍니다. 
예레미야서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 복잡해 보이는 본문의 내용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3.
이스라엘은 언제부터 우상숭배를 시작했을까요? 
개인의 일탈이나 무지에서 온 실수말고, 국가적으로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요? 
네. 솔로몬 시대부터입니다.
지금부터 구약의 중요한 연대를 말씀드릴텐데, 끝자리 수는 반올림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솔로몬은 주전 970년부터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그토록 소원했던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성전을 완공하고 봉헌한 것이 960년입니다. 성전을 봉헌하면서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솔로몬의 우상숭배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일천번제를 드리며 성전봉헌식을 거행했던 솔로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전 맞은 편에 우상의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들에 산당을 지어놓았습니다.  
솔로몬에게는 천 명이 넘는 아내가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 이방 나라와의 정치적 야합을 위한 정략결혼의 결과였습니다. 자신이 누리는 부와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솔로몬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 나라와 결탁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방 나라의 공주들이 솔로몬의 아내가 되면서,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이스라엘에 끌어들였습니다.
그 후 솔로몬은 죽었지만, 우상들은 남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으로부터 시작된 우상숭배를 즐겼습니다. 그렇게 우상에 빠진 이스라엘은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산당을 헐지는 못했습니다. 
산당을 중심으로 한 종교세력은 이미 이스라엘의 기득권이었고, 산당을 허는 행위를 백성들의 제사를 가로막는 행위인 것처럼 호도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 이후 10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요시야가 히스기야보다 더 강력하게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번에는 산당도 헐었습니다. 어지간하면 이스라엘이 우상을 내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법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맛본 우상숭배의 늪에서 이스라엘은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했을 때가 바로 요시야의 개혁 시기와 맞물립니다. 한편에서는 예레미야가 회개의 말씀을 선포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요시야가 산당을 허는 등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영적인 개혁과 현실적인 개혁이 동시에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남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로부터 400년이 지나도록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은 회개를 선포하는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심판 계획을 접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를 협박했고, 실제로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4.
잠시 후면, 청동과 철로 무장한 이방인들이 쳐들어 올 것입니다. 남유다 구석구석이 이방인들에 의해 탈탈 털리게 될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쌓아놓은 재산과 보물은 삽시간에 이방인의 손에 넘어갈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우상의 본거지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애굽으로, 그리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방 땅으로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애굽으로 간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지역에서 "하늘의 여왕"을 섬겼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정신 못차린 남유다 백성들은 애굽에 가서도 우상숭배를 끊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를 읽다보면, 하나님은 "심판과 진노의 하나님"이라는 오해가 쌓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피도 눈물도 없는 분이야”, “하나님은 조금만 실수해도 절대 용서하지 않는 분이야”, “하나님에게 용서를 기대하면 안 돼. 죄를 지으면 반드시 심판하는 분이야”
그런가요? / 아니죠!!
하나님이 모질게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질기게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던 거죠. 하나님은 400년을 참고 기다리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심판을 지연하고, 또 지연하며 기다리셨지만, 이스라엘은 아예 하나님께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에게 또 다시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전쟁으로 도시가 페허가 되고, 포로가 되어 이방 땅에서 노예로 살겠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킬 계획을 이미 세워두셨습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5.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이 급변하는 것은 한편으로 우리를 편리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시선을 빼앗기게 합니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게 합니다. 
우상숭배는 자기 사랑의 열매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깊어지면, 하나님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우리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한, 우리도 세상에 적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둘로 나뉘지 않은 충성심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어진 우리의 삶을,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모습으로 채워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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