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8-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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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분명한 소리
제목: 분명한 소리
본문: 고린도전서 14장 8-12절
본문: 고린도전서 14장 8-12절
찬송: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ㄹ
찬송: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ㄹ
오늘은 고린도전서 14장 8-12절 말씀을 가지고 '분명한 소리'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바울은 나팔과 언어의 비유를 통해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친다. 핵심은 한 가지다.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8-9절은 '분명한 소리를 내라'를 말한다
8-9절은 '분명한 소리를 내라'를 말한다
8절은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라고 말씀한다. 당시 전쟁터에서 나팔은 생명을 좌우하는 신호였다. 진격할 때의 소리, 후퇴할 때의 소리, 집합할 때의 소리가 각각 달랐다. 만약 나팔수가 불분명한 소리를 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병사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혼란 속에서 전투는 패배로 끝날 것이다.
바울은 이 비유를 통해 고린도 교회에 경고한다. 공동 예배에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만 계속한다면, 그것은 불분명한 나팔 소리와 같다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교회에 유익이 없다.
9절은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알아듣기 쉬운 말, 이것이 핵심이다. 허공에다 말한다는 것은 아무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말은 했지만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 말은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많은 신앙 용어를 익혔다. 은혜, 축복, 영광, 감사,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말들이 새신자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릴지를 생각해야 한다.(사역이란 단어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던 일화) 때로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말해야 한다. 쉬운 말로, 따뜻한 말로,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신앙을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분명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10-11절은 '모든 소리에는 뜻이 있다'를 말한다
10-11절은 '모든 소리에는 뜻이 있다'를 말한다
10절은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라고 말씀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가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각 나라마다 고유한 언어가 있다. 그 언어들은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 뜻 없이 소리만 내는 언어는 없다. 모든 언어는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11절은 그 의미를 모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야만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야만인)이 되리니." 외국인(야만인)이 된다는 표현이 강렬하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일 뿐이다.
고린도 교회가 바로 그런 상태였다. 방언하는 사람들과 듣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없었다. 같은 예배당에 모였지만 서로가 외국인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바울이 염려한 문제였다. 교회는 하나의 몸인데, 지체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면 그 몸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외국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말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말의 목적은 자기 만족이 아니라 소통이다. 내가 은혜받은 것을 나누되, 듣는 이가 이해할 수 있게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진다. 우리의 모든 말에는 분명한 뜻이 있어야 하고, 그 뜻이 상대방에게 정확히 전달되어야 한다.
12절은 '교회의 덕을 세우라'를 말한다
12절은 '교회의 덕을 세우라'를 말한다
12절은 결론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바울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권장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라는 목적이다.
이 말씀은 지난 본문(1-7절)과 완전히 연결된다. 거기서도 핵심은 "교회의 덕을 세움"이었다. 오늘 본문은 그 원리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분명한 소리를 내라.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라. 소통이 되게 하라. 이 모든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방법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무엇을 하든지 이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가.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가. 이것이 공동체를 성장시키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영적으로 보여도 의미가 없다. 아무리 열심이어도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헛수고다.
새벽마다 이 자리에 나오는 우리의 헌신은 귀하다. 그런데 그 헌신이 교회를 세우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예배 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삶 속에서 이해하기 쉬운 모습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교회는 든든히 세워진다.
바울은 나팔과 언어의 비유를 통해 분명한 원칙을 제시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불분명한 나팔 소리는 혼란을 가져온다. 뜻을 알 수 없는 말은 허공에 울릴 뿐이다. 소통이 안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외국인이 된다.
교회는 소통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분명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세워진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되, 그 목적은 언제나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있어야 한다.
분명한 소리를 내며 교회를 세우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분명한 소리를 내어 교회를 세우라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오늘 결단합니다. 더 이상 허공에 말하지 않겠습니다. 알아듣기 쉬운 말로, 인자한 말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신앙을 나누겠습니다. 신앙 용어에 갇히지 않고, 듣는 이의 눈높이에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오늘 결단합니다. 서로에게 외국인이 되지 않겠습니다. 불분명한 나팔 소리가 아니라, 분명한 소리를 내어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나의 은혜 체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에게 유익이 되는 말을 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오늘 결단합니다. 모든 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향하게 하겠습니다. 나의 만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장을 추구하겠습니다. 영적인 것을 사모하되, 그 목적을 교회를 세우는 데 두겠습니다. 주님, 이 결단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소서. 연약한 우리를 붙드시고 힘 주소서. 오늘 하루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에 주님의 평강이 가득하게 하시고, 건강을 지켜주시며, 생업의 현장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각자의 필요와 간구를 주님께서 아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