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2) 3~4장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8 views
Notes
Transcript
20211027(수) 20251119(수)
제 3 장
1~14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호소하다
15~22 율법과 약속
23~29 하나님의 아들
1~2장이 바울의 자서전적 진술이라면, 3~5장은 신학적, 성경적, 논리적 논증이다. 성경(구약)에 근거한 신학적 논증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회복하라는 실천적 권고를 위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바울의 권면을 더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한다.
1~5절. 갈라디아 성도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바울
○ 어리석도다 : 원문에는 감탄사 ‘오’가 처음에 나온다. “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감탄사를 넣어 읽으면, 바울의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 눈으로 밝히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눈으로 보았다는 말인데, 좀 이상하다. 바울이나 갈라디아 성도들은 문자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 적이 없다. 바울이 이들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전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말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눈으로 밝히 보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하게 들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이들은 바울의 전한 메시지를 들었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의 복음 전파는 단지 말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삶으로 복음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하였음을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7~19)
○ 그래서 바울은 서신에서 여러 차례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 4:9),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 1:5~6)
○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과 그가 삶으로 드러낸 복음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잘 달려오고 있었다.
○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들이 참으로 어리석게도 악한 자의 꾀임에 빠졌다. “꾀다”는 동사는 “사악한 눈길을 주다”는 의미로 마술적이고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마녀가 악한 눈빛으로 주술을 걸어서 현혹하여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다. 그들이 복음에 대해서 듣고 본 바를 제대로 볼 수 없도록 현혹한 것이다. 눈에 뭐가 씌인 것이다. 지금 갈라디아 성도들이 하고 있는 일, 즉 율법의 행위들로 돌아가려는 일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바울이 안타깝고 답답해서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2~5절에서 바울은 질문을 통해서 어리석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거 하나만 물어봅시다.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인가, 믿음을 통해서인가?” 당연한 것을 묻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냥 질문이 아니라, 수사학적 질문이다.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으라는 말이다. 교리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되새겨보는 것이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율법에 대해서 듣기 전에 먼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믿었으며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다.
○ 여기에서 바울은 매우 중요한 것 하나를 말하고 있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들이 아니라 믿음이 의롭다함을 받는 이유인 것은 우리가 믿음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와 믿음의 대조는 단순한 행위와 믿음의 대조라기 보다는 성령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진정한 통로가 무엇이냐를 묻는 것이다.
○ 이미 2:20에서 이야기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율법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다. 이때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영으로 계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사시는 것이다.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즉 영으로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시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 일이 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은 5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5:5)
○ 성령의 역사와 관계없는 율법의 행위들이 아니라, 성령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따라서 의롭게 되기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이제까지 여러 고난을 견디면서(4절)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이 헛되게 되었다고 한탄한다(3절).
6~9절. 아브라함을 본보기로 삼아 성경적 근거를 내세움
○ 6~9절에서는 바울이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서 구약 성경 창세기 15:6을 인용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조상이다. 그런 아브라함도 율법을 행하는 것을 통해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받았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받아 아브라함은 모든 이방인을 복되게 하는 사명을 받았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수동적 믿음이 아니다. 그는 믿었기에 순종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 관념적이고 수동적인 마음이 아니라, 신뢰하기에 두려움없이 고향을 떠나는 순종, 100세에 얻은 아들을 희생양으로 드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것을 결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믿음이었다. ㅂ울이 여기에서 아브라함을 인용하는 것은 행위의 반대 개념으로 믿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믿음만이 성령과 새로운 삶의 통로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해진 복음은 모든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복음은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지 않고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으로 모든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보여주셨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복음 이전의 복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20211027(수) 갈라디아서 3장
○ 상황
바울에게서 믿음으로 의에 이르게 된다는 복음을 들었던 갈라디아 성도들이 교회 안에 들어온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꾀임에 빠져 믿음의 삶을 버린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며 다시 복음을 전하고 있다.
○ 도전
갈라디아 성도들은 예수를 직접 본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1절)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고 말하기도 한 것을 보면 그는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도 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변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명하게 전하고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기
○ 기도
주님, 내가 말로 전하는 복음이 나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서 상대방의 눈에 밝히 보이기를 원합니다. 십자가 그 사랑이 나의 인격과 삶의 방식이 되게 하소서.
20241016(수) 갈라디아서 3:1~9
○ 상황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버리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의 말에 현혹되어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들을 돌이키려고 한다. 그들의 과거 경험을 상기시키는 수사학적인 질문과 성경적 근거로 아브라함을 제시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움에 대해서 강조한다.
○ 도전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눈으로 확연히 보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말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도 복음을 전한 바울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살아내며 보여주고 있는지 돌아본다.
○ 변화
복음에 합당한 삶(은혜, 사랑, 용서, 용납, 성결, 선함)을 연습하고 훈련하기
복음의 진리를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하기
○ 기도
자꾸만 흔들리는 연약한 우리를 붙잡아 주소서. 우리를 꾀려고 악한 마귀가 속삭이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게 하소서.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성장해야 함을 기억합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영적 습관을 만들어 훈련하여 주님을 더욱 닮아가게 하소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는 바울의 말이 우리의 말이 되게 하소서. 우리 석교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잘 이해하고 선명하게 살아내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20241018(금) 갈라디아서 3:19~29
○ 상황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말하면서도 율법이 가진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을 인정한다. 율법은 죄를 인식하고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의롭다고 하실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율법으로 의롭다 인정받으려는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임을 말한다.
○ 도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의 반응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을 다시 기억해 본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받았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의 감격으로 선하고 거룩한 일을 하며 살아가려는 것이다. 앞뒤가 바뀌지 않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살펴야겠다.
○ 변화
나를 무너뜨리려고 속삭이는 사탄의 참소에 속지 않도록 성령님께 귀를 기울이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욱 신뢰하기
○ 기도
주님,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자격과 공로,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나를 무너뜨리려는 악한 마귀의 속임수임을 깨닫고 물리치게 하소서.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음을 시인하고 고백하고 선포합니다. 은혜 앞에서 겸손히 감사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석교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고 나누고 온 세상에 드러내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20211028(목)
제 4 장
1~7
○ 유업을 이을 자도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없어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지만, 때가 되면 주인이 되는 것처럼,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때 이후로 율법의 종 노릇하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온전히 누리게 되었다. 성령이 우리가 아들되었음을 확증하는 실질적 근거요 표지다.
○ 갈라디아 성도들이 율법 아래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그리스도 사건 이전, 즉 회심 이전으로 돌아가 세상의 초등 원리들 아래에서 종노릇하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20211028(목) 갈라디아서 4장
○ 상황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 할례주의자들이 전한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책망하는 가운데 자신의 사역의 목적을 밝힌다. 그것은 갈라디아 성도들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19절).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다.
○ 도전
나의 사역의 초점이 성도들의 영적 성장에 맞추어져 있어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인지 점검해본다. 또한 나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 변화
일대일 사역을 비롯한 모든 사역에서 양적인 열매(숫자)보다는 질적인 열매(인격과 생활)를 지향하기
○ 기도
주님, 내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점점 이루어지게 하시고 내가 돕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형상이 자라나게 하소서.
20241019(토) 갈라디아서 4:1~7
○ 상황
율법 아래 있을 때는 종의 신분과 같아서 율법에 이끌려 살아가는 인생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제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가서 유업을 이어받을 자녀로 변화하였다.
○ 도전
존재의 변화, 신분의 변화는 그에 걸맞는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야 할 책임과 특권이 동시에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자. 이제 나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이끌려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가는 영광스러운 책임을 수행하는 존귀하고 거룩한 존재다.
○ 변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 특별한 존재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선포하기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도록 살아가기
○ 기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분으로 변화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던 옛 사람의 습관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 자녀답게 거룩한 습관을 형성하며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이 영광스러운 신분을 마음껏 누리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나라의 뜻을 드러내는 거룩한 사명과 책임을 감당하게 하소서. 우리 석교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이을 자의 특권과 책임을 잘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8~20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하다
○ 과거와 현재를 극명하게 대조한다. “그때에는” 그리고 “이제는”
○ 9절, 19절,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계속 성장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절기 준수라는 율법에 매이는 삶을 선택한(10절) 갈라디아 성도들을 책망한다. 달리기의 목적은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까지 도달하여 바라던 상을 얻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은 출발선을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잘 달리다가 갑자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동안의 모든 것을 헛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 우리의 영적 성장의 목표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형체를 갖추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해산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 필요하다. 바울은 그 일을 자처한다. 영적 이끄미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먼저 자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애쓰면서 다른 사람 안에서 동일한 일이 일어나도록 수고하는 사람이다. 생명을 낳는 일이다.
20241021(월) 갈라디아서 4:8~16
○ 상황
과거와 현재를 극명하게 대조하며 왜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그동안의 수고를 헛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된 새로운 존재에 걸맞는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영적 성장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지도자는 본을 보이는 사람이다.
○ 도전
목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온전하게 성장해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말로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드러내는 인생이고 싶다.
○ 변화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탐색하기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기
○ 기도
죄의 사슬에 매여 종 노릇하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자유를 얻고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소서.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행함으로 전하여 본을 본이는 목회자들과 리더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 석교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를 따르라’고 말할 만큼 신뢰가 회복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 12절,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는 표현은 고린도 교회에게 했던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바울의 복음 전도는 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복음이 전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전 9:19~22). 갈라디아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애썼고, 성도들에게 그런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다. 복음 전파는 ‘예수를 본받는 자들을 본받아 예수를 본받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바울의 감정
○ 12절부터, 갈라디아 성도들과 아름다운 기억을 꺼내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
○ 13절 : 육체의 약함으로 복음을 전했다 – 나의 자격이나 조건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에게는 아무런 자격과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갈라디아에 들어와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자꾸만 조건과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어 절기를 지키고 식탁 교제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 17절, 거짓 교사들의 속내는 너희를 이간시키려는 것이다. 그들이 열심을 품고 있지만, 좋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열심을 낸다고 다 좋은 것이냐? 단순히 열심을 낸다고 해서 좋다는 것은 위험하다. 바울은 얼마나 열심인 사람이었는가? 좋은 뜻으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간질시키는, 즉 편을 가르는 열심은 좋지 않다. 바울과 성도 사이를 이간질시킨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할례파와 비할례파의 구분, 배제하려는 마음.
○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 하나됨을 추구하면 안된다. 인종, 성별, 나이 등 그 어떤 것도 하나됨의 근거가 되면 안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된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든 조건을 뛰어 넘어 하나다. 교회 밖에서는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나가 된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
○ 열심을 내면서 자기 편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다른 사람과 자신은 다르다며, 목회자와 자신은 다르다며, 열심을 내는 사람이 교회를 무너뜨린다.
○ 19절, 생명을 잉태하는데 필요한 열심히 필요하다.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서 열심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
20241022(화) 갈라디아서 4:17~20
○ 상황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열심을 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은 의도가 불순하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돕는 것에 열심히 아니라, 자기 편을 만들어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열심이다. 예수의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사람 만들려는 열심이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경고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른 믿음에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고 그 일을 위해 수고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한다.
○ 도전
나의 열심과 노력이 내 편을 만드는 것이 되지 않고 우리 성도들을 예수님 편으로 만드는 것, 예수 그리스의 성품을 닮아가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로 만드는 것임을 기억하고 그 일에 집중하기.
○ 변화
내 안에 내 사람 만들려는 욕망 제어하기, 어느 한 부류의 사람들 편에 서지 않기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나의 영적 성장을 위해 계속 걸어가기
○ 기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꾸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들로 사람들을 묶으려고 시도합니다. 이런 모든 시도는 편을 만들어 당을 짓고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임을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됨을 지키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가족 공동체가 되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며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으로 뭉치려는 모든 시도를 내려놓게 하소서.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기만 한다면 용납하고 환영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21~31 하갈과 사라
○ 사라와 하갈의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고 말한다.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이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을 박해한다는 것은 현재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이다. 여기에 굴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나오는 ‘유업/상속’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다리는 소망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바울은 5장에서 이것을 의의 소망이라고 표현한다.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이다. 이것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을 통해 완성된다.
○ 3~4장의 긴 주석적 논증의 결론은 이것이다. 아브라함 전통 속에서 우리가 읽게 되는 여러 사건들은 율법의 행위들에 의존하여 육체의 한계에 머무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성령으로 태어난 자들이 바로 의의 소망을 유업으로 상속받게 될 것이다. 율법 자체가(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성령이 약속된 의의 소망에 이르는 길임을 천명한다(21절).
○ 사라와 하갈의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고 말한다.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이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을 박해한다는 것은 현재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이다. 여기에 굴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 사라는 잉태하지 못하는데다가 고령이었기에 사라를 통해 아들이 태어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일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가능한 일이다. 믿음으로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갈은 젊은 가임 여성이다.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과 젊은 여종의 노력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려고 했다.
○ 바울은 하갈을 시내산 율법 언약, 지금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해한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며 율법 아래에서 종노릇하던 사람들이다. 하갈, 시내산 율법, 예루살렘 성전, 그리고 갈라디아에서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이 모든 사람들은 율법을 칭의의 수단이자 삶의 중심으로 여기는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다.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일수록 복음이 주는 자유와는 멀 수 있다는 경고다.
○ 사라 이야기는 복음을 대변한다. 스스로 의를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힘과 지혜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은 늘 우리 능력 밖의 힘으로 뜻을 이루어가신다. 사라의 잉태, 그리스도의 탄생, 죄를 담당하신 죽음, 죽음을 이기신 부활 등과 같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성도드로 율법을 지키려는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 잉태하지 못한 자를 위한 은혜는 낙심하고 실패한 자들을 위한 복음이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 갖는 낙심과 패배감은 엄청나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그들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어가신다. 믿음이 있으면 그렇게 사용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재주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복음이다.
○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나오는 ‘유업/상속’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다리는 소망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바울은 5장에서 이것을 의의 소망이라고 표현한다. 종말론적인 구원의 완성이다. 이것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을 통해 완성된다.
○ 3~4장의 긴 주석적 논증의 결론은 이것이다. 아브라함 전통 속에서 우리가 읽게 되는 여러 사건들은 율법의 행위들에 의존하여 육체의 한계에 머무는 자들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성령으로 태어난 자들이 바로 의의 소망을 유업으로 상속받게 될 것이다. 율법 자체가(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성령이 약속된 의의 소망에 이르는 길임을 천명한다(21절).
팀 켈러 목사는 이 부분을 설교하면서 네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말한다.
첫 번째 부류 : 율법을 행하면서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 – 이 시대의 바리새인, 대개 아주 잘난체하고 독선적이고 교만하다. 겉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게가 바르다고 굳게 믿지만 속으로는 못내 불안하다. 기준대로 살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민하고 남의 비판에 민감하며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면 처참해한다.
두 번째 부류 :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서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 – 행위를 통한 의를 종교적으로 강하게 의식하지만 그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바리새인 부류보다는 겸손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용적이다. 그러나 죄책감이 훨씬 크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영적 자존감이 매우 낮다.
세 번재 부류 :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서 율법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 – 도덕적 기준을 자신이 정하며 거기에 부합하다고 여기지만, 세속주의, 상대주의에 빠져있고 영성이 거의 없다.
네 번째 부류 : 율법을 행하면서 율법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 –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자유를 누리며 사는 그리스도인.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기에 감사와 기쁨으로 율법에 순종한다. 거짓 우상이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이기심으로부터 해방되었기에 순종한다. 관용적이고 공감할 줄 안다.
202141023(수) 갈라디아서 4:21~31
○ 상황
바울은 하갈과 사라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율법에 매인 사람)과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통로가 되는 사람(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대조하면서 갈라디아 성도들이 돌아오도록 권면한다.
○ 도전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이 복음과 가장 멀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을 듣는다. 시내산 언약을 율법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사람들, 할례와 절기 준수를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적 열심과 거룩한 행위를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는 종교인들을 대변한다. 나는 목회자로서 가장 종교적인 사람 중 한 명인데, 복음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성도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돌아본다.
○ 변화
나의 열심과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주목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기
종교적이고 거룩한 행위들을 자랑하지 않기
○ 기도
주님, 내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소서. 내 계획과 지혜를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종교적인 열심과 행위들이 나를 의롭게 한다고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성도들이 자신의 열심과 행위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더욱 집중하도록 가르치고 본을 보이게 하소서. 우리 석교교회가 우리의 자원과 노력과 열심히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20251119(수) 갈라디아서 3~4장(3:1)
○ 상황
바울에게서 믿음으로 의에 이르게 된다는 복음을 듣고 배웠던 갈라디아 성도들이 믿음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다른 복음에 영향을 받아 믿음의 삶을 버린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며 다시 복음을 전하고 있다.
○ 도전
예수를 직접 보지 못한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1절)이라고 말한다. 고린도 교회를 향해“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고 말하기도 한 것을 보면 그는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삶’으로도 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본다는 말이다. 나를 통해서 예수가 보이는가 점검해본다.
○ 변화
다른 복음에 물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삶이 메시지가 되도록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닮아가기
○ 기도
주님, 제가 말로 전하는 복음이 저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서 상대방의 눈에 하나님 나라가 밝히 보이기를 원합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며 십자가 그 사랑이 저의 인격과 삶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하나님을 눈으로 보여주는 석교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