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13-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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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통역하는 신앙

본문: 고린도전서 14장 13-19절

찬송: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오늘은 고린도전서 14장 13-19절 말씀을 가지고 '통역하는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바울은 방언과 통역, 영과 마음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가르친다. 핵심은 한 가지다. 우리의 신앙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되고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만의 교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공동체를 세우는 일로 연결되어야 한다.
13-14절은 '통역하기를 기도하라'를 말한다
13절은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라고 말씀한다. 바울은 방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18절에서 자신이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많이 한다고 고백한다. 문제는 방언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바울은 방언하는 사람에게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명령한다.
통역은 하나님과 나만 아는 언어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내가 받은 은혜를, 내가 체험한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의 자세를 말한다.
14절은 그 이유를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라고 설명한다. 방언으로 기도할 때, 나의 영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한다. 이것은 귀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 곧 이해하고 판단하는 이성은 그 기도에 참여하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그 기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진다. 이 새벽에 나와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다. 이것은 귀한 일이다. 그런데 이 체험이 나만의 것으로 끝나는가, 아니면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지는가? 우리의 신앙이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료들에게 이해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만의 언어로, 우리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가?
바울이 말하는 통역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고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성숙이다.
15-17절은 '영으로도 마음으로도'를 말한다
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결론을 제시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바울의 답은 명확하다. 영으로도 하고, 마음으로도 하라는 것이다.
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말한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깊은 교제, 성령의 감동 가운데 드리는 기도이다. 이것은 소중하다. 그러나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것도 필요하다. 이해하고, 분별하고, 적용하는 기도이다. 영적 체험이성적 이해가 함께 가야 한다. 둘 중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함께 가져가야 한다.
16-17절은 왜 마음의 참여가 중요한지 설명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여기서 바울이 지적하는 핵심은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드린 감사는 진실하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신다. 그러나 옆에 있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아멘"할 수 없다.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없고, 함께 은혜를 누릴 수 없다.
예배는 개인의 영적 만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예배는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고, 서로를 세우는 자리이다. 내 기도가, 내 찬양이, 내 간증이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예배이다.
오늘 이 새벽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각자 기도 제목을 가지고 왔다. 각자의 간절함이 있다. 그것도 귀하다. 하나님께서 아신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모여 드리는 이 예배가, 옆에 앉은 형제자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야 한다. 예배 후에 나누는 한마디 격려, 함께 드리는 중보기도, 이것이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이다.
18-19절은 '가르치는 것이 낫다'를 말한다
18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방언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한다. 왜? 그것이 자신의 영을 세우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게 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개인적 신앙 생활은 풍성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셨다.
그러나 19절에서 바울은 놀라운 말을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5대 10,000이라는 극적인 대조이다. 일만 마디 방언보다 다섯 마디의 깨달은 말이 낫다. 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세우고, 덕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은 마음으로"라는 표현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말씀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실천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이 새벽에 우리가 받는 한 마디 말씀이, 오늘 하루를 사는 다섯 마디의 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한 마디, 그것이 사람을 살린다. 그것이 공동체를 세운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깨달았다면, 오늘 하루 그것을 실천하자. 가정에서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덕을 세우는 한 마디를 하자. 마을에서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작은 친절을 베풀자. 일터에서 동료에게 힘이 되는 격려를 건네자. 그것이 일만 마디 방언보다 귀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실천이다.
이같은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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