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9편 1-8절
Notes
Transcript
129편은 15편의 성전 순례시 가운데 10번째 시 입니다.
앞선 순례시들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있지만 특이한 점은 대적들을 향하여 저주를 선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시의 배경을 바벨론 포로 해방과 귀환 이후 민족의 고난과 하나님의 구원을 생각하며 미래에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수치와 패배를 당할 것임을 선포하기 위해 지은 시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본문을 세 단락으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단락은 1절에서 부터 3절로 과거 이스라엘이 당했던 고난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은 두번째 단락인 4절에서 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단락인 5절에서 부터 8절에서 앞으로 시온에 침입하는 대적들에 대해 저주 하며 주의 백성이 거둘 최종 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번째 단락을 보시면 1절과 2절에서 ‘내가 어릴 때 부터 여러번 나를 괴롭혔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향한 대적들의 괴롭힘이 이스라엘이 형성되는 초창기 시절부터 계속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이러한 대적들의 괴롭힘이 지속되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 의해, 가나안 정착 과정과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수많은 유혹들과 괴롭힘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삶을 무너뜨리려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 뿐만 아니라 신구약 전반에 걸쳐 이런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대적들의 방해와 괴롭힘은 오늘날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믿음의 길에서 떠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게 하며 여러가지 환경을 통해 유혹하고 방해 합니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고난과 괴롭힘 가운데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 부터 여러번 나를 괴롭혔으니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고난의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지켜주셔서 지속적으로 건재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의 공격이 아무리 강하여도 결국 하나님이 지키시는 자의 승리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서 시인은 그들이 겪었던 고난의 강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농부가 쟁기를 가지고 밭을 갈 때 생겨나는 깊은 고랑의 모습이 이스라엘이 겪었던 고통의 깊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 고통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스라엘이 강해서가 아니고, 지혜로워서가 아니며, 경험이 풍부해서가 아닌 여호와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괴롭힘과 유혹의 순간들을 어떻게 버티고 견딜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과 능력과 지혜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찌 한단계를 버티고 넘어선다 하더라도 더 큰 고난에 무너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들고 사는 자들은 결국 승리 합니다.
왜냐하면 의로우신 여호와께서 악인들의 줄을 끊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과 고통의 순간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과 고통과 슬픔 가운데서도 주의 길을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편의 다윗의 이 고백이 오늘날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의 믿음의 고백과 찬양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단락은 대적들을 향한 저주와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내용들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과 위배 된다고 생각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바르게 세워지기 위해,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겪는 고난과 고통의 소리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적들을 향한 저주의 선포가 우리 개인의 이익과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닌 이 땅의 불의와 악함으로 인한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선포되기를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대적들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돌이키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잡는 것이 가장 좋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성도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세워지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시인의 고백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부터 괴롭혀 왔던 대적들이 여호와의 지키심을 보고도 그 악행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시인은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말라버린 지붕의 풀과 같습니다. 왕성하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곧 시들어 말라버리고 없어질 모습이 악인들의 모습입니다.
세계 역사 가운데 수 많은 대국들이 존재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던 나라들은 지금 그 이름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갔지만 지금 어디에서도 바벨론이라는 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들의 형통과 잘됨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그들과 함께 잠시 잠깐 나타나 사라질 것들을 의지하거나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지금 힘이 들고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세상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많은 고난과 아픔과 함께 길을 걸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길을 우리는 주와 함께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주와 함께 동행하며 인내하며 걸어갈 때에 주님이 주시는 완전한 승리를 누리며 우리의 슬픔과 고난이 기쁨과 평안으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