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12-17절(하나님 자녀의 정체성)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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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로마서 1장 18절 부터 죄와 구원에 관하여 설명을 하였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완성되어지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자로써, 
내 안에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고백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 하지만, 우리의 육신은 여전히 죄의 법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 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따라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이상 죄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의로운 재판장이 되어 주셔서, 
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없고,  죄 가운데 자유를 선포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유혹을 두려워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집중하라고 권면 합니다. 
우리가 성령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그에 합당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육신의 유혹에 넘어가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나의 욕심과 욕망을 정신없이 쫓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을 떠나서 내가 왜 이렇게 살고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교회 동생이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온적이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부터 공부를 잘했는데, 어느 덧 유명한 백화점의 재무팀으로 서울 본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실력도 인정 받고, 진급 하기 위해서 열심히 술자리도 나가고, 타회사들의 재무팀 모임에도 열심히 나가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이틀 밤새는 것 정도는 기본이었고, 별보고 출근해서 별보고 퇴근하는 일도 비일비재 였습니다. 
그렇게 인정받고 진급도 하고 잘나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 속에 허무함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뭐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점점 커져 가는 그 때, 이 친구의 마음을 쳤던 것은 자신의 삶속에 하나님이 없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진급하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 주일도, 하나님도 없이 달려왔는데, 정작 남은 것 허무함 뿐이고, 하나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다시 신앙의 회복을 위해 울산에 있는 중공업에 서류를 넣고, 잘나가고 인정받던 직장을 퇴사 했습니다. 
그리고 울산으로 내려와 제가 소개 시켜준 교회를 다니며 신앙의 회복을 위해 애를 쓰고 매달렸습니다. 
그 교회에서 신앙도 다시 회복하고, 자매를 만나 결혼도 하고, 지금은 서울에 다시 스카웃 되어서 그 곳에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 입니다. 
본문 12절에서 우리를 빚진 자 라고 합니다. 
빚을 졌다는 것은 갚아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것을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무슨 빚을 졌습니까? 
하나님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빚을 진 자 들 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에 육신에게 지지않고, 
육신이 원하는 데로 살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안에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이 거하고 계시기에, 
양자의 영과 함께 마땅한 신분과 삶의 변화를 누려야 합니다. 
문제는 종의 영이 자꾸만 신분의 변화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종의 영은 죄로 인한 두려움과 억압의 상태를 의미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종의 영에 억압 되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벌 중심의 불안하고, 불완전한 종속관계, 즉 주인과 종의 관계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두렵고 무서움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으면 천벌을 내리시고, 자비도, 용서도 없는 무서운 신 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신앙에 자유가 없습니다. 기쁨도 은혜도 없이, 정죄와 징벌만 가득 합니다. 
얼마나 불쌍하고, 가슴 아프고, 슬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양자의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친밀하게 부를 수 있도록 증인이 되어 주십니다. 
외적 변화가 아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먼저 내적 확신을 통해 신분의 변화를 확증하시고 ,
하나님 아버지로 부터 주어지는 권리를 사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신분의 변화는 내적 확신의 확증과 함께
외적 변화인 선한 행위로 까지 확장 됩니다. 
선한 행위를 통한 신분의 변화가 아니라, 
신분과 존재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과 결과로 
선한일을 행할 능력이 주어지고, 하나님을 위해 그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이 주신 권리는 내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로 주어진 것입니다. 
14절 입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자 입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자 라고 합니다. 
이는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끌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주체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의지적으로, 능동적으로 순종으로 화답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 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믿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가 온전히 의지적으로 순종해야 함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자들에게 두번 째 권리가 주어지게 됩니다. 
두번째 하나님이 주시는 권리는 하나님의 양자,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 입니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가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중 누구도 날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였던 사람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본래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 한 분 뿐이고, 모든 인간은 죄의 종으로 태어나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을 입양 이라는 것을 통해 설명 합니다. 
양자를 입양할 때 자녀가 부모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아버지가 택하여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법적으로 완벽하게 아들로 삼는 것이 양자를 삼는 방법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양자의 지위를 얻기 위해 우리가 지불한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대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지불 하셨고, 
이로써 우리는 완벽하게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권세 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입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렐루야~~ 이 놀라운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음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이 놀라운 권세를 통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빠 아버지는 하나님을 대하는 변하지 않는 확실한 관계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습관적 언어 사용이 아닌 성령의 역사 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 입니다.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제 아내가 한번씩 저한테 원래는 오빠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자신의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희는 연상연하라 아내는 평생 오빠라 부를 사람이 없고, 저도 평생 저한테 오빠라 부를 사람이 제 친동생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런 이야기를 하면 나한테 그냥 오빠라 불러라 라고 합니다. 
그런데 절대 못 부릅니다. 
저를 보면서 입에서 오빠라는 소리가 안나온다고 합니다. 
일상적 관계 속에서도 그러한데,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하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결단으로, 용기로 되는 것이 아닌 성령의 은혜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짖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와 의존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는 것은 
법적 신분에 근거한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지위의 변화가 정상적으로 작동됨을 보여주는 실천적 반응 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방황하고 돌아와도 교회에 앉아 눈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이유도 종의 영이 아닌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권세는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는 
증언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걸고 저 사람은 나의 자녀이다 라는 것을 
온 우주에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빠 아버지라는 이 고백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첫번째는 친밀감 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로 영원토록 동행하는 자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인것 만 알고 친밀감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7절 이하의 말씀에 탕자의 비유가 등장 합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고, 망해서 돼지 우리에서 살다가 도저히 안되어서 아버지의 종으로라도 살기를 바라며 다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버선발로 맞이하며 자신의 아들이 돌아 왔다고 잔치와 함께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줍니다. 
여러분, 이 비유에서 탕자가 아무리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관계가 회복되어 다시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아빠는 아람어를 그대로 음역한 것입니다. 
이 표현은 어린 자녀들이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 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이 너무나도 좋은 아빠 라는 것을 믿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가장 큰 이유 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너무나도 좋은 아버지라는 믿음을 가지고, 더욱 친밀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간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두번째는 상속자라는 믿음의 담대함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게 하시는 것은 성령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믿음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때 
어떤 유혹과 핍박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절 입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의미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가 걸어가셨던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함을 의미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길을 걸어가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부활과 생명이라는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또한 주님이 가신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모든 행위는 우리의 결심과 노력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사용하게 하시는 아버지의 은혜 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사람은 성품과 말, 행동, 눈빛, 표정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또한 삶의 목적과 방향과 방식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갑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있는 곳을 향하여 갑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성령 안에서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고난의 길이라 하더라도 
주와 함께 동행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며, 능력이며, 장차 주어질 영광입니다. 
이를 위하여 성령께서 이미 우리 안에 분명히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고백의 축복을 깨닫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헤아리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친밀한 교제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며,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장차 우리에게 주실 더욱 큰 영광을 사모하며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기쁨으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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