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우나 가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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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로의 부름
예배로의 부름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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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한국교회와 경제적 풍요의 역설
한국교회와 경제적 풍요의 역설
한국교회는 그 어떤 국가보다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 경제 발전의 기초에는 한국교회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여호와를 잊어버린 젊은 세대, 특히 40대 아래 세대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부유하지만 가난한 교회: 라오디게아의 실상
부유하지만 가난한 교회: 라오디게아의 실상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도 부유한 교회였습니다. 17절을 보면 그들은 스스로 부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곤고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습니다. 세상이 볼 때 한국교회가 부유하고, 요즘 청소년들도 배달도 마음대로 시켜먹고, 음식물 쓰레기 많이 남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기아들이 넘쳐나는 나라들이 훨씬 많은데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배달앱 없이 살아본 적이 없는 세대"입니다. "중고생도 유튜브 프리미엄 쓰고 커피 한 잔 6천 원이 당연한 시대"입니다. "옷은 많지만 정작 마음은 불안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망각한 세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망각한 세대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물질관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것을 잊으니까 신앙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유함이 클수록, 그리스도가 주시는 진정한 부유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예배 나와야하나? 극단적으로는 굳이 하나님을 믿어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가게 됩니다.
그래서 15-16절같은 미적지근한 신앙생활의 양상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형식적인 신앙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아래는 다윗 왕국 – 영국 복음주의 시대 – 미국 선교 시대
세 가지 사례만을 묶어서, 설교 본문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만한 흐름으로 정리한 줄글 설교문입니다.
톤은 자연스럽고 서정적이면서도 신학적 깊이가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풍요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
“풍요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난하면 하나님을 잘 찾고, 부유하면 하나님을 잊는다.”
신명기 8장의 경고가 하도 강해서, 풍요와 신앙은 늘 반비례한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과 교회 역사에는 풍요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그 풍요를 하나님 나라의 일에 사용했던 사람들과 공동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부유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유함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디에 사용하는지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다윗 왕국의 전성기를 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부유했던 시기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였습니다.
사방에 평화가 임하고, 주변 나라들이 조공을 바쳐 금과 은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부요를 자기 사치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받은 모든 것의 근원이 하나님이라 고백하며, 엄청난 재정과 자원을 쏟아 성전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주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릴 뿐입니다.”
다윗에게 풍요는 방종의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라는 소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유함 속에서도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더 헌신했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이와 같은 일은 반복됩니다.
18–19세기 영국,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나라가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되었을 때,
그 시대는 동시에 “근대 선교 시대”를 열어젖혔습니다.
윌리엄 캐리, 허드슨 테일러, 헨리 마틴 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와 기술력과 여유를 세계 선교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영국은 부유해졌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풍요를 하나님 나라 확장의 자원으로 보았기 때문에 세계 선교의 길을 연 것입니다.
부요가 방탕의 길이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부요가 선교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시대였습니다.
또한 20세기 미국 역시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력은 세계 1위로 올라섰고,
그때 미국 교회는 그 부요를 자신들의 영광이 아니라
신학교 건설, 선교단체 설립, 해외 선교사 파송에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풀러, 고든콘웰, 트리니티 같은 세계적 신학교들이 이때 세워졌습니다.
풍요가 주어지자 타락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 물질을 맡기셨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전 세계 복음 전파”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과 역사는 분명히 말합니다.
풍요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풍요는 우리 안에 있던 마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풍요가 방탕의 문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풍요가 사명의 문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부유함은 시험이지만, 동시에 기회입니다.
다윗처럼, 영국처럼, 미국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과 평안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일 때
그 부요는 은혜가 되고, 역사가 되고, 복음의 길을 여는 능력이 됩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요와 편안함이
자기 배를 채우는 데 쓰이면 세속화가 오지만,
그 풍요를 선교와 다음세대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드릴 때
우리는 다시금 세계를 깨우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부요는 위험이지만, 동시에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 이 풍요를,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
오늘 우리는 그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고백처럼,
“주께로부터 왔사오니, 주를 위해 드리나이다.”
이 고백이 우리의 삶이 되길 축원합니다.
영적 빈곤을 가속화시키는 디지털 세계!!
디지털 세계가 가져온 현실 도피
디지털 세계가 가져온 현실 도피
이미 오른손으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컨텐츠를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고, 도파민 만족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뮤얼 제임스(디지털 리터러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인터넷 세계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즉 현실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그걸 인터넷 세계에 들어감으로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현실 도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현실(Reality)'에 살게 하셨고 우리의 몸도 가상 현실이 아니라 진짜 만져지는 육체적으로 존재합니다. 볼이 만져지고, 우리의 몸이 이 공간 안에 존재합니다. 현실의 문제를 결코 인터넷 세계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이 괴리감 때문에 더 우울해진다고 새뮤얼 제임스는 말합니다. 인터넷 세계가 연결을 강화시켰지만, 사람 사이의 진정한 소통은 약화시켰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의 영적 빈곤
물질적 풍요 속의 영적 빈곤
물질적으로는 부유할 수 있으나, 이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사람과의 불통, 갈등, 분쟁이 심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개인적으로 심리상담, 정신 상담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시대보다 외롭습니다. AI의 위협으로 인해서 그 어떤 시대보다 불안합니다.
이제 어떤 세계가 오나요? 인간 증명의 시대입니다. 내가 인간임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 직장에 대한 불안감이 극대화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안감을 SNS나 스마트폰의 컨텐츠, 게임을 통해 '일시적으로 해소'하려고만 합니다.
하나님의 고발: 너희는 진짜 부유한가?
하나님의 고발: 너희는 진짜 부유한가?
그래서 오늘 계시록은 고발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느 때보다 부유할 수 있다. 그 부유함 내가 한번에 가져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부유함 누구 때문인데? 그리고 너희 진짜 부유한 거 맞니? 17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진짜 부유함은 영적으로 부요한 것입니다. '영적'이란 말은 어려운 게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다 영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영육유기체)이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초월적인 의식이 있고, 내세에 대한 관심이 있고, 목적과 목표와 창조와 기원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몇천 년 동안 이 궁극적인 답을 찾기 위해서 철학이 계속 발전했습니다. 근데 공부해보면 철학도 돌고 돕니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예수님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예수님
그래서 라오디게아의 영적 빈곤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20절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이 전도용으로 많이 쓰이지만(예수를 영접하세요~ 할 때) 사실 맥락상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너무 예수님과의 교제를 안 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빈곤은 '영적인 빈곤'입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떵떵 거리며 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지 않으면 마지막 날에 수치와 멸망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불안한 시대, 해답은 예수님과의 교제
불안한 시대, 해답은 예수님과의 교제
불안하고 괴리감 있는 이 시대 어떻게 신앙생활할 것인가? '예수님과 교제' 밖에 없습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분 안에 거하면 첫째, 평안이 있습니다. 아무리 불안하고 힘든 시대여도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주님이 우리를 붙으시고, 천국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내가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압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공부하고,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네비게이션이 없는 사람과 네비게이션이 있는 사람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할 때 누가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셋째, 디지털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성경은 철저히 '현실' 속에서의 삶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겨나가고,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기도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기도
넷째, 무엇보다 내가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도'입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이 찬양은 잘하지만 기도는 너무 못합니다. 아예 기도 자체가 어색하고 힘듭니다. 아주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교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게 '기도'입니다. 기도 역시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서 절망하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위로부터 오는 유일한 것들'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계시의 말씀, 복음,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 인생의 목적과 내가 기도할 때 선한 길로 이끄시고, 나를 악한 길에서 건져주시는 것들, 쉽게 한 단어로 '은혜'를 경험해야 진짜 부유한 자임을 오늘 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7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뜨겁든지 차갑든지: 미지근함을 거부하라
뜨겁든지 차갑든지: 미지근함을 거부하라
미적지근하게 살면 우리 주님도 토하여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뜨겁든지 차갑든지 온도를 정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 뜨겁든지 주님을 버리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열정 다해 하는 것입니다. 찬양도 그렇고 예배도 그렇고 삶도 최선 다해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부유한 삶입니다.
진정한 부요함: 주님과 동행하는 삶
진정한 부요함: 주님과 동행하는 삶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진정 부유한 삶입니다. 그는 이 땅에 없는 하늘의 것을 누리기 때문이고,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하늘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우리와 교제하길 너무나도 원하십니다. 우리는 너무 말씀에 무관심하고, 주님과 대화하는 기도에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요?
지금부터라도 기도합시다! 주님, 세상이 주는 일시적이고 허무한 부유함,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쫓는 자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위로를 경험하게 하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이 땅에서 구질구질하게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멋지게 사는 삶의 부유함을 허락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하는 삶이 가장 부요한 삶이고,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사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시간을 쓰고,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게 가장 부요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V. 기도문
V. 기도문
주님, 요즘 편한 것들에 익숙해져 제 마음이 둔해지고 미지근해진 것을 고백합니다. 스마트폰과 영상에 빠져 현실을 피하려 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참된 부요함이 세상 즐길 거리에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교제하는 삶에 있다는 것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부터 예배와 기도에 마음을 다시 모으고, 주님께 가까이 가는 선택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위로부터 주시는 참된 가르침을 배우고, 풍성한 은혜와 힘과 위로를 경험하는 영적 부자 되게 하소서!!
Lord’s Prayers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