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노릇 아닌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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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8)
(고린도전서 4:8)
🕊️ 서론: 이미 배 부르고 왕이 되었도다
🕊️ 서론: 이미 배 부르고 왕이 되었도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린도교회에 있었던 여러 가지 심각한 상황들을 보았습니다. 분열과 분파, 분쟁, 우월의식이 그들을 갈라놓았죠.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부활을 잘못 이해했다는 겁니다.
아직 오지 않은 천국을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을 다 살아가는 것처럼' 오해하여 행동했습니다. 스스로를 우월한 자로, 다 이룬 것 같이 여겼고, 그 결과 서로 연합되기보다 더욱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사도 바울이 강력한 풍자를 던집니다.
고전 4: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박영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의 이 말은 그들의 거짓된 영적 만족감과 교만한 태도를 폭로하는 겁니다. 십자가는 이미 졸업했고, 이제 나는 이 세상에서 승리자, 왕이라고 자부하는 꼴이죠.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다'**고요? 우리를 통해 복음을 듣고 교회를 이뤄가지 않았느냐, 그러니 너희가 왕 노릇 한다면 나도 왕 노릇 해야 마땅한 것 아니냐고 바울은 반문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회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나 혼자 분리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Ⅰ. 교회의 본질: 십자가를 머리로 한 연합체
Ⅰ. 교회의 본질: 십자가를 머리로 한 연합체
우리에게 교회는 무엇입니까? 건물입니까? 잠깐 들르는 곳입니까? 성취감과 만족감을 채워주는 곳입니까? 우리는 신앙생활 이전에 교회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 교회는 십자가로 자격을 얻은 부르심의 모임
1. 교회는 십자가로 자격을 얻은 부르심의 모임
고린도전서 1장 1-2절을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애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즉 **'부르심으로 모여짐'**을 뜻합니다.
우리가 성도가 된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격 없는 우리가 십자가로 인해 부르심을 얻었습니다.
2.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 곧 십자가 신학
2.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 곧 십자가 신학
엡 1:22-23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입니다. 몸은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말을 다시 하면 십자가를 따른다는 겁니다. 죽음에서 부활로, 고난과 수치에서 영광으로.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에게는 십자가가 빠졌습니다. 십자가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배부름이 아닌 내어줌입니다.
십자가는 풍성함이 아닌 대신 짊어짐, 곤고함과 고난입니다.
바울은 왕 노릇 하려는 그들에게 십자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며, 이미 임했으나 아직 오지 않은 실제적인 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Ⅱ. 함께 지어져 가는 성숙의 처소 (엡 2:20-21)
Ⅱ. 함께 지어져 가는 성숙의 처소 (엡 2:20-21)
바울의 신학에는 혼자 스스로 하는 것은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함께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갑니다. 나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엡 2:20-21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예수께서 우리를 이어주는 초석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서로를 통해 성숙되어지는 겁니다.
1. 도움이 안 되는 지체도 몸을 자라게 한다
1. 도움이 안 되는 지체도 몸을 자라게 한다
엡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는 서로 도움을 받고, 내가 이 몸을 자라게 하듯 수많은 지체도 이 몸을 자라게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드실 겁니다. "앞서 말한 교회의 본질 다 알겠는데, 저 사람이 이 몸을 자라게 한다고??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은데?? 교회에서 하는 것도 별로 없는데??"
아닙니다. 그 지체로 이 몸이 자라납니다.
못마땅한 지체가 있습니까? 맘에 안 드십니까? 교회는 십자가로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지체를 통해 나에게 없음을 확인하시게 될 겁니다. 나를 끌어안으신 십자가 사랑 앞에서, 나는 그 누구도 끌어안을 수 없는 존재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나라는 존재의 밑바닥을 알 수 있습니다.
2. 사랑은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애쓰는 것
2. 사랑은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애쓰는 것
사랑하십시오. 안됩니까? 우리로는 안됩니다. 사랑은 우러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도우십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크기를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그래서 나도 사랑하려 애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가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로 서로 사랑하게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라남입니다.
🛑 결론: 손해를 보십시오,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길입니다
🛑 결론: 손해를 보십시오,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고전 4: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혼자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아프면 교회도 함께 아픈 것이고, 내가 즐거우면 교회도 함께 즐거운 것입니다. 자기가 높다 여기고 우월감에 빠진 이들로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가 병들어 갑니다.
그러니 서로를 세워 주십시오.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손해를 보십시오. 그리고 다른 이가 채워질 수 있게 하십시오. 그것이 교회가 채워지는 길입니다.
기업은 이익을 창출하는 도움이 되는 자와 끝까지 함께 가지만, 교회는 반대로 끝까지 복음 안에 함께 묶여있기에 좋던 싫던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아 함께 모든 일들로 성장하며 성숙되어져 갑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에 누구는 잘나고 누구는 못나고 없습니다. 같은 처지에서 부르심 받았습니다. 죄인이라는 자리에서 부르심 받았으며, 서로 지어져 가며 사랑이 자라나며 결국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