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맞춘다? 흔들리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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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
유연성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특별히 초등부와 어제부터 연합으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년부터 함께할 6학년 친구들은 앞으로 전도사님과 선생님들과 형, 누나, 언니 오빠들과 재밌는 2026년이 되도록 부장장로님과 선생님들이 부단히 준비하고 있으니 살짝 기대해도 좋다. 설교하기 앞서서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나와 스타일이 다른 사람을 잘 맞춰주는 유형이 어떤 MBTI의 사람일까? 챗 GPT에게 물어보니까 5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ESFJ, ENFJ, ISFJ, INFP, ENFP라고 한다. 잘 맞지 않는 사람과 맞추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유형은 INTJ, INTP는 논리가 우선이고 감정 공감이 어렵고 ESTP와 ENTP는 직설적이고 논쟁을 좋아하고 ISTJ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무조건 MBTI가 이렇게 말하니까 나는 이런 사람이다, 아니다를 100% 맞는 것이 아니니 맹신하기 말길 바란다. 어디까지나 참고로 볼 것이고 MBTI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기에 진리가 아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눌 주제는 ‘유연성’이다. 보통 어떤 사람을 유연하다고 하는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몸이 유연한 사람과 생각이 유연한 사람으로 나뉜다. 몸이 유연한 사람은 어떤가? 다리 찢기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태권도와 같은 무술에서도 여러 동작들을 보여줄 수 있다. 전도사님도 어릴 때 발레와 무용을 배웠어서 그때만 잠시 유연했었다. 다리 찢겠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생각이 유연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함께 정의를 읽어보기 원한다. “특정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관점에서 새로운 생각을 자유롭게 떠올리고, 변화에 잘 적응하며, 문제 해결에 창의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연하다는 말의 반댓말은 무엇인가? 그렇다. 뻣뻣하고, 경직되었다고 한다. 몸이 뻣뻣하면 다양한 동작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동작들이 제한된다. 생각이 뻣뻣하고 경직되면 어떤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여러분은 생각이 유연한 사람이 좋은가, 아니면 생각이 뻣뻣한 사람이 좋은가? 그렇다. 어느 누구도 생각이 뻣뻣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아까 처음에 함께 읽었던 말씀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는 이야기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유연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연한 것은 몸이 유연한 것일까 생각이 유연한 것일까? 그렇다. 생각이 유연했다고 말한다. 다시 한번 읽어보자.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누군가에게 얽매여 있지 않고, 예수님이 구원하신 은혜로 어떠한 악한 세력들도, 세상 어떤 사람도 바울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자신은 이렇게 자유롭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에 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종은 노예를 말한다. 노예가 어떻게 자유를 가질 수 있겠는가? 자유를 완전히 박탈된 지위가 바로 노예이다. 사도 바울은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대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진짜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는 것이 진짜 자유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만약에 남을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사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겠는가, 아니면 자신을 잘 섬겨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좁아지고 단절될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적어진다. 다양한 사람들을 알고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많아질수록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다양하게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누가 진짜 자유로운 사람인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어 사람을 얻게 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카멜레온이라는 동물을 아는가? 전도사님이 개인적으로 귀여워하는 동물 중 하나인데, 카멜레온은 환경에 따라서 무엇이 바뀌는가? 그렇다. 몸의 색깔이 달라진다. 나무 옆에 있으면 초록색으로 변하고, 땅에 있으면 땅과 비슷한 색으로 바뀌게 된다. 카멜레온이 몸의 색깔을 바꾸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한다. 첫 번째는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함이고, 두 번째로는 광합성을 더 잘 받기 위해서도 색을 바꾼다고 한다. 번외로 카멜레온이 화가나면 불그락푸르락 변한다고 한다. 오늘 성경을 읽어보니까 사도 바울이 마치 카멜레온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더 이상 유대교인은 아니지만, 민족적으로는 유대인이었다. 그러니 이제 바울 안에 정체성은 기독교인이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만나면 유대인들처럼 살았고 율법을 지켰다.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나실인 서원을 했고, 성전에서 비용을 지불했다. 바울은 모세의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인들을 만날 때는 본인이 유대민족의 사람임에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유대인 전통과 관습을 강조나 강요하지 않았고, 이방인의 삶의 환경에 적응하여 이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했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의 명령으로부터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은 누구의 가르침인가? 그렇다.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남을 권력으로 짓밟아버려야지 으뜸이 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바울의 정체성은 사람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다. 바울이 이방인들 앞에서 율법이 없는 자처럼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은 자신 안에 율법이 완전히 없는 것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바울은 모세 율법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에 복종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모세 언약과 율법은 이미 예수님이 성취하셨기 때문에 지나간 것이다. 왜인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화목제물과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제사법과 음식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도덕법을 지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예배 시작할 때 함께 문답하는 십계명을 크게 2가지로 요약하면 무엇인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법은 서로 사랑하도록 하는 부르심 안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바울은 이 법을 버리지 않았다. 이러한 바울이 말하는 자유에 대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자유인이고 누구의 종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섬기는 종이고 모두의 종입니다.” 이렇게까지 섬기고 종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고 종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러한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인가? 예수님으로부터 자격없는 우리가 십자가에서 그 크신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선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인지 아는가? 신앙이 좋고 열정적인 것을 둘째 문제이고, 첫째되는 자격은 바로 가리는 것이 없이 어떤 음식이든지 잘 먹어야 한다. 나는 이것에 해당되긴 한다. 전도사님이 대학생 때 인도, 캄보디아, 라오스 등등 여러 나라에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그중에 제일 빡센 곳이 어딘지 아는가? 바로 인도이다. 인도는 한국인들이 거의 대부분 물갈이를 하고, 먹는 음식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많은 수도인 델리 지역이나, 관광지와 같은 큰 도시의 식당에서는 먹을만하다. 그러나 현지 집에서 나오는 음식은 우리 팀원 중 목사님과 나 밖에 맛있게 먹었다. 다들 한입하고 찡그리기 마련이고 맛없다고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사실 나도 익숙한 맛이 아니라서 쉽지 않았지만, 그들의 정성과 대접하는 마음을 생각하면서 집밥이라 여기며 맛있게 두 그릇이나 먹었다. 나는 라오스에서 어느 가정 집에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그 집의 하루 식사량을 내가 다 먹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선교사님들은 항상 현지인보다 잘먹는 나를 기특해하셨고 선교사감이라며 예뻐해주셨다. 물론 현지 음식을 못먹는 팀원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어떻게든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맞지 않아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현지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였다. 그렇다. 사랑하고 좋아하면 어떻게든 그 사람에게 맞춰주고 싶어하는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과 다르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보이기 마련이다.
대중가요 중에서 볼빨간 사춘기의 “썸 탈꺼야”라는 노래 가사 중에 꽂히는 부분이 있다. “나 오늘부터 너랑 썸을 한번 타볼 거야. 나 매일매일 네게 전화도 할 거야. 밀가루 못 먹는 나를 달래서라도 너랑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닐 거야. 매운 거 못 먹는 나를 달래서라도 너랑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닐 거야.” 이 가사를 보면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한 것일까?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불러줄 수 없는 노래다. 생각해보면, 마치 여러분의 선생님들이 이런 마음으로 여러분을 만나는 게 아닐까 싶다. 마라탕 안드시던 분이 여러분이 좋아한다고 같이 먹으러가는 것은 취향이 안 맞으실텐데 왜 이런 일을 하실까? 그렇다.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여러분과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사랑의 관계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내가 상대방에게 맞춰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나한테 왜 안 맞춰주냐고 따지는 것은 진짜 최악이고, 본인 또한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전도사님, 제가 맞춰주니까 저를 쉽게 생각하고 바보로 아는 사람이 있는데요?” 그럴 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맞춰주라는 것은 나의 모든 정체성을 바꾸면서까지 맞추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자녀다. 진리에서 벗어나는, 성경의 가르침에 벗어나는 것을 요구하는 것까지도 맞춰주라는 말이 아니다. 카멜레온이 색깔만 변하지, 다른 동물로 카멜레온의 정체성이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주일에 교회에 빠지고 놀러가자고 하는 것이나 우상숭배인 점을 치거나 사주, 타로를 보러 가자거나, 제사상에 절해라, 같이 누구를 욕하거나 등등 이런 부분은 타협해서도 안되고 맞춰주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는 성경에서 금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부드럽고 명확하게 말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상대방을 위해서 섬기는데 나를 바보로 여기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 대해서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쁠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할까? 기분 나쁘다고 화를 버럭 내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것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화가 날 때 가장 똑똑하면서 어른스럽고 성숙한 사람은 이렇게 대처한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을 감정을 담아 화를 내며 말하는게 아니다. 내가 충분히 감정을 진정시키고 그 상대방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가 이렇게 대할 때 나는 너무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어, 내가 정말 싫어하는 행동인데 다음부터는 안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는데, 여전히 놀리고 장난친다면 많이 기도가 필요하고 참으로 안타까운 친구라고 바라봐야한다. 그러한 친구를 누가 혼내주시는가? 하나님이 다 지켜보시고 그 친구에 대해 여러분이 당하는 힘듦과 아픔에 대해 복수를 해주실 분이시라는 것을 기억하기 소망한다.
사랑하는 꿈사땅과 초등부 여러분, 예수님이 으뜸이 되려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는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종이 아니라 누구의 종이고 누구의 명령이기에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종이기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힘들지만 계속해서 인내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삶을 통해서 그 사람이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주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인생은 그 안에 무엇이 계속 흐르겠는가? 하나님의 복이 계속해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분명하게 깨닫고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반쪽짜리 사랑이다. 반쪽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진짜가 아니다. 진짜 사랑은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진짜 사랑이라고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할 능력이 없기에 원수같은 나를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진짜 사랑을 하며 살아갈 때, 여러분의 주변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삶을 누릴 것이라 확신한다. 전도사님도 진짜 사랑을 하고 싶지만, 너무나도 어려워서 지금도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축복의 통로가 되어 진짜 사랑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시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