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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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의 믿음
1+1 의 믿음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여러분, 저는 이번에 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와 보는데요.
제가 태국에 와서 놀란 것이 많이 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태국에도 한국만큼 편의점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한국이나 일본에만 편의점이 많은 줄 알았는데요.
와보니, 태국도 편의점이 정말 많습니다.
또…놀라운 사실은,
태국 편의점에도 한국의 편의점처럼, 똑같은 행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죠.
어떤 행살까요?
1+1 행삽니다.
태국 편의점에도 1+1 행사를 하더군요.
하나를 사면, 또 하나를 덤으로 주는 행사…
저도 평소에 편의점을 자주 가는데요.
편의점에 갈 때마다 항상, 먼저 보는 게 있습니다.
1+1 행사 상품이죠.
어쩌다가….제가 원하는 상품이 1+1인 것을 발견할 때, 저는 속으로 탄성을 지릅니다.
앗싸~
그럴때는.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저와 같은 경험이 있으십니까?
하나를 사는 데…하나를 공짜로 더 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제가 한국에서 사역하는 교회의 올해, 표어가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는 교회”라는 표업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는 교회니까요…
말하자면, 1+1의 은혜라고 할 수 있죠.
저희 교회가 올 한해, 소망하는 것이…사람들이 1+1의 은혜를 누리고, 1+1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도 이런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 1+1의 은혜가 임하고,
복의 복, 1+1의 복이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냥 은혜가 임하기 보다….기왕이면, 은혜 위에 은혜가 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기왕 하나님께 복을 받을 거라면, 복의 복을 더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멘이시죠?
요한복음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은혜는…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충만한 데서 나오는 은혜 위에 은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냥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은혜 위에 은혜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또, 그냥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복 위에 복을 더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 이 1+1의 은혜가 임하려면, 그 전에 우리 안에 먼저 준비되어야 할 1+1이 있습니다.
은혜의 1+1 이전에 필요한 1+1......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의 1+1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1+1이 무엇일까요?
그냥 믿음이 아니라, 믿음 위에 믿음이 더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우리의 믿음이 그냥 믿음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기왕이면, 우리의 믿음이 믿음 위에 믿음이 더하는 1+1의 믿음이 되길 원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우리는 믿음에 대해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믿음에는 급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급수가 있다는 말은 믿음의 크기, 믿음의 점수가 있다는 것이죠.
복음서에 이 믿음의 급수를 매기는 분이 나오고 있죠……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예수님이 매기시는 이 믿음의 급수는, 모두 4 단계의 급수로 나눠집니다.
먼저, 제일 낮은 급수부터 볼까요?
제 1단계의 믿음, 가장 낮은 급수의 믿음…
그것은 ‘믿음 없음’의 단곕니다.
마태복음 13장 58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예수님은 예수님의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죠.
예수님은 그렇게 믿지 않는 고향 사람들,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 앞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셨다는 말씀이죠.
안타깝게도 그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믿음의 수준이 바로 이 수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믿음 없음’의 수준....
믿음이 없는데…이것을 믿음의 급수에 넣을 수 있을까요?
네…넣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우리 중에서도 이런 믿음의 단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이 있어 보이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런데….그런 사람들이라도…..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이런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주의하십시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정말….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사람은 그 십자가로 철저히 회개를 하고, 부활을 경험한 사람이죠.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철저히 회개를 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씻음을 받으셨니까?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을 경험하셨습니까?
이전의 모든 죄악된 삶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렇게 십자가의 회개와 새 삶을 사는 부활이 있어야....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우리가 여전히…. 예수님 믿기 전의 모습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믿음은 ‘믿음 없음’의 수준이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교회를 나오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예전과 같은 삶을 반복해서 산다면…
우리는 믿음의 낙제생인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우리에게도 믿음이 없다면,
주님은 우리 삶에서 아무런 능력도 행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혹시, 이처럼…아직도 1단계의 믿음에 머물러 있다면…
이제라도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믿음이 생기기 시작할 때,
주님은 여러분의 삶에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놀라운 능력을 행하시기 시작하십니다.
믿음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그 다음 믿음의 단계는, ‘작은 믿음’의 단계, 믿음의 초보의 단곕니다.
마태복음 14장 3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이 말씀은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을 보고서, 자신도 물 위를 걸으려고 했던 베드로의 이야깁니다.
베드로는 참, 모험심이 강하고 담대함을 가진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고서,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요청을 기꺼이 들어 주시죠.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의 도전을 하려고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도 믿음의 도전을 하면서….세상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경험합니다.
물 위를 걷다니요…여러분도 물 위를 한 번 걸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베드로는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내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자….. 그는 두려움에 빠지고……결국, 물에 빠지고 맙니다.
바로….그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거죠.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님은 이 때의 베드로의 믿음을 가리켜 ‘의심하는 믿음’, 곧 ‘작은 믿음’ 이라고 규정하십니다.
믿음의 1단계는 믿음이 아예 없는 단계였지만, 믿음의 2단계는 믿음이 시작된 단곕니다.
이 믿음은, 믿음의 초보 단계라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이제 막 믿음을 가진 단곕니다.
이 단계에서는…. 뭐든지 믿고 따를 것 같은 열정이 가득한 단곕니다.
그러나...베드로처럼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면, 어느 순간 의심에 빠지기 쉬운 단계입니다.
여러분은 혹시…이런 믿음의 단계를 경험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 안에 처음 믿음이 생겼을 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뭐든지 할 것 같고,
주님,,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제가 순종하겠습니다…이런 열정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어느 순간, 이런 믿음 앞에 위기의 순간이 찾아 오죠.
내 인생에 무서운 바람이 불어 오고, 두려운 풍랑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믿음의 위기를 맞는 순간이죠.
베드로는 믿음으로 발을 내딛었지만, 어느 순간….주님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바람과 풍랑에 빼앗겨 버렸습니다.
바로…그 때, 그의 믿음이 의심에 빠져 버리죠.
여러분….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살다보면…어느 순간…우리의 시선이 세상의 거친 풍랑과 바람에 압도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풍랑과 바람 앞에서…
주님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실족하게 됩니다. 물에 빠지고 맙니다.
이것이 2단계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우리의 믿음이 이처럼…의심하는 믿음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실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의심에 빠지고, 물에 빠질 때…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처럼….
의심에 빠진 우리의 손을, 물에 빠진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시고, 건져 주십니다.
여러분….여러분의 믿음이 실족하여 의심에 빠질 때,
주님의 손을 잡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비록, 믿음의 단계가 아직도 초보 단계라 할지라도….
주님은 기다려 주십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렇게 믿음의 초보 단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을 이어 교회를 이끄는 리더가 되고, 결국에는 복음을 위해 순교까지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처럼 성장하게 될 것을 소망하고 기대하십시오.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믿음의 3단곕니다.
믿음의 3단계는 본격적인 믿음의 단계, 믿음의 표준이 되는 단곕니다.
마태복음 9장 22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이 말씀은 열두 해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의 이야깁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히, 예수님 앞에는 나서지 못하는 여인이었죠.
이 여인은 감히 예수님 앞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지나갈 때,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된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이 여인의 믿음이 소심하면서 초보같은 믿음이지만, 이 여인의 믿음이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이 여인은….예수님 같은 분은… 그 옷자락에서도 능력이 나오는 분이라고 믿은 겁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너무 대단해서, 그가 입고 있는 옷에서도 능력이 나온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 믿음의 단계는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믿음의 단곕니다.
아마도….여러분 중에는….이 여인처럼, 구원을 경험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여러분이 도저히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걸 경험하는 것이죠.
여러분…이렇게 구원을 경험하는 믿음은 어디서 사작됩니까?
간절함에서 시작되죠.
12년이나 혈루병으로 고생했던 여인에게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어떤 간절함입니까?
병을 낫고자 하는 간절함이죠.
그 간절함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겠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어떤 간절함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도 병을 낫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저마다의 간절함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그 어떤 간절함보다 우리에게 이런 간절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만 믿고 따라가겠다는 간절함….
세상이 뭐라고 해도, 세상이 우리를 비웃고, 세상이 우리에게 욕을 해도,
세상이 우리를 괴롭히고 핍박해도…
오직 예수님만 믿으며, 예수님만 따라 살겠다는 간절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간절함이 우리 안에 진짜 믿음을 일으킵니다.
어떤 믿음이요?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이요.
우리가 예수님만 믿고 따라 살 때,
우리는 날마다 구원을 경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믿음의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마지막, 4단계는 믿음의 가장 높은 단계죠.
믿음의 4단계는 “큰 믿음의 단계”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죠, 마태복음 15장28절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이방 여인의 믿음을 가리켜 큰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어떤 유대인들 보다도, 또 예수님의 제자들보다도, 그리고 믿음으로 혈루병에서 구원받았던 여인 보다도, 이 이방 여인의 믿음이 더 크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이 여인 말고도 큰 믿음이라며 칭찬하셨던 또 한 사람이 나옵니다. 누군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8장 10절을 볼까요.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은 로마 백부장의 믿음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는 누구에게서도 찾지 못한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지금까지 만난 믿음 중에서, 가장 큰 믿음이라는 것이죠.
참,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이 믿음의 급수가 가장 높다고 인정한 사람들이 다 이방인들입니다.
로마 백부장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이죠.
이들은 유대인들 보다도, 그리고….예수님을 항상 따라다녔던 제자들 보다도….더 큰 믿음이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믿음의 우등생들로 인정받은 것이죠.
여러분도 이들처럼, 믿음의 우등생이 되시기 원하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너무나 사모해서 1+1의 은혜,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은혜를 받을 만한 믿음이 준비되어야만 합니다.
특별히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믿음 위에 믿음을 준비해야 할 줄로 압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예수님은 크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저는 이 가나안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보여준 큰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도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믿음을 준비해서 예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고요.
나아가 은혜 위에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볼텐데요.
오늘 말씀 속에서, 가나안 여인이 보여준 믿음,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큰 믿음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입니다.
큰 믿음의 첫 번째 특징은 “울부짖는 믿음” 입니다.
22절과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가나안 여인은, 마침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나와 소리 지르며 울부짖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먼저, 이 여인은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불쌍히 여길 이유를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여인은 그 당시 이스라엘 문화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을 지금 과감하게 하고 있는 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적대적으로 대했습니다.
특히 사마리아인과 가나안 사람은 상종도 잘 안 했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도 나오고 있죠. 한번 볼까요?
26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을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 여인을 ‘개’에 비유하고 계십니다.
태국 사람들은 개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한국 사람들도 개를 좋아합니다.
한국에서, 길거리를 걷다 보면, 개와 함께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죠.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개를 친구처럼, 때로는 자식처럼 데리고 삽니다.
태국에서도 그렇죠?
이처럼, 한국이나 태국은 개를 귀하게 여기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개를 천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표현을 쓸 정도면, 그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얼마나 천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은 유대인에게 멸시를 받을 줄 알면서도, 유대인인 예수님 앞에 감히…나와 간청을 한 것입니다.
게다가 남자도 아닌, 이방인 여자가 유대인 앞에 나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이 여인이 이렇게 행동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도전에는 항상 용기가 필요하죠.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이 여인은 담대하게 용기를 내어, 예수님 앞에 나와 울부짖었습니다.
이 여인이 얼마나 심하게 울부짖었는지, 옆에 있던 제자들까지 나서서 예수님께 간청을 할 정도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울부짖습니까?
간절함이 있을 때, 절박함이 있을 때 울부짖죠.
여러분은 여러분의 문제를 주님께 아뢸 때, 이런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울부짖으며 나아가십니까?
이 가나안 여인은 귀신에 사로잡힌 자신의 딸 때문에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간절하게 자기를 찾고 부르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절대로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잠언 8장 17절 말씀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저는 사실, 자녀가 없어서 이 가나안 여인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충분히 공감이 가시리라 생각됩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자녀는 헤어나올 수 없는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도저히 헤어나올 방법이 없는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울부짖는 것 밖에 없죠.
그 문제를 해결할 유일 한 분 앞에 나가 울부짖는 것입니다.
자녀의 문제 뿐이겠습니까?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나건,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생길 때 울부짖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박하고 간절해도, 우리의 절박함과 간절함은 무뎌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래서 더이상 울부짖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게 맙니다.
그리고는 아예 그 문제에 대해 포기하는 순간마저 오기도 합니다.
어떤 순간입니까?
우리의 절박함과 간절함에 장애물이 나타날 때죠.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우리의 믿음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있습니다.
간절한 순간에, 절박한 순간에 장애물이 나타나는 겁니다.
때로는 그 장애물을 예수님이 두시기도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분명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왔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이 마을을 지나가시기 전부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던 거죠.
예수님이 사람이 고칠 수 없는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이 여인의 딸처럼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고치셨다는 소문을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소문으로 들었던 그 예수님이 자신의 딸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이 여인에게 예수님께 나올 용기를 주었죠.
예수님께 나와 부르짖을 수 있는 담대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으로 나왔던 이 여인에게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그가 믿고 찾아왔던 예수님이 바로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장애물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울부짖는 그 여인에게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신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간절함이 무뎌질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이 순간입니다.
우리의 절박함으로 간절히 부르짖어도, 예수님이 침묵하실 때, 우리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우리의 간절함은 점점 무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침묵에 지쳐서 울부짖는 것을 멈추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예 그 부르짖던 문제를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저도 제 인생에서 하나님의 침묵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마흔 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제 와이프는 저보다 한 살 많은 나이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많은 나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아이를 가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렵게 아이를 가졌는데, 그만 유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그 시간이 참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울부짖으며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계속해서 침묵만 하셨습니다.
그 침묵의 시간이 또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정말이지, 포기해 버리고 싶은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의 결말이 뭘까요?
해피 엔딩일까요?
네….해피 엔딩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해피 엔딩은 아닐 것입니다.
일반적인 해피 엔딩이라면 지금, 저에게는 자식이 있어야 겠죠.
저의 해피 엔딩은 자식이 생긴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침묵을 깨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침묵을 깨시고, 우리 부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식을 주시지 않는 이유를 알려 주셨죠.
그게 뭘까요? 궁금하시죠?
하나님은 우리 부부가 자식에게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기 원하셨습니다.
자식에게 얽매여 살아야 할 시간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식을 통해 누리는 기쁨보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누리는 기쁨을 맛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침묵을 깨시고, 이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 부부의 믿음은 이 일을 통해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는 복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믿음의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죠.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더 큰 믿음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계속 작은 믿음으로 머무느냐의 갈림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하나의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더 큰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작음 믿음에 다시 머무르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간절한 부르짖음에도 예수님이 침묵하실 때, 그 믿음의 부르짖음을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더 큰 믿음을 가지도록 때로는 침묵이라는 시험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에게 침묵하시면서,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신 겁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믿음의 제자리 걸음을 합니다.
믿음의 간절함이 무뎌지고, 믿음의 열정이 식으면서,
때로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까지 합니다.
사실, 저희 부부도요….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나, 저희 부부는 그 시험을 견뎌냈습니다. 그 침묵이 깨질 때까지 견뎌냈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처럼, 이 가나안 여인처럼, 부르짖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의 두 번째 특징이 여기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 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부르짖는 믿음이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장애물을 만났다고, 예수님의 침묵을 만났다고, 포기하지 말고….인내하며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가나안 여인은 비록 예수님의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 울부짖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옆에서 보고 있던 제자들이 나서서 예수님께 간청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이 여인의 끈질긴 울부짖음은 마침내 예수님의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인의 끈질긴 울부짖음은 마침내…예수님의 침묵을 깼고요…그분의 반응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났죠.
예수님의 침묵이라는 장애물은 지나갔지만,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납니다.
어떤 장애물이요? 예수님의 거절이라는 장애물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의 메시아로 온 것이지, 이방인의 메시아로 온 건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에수님은 이방인의 간청은 들어줄 수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의 간청을 단칼에 거절하신 것이죠.
그 거절을 듣고 가나안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
그 다음절을 볼까요?
25절입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가나안 여인에게는 끈질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간청을 거절하셨지만, 여인은 또 다시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단호한 거절에도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간절하게 예수님께 엎드리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자기를 도와달라고 애원을 하면서요.....
자….여인의 끈질긴 간청에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또 그 다음절을 볼까요?
26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그런데, 안타깝게도…..예수님이 여인의 간처을 또 다시 거절하십니다.
두 번째는 더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두 번째는 여인의 자존심까지 상하게 하시면서 거절을 하십니다.
가나안 여인을 유대인이 천하게 여기는 개에게 비유를 하신 겁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볼 때,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수님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
아무리 이방인라해도….인자하고 자비로운 예수님이 어떻게 이런 상처주는 말을 하실 수 있나?
여러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네….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실 때, 정말이지 너무한다 싶을 만큼 시험을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이야기를 아시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어떻게 시험하셨습니까?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바치라는 시험을 하셨죠?
네…..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한다 싶을 만큼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쇠가 더 단단합니까?
더 높은 온도에서 더 높은 강도를 견뎌내는 쇠가 더 단단하죠.
믿음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더 큰 믿음이 되기를 원하시기에, 더 큰 시험을 주십니다.
여러분, 혹시…지금….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시험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아..이 시험을 통해, 나의 믿음이 더 큰 믿음이 되겠구나….라고요.
여러분 모두, 시험을 통과하고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자, 예수님의 이 마지막 시험을 가나안 여인은 통과를 합니까?
27절 말씀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여인은 예수님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합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단호하고 혹독한 두 번의 거절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예수님의 불친절함에도 요동함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가나안 여인의 이런 끈질김과 인내는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여러분, 인내하는 믿음, 끈질긴 믿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다름아닌 소망에서부터 나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날마다 소망 없이 자신의 딸을 보면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우연히 듣게 된 예수님의 소문이 그녀의 마음에 소망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자신의 딸이 나을 수 있다는 소망!
그러면서, 그녀는 예수님에 대해 더욱 알고자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람들의 병을 고쳤는지, 어떤 병들을 고쳤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쳤는지, 또 어디에서 고쳤는지....
가나안 여인은 이곳 저곳에 수소문해서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캐내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떡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면 알게 될 수록, 그녀의 소망은 더욱 커져가고 확고해져 갔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녀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혹은 여러분 자신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도 이루고자 하는 어떤 소망이 있으시다면, 예수님을 더욱 알아 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일하시는지,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더 알아가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품은 자는 예수님을 알고자 힘쓰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그분을 알아가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예수님과 교제하며, 예수님을 더 알아갑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에 더 열심히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여러분의 소망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과 함께 여러분의 믿음도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그 소망은 여러분의 믿음을 끈질긴 믿음, 인내하는 믿음, 흔들림 없는 믿음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큰 믿음의 세 번째 특징입니다.
큰 믿음은 “겸손한 믿음” 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예수님의 말은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입니다.
개라는 동물이 여러분에게 아무리 친근한 존재라 해도, 누군가 여러분을 개에 비유한다면….좋겠습니까?
누군가 저를 개에 비유한다면, 그것이 제게는 큰 상처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처가 될 말을, 가나안 여인은 담담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그냥 인정했고요, 거기서 더 나아가 그렇게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예수님을 설득했습니다.
여러분, 큰 믿음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는 결국,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런 겸손이 결코 쉬운게 아니죠.
우리는 늘, 우리의 의를 내세우려 합니다.
우리가 한 일을 내세우고, 우리가 인정받고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할 때도, 대표 기도를 할 때도, 헌금을 할 때도,
어떻게든…우리 자신이 빛 나고 인정 받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겸손하게 간구하기 보다는, 내가 한 일을 보상 받기 위해, 내가 한 일을 인정 받기 위해 간구합니다.
여러분, 베드로전서 5장 5절 말씀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은 교만을 정말 싫어하시기 때문에,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교만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겸손하십시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이 겸손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니느웨 사람들의 겸손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악하고, 이스라엘의 원수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요나는 그 악하고 원수 같은 니느웨 사람들이 얼마나 싫었으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가기까지 했습니다.
요나는 그렇게 도망치다가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가게 되죠.
이처럼, 요나도 싫어할 만큼 악하고 원수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겸손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얼마나 겸손하게 회개했는지 아십니까?
나중에 요나서 3장을 한 번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되자,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를 했습니다.
게다가 사람 뿐만이 아니라, 가축들에게도 베옷을 입혔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을 보시고, 그들에게 내리고자 작정했던 심판을 거두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자라도 겸손한 자는 기뻐 받으십니다.
여러분, 아합과 므낫세라는 왕을 아시죠?
이 두 왕이 무엇으로 유명합니까? 악한 것으로 유명하죠.
아합은 북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고요. 므낫세는 남유다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장 악한 왕이었지만,
이 두 왕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언제 은혜가 임했습니까?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할 때, 용서 받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악한 일을 저질렀는데요.
하나님이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서, 심판을 선포하시죠.
그 때, 아합이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베옷으로 갈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아합이 겸손하게 회개하자, 그에게 임할 재앙을 보류하시게 됩니다.
또, 므낫세는 어떻습니까? 온갖 이방 신상을 세우고, 자기 아들을 이방 신의 제물로 바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갖가지 악한 일을 저지릅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시고, 앗수르에게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런데요. 그가 그렇게 끌려가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하죠.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므낫세는 비록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지만, 그 때라도 회개를 했습니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겸손한 모습에….하나님은 그를 포로에서 풀려나게 하시고, 다시 이스라엘 왕위에 앉는 은혜를 주시죠.
여러분, 아합 왕과 므낫세 왕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악한 자도, 하나님 앞에 겸손할 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겸손을 기뻐하시죠.
여러분, 악한 자의 겸손을 주님이 기뻐하신다면, 하물며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자의 겸손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하나님 앞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마지막 단계는 겸손입니다.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부르짖었는데, 자존심 때문에, 상처 때문에 교만에 빠지지 마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죄인인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교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인일 뿐이라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 우리가 잘 났어도, 인정 받을 일을 했어도,
우리가 결국, 죄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드십시오.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우리는 정말이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신이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고, 아무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면서, 여인은 한 가지 만을 믿음으로 붙들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자격 없는 자에게도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붙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겸손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붙들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아무 것도 받고 누릴 자격이 없지만, 주님은 그런 자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여기까지 가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하는 믿음.
내가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는 믿음.
그러나, 그렇게 아무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님은 은혜를 주신다는 믿음.
이 믿음까지 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가장 큰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 이른 자는 주님께 자신을 굴복시키고 완전히 복종하게 됩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성경 책에 표시할 수 있는 분은 줄을 그으십시오.
22절에서, 처음 예수님께 부르짖을 때….“주 다윗의 자손이여”…..
25절에서, 두번 째로 부르짖을 때….”주여, 저를 도우소서”….
27절에서, 세번 째로 부르짖을 때….”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처럼, 가나안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고백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철저하게 주인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 자신이 철저하게 예수님의 종임을 고백하는 것이죠.
여러분, 종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인에게 온전히 복종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종은 주인에게 딴지를 걸 수 없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복종해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종에게는 또 하나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주인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가나안 여인은 주인되신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에게 복종하면서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여기까지 이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온전히 신뢰하고 복종하는 믿음…
자…이제….지금까지 보았던 믿음의 단계들을 한 번 되짚어 볼까요?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네 가지 믿음의 단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가 믿음 없음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겉으로는 믿음이 있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믿음이 없는 상탭니다.
이 믿음의 단계에서는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음이 있는 척 스스로를 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이런 믿음의 단계에서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아무런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십니다.
두 번째가 믿음의 초보 단계입니다.
믿음이 시작되었지만, 믿음으로서 부족함이 있는 단곕니다.
순수함과 열정으로 도전하는 믿음의 단계지만, 위기가 닥치면 의심하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믿음이 좋은 것 같아도, 인생에 닥치는 풍랑과 비바람에 그 믿음이 흔들리고 의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실망하고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믿음이 흔들리며 의심에 빠지는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더 높은 단계로 올라 가기를 기다리며 응원하십니다.
세 번째가 본격적인 믿음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구원을 경험하는 믿음의 단곕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간절함이 이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많은 간절함이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간절함은 주님만 믿고 따르겠다는 간절함이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다다라야 할 큰 믿음의 단곕니다.
큰 믿음의 단계에서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이 큰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믿음에 이 세가지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로…. 부르짖는 믿음입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이, 큰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두 번째로….. 장애물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부르짖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더 큰 믿음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그 시험은 때때로 너무 힘든 시험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길이 보이지 않고, 아무 답도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긴 침묵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데….믿음이 크면 클 수록, 더 큰 시험을 주십니다.
우리는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하며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인내하지 못하고 시험에 실패하는 사람은, 여전히 작은 믿음에 머무르게 됩니다.
세 번째로….큰 믿음의 마지막 특징은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요, 나는 예수님의 종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하는 큰 믿음은 겸손하게 인내하며 울부르짖는 믿음이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큰 믿음이 맞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큰 믿음이라면, 무언가를 크게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무언가를 크게 성취하고, 눈에 보이는 근사한 열매들이 있어야, 큰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물론…믿음의 역사에는 눈에 보이는 멋진 열매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못 고칠 병이 고침을 받고,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들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상관없이도 이런 놀라운 일들을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무언가 보이는 열매를 맺도록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큰 믿음에 이르는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다르지 못할 높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믿음에 이르는 길은 가깝고도 낮은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분 앞에 나아가 겸손하게 울부르짖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큰 믿음입니다.
믿음 위에 믿음이 더해지는 1+1의 믿음입니다.
이 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이 믿음에 이르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께 그 믿음을 인정받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여인처럼 부르짖음이 응답받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1+1의 은혭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신이 큰 믿음에 이르고, 또 자신의 딸이 고침을 받는 은혜까지 얻었습니다.
여러분도 큰 믿음에 이르고,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