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응답

새 예배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Notes
Transcript

통성기도

제가 모태신앙이다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를 다니면서 예배에도 수도 없이 참여하고, 기도회나 수련회에도 쫓아간 적이 있는데요. 교회에서 항상 기도회나 수련회 같은 곳에 가면 한국 교회에서는 꼭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통성기도 라고 하는 것인데요, 보통 통성기도 하면 “주여!”라고 외치면서 큰 소리를 내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고, 만안교회에서도 매번 새벽기도때 통성으로 기도하고, 부흥회 때도 그렇게 큰 소리로 통성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통성기도라고 하는 것은 한국 교회에서 선교사들이 따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생겨난 교회 문화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초창기 통성 기도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막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평양 대부흥이 있던 1907년의 시기에 북장로교회 선교사인 맥큔(G. S. McCune) 선교사님이 이 통성기도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는데요,
“헌트 목사가 설교를 하고 리 목사가 몇 마디 광고를 한 후에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라고 했더니 그 순간 갑자기 예배당 안에 가득 모여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 어느 한 사람도 혼자 목소리를 크게 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어서 귀를 기울여 들으면 각자의 기도소리를 분간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라고 표현을 하면서 통성 기도라고 하는 것이, 그 원래 뜻, ‘소리를 통하다’라고 하는 말처럼 ‘함께 소리를 내서’ 기도하던 것이 원래 통성 기도의 기원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저희가 새 예배서를 통해서 예배 순서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지요. 화면을 보시면, 설교를 통해서 말씀이 선포된 이후에, 그에 대한 저희들의 응답으로 합심기도, 신앙고백, 찬송, 평화의 인사, 봉헌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오늘은 바로 이 합심기도 혹은 통성기도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설교 후에 이어지는 기도와, 신앙고백, 찬송, 봉헌으로 이어지는 순서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설교 후 합심기도

본문말씀 4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Acts 2:42 NKRV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말씀을 전한 이후에 신도가 삼천 이나 더했다, 라고 하는 말씀 이후에, 그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서 떡을 떼고 기도하기에 힘썼다 라고 하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교회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성경 말씀을 읽는 전통과 또한 그것을 잘 풀이해서 가르치는 전통이 있어왔는데요, 그 말씀에 대한 첫 반응으로 항상 등장하는 것은 바로 회중들이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보여드렸던,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글에는 성경을 가급적 읽을 수 있을만큼 읽고, 그것을 말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설교를 행했다, 라는 것을 말씀드렸는데요, 그 이후에 화면에 보시는 것처럼 “모두 함께 일어나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설교 후에 함께 일어나서 기도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죠.
이 함께 드리는 기도는 아마 저희가 알고 있는 합심기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 겁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같은 글 앞에는 세례 후에 함께 공동으로 기도하는 모습에 대해서 그리는데요, 아마 함께 외워서 기도드리는 기도의 형태가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모두가 함께 기도했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서방 교회에서는 설교 후에 하는 중보기도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11세기 사람이었던 프랑스 샤르트르의 이보라고 하는 주교는 한 책에서 주일에 설교가 마치면 모든 성도들이 함께 중보기도를 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건 종교개혁 이후로도 이어졌습니다. 루터나 칼뱅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쓴 예배문을 보시면 똑같이 설교 후에 대체로 긴 시간의 중보기도, 그리고 주님의 기도를 한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만큼 설교 후에 “다같이 드리는 기도”는 아주 오랜기간 지켜져온 전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교회에서는 거의 전대미문의 형태의 기도가 등장했어요. 바로 통성기도 혹은 합심기도라고 불리는 기도의 형태죠. 회중들이 다 각자 자신들의 기도를 하고, 심지어 옆사람에게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소리를 내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의 내용은 각각 다르지만 그 소리가 함께 모여서 통하여질때, “통성”할 때에 여러분도 기도하시다보면 느끼실 거예요. 소리가 모여지는 만큼 마음이 함께 모여지는 한국인만의 고유한 기도의 방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함께 사도행전 1장 13-14절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Acts 1:13–14 NKRV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이렇게 사도들과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서, 합심해서 기도하기에 힘쓰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사도들이 함께 합심해서 기도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감사하며 한국 그리스도인들만의 고유한 전통으로서 합심해서 기도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신앙고백

두번째로 알아볼 것은 신앙고백입니다. 화면을 함께 보시면, 새예배서에서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는 것을 설교 후에, 합심기도를 하고나서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요, 만안교회에서는 지금 교독문과 송영 사이에 하고 있는데요, 사실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의 선포와 훨씬 큰 연관이 있습니다.
로마서 말씀을 보시면,
Romans 10:8–10 NKRV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도바울이 ‘신앙고백’ 즉 입으로 믿음을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요, 보시는 바와 같이 먼저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이죠? 사도들이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듣는’ 행위가 있어야 겠죠.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것에서 ‘마음으로 믿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오는 것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나서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해서 믿고,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입니다.
다만 초대교회에서는 사도신경과 같이 “우리가 이렇게 신앙고백을 합시다”라고 정해진 것이 없었습니다.
Matthew 16:16 NKRV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자신의 고백을 했구요,
Galatians 2:20 NKRV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사도바울도 “제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에, 이제는 예수님께서 제 안에 살고 계십니다”라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있지만, “어떻게” 신앙고백을 할 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없었죠.
아마 오늘날의 사도신경의 가장 원시적이고 초창기의 형태는 기원후 2세기의 문헌들에서 발견이 됩니다. 이레네우스라고 하는 2세기의 갈리아 라고 하는 지방의 주교는 이단 논박이라고 하는 책에서 사도들로부터 받은 신앙, 이라고 하는 것으로 “전능하사 천지와 바다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로 시작하는, 오늘날의 사도신경과 비슷하지만 차이도 많이 있는 신앙고백을 소개합니다.
다만 이 신앙고백이 예배 시간에 다같이 고백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다만 오랜 기간동안 “신앙의 규칙”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이단을 가려내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의 핵심을 이 시기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이렇게 신앙고백을 합시다”라고 명확하게 정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4세기, 먼저는 기원후 325년에 열린 니케아 공의회, 그리고 381년에 열린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혹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라고 불린 회의에서 정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라고 하는 것이 정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에 따라서, 또 교회에 따라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는데요, 대략 8세기 경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정립되면서 원래는 성찬식을 할 때나 아니면 세례식을 할 때에 사도신경이 낭송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점차 복음서를 읽고서 사도신경을 낭송하거나 아니면 짧은 설교 뒤에 낭송하거나 하는 등, “어디서 사도신경을 읽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러다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가들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하는가, 에 대해서 정리해놓은 문서들이 생겼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칼뱅의 경우에는 성찬식을 행할 때에, 설교 말씀을 하고 나서, 중보기도를 하고, 사도신경을 낭송하고, 그 이후에 성찬을 진행하는 순서를 1542년 즈음에 제네바 예식서에서 작성하게 됩니다.
로마서 10장 8-10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Romans 10:8–10 NKRV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도바울의 이 말씀처럼,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에게 선포되어지시고, 또한 저희가 그것을 듣고, 마음에 믿어서,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응답하여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찬양과 봉헌

마지막으로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한 이후에 이어지는 찬송인데요, 지금까지 계속해서 저희가 보고 있는 것은 성경봉독과 설교를 통해서 선포되어진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서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굳이 찬양을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요, 새예배서에서도 보면 그 뒤에 봉헌이 있습니다. 만안교회에서는 설교 후에, 목사님이 기도를 하시면, 그 이후에 봉헌찬송을 부르면서 함께 봉헌하잖아요? 지금처럼 말씀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의미로서 봉헌찬양과 함께 봉헌하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말씀 44-45절을 보시면요,
Acts 2:44–45 NKRV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난 이후에 사람들이 서로 함께 물건을 나누고 통용했다, 필요에 따라서 나눠주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말씀이 선포되어지면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가장 초창기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신명기 26장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Deuteronomy 26:12 NKRV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신명기에서 묘사하는 십일조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십일조를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먹고 배부르게끔 하도록 한 것이 십일조 였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통처럼 초대교회에서도 그렇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따라서 나눠주기에 힘썼다는 것이죠.
그래서 본문말씀 46-47절 말씀도 보시면,
Acts 2:46–47 NKRV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날마다날마다 마음을 같이해서 성전에도 모이기에 힘썼고, 여기서 집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좀더 헬라어 원문의 표현을 살리면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서로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어먹었다고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렇게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힘썼다는 것이 처음 사도들의 선포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교 후에 봉헌 시간을 갖는 것은 두가지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을 보시면
Hebrews 13:15–16 NKRV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첫째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 그러니까 선포되어지는 말씀이죠, 그 말씀의 열매로서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다른말로 하자면, 봉헌이라고 하는 것은 저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로 응답하는것,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16절 말씀처럼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주는 것, 오늘 본문말씀에서 보았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처럼, 서로 가진 것을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요, 봉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로 찬양하고 봉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단순히 ‘좋은 말씀 들었으니까 점심 밥값은 내야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로 응답하고, 또한 가진 것을 서로 나누어주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예배자가 되어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합심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함께 마음을 모아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하고 함께 모여서 기도했던 것처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기도하기를 힘썼던 것처럼, 또 이 땅에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에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에 응답하여 통성으로 합심해서 기도했던 것처럼, 저희 또한 말씀에 응답하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신앙고백은 말씀에 응답하여 우리의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처럼, 먼저는 말씀이 있고, 듣는 것이 있고, 들어서 믿고 구원을 받았으면, 그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은 이후에 함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찬송과 봉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감사의 응답이고, 또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단순히 돈을 내는 헌금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이고, 또한 처음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접한 그리스도인들처럼 가진 것을 필요에 따라 나누고 베푸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봉헌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것에 함께 마음을 모아서 기도하며, 들음에서 나온 믿음을 저희의 입술로 고백하며, 찬송과 봉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려드리고, 또한 그 말씀의 열매로서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기를 잊지 않으며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합심기도

오늘 함께 들은 말씀처럼 이 시간 짧게 하나님 앞에 합심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 원하는데요, 저희가 지금까지 살면서 드린 예배들 가운데, 수많은 말씀들이 있고, 또한 저희가 읽은 말씀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그저 흘려보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그 말씀을 통해서 심긴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고, 또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게 해달라고 함께 합심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