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거주자들

Understanding_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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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1) 오늘도 힘주시고, 특별히 병중에 있는 성도님들, 주님 위로하여주시고, 온전히 치료하여 달라고
(2) 다음세대위해 기도합시다. 올한해 홀리몰리, 홀리아크, 홀리본 더 부흥되게 하시고,, 또 실기와 수능과 면접을 고3 재수, 3수친구들, 이번에 꼭 대학가서 청년부가서 신앙생활 잘하게 해달라고
(3) 선교를 위해 기도합시다.
(4) 마지막으로 청년대학부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청년들의 직장, 취업, 결혼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우리 청년부 부흥을 위해서
주님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 영광위해 살아가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송가 : 324장 예수 나를 오라하네

본문

느헤미야 11:1–36 NKRV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3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들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자기 성읍 자기 기업에 거주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거주한 그 지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하니 4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이니 그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 손이며 5 또 마아세야니 그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 손이요 스가랴의 육대 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 손이라 6 예루살렘에 거주한 베레스 자손은 모두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였느니라 7 베냐민 자손은 살루이니 그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 손이요 이디엘의 육대 손이요 여사야의 칠대 손이며 8 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모두 구백이십팔 명이라 9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10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11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 손이며 12 또 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형제니 모두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이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 손이요 말기야의 육대 손이며 13 또 그 형제의 족장된 자이니 모두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이니 그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 또 그들의 형제의 큰 용사들이니 모두 백이십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들의 감독이 되었느니라 15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이니 그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그들은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7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이니 그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자가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은 모두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19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이니 모두 백칠십이 명이며 20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살았고 21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들의 책임자가 되었느니라 22 노래하는 자들인 아삽 자손 중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 이는 왕의 명령대로 노래하는 자들에게 날마다 할 일을 정해 주었기 때문이며 24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26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8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29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주하며 30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마을들과 라기스와 그 들판과 아세가와 그 주변 동네들에 살았으니 그들은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31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주변 동네들에 거주하며 32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 로드와 오노와 장인들의 골짜기에 거주하였으며 36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일부는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제시해주신 설교의 방향성(대지)과 그동안 우리가 나눈 주석적 통찰(역사적 배경, 희생의 의미)을 바탕으로 작성된 설교문입니다.

[설교문] 거룩한 불편함을 선택한 사람들

제목: 거룩한 불편함을 선택한 사람들

들어가는 말: 텅 빈 성읍의 딜레마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서를 통해 우리는 무너진 성벽이 재건되는 감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성벽이 완공되고 영적 대각성 집회까지 마친 지금, 느헤미야에게는 아주 현실적이고 심각한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구 문제'**였습니다. 성벽은 튼튼하게 지어놨는데, 정작 그 안에서 살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오늘날의 화려한 신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적으로부터 공격받기 가장 쉬운 타겟이었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폐허 더미가 가득했습니다. 집을 새로 지어야 했고, 무엇보다 성 안에는 농사지을 땅이 없으니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봐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누구나 안전하고, 익숙하고, 먹고살기 편한 '자기 고향 마을'에 살고 싶어 하지, 위험하고 불편한 '예루살렘'에 들어와 살고 싶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장은 이 텅 빈 거룩한 성을 어떻게 채웠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보여줍니다.

1. 거룩한 부담감을 선택한 사람들 (1-2절)

느헤미야 11:1–2 NKRV
1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2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느헤미야는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합니다.
첫째는,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입니다(1절).
1절을 보면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라고 기록합니다. 리더들이 먼저 짐을 졌습니다. "나를 따르라" 말만 한 것이 아니라, 가장 불편한 자리로 먼저 이삿짐을 옮긴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리더십입니다.
둘째는, '제비뽑기'와 '자원함'의 투 트랙(Two-Track)입니다.
지도자들만으로는 부족했기에, 나머지 백성 중 제비를 뽑아 10분의 1을 강제로 이주하게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운이 나빠서' 걸린 것 같지만,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십시오. 아주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느 11:2)
제비 뽑힌 사람들 외에도, "제가 가겠습니다!" 하고 손을 든 '자원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그들을 향해 진심으로 축복했습니다. 왜 축복했을까요? 그들이 가는 길이 **'고생길'**임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예루살렘 이주는 삶의 터전을 옮기는 희생이었습니다.
익숙한 이웃과 헤어져야 합니다.
자녀들은 친구들과 떨어져 낯선 폐허에서 놀아야 합니다.
시골 농토에서 오는 수입을 포기하고, 성전 봉사라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 '불편함'을 기꺼이 선택했을 때, 폐허였던 예루살렘은 비로소 **'거룩한 성(Holy City)'**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바쁩니다. 직장 생활, 자녀 교육, 생계를 꾸리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부유해지니까 -여가생활….여행, 소비생활…시간뺏김..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점점 '섬기는 이'들이 줄어듭니다. 예배만 드리고 조용히 사라지는 '익명성' 뒤에 숨고 싶어 합니다. 봉사의 자리는 마치 당시 예루살렘처럼 '시간을 뺏기고, 몸이 힘들고, 부담스러운 자리'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교사로, 주차 봉사로, 식당 봉사로, 찬양대로 그 '거룩한 불편함'을 자원했기에 오늘 우리가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뽑혀서 그 자리를 지키는 분들도 귀하게 보시지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이 불편한 십자가를 제가 지겠습니다"**라고 자원하는 자들에게 더 큰 하늘의 복을 내리실 줄 믿습니다.

2. 예루살렘과 마을의 조화 (25절 이하)

그렇다면 예루살렘에 살지 않고, 지방 마을에 남은 90%의 백성들은 아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설교의 두 번째 포인트는 **'머무는 자와 흩어지는 자의 조화'**입니다.
느헤미야 11:25 NKRV
25 마을과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일부는 기럇 아르바와 그 주변 동네들과 디본과 그 주변 동네들과 여갑스엘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며
11장 25절부터 36절까지는 지루해 보일 정도로 수많은 마을의 이름이 나옵니다. 몰라다, 하살수알, 브엘세바... 이들은 예루살렘 밖에서 삶을 꾸려간 사람들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거주자 명단만큼이나 꼼꼼하게 이 마을 거주자들의 위치를 기록합니다. 왜일까요?
'예루살렘(성전)'을 지키는 10%가 존재하려면, 밖에서 열심히 일해서 양식을 공급해 주는 90%의 '마을(세상)'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은 예배와 성전 수호를 위해 전적으로 헌신했습니다. 반면, 마을에 사는 자들은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해서 얻은 소득의 십일조를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그 물질적 후원이 있었기에 성전의 찬양 소리가 멈추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적용]
우리는 종종 이분법적인 생각에 빠집니다. "교회 일은 거룩하고, 직장 일은 세상일이다." "목회자나 선교사는 1등 신자고, 직장인은 2등 신자다."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그 비교를 거부합니다.

설교 적용 및 결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퍼즐 조각입니다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 11장의 인구 배치를 오늘날 우리 교회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세 가지 거룩한 역할이 보입니다. 이 셋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교회는 건강하게 서지 못합니다.
1. 전적으로 헌신하는 그룹 (교역자/선교사)본문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처럼, 생업을 내려놓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전을 지키는 분들입니다. 이들은 교회의 영적 심장을 뛰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들이 영적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도로, 물질로 후원해주셔야 합니다.
2. 교회와 세상의 가교가 되는 그룹 (장로/권사/중직자)오늘 본문 1절에 나온 '지도자들'과 같습니다. 이분들은 세상에서 직장 생활도 치열하게 하시면서, 동시에 교회의 가장 무거운 짐(행정, 재정, 봉사)을 지는 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고단한 자리입니다. 주중에는 일터에서 전쟁을 치르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쉴 틈 없이 섬깁니다. 이분들의 '이중 헌신'이 있기에 교회의 뼈대가 튼튼히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분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존경해야 합니다.
3. 세상 속에서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룹 (성도/직장인)본문의 25절 이하, '마을'에 사는 대다수의 성도님입니다. 혹시 "나는 교회 봉사를 많이 못 해서 믿음이 부족한가?"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주 무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실력을 인정받는 것.
가정에서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
세상에서 번 물질로 교회의 필요를 채우고 구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밖 마을을 지키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승리해야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론: 먹든지 마시든지 (고전 10: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느냐, 성 밖 마을에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목사냐, 장로냐, 평신도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에서 이 모든 것을 꿰뚫는 하나의 원리를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고린도전서 10:31 NKRV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교회 주방에서 밥을 푸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요,
회사에서 서류를 결재하고 거래처를 만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비교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릴 때, 우리 교회는 예루살렘 성벽처럼 견고하고 아름답게 세워질 줄 믿습니다.

맺는 말: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느헤미야 11장은 단순한 인명록이 아닙니다. "누가 하나님의 집을 세울 것인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도 두 부류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교회의 빈자리를 보고 "내가 그 짐을 지겠습니다" 하며 '거룩한 불편함'을 자원하는 예루살렘의 헌신자들. 교역자
그리고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하나님 나라를 떠받치는 마을의 사명자들.
여러분이 지금 서 있는 그곳이 예루살렘이든 마을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자리'로 알고 지켜내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넘치는교회 모든 성도님이 각자의 자리에서 이 거룩한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성벽을 든든히 세워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V. 결론과 결단

-

V. 기도문

하나님 우리가 교회에서 거짓된 가르침을 경계하게 하시고, 또 잘못된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지 않게하시고 오직 참된 복음을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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