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그러나’, 하나님의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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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느헤미야 9:23-38
제목: 우리의 ‘그러나’, 하나님의 ‘그러나’
[서론]
제가 요즘 ‘목회자 학교’라는 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솔직히 학교라기보다는 세미나에 가까운 곳인데요.
거기서 한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분의 이력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50대 초반정도 되시는데 벌써 4번째 개척 교회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저한테 위로가 되더라구요.
이 분이 저희 세미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써 배우시려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어떻게 4번씩이나 시도할수 있으셨을까?”
그 용기와 끈기가 너무나 멋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실패에 그리 관대하지 않습니다.
한번의 실패=무능력으로 낙인찍히는 세상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도전을 꺼리고, 모험보다는 안전을 선택합니다.
예를들어, 수많은 아이들이 의대에 들어가려는 것이 그렇습니다.
한때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상상을 초월했던 일도 그렇습니다.
실패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이기에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가진 게 많은 집안 아이들일수록 도전을 더 많이 합니다.
왜일까요?
어차피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실패가 곧 생존의 위협이 됩니다.
그러니 더욱 도전과 모험을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생은 어느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를 겪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다 성공할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일에서는 성공했지만, 가정에 실패한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경제적으로는 여유롭지만, 인간관계에 실패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식들은 성공했지만 정작 자기 건강은 돌보지 않아 병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쩌면 이게 인간의 연약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올 한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까?
올 한해 내 삶은 완벽했다고 말할 자신이 있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그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요?
우리의 실패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첫번째 본론]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 보겠습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수많은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단 52일만에 성벽을 완공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진게 아닙니다.
무너졌던 공동체가 다시 세워지는 회복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러자 감격에 겨운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왜 일까요?
성벽이라는 외형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너진 내면을 말씀으로 다시 세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자 놀랍게도 백성들이 모두 울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불순종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불순종때문에 자신의 민족과 나라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눈물은 슬픔의 눈물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불순종했지만 지금 그들은 이 땅에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다시 세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기에 울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본 자만이 진짜 눈물을 흘릴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않았던 초막절을 지킵니다.
초막절은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공급과 보호, 인도하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뿌리를 다시 되새기고,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세워진 삶을 회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초막절이 끝나자 다시 모여 금식하며 죄를 깊이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레위인들이 대표로 나서서 이스라엘 역사의 죄악들을 낱낱이 고백합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인 느헤미야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9장 23절부터는 가나안 땅에 도착한 후에 이야기입니다.
광야에서 그토록 불순종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코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때문입니다.
25절입니다.
“자손은 요새화된 성채들과 기름진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과 이미 파 놓은 우물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과 과일이 흐드러지게 열리는 나무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먹고 만족하게 생각했으며, 살이 쪘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그 큰 복을 한껏 누렸습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던 이스라엘이 이제 땅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풍요를 누리며, 먹고 만족하며 살찌는 수준까지 복을 누립니다.
그런때 그때 바로 문제가 시작됩니다.
26절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 반역하였으며, 주님께서 주신 율법을 등졌습니다. 주님께로 돌아가라고 타이르던 예언자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엄청나게 주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잊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자신들에게 경고하던 예언자들까지 죽여버립니다.
육체는 살이 쪄갔지만, 그들의 영혼은 메말라간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시고, 스스로 깨닫게 하십니다.
징계를 통해 그들을 다시 깨우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사사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죄를 짓고, 징계를 받고, 부르짖고, 구원받고, 다시 죄를 짓고
이런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28절입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살만하면, 주님께서 보고 계시는데도, 또다시 잘못된 일을 저질렀습니다.”
“살만하면 죄 짓는다.”
이게 이스라엘의 민낯입니다.
왜 이럴까요?
29절에 그 이유가 등장합니다.
“돌이켜 주님의 율법대로 바로 살라고, 주님께서 엄하게 타이르셨지만, 그들은 거만하여 주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지키기만 하면 살게 되는 법을 주셨지만, 오히려 그 법을 거역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주님께 등을 돌리고 목이 뻣뻣하여 고집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목이 뻣뻣하여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도 여전히 자기 뜻이 옳다고 고개를 듭니다.
이런 반복적인 불순종의 결과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하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올 한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까?
힘들고 어려울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다시 내 고집대로 살아갑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삶의 기준은 여전히 세상 제국의 질서를 따라갑니다.
남들 하는 거 다하고 살아갑니다.
마음 속에는 은밀히 세상 제국의 우상들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니 더이상 하나님의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양심은 점점 죄에 무뎌지고, 자기 뜻과 생각이 삶의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와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민낯입니다.
[두번째 본론]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31절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사람을 불쌍히 여기셔서, 멸망시키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목사님,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해서 나라가 없어졌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네 맞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분명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다시 돌아와 성전과 성벽을 다시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왜 일까요?
이스라엘은 회복되어야 할 어떠한 자격도, 근거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실패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설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세상도 실수와 실패에 관대하지 않고, 두번의 기회를 잘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실수와 실패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제가 담당했던 한 친구가 제게 자신의 간증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어릴적부터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 폭주족이 되었습니다.
밤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싸우러 다니며, 얼굴에 흉터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고3이 되던 해, 그 친구가 갑자기 정신을 차립니다.
그때 정신차리면 늦었을거 같죠?
놀랍게도 내리 3수를 한 끝에 결국 서강대에 들어갔습니다.
무엇이 그 친구를 변화시킨 것일까요?
바로 아버지입니다.
그 친구가 아무리 사고치고 늦게 집에 들어와도 아버지가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아들이 들어와야 그때서야 비로소 주무셨다고 합니다.
그 기다리는 아버지를 보며 어느 순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복음,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가 잘해서 받는 보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온갖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온 탕자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둘째 아들을 다시 찾을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기다림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 등을 돌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 엎드릴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이런 고집과 교만, 끊임없이 반복된 실패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결코 너를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너 대신 죽었으니 너는 나 대신 살아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매번 실패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낙심하고 계신가요?
제가 그렇습니다.
이런 우리의 연약한 모습에 하나님은 “그러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
이러한 은혜 앞에 다시 주님 앞에 엎드릴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느헤미야 9장의 회개 기도는 단순한 역사 회상이 아닙니다.
눈물로 죄를 고백하고, 말씀 앞에 자신들을 돌아보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세우는 회복의 시작점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이전까지는 ‘그들’이라고 부르더니 이제부터는 ‘우리’라고 주어를 바꿉니다.
과거 자신의 조상들의 죄와 자신들의 죄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아니라면 살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특별히 이 기도는 이스라엘의 새해, 초막절 직후에 드려진 것입니다.
자신들의 계속된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걸맞는 삶을 다시 살겠다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언약의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러나’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지만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구원하시고 다시 시작할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그러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그러나’가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묻고 결단해야 합니다.
“올 한해 우리는 무엇에 실패했고,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왔습니까?”
혹시 세상의 성공만 좇느라 말씀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내 뜻과 생각을 고집하며 교만해지지는 않았습니까?
예배는 드리지만 여전히 제국의 우상을 은밀히 마음에 품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이제 이스라엘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은혜 앞에 다시 언약을 세워가야 합니다.
올 한해가 한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무거운 죄와 짐을 털어 버려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새롭게 출발할 때입니다.
올해 실패했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우리의 실패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년에도 또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악과 실패보다 더 크고 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실패를 덮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거대한 제국이라는 세상 속에서 복음으로, 말씀으로 다시 시작합시다.
‘그러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올해 마지막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새해 시작을 ‘은혜’로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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