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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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지난주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장 가운데 그의 선하심을 잘 살펴봤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서 알아봤음.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음. 사람이 죽어도 이행되고 사람의 실수나 실력에 따라 변하지 않음.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작정은 영원하시고 우리도 그 안에 포함돼 있음. 이번 한 주간도 그의 작정을 믿고 걸어갔을 것이라고 생각이 듦.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죽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할 지도자를 여호수아로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과 더불어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했던 것 같이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으사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명령, 율법을 떠나지 말고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시고 명령하신 것을 잘 살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과 명령은 그에게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에게도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을 세우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내가 의지했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주만 따르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세에게 말 했던 땅을 주시고 그와 함께 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 지키라고 명령하시면서 그 땅에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시죠.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말씀하신 것을 통해 현재 여호수아에게 두 가지 부분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세와 비교의식 입니다. 모세는 성경에서 평가하시기는 이와 같은 선지자가 없을 것이고,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직접 대화하신다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반면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 종, 도우미 입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기가 그 자리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일지 모릅니다. “모세처럼 내가 섬길 수 있을까?” “모세의 옆에서 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던데 이 사람들의 원망에 나는 기도할 수 있나?” “나는 온유하지도 않고 리더보다는 옆에서 도우는게 더 잘 맞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자기의 한계에 빠지고 주변에서 들리는 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가장 가까이서 봐왔던 여호수아에게 모세과 비교하여 자기의 한계를 정하게 하심이 아니라 도리어 모세와 함께 하셨던, 모세의 길, 능력, 힘 되어 주셨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여호수아 1: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와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지금 여호수아에게도 와서 말씀하시고 선포하시며 약속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심. 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함께하시겠다고 정확하게 말씀하심. 이것은 모세에게 능력이 있기에 그가 하나님이 함께할 만한 거룩함이 있기에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의지가 보여지고 있는 것임. 여호수아 스스로 너무 잘 알지 않았을까? 자기가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실수하고 얼마나 더러운지 그런데 누가 함께 하신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임.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 스스로가 여러분 얼마나 더러운지 오늘의 결단이 얼마나 미약한지 알지 않음? 누군가를 쉽게 정죄하고 비판하고 용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름. 그런데 이런 자와 누가 함께 하시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임.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임.
그렇다면 이렇게 구원이 되는 것이니까 내가 맘대로 살아가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없음. 진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때문에 어떻게 죽으셨는지 알면 그럴 수 없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공간에 갇히시게 됐음. 학교에 갇혀 있기 싫잖음? 우리 그런데 인간의 모습으로 걸으시고 배고프시고 더위를 당하시고 피곤함을 당하셨다는 것임. 심지어는 십자가를 지는데 침뱉음을 당하셨음. 왜? 사랑하셔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성취하셧음. 자기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실 만큼 아까워하시지 않으셨음. 온갖 조롱과 박해와 멸시를 당하셨음. 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려고 더 이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보고 두실 수 없으셔서 우리와 화목하려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하나임 같이 우리도 그 하나됨에 동참시키려고 하는 것임. 그런데 죄가 여전히 달콤함? 그럴 수 없음. 감사한 것으 이 놀라운 구원을 누구의 의지로 주신다고? 하나님의 의지임. 기뻐하시고 찬양하십시오. 그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영원하심.
또한 어떤 분은 이렇게 싸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음. 그러나 진짜로 천국의 소망을 얻고 부활 소망을 얻은 자는 더 이상 이 싸움이 짐이 아님. 천국을 얻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얻었기에 싸울 수 있다는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안다면 더 이상 음란에서 도망치고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부인하고 주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받는 박해와 고난이 어려운 것이 아님. 이 놀라운 은혜가 어디에 기록됨? 이 설교자에 말에 능력이 있나? 아님.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음. 그의 약속을 붙드십시오. 그의 약속 앞에서 견디고 인내하십시오.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약속을 믿고 붙잡으시길 소망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둬야 합니다. 누군가와 자꾸 비교의식이 생기고 세상이 가진 것에 부러운 마음이 생기거나 미래에 어떠함으로 인하여 두려울 때가 있음. 그럴 때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함. 심지어는 누군가가 신앙의 좋은 모델이 되어주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도 그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도 죄인입니다. 그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멀리서 봤을 때 빛으로 보이지만 정작 그 삶을 살펴보면 눈물과 부르짖으며 무릎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죄와 피흘리기 까지 싸우는 피투성이와 같은 삶이 그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도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반대로 이러한 신앙의 모델이 아닌 세상의 능력, 외모, 부, 재능을 부러워하는 것들이 있을 것임. 그러나 그것은 잠깐 지나가는 것임. 우리를 살리지 못함. 오직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이기십시오. 한 번 더 그 약속을 읽음.
두 번째로 여호수아의 염려는 앞으로 전쟁과 가나안에서 살아갈 것이 두려움입니다. 가나안 정복은 심판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강포로 인하여서 이스라엘을 들어치십니다. 과거 아말렉과 요단 동쪽의 전쟁으로 승리를 경험했지만 싸움 중에 다침과 죽음 역시 경험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기쁨은 얻지만 전쟁의 두려움도 함께 있죠. 그러나 그 두려움 역시 하나님께로 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 앞에서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히 검을 휘두르라는 것이 아니라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모세가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해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의 것이고 전쟁 중에 사람의 강포로 잔인함이 아닌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져야 하며, 그 속에서 살아갈 때 이른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이를 기억하는 것인데, 사실 이것은 소극적인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어떠한 결과를 바라고 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어떠하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기쁨이고 그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거워하며 이 땅의 화려한 것 보다 변하지 않는 말씀이 더 화려해 보이고 달콤해 보이고 아름답게 여겨져 지키는 것입니다.
이어서 알 수 있는 것은 율법은 보고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켜 행하는 것임.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지 말라고 했지?라고 하면서 행동은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임. 또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지 않고 모르고 있다가 스스로에게 속거나 주변에게 속아서 넘어져서도 안 되는 것임.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택하여 지키고 8절에는 이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함으로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임.
그리고 이 말씀을 읊조리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성경에서 말씀해주고 있음. 스스로 즐거워 한다는 것은 이제 즐거움이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됐음을 의미하는 것임. 이제 이전의 친구와 놀고 싸우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하는 것들이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감이 즐거움인 것을 알게됨.
119편80~119까지를 읽어보면 시편기자의 상황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음. 여전히 적들의 공격과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던 자들의 배신들이 가져오는 아픔 가운데서도 지금 기자는 무엇을 의지함?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 그의 입술로 읊조리게 되는 것임. 이러한 지경이 우리 신앙의 싸움임. 잠깐 싸워보고 안 되네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상황이 변할 기미가 안 보여도 주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임. 왜냐하면 그보다 귀한 것이 없기 때문임. 하나니보다 신실하신 분이 없기 때문이 자기 아들을 주실 정도로,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없기 때문임. 우리가 의지할 것이 바로 말씀임. 말씀을 읊조리는 주의 백성 되어야 함.
입에서 주의 말씀을 입술에서 떠나게 하지 않는 것이 이제 우리의 즐거움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전쟁이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순간의 감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들이 우리의 본향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아들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지금도 내주하신 성령을 잊어버리게 하죠. 이러한 전쟁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은 주의 말씀을 읊조리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읽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하지 않나요? 이전에 혀의 열매로 죽는 자들이 이제는 입술이 이렇게 쓰입니다. “히브리서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