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속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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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 설교

Notes
Transcript

골로새서 3장 1절 ~ 11절

오늘은 골로세서 말씀을 본문으로 위에 속한 사람들이란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말씀 속에서 위에 속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위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전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결단과 은혜의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먼저 골로세서는 사도 바울이 이미 복음을 받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목회적인 편지입니다. 중요한 점은 예수님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는 것이죠. 그가 편지 속에서 말하고 싶었던 가장 핵심되는 내용은 바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리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구원을 받았고, 그분을 믿음으로 인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며 온전한 구원을 이루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자로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빛 된 삶을 살아가야할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 속에서 오늘 본문이 등장하는데요. 
본문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1절의 시작이 그러므로 로 시작하는데요, 그러므로라는 뜻 뒤에 나오는 내용이 앞의 내용의 결과적인 의미로 쓰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앞의 내용을 살펴보면 2:20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죽었던 사람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죽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로마서 6:6절을 보게 되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옛 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분의 부활과 함께 우리는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해방, 구원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신자의 정체성입니다. 
제가 약 한 달전에 예로 들었었던 예화인데요, 팀 켈러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번 죽는다” 이 말이 바로 위 성경 말씀을 한 문장으로 축약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구원받은 성도라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본문은 이렇게 새 사람이 되었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느니라” 
말씀에서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에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죄로부터 해방되었고 더 이상 죄의 종 노릇하지 않게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님을 찾는 삶을 살고 예수님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위에 것을 찾는 사람이며, 예수 믿는 사람의 삶입니다. 
왜 우리가 위에 것을 찾아야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장차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하늘나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그곳에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그곳에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3개월 정도 있었던 시간이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한국은 어떤가, 가족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사는가, 돌아가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왜그렇냐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떠나 언젠가 다시 내가 계속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도 그래야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언젠가 돌아가 영원히 살 곳 하늘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이 아닌 것들은 언젠가 없어지고 변하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분들은 최소한의 경비를 남겨두고 수입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보냅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영원토록 살 그곳에 우리의 마음과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위에 것을 찾는 삶이죠. 
2절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본문은 위의 것을 찾는 것에 이어서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집니다. 본문은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요즘 사람들이 더욱 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가운데서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것을 생각하는데 그러면 도대체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참 의미는 우리의 몸은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그 마음은 하늘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 그들의 외모 뿐만 아니라 언어와 삶의 방식, 즐기는 문화 등에서 그들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비록 이 땅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위에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체성이 명확하다면, 말씀에 순종하고 위에 속한 사람이라면, 믿는 사람들끼리만 아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을 아주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속한 것보다 하늘에 속한 것이 더 위대하고 값지며, 영원한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음 임을 알고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에 것을 생각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고 하늘 나라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 공의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바다나 산을 볼 때도, 들판의 아름다운 꽃을 볼 때도 음식을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모두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며, 그 생각이 나의 삶속에 행동으로 나탄다는 것이죠. 
이와 반대로 땅의 것들만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 예수님이 없기에, 죽음 이후에 천국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 아둥바둥살아갑니다. 이 땅에 주는 것들에만 오로지 관심이 가 있습니다. 땅에서 주는 쾌락, 물질, 성공, 즐거움에만 집중하여 전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삶인 것이죠.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우리들은 다릅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다스리시는 것이라는 것을요. 마태복음6장 31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우리가 왜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늘과 땅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에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약속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땅의 것들만 바라보아선 안됩니다. 이제는 우리들의 시선을 땅이 아닌 하늘의 하나님께로 돌려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위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땅에 속한 것일 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땅에 것들을 아예 다 버리고 살아야하느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 속 기준과 삶의 방향이 먼저 하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위의 속한 사람은 마땅히 위에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땅의 것들까지 채워주시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4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위에 속한 사람들로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도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 땅에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에는 이 땅에 나그네 혹은 마치 외국인같이 살아가는 우리가 이제 천국이라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토록 쌓아두고 위에 것을 찾고 생각하며 기대한 곳으로 가는 것이죠. 그때에는 땅에 속한 사람들이 무척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땅을 치며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죠.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입은 우리들은 이 때를 소망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해야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 1~4절을 자세하게 보게되면 함께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어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라는 것은 관계를 나타내는 것인데,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보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중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일으킴을 받았다는 것,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는 것, 함께 영광중에 나타났다는 것 등 이 모든 관계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분과 함께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 만으로는 온전히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할 때 우리의 마음 속에 가장 중점적으로 둬야하는 것은 예수님이 내 삶에 주인이 되어야 하고,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땅의 것을 찾는 사람들과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들과 다르게 예수님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문제들에 있어서 해답을 땅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문제 방향성, 앞으로 어떻게 해내야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답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이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위에 것을 찾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우리 모든 대화교회 성도님들의 삶이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나 역시 그 날에 그분과 함께 앉아있을 날을 기대하며 위의 속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기 계신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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