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배경)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6 views
Notes
Transcript
빌립보서 배경 연구(두란노 하우 주석)
1. 지리적 위치
마케도니아의 첫 성, 로마의 식민지(행 16:12)
빌립보는 기원전 358년 경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2세가 건설
빌립보라는 이름도 빌립 왕에서 유래.
도시가 세워진 곳은 위치 상 해상으로의 왕래와 교역이 활발, 육로의 교통 또한 원활.
많은 수원지(간기데스 강)가 있어 토지가 비옥, 인근에 유명한 판게우스 금광이 있어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다.
기원전 168년, 로마가 페르시아를 정복하자 도시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로마와 동방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이어주는 직선 도로인 에그나티아 도로(Via Egnatia)가 생기면서 빌립보는 정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가 된다. 이 도로는 이스탄불 – 네아폴리스 – 빌립보 – 암피볼리스 – 아폴로니아 – 데살로니가 – 펠라 – 알바니아의 아드리아 해를 건너 이탈리아 브린드시 등 주요 도시를 경유한다. 사도 바울도 이 길을 따라 유럽을 전도했다. (폭 9m, 길이 790km)
2. 역사적 배경
1) 기원전 42년 줄리어스 시저 살해한 부르터스와 카시우스의 공화국 군대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는 자기 휘하의 장교들과 군사들을 빌립보에 정착시킨다.
2) 기원전 31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간의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된다. 자신을 아우구스토라고 부르고 빌립보를 그의 중요한 군사 기지로 삼는다. 빌립보에 많은 로마 군인들, 제대 군인들, 이탈리아에서 쫓겨난 안토니우스의 부하들을 거주시켰다. 빌립보를 로마의 특별 식민지로 만들고 그곳 시만들을 로마의 시민들로 대우하여 이탈리아의 벗이라고 불렀다. 로마인에게 부여했던 동일한 특권을 부여했다.
이런 배경으로 빌립보 시민들은 비록 로마 식민지의 시민들이지만, 로마 시내의 시민들과 똑같은 특권을 누리는 아주 특별한 시민이 되었다. 이때부터 빌립보 주민들은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재판권을 가질 수 있었으며, 악명 높던 인두세와 토지세를 감면받을 수 있었다. 제2의 로마라고 할 수 있다.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 로마의 관습과 정신을 따르고 로마법을 준수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행 16:21)
3. 종교적 배경
다른 헬라 도시와 마찬가지로 혼합주의적 모습이다. 다신 숭배가 성행하고 토착 종교인 트라키아의 트라시안을 숭배하고 있었다. 애굽, 시리아, 그 밖의 여러 지방에서 전래된 신들뿐 아니라 로마 제국의 제의적이고 고전적인 신들과 라틴의 여러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은 문화적으로는 헬라 문화와 동양의 문화를 혼합시켜 만든 헬레니즘의 계승자였다. 이방 헬라 세계의 대표적인 종교적 분위기는 우상숭배와 성도덕의 타락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또한 당시 헬라 철학은 물질주의적 사고, 회의주의적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 숙명주의적 사고가 만연했다. 인간은 숙명의 힘 앞에 그저 순응할 따름이지 자신의 숙명을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인해 절망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들과 주들에게서 도움을 얻으려고 그들을 섬겼다.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방탕한 삶도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점성술이 유행했다. 하늘에 있는 별들이나 그 별들에 존재하는 신이나 영들이 인간의 숙명을 결정한다고 보고 그 신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점성술을 통해서 자기 운명을 미리 알아보려고 했고 운명이 나쁘면 그 운명을 좌우하는 신을 달래기 위해 마술을 사용했다. 이것이 신비종교를 낳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 그러니 당시 가치, 헬라 문화와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다(행 16:16~19). 그리고 이것은 로마법과 풍습에 어긋나는 것을 가르쳐 소란을 일으킨다는 오해를 받았고 이것이 박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4. 빌립보 교회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AD 49년 경) 설립한 유럽 최초의 교회
사도행전 16장에 상세히 기록
아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무시라를 지나 드로아로 갔고, 거기서 밤에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 그리하여 아시아 선교를 중단하고 에게해를 건너 빌립보 관문인 네압볼리도 들어가 에그나티아 도로를 따라 처음 도착한 곳이 빌립보였다.
1) 빌립보 교회 설립
디모데와 실라, 그리고 누가와 함께 있었다(행 16:10)
안식일이 되기까지 기다렸다가 기도처소인 문밖 강가를 찾았다. 회당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서 여자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였고 두아디라의 자주장사 루디아를 첫 회심자로 얻는다. 그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행 16:14)로 유대교 회당에 다니던 자였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바울 일행은 루디아의 집을 거점으로 전도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간수장, 루디아의 가족, 짐치던 여인, 유도이다, 순두게, 글레멘트 등 회심자들을 얻었다. 이들은 모두 이방인이었다.
여기에서 바울은 로마의 관원과 충돌하였다. 로마법과 로마 풍습에 어긋나는 것을 전한다는 시민들의 고소를 받고 바울을 옥에 감금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인 것을 알고 조용히 보냈다.
빌립보 교회는 헌금에 열의가 있었고 바울에 대한 사랑이 어느 교회보다 뛰어난 교회였다(빌 4:15~16; 고후 8:1~4). 빌립보 교회 여자 성도들이 교회 내에서 상당한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보인다.
2) 바울과 빌립보 교회
오랜 기간 머문 곳이 아님에도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아에서 참된 사랑의 교제를 나눈 것으로 보인다.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 나의 사랑하는 자들”(4:1),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1:8)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다. 또한 빌립보 교회에서는 바울에게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1:3~5; 2:25; 4:10~14).
5. 빌립보서를 쓰게 된 상황
1) 감옥에서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천거한다. 곧 빌립보에 당도할 그들이 거기에서 잘 영접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미리 풀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이 옥에 갇히자 빌립보 교회가 헌금한 것을 가지고 가서 바울을 수발했다. 그런데 이 일이 다소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가 임무를 잘 수행했고 심지어 병들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완치되었다는 설명을 덧붙힌다.
2)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전해준 편지와 헌금에 대한 감사의 인사
3) 빌립보 교회의 몇 가지 문제를 다룸.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빌립보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 그래서 그는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반복한다(1장후반부터 2장, 4장).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두 여성 지도자 간의 알력도 있었다.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 서로 겸손과 사랑의 마음을 가질 것을 권한다. 그 모델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제시한다.
4) 고후 10~13장에서 볼 수 있는 유대기독교의 열광주의자들에 의해 복음이 혼탁해졌다. 외부에 침투한 자들로 보인다. 이들의 주장은 첫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요구. 둘째, 자신들의 영적 체험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구원의 완성의 징표라고 자랑. 셋째, 성도들에게 존재하는 현재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구원의 완성에 대한 미래적 소망도 무시하면서 지금 현재 완전한 구원을 누리면서 승리자로 살 수 있다고 주장. 영광의 신학, 승리의 신학.
5) 계속되는 핍박 아래 놓인 박해 받는 교회로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1:28~29).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