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24 새벽기도회: 고린도전서 7: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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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인도하시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한 주간도 주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갈텐데, 죄와 치열하게 싸울 때 저희를 항상 지켜주시고, 저희가 죄에 넘어지지 않고 승리하는 복된 백성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저희의 주인께서 거룩하게 살 것을 명하셨으니 그 주인의 부르심에 따라 순종하는 저희가 되게 해주시고, 이것이 저희에게 유익이요, 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아가길 원하니 함께하여 주시고, 그리스도를 따라 참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7:25-35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벌써 이제 11월도 끝이 나고 있는데요. 남은 2025년도 잘 마무리하면서 이번 한주도 말씀과 기도로 함께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질문을 한 가지 드리면서 말씀을 시작하면 좋겠는데요. 만약 여러분에게 두 가지 인생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첫 번째는, 평생 혼자 살지만, 자유롭고 주님 일에만 몰두하는 삶. 두 번째는,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지만, 배우자 챙기느라 신앙생활은 명맥만 유지하는 삶.
어떠신가요? 참 쉽지 않은 선택일 겁니다. 어떤 분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결혼은 해야지”라고 하실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요즘 같은 세상에 혼자가 편하다”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만의 고민이 아니라, 2천 년 전 고린도 교회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상상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해외를 가시는데, 목적지로 바로 가지 않고 잠시 다른 공항을 환승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공항 대기실에서 딱 2시간만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 2시간 편하게 있겠다고, 공항 대기실에 비싼 소파를 사서 들여놓고, 벽지를 새로 도배하고, 집을 짓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곧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기 때문이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시간은 단축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정착지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환승 공항과 같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했든 안 했든, 거기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혼했다고 해서 이 세상에 영원한 집을 지을 것처럼 살지 말고, 혼자 산다고 해서 외로움에 무너져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여행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이 여행자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결혼과 독신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흩어지는 마음을 어떻게 주님께 하나로 모을 수 있는지 놀라운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35절까지 읽었지만, 40절까지가 한 단락이기 때문에 40절까지의 내용을 모두 포괄하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26절에서 ‘임박한 환난’ 때문에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29절에서는 “때가 단축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이 말을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데,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하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때가 단축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아주 놀라운 표현을 사용합니다. 바로 “마치 없는 자 같이” 살라는 것입니다. 본문 전체를 한번 살펴보면, “결혼한 자들은 결혼하지 않은 자 같이”,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물건을 산 자들은 그것을 가지지 않은 자 같이”하라고 바울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들어가, 소위 염세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결혼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물건을 사고 팔며 일상적인 생활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가치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는 것이죠. 세상의 기쁨이나 슬픔, 소유가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의 환경에 결코 지배당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아야 함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결혼을 하든 독신으로 살든, 우리의 정체성은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 혹은 ‘싱글’이라는 타이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진짜 정체성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삶, 즉 종말론적인 삶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굳이 “그냥 지내는 것”, 즉 독신이 더 낫다고 말할까요? 결혼이 죄라서 그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28절에서 분명히 “결혼해도 죄 짓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독신을 권면하는 아주 현실적이고 목회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염려”와 “집중” 때문입니다. 32절부터 34절을 보면,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어찌하여야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하며 오직 주님의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사람은 “어찌하여야 아내(혹은 남편)을 기쁘게 할까”하며 마음이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이 바울의 말을 오해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를 챙기고 기쁘게 하는 것을 아예 차단해야 한다고 바울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 배우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배우자를 아끼고 상대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혼한 사람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에너지가 분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게 되면 다른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똑같은 에너지를 다른 것에 쓸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누가 더 거룩하냐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더 주님께 “흐트러짐 없이” 집중할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입니다.
35절이 오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함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바울의 목적은 “결혼하지 마!” 또는 “결혼해!”라는 율법의 올가미를 씌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를 향해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자유롭게 주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한번 고민해보라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든 독신을 하든 주님을 제일로 여기고 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에서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말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결혼이나 독신에서도 나타내라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현실적인 고민을 한번 우리도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약혼은 했지만, 영적인 이유로 결혼을 미루거나 안 하려는 커플들”이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결혼하면 영적으로 수준이 낮아지는 거야”라고 압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36절에서 아주 명쾌한 대답을 줍니다.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워낳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이하면 “만약 약혼한 남자가 보기에 시간이 흐르고 성적인 욕망이나 감정적 긴장이 너무 커져서 견디기 힘들다면, 결혼하십시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같은 장인 7장 9절에서의 말씀과도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7장 9절을 보시면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바울이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억지로 욕망을 참느라 주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오히려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그 욕망을 건강한 관계 안에서 풀면서 안정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독신이 은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이 은사입니다.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억지로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아니라, 무엇이 더 주님께 잘 집중할 수 있는 방향인지를 고민하는 하나님 중심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38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이며, 결혼하지 않는 자도 잘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그 자리에서 주님께 집중하며 주님을 1순위로 두는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단순히 “결혼을 할까, 말까”를 정해주는 지침서나 법조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 인생의 방향성을 묻고 있습니다. 결혼하신 분이 계십니까? 배우자를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 사랑 때문에 주님을 잊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이 변화하고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분들이십니다. 혹시 결혼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주어진 그 자유로운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 시간은 오롯이 주님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의견이 ‘성령’을 받은 자로서의 생각이라고 확신하며 말하였습니다. 그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였습니다.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세상의 염려나 사람들의 시선에 묶이지 않고, 오직 주님 한 분께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내가 결혼했든 혼자이든, “나의 삶은 지금 흐트러짐 없이 주님께 집중하고 있는가”를 점검해보시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염세적인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순례자로서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길 바라며 주님을 최우선으로 두며 삶을 주님께 집중하는 귀한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 고린도전서 7장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결혼의 문제로, 때로는 세상의 여러 염려로 마음이 나뉘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신 말씀처럼 때가 단축되었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세상에 살지만 결코 세상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각자 부르신 자리에서 흐트러짐 없이 주님만을 사랑하며 섬기는 거룩한 신부인 교회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께서 부르신 것을 기쁨으로 화답하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