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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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사도 바울의 구원 이해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흔히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면, 이미 이루어진 사건일 뿐 아니라, 현재도 이루어지는 사건이고 더 나아가 앞으로 완전히 이루어질 미래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늘 읽은 빌립보서 2:12~15절이 구원의 현재성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본문입니다. 과거에 얻은 구원으로 만족하지 말고 지금 현재에도 그 구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이루어진 한 사건으로서의 구원을 현재화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은 과거에 이미 얻은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말씀을 다른 번역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을 계속해서 수행하라(성취하라) (NIV)
구원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하라(NLT)
구원받았다는 것이 진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행하라(CEV).
즉, ‘계속해서 구원을 완성해가라.’, ‘구원받은 것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어라.’, ‘구원받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해 행하라.’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한번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있을 때 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바울과 함께 있을 때 뿐 아니라, 지금 바울이 없을 때에도, 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든지, 지금 복음을 들은 후 시간이 지났든지. 과거든지 현재든지. 결국 구원은 계속되는 여정임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이루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복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이미 이루어주신 분일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 안에서 소원을 가지고 그 일을 행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시고 그 일을 시행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 즉 믿음을 통해서 과거의 그 사건이 우리에게 이미 일어난 구원 사건이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해 소원을 두고 우리의 삶 속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가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하고 성장시켜서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구원을 완성할 수 있도록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왜, 우리가 한 번 받은 구원을 상실할까봐...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불평하고 원망할 때 했던 것처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출애굽을 했지만, 구원을 경험했지만, 그들이 광야 생활에서 거룩함을 지키지 못하고 계속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지냈을 때 그들은 그 구원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2주면 도착할 거리를 40년이나 헤매면서, 출애굽 세대는 다 죽고 출애굽 2세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교리가 있지만, 성경은 또한 한번 구원받은 사람도 얼마든지 진리에서 멀어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고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불평하고 원망하며 시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흠이 없고 순전하게 될 때 그 결과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 흠 없는 자녀로 살기 때문에 어두운 세상에 빛을 던져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깨지고 상한 세상을 치유할 능력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을 하나님의 질서로 정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구부러지고 뒤틀린 이 세상에서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갑니다(15절). 또한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고 그것으로 우리 인생의 등불을 삼아 달음질을 합니다(16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다고 해도 기쁠 것이라고 말합니다(17~18절). 바울이 평생 가지고 있었던 비전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통해 사람들이 회심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가면서 깨어진 세상을 치유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울은 동일하게 말합니다. “이미 얻은 구원에 만족하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십시오.”
종교개혁자들의 주장 :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이것은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기 위해 헌금을 드리는 구체적인 행위들, 경건의 행위들로 인해 구원이 가능하다고 가르쳤던 중세교회를 개혁하면서 외쳤던 주장이었습니다. 정당한 주장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서 여러 차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붙잡았던 말씀들이 바로 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말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구원받은 이후에도 행위가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써 율법의 행위가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말이지,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율법의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을 잘 읽으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그 구원을 완성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순간 우리가 실제적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불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는 사실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할 때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받아주신다는 말이지, 그 순간부터 마법처럼 우리 존재가 정말로 완벽한 거룩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받아주셨고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이제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안목에 삶을 맞추어야 합니다. 조율하는 겁니다. 절대음에 맞추는 노력, 이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은 이렇게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더라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구원을 이루어간다면 기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