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지어져 가네II
문형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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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서론]
[서론]
여러분 앞서 최지영 전도사님이 보여준 사진, 가족사진을 한번 더 볼까요? 네! 여러분들 각자 가족 사진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가족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피가 섞였든 아니든 이상하게 닮아 있는 부분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말투나 웃을 때 찡그리는 습관, 밥 먹을 때 젓가락 잡는 방식까지,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만큼 서로 닮아가기 마련이죠.
앞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혈연을 넘어서는 하늘 가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머릿돌 위에서 연결된 영적인 가족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볼까요? 교회가 가족이라고 말은 하지만… 정말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라면 서로 챙겨야 하고, 마음을 나눠야 하고, 함께 예배할 때 따뜻함과 힘이 있어야 하는데, 현실의 우리는 서로 너무 바쁘고, 어색하고, 멀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이게 바로 오늘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가족됨의 기쁨은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교회 안에서 서로 익숙하게 마주치지만 깊이 연결되지 못한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놀랍게도 초대교회는 이 문제를 이미 해결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가족이다”라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정말로 가족처럼 살아낸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2장 43–47절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진짜 ‘하늘 가족’답게 회복해야 하는 본질은 무엇인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됩니다. 가족을 만드는 것은 프로그램도 아니고, 잘 꾸며진 분위기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사람이 사랑을 흘려보낼 때 비로소 가족이 탄생합니다. 이제 초대교회가 보여준 진짜 가족 예배의 비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본론]
[본론]
본론 1 — 말씀 앞에서 변화되는 공동체 (43–45절)
본론 1 — 말씀 앞에서 변화되는 공동체 (43–45절)
먼저 사도행전 2장 43절을 함께 볼까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3절은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생기는 거룩한 경외감을 의미합니다. 즉, 예배 공동체의 첫 출발점은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이 실제로 역사하신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 ‘두려움’이라는 반응은,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마음입니다. 말씀을 듣고,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이 실제로 일하시는 것을 보니, 사람들은 더 이상 예배를 하나의 ‘행사’처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자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이 낮아졌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말씀 앞에서 깊이 변화되기 시작한 첫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외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사실이 마음에 자리 잡자, 자신의 물건과 재산까지 더 이상 ‘내 것만을 위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 하나 억지로, 강제적으로 시킨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며 필요한 사람을 채워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2) 이제 그 변화가 어떻게 ‘공동체적 실천’으로 나타났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다함께 이어지는 44-4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4–45절에서 성도들은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필요를 따라 나누며 서로를 책임지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재산 공유가 아닙니다. 말씀이 마음을 깨뜨릴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사랑의 실천입니다. 말씀이 가치관과 우선순위를 바꾸자 ‘내 것’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공동체 중심의 삶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가족됨은 말씀 앞에서 변화된 사람이 서로를 향해 사랑을 실천하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가족이야!”라고 말하지만 말씀 앞에서 변화되기보다 말씀을 정보처럼 소비할 때가 많습니다. 말씀이 나를 흔들지 않고, 나를 부수지 않고, 내 삶을 재편성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절대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에서도, 온가족 예배에서도 말씀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변화되는 자리’로 받아들입시다. 말씀 앞에서 마음이 낮아지면 내 가족에게, 내 교회에게 사랑을 흘려보낼 공간이 생깁니다.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내가 말씀 앞에서 바뀌어야 하늘가족이, 교회가 세워집니다.
본론 2 — 함께하는 삶으로 드러나는 가족 예배 (46–47절)
본론 2 — 함께하는 삶으로 드러나는 가족 예배 (46–47절)
이제 46절을 보겠습니다. 행 2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6절은 초대교회가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 힘썼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이를 좋게 지냈다’가 아니라 같은 목적과 열정을 품고 한 방향을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초대교회는 ‘같이 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였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렇게 하나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배를 단순한 ‘주일 의무’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이 오늘 우리 공동체에 어떤 말씀을 주실까?” 기대하며 모였습니다. 이처럼, 같은 기대를 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또한 그들은 “집에서 떡을 떼며” 서로의 삶을 깊이 공유했습니다. 공적 예배(성전)와 사적 나눔(집)이 서로를 보완하며 공동체를 진짜 가족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 식탁 교제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환대하는 행위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식탁을 통해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나누며 “우리는 가족이다”라는 사실을 실제 삶 속에서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4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즉, 건강한 공동체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은 그런 공동체를 통해 부흥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예배가 가족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의 방향이 다르고, 같은 교회를 다녀도 서로의 삶이 연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겉으로는 가족 같아도 실제로는 ‘낯선 사람들’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 특히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온가족 예배’는 단순히 부모와 자녀만 함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가정과 교회 전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예배여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고, 서로를 돌아보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혈연 가족’을 넘어 ‘하늘 가족’으로 다시 묶이게 됩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뒤에는, 가정의 식탁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서로의 삶을 들어줄 때 가정은 물론이고 우리 교회 전체가 진짜 가족처럼 세워집니다.
[결론]
[결론]
이 이야기를 끝으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미국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나무를 아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오래 사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100m에 달하는 나무도 있고, 수백 년, 심지어 천 년을 버티는 나무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는 놀랍게도 깊지 않습니다. 평균 1~3m 내외. 나무의 몸통과 줄기는 100m가 되는데, 그것에 비해 뿌리는 평균 3m 내외라니… 생각보다 매우 얕습니다.
상식대로 뿌리는 얕고 몸통은 길고 큰 나무는 폭풍 앞에서 쉽게 쓰러져야 합니다. 그런데 레드우드는 거의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뿌리가 옆 나무의 뿌리와 촘촘하게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깊지 않지만, 땅속에서 수십, 수백 그루가 서로를 붙들어 주기 때문에 폭풍이 와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레드우드는 혼자 살아남는 나무가 아니라 함께 서는 나무입니다.
사랑하는 동암의 하늘 가족 여러분, 이 모습은 오늘 우리가 본 초대교회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씀 앞에서 마음이 열리고, 집에서 떡을 떼며 삶을 나누고, 필요한 사람을 돌보며 사랑을 흘려보낼 때, 그들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심각한 핍박과 환난이 와도, 매일이 불안할 수 있는 시대 속에서도 그들은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공동체를 통해 부흥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우리의 가정만 향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전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 가정의 뿌리도 서로 연결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청년과 장년’, ‘교사와 학생’, ‘작은가정과 큰가정’, ‘오래된 성도와 새가족’까지 모두가 서로의 뿌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혼자 서면 약하지만, 우리가 말씀과 사랑 안에서 서로 연결될 때 동암교회는 레드우드 숲처럼 견고해지고 흔들리지 않는 공동체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 가정의 뿌리뿐 아니라 우리 교회의 뿌리가 서로 연결되게 하소서. 말씀과 사랑으로 서로를 붙들게 하소서.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하늘 가족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그리고 우리 전체 교회 공동체를 초대교회처럼, 레드우드 숲처럼 서로 연결되고, 서로 붙들며,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하고 따뜻한 하늘 가족으로 세워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