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20-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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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첫 열매의 확신
제목: 첫 열매의 확신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20-34절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20-34절
찬송: 161장 할렐루야 우리 예수
찬송: 161장 할렐루야 우리 예수
오늘은 고린도전서 15장 20-34절 말씀을 가지고 "첫 열매의 확신"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바울은 앞서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고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러나 이제"라는 승리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헛됨에서 확신으로의 대전환이다.
20-23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이자 보증임을 말한다.
20-23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이자 보증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절). 바울은 여기서 "첫 열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첫 열매는 전체 수확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농부가 첫 열매를 수확할 때, 그것은 나머지 곡식도 반드시 거두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표시였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그러하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보증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의 부활은 이미 확정된 미래다. 마치 첫 열매가 전체 추수를 보증하듯,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한다.
바울은 이어서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1-22절). 아담 안에서는 죽음의 연대가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의 연대가 있다. 우리가 아담의 후손으로 죽음을 물려받은 것이 확실하듯,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생명을 얻는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이루어진다.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23절). 부활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다음은 그분이 재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우리의 차례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혼란이 아니라 질서 안에서 그분의 계획을 이루신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의 부활은 이미 보증된 것이다. 추수의 첫 열매가 나머지 수확을 보증하듯,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부활을 확증한다.
24-28절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멸하시고 마지막 원수인 사망까지 정복하심을 말한다.
24-28절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멸하시고 마지막 원수인 사망까지 정복하심을 말한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24절). 그리스도의 재림은 역사의 종결이 아니라 완성이다. 모든 대적 세력이 굴복당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실현되는 그 날이 온다.
이어서 바울은 중요한 선언을 한다.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25절). 이것은 미래의 일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지금 이 순간도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다. 부활하신 그날부터 주님은 왕좌에 앉으셨다. 우리 눈에 세상이 혼란스럽게 보여도, 주님은 지금 통치하고 계신다.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왕을 섬기고 있다.
이제 마지막 선언이 나온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26절). 사망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원수다. 사망은 강력하고 두렵다.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사망도 결국 멸망당한다. 완전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바울은 시편 8편을 인용하여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27절).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성취될 때, 아들 자신도 아버지께 복종한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28절). 이것은 아들의 열등함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조화를 보여준다.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다.
우리는 때로 삶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의심한다. 질병이 우리를 괴롭히고, 슬픔이 우리를 삼킬 때, 하나님이 정말 통치하고 계신가 의문이 든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지금도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다. 모든 원수, 심지어 사망까지도 결국 그분의 발 아래 굴복할 것이다. 이 확신이 우리에게 오늘을 살아갈 힘을 준다.
29-34절은 부활 신앙이 우리의 현재 삶을 결정함을 말한다.
29-34절은 부활 신앙이 우리의 현재 삶을 결정함을 말한다.
바울은 논리를 펼친다.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30절). 바울 자신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고 고백한다. "내가...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32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부활이 없다면 헌신도, 위험 감수도, 고난도 무의미하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32절). 부활이 없다면 쾌락주의가 유일하게 합리적인 삶의 방식이다. 내일 죽을 것인데, 왜 자기를 부인하는가. 내일 모든 것이 끝날 것인데, 왜 헌신하는가. 부활 없는 삶의 논리는 이렇게 단순하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다르게 산다. 그래서 바울은 경고한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33절). 부활을 부정하는 사상은 윤리적 타락으로 이어진다. 미래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과 교제하면, 그들의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스며든다.
그러므로 바울은 명령한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34절). 깨어있음은 영적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술에 취한 자가 제정신이 아니듯, 부활을 의심하는 것은 영적으로 취한 상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날카로운 한 마디를 던진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34절).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부활 신앙은 미래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의를 행할 수 있는 이유는 부활의 소망 때문이다. 세상의 철학과 악한 교제가 우리의 부활 신앙을 흔들지 못하게 하자. 깨어서 의를 행하는 것, 이것이 부활을 믿는 자의 삶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확신과 소망과 방향을 주고 설정해 준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확신이며, 주님은 지금도 왕으로 통치하시고, 이 부활신앙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이 부활의 확신을 붙들고 살아가자.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 우리의 헌신이 의미 있다. 우리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시기 때문이다. 이 확신으로 오늘도 담대히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아침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확실한 보증임을 고백합니다. 이 확신이 오늘 하루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게 하소서.
우리는 때로 삶의 고난 속에서 흔들립니다. 질병과 슬픔, 좌절과 실망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금도 왕으로 통치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모든 원수, 심지어 사망까지도 주님의 발 아래 굴복할 것을 믿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으로 오늘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깨어서 의를 행하며, 세상의 철학과 악한 교제에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헌신된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성도들의 삶을 축복하여 주시고, 각자의 필요를 채워주소서. 연약한 몸을 치유하시고, 힘든 마음을 위로하소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