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연신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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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갈라디아서 5장 5~6절;데살로니가전서 1장 2~8절
믿음은 사랑을 통하여 일합니다
(예배 인사, 축복) 서론: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만든 기적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 따뜻한 공간, 울려 퍼지는 찬양, 준비된 주보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우리 눈에는 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들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교회는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지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무릎'으로 지어지는 영적인 집입니다. 누군가가 먼저 와서 기도의 씨앗을 뿌렸고, 누군가가 이름 없이 묵묵히 쓸고 닦았으며, 누군가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쪼개어 섬겼기에 오늘 우리 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이렇게 든든하게 세워가는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건강하고 위대한 교회에는 반드시 흐르는 독특한 영적 DNA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와 갈라디아서 말씀을 통해, 교회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다가오는 2026년을 앞두고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해야 할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1: 척박한 땅에 핀 꽃, 데살로니가 교회 -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살펴봅시다. 이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개척한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7장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그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한 기간이 단 '3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주라는 짧은 시간, 게다가 그곳은 헬라의 쾌락 문화와 우상숭배가 가득했고, 유대인들의 극심한 핍박이 몰아치던 곳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린 싹이 자라기도 전에 밟혀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어린 교회가 무너지기는커녕,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강력한 공동체로 성장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데살로니가전서 서두에서 두 차례나 하나님과 교회에 감사의 고백을 드립니다.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서 그들이 가진 세 가지 영적 특징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언급합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이 세 가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이것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지탱한 세 기둥이었습니다.
본론 2: 교회를 세우는 세 가지 기둥 - 이 세 가지를 하나씩 깊이 들여다봅시다.
**첫째, '믿음의 역사'입니다.** 여기서 '역사'는 영어로 'History'가 아니라 'Work', 즉 '일'과 '행위'를 말합니다. 헬라어로 ἔργον('에르곤')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드러나는 실제적 변화와 열매, 헌신을 의미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믿음은 결국 삶으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결국 행동 양식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이유는, 그 믿음의 근거,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이 세상을 바라보며 갖고 계신 열망과 열심, 의지가 있습니다. 그분의 의지로 우리는 반드시 믿음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지, 열망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구원,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그분은 우리에게 이토록 풍성한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그분의 간절한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역사를 나타내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둘째, '사랑의 수고'입니다.** 저는 오늘 이 단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수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κόπος(코포스)입니다. 이 단어의 원뜻은 '단순한 봉사'가 아닙니다. '심한 매질을 당한 듯한 고통', '피곤에 지쳐 쓰러질 정도의 육체적 노동'을 의미합니다. /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이며, 또한 수고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기르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자신의 뼈가 삭는 줄도 모르고 희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코포스'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형제를 사랑하기에, 교회를 사랑하기에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편안하게 믿은 것이 아닙니다. 치열하게 사랑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질 때, 반드시 사랑의 수고가 존재합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손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배와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무릎, 마르다와 같이 밥을 짓거나 청소를 하며, 또한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하여 애쓰는 모습. 이 모든 것이 다 사랑의 수고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수고는 '나는 이만큼 수고했어'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그 사랑이 이웃과 교회를 향하여 확대되어 나타나는 수고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소망의 인내'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편지를 읽다 보면, 교회가 겪은 어려움, 고난과 박해가 존재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신앙은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기쁨으로 인내하였습니다. 이 모든 수고를 가능하게 한 힘은 '소망'이었습니다. 지금은 핍박받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소망,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그 소망이 그들로 하여금 현재의 고난을 견디게 했습니다.
본론 3: 믿음은 사랑을 통하여 일한다 -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고백한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데살로니가교회를 통하여 이 믿음과 소망, 사랑이야말로 귀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신앙의 양식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모습으로 작동하여 교회를 세우게 하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나타난 교회가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본 이렇게 아름다운 데살로니가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은 반드시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행위, 믿음의 역사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코포스', 즉 수고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믿음은 머리에서 맴도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 되면, 믿음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 죄송한 말씀을 드리자면,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 믿음을 살아낸다는 것은 몸의 수고가 반드시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수많은 분들이 이미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왜 수고가 필요할까요? 조금만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 주님께서 일부러 우리를 골탕 먹이거나 고생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수고하지 않으면, 게을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몸의 근육과 기관의 기능이 퇴화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쇠퇴하는 교회일수록, 믿음을 관념적으로만 받아들입니다. 그것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기초한 수고 대신, 몸의 헌신 대신,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대체하려고 합니다. /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를 감당한 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 열매란 무엇일까요? 첫째는 본인 자신이요, 둘째는 타인 또는 공동체, 교회의 변화일 수 있습니다. 그런 열매, 변화들을 보면 어떤 마음이 우리 안에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시며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인한 기대감, 소망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나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킨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개인만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나의 일터,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 우리가 함께하는 대한민국, 온 세계 열방으로 뻗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그 시간이 지루함이 아니라 기대감으로 변화되는 이유는 바로 주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는 소망 때문입니다. 그런 소망으로 인하여 오늘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 소망으로 인하여 많은 환난 속에서도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따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본론 4: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 그런데 여러분, 이 세 가지 덕목을 하나로 꿰뚫는 핵심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고, 봉사를 하고, 인내를 하는데, 도대체 "무엇으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 5장 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바울 당시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대단한 종교적 스펙이었습니다. "나는 전통 있는 가문 출신이야", "나는 율법을 다 지켰어." 하지만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런 외적인 조건이나 너희의 공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효력이 없다." 하나님이 보시는 유일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Faith working through love"입니다. 이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반드시 '사랑'이라는 통로를 지나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자신 사역의 철칙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의 기록 시기가 신학 관점에 따라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 갈라디아서가 먼저 쓰여졌다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은 바울이 소망하는 교회의 비전에 따라 세워진 것입니다. 반대로 갈라디아서가 나중에 쓰여진 것이라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이 바울에게 깊이 각인되어 '우리가 함께 꿈꾸는 교회의 모습은 이래야 한다'는 그 마음이 강력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바로 '믿음이 사랑을 통해 일한다'는 것, 그것을 확인한 바울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모든 '수고'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입니까? 남에게 인정받기 위함입니까? 그것은 할례를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수고'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에 떠밀려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동기가 될 때, 노동은 기쁨이 되고 헌신은 감사가 됩니다.
본론 5: 신앙의 변질에 대한 경고 : 도자기 신앙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가,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빠지기 쉬운 치명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20세기의 지성인 C.S. 루이스는 우리의 신앙 전통을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값비싼 도자기"**에 비유했습니다. 어떤 집에 아주 오래되고 귀한 도자기가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자손들은 이 도자기가 너무나 귀해서 깨질까 봐 찬장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둡니다. 그리고 손님들이 오면 자랑합니다. "우리 집에 이런 귀한 보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도자기에 음식을 담아 먹지는 않습니다.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장식품일 뿐입니다. 여러분, 도자기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음식을 담아내고 쓰임 받는 것입니다. 찬장에 갇혀 있는 도자기는 이미 그 생명력을 잃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 신앙도 이렇게 변질될 수 있습니다. 소위 '오래된 신자', '전통 있는 교회'가 겪는 위기입니다.
- 믿음은 있다고 말하는데, 그 믿음이 사랑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 사랑은 한다고 말하는데, 땀 흘리는 수고가 없습니다. 말로만 사랑합니다.
- 소망은 있다고 하는데,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참지 못합니다. 인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능을 잃어버린 도자기와 같습니다. 겉모습은 화려한데, 능력은 사라진 '박제된 신앙'입니다. 교회는 박물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야전 병원이고, 치열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찬장에 넣어두는 장식품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사용되어야 하는 무기이자 도구입니다.우리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도자기를 찬장에서 꺼내야 합니다. 깨질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다음 50년, 어떤 교회가 될 것인가? -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제 연말이 되면서 교역자실에 익숙한 장면이 또 나타납니다. 목사님들은 핸드폰을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하십니다. 그리고 각자 맡은 교구, 그리고 위원회 사역을 부탁하기 위하여 열심히 머리를 숙이며 사역의 자리를 부탁하고 계십니다. 사실 어떤 교회나 그러하지만, 교회를 돌아보면 사랑의 수고가 필요한 곳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말씀의 꼴을 먹일 교사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수고가 없으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 매 주일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기 위해 뜨거운 열기 앞에서 땀 흘려야 하는 주방의 일손이 필요합니다.
- 예배의 감격을 돕기 위해 일찍 나와 연습하고 준비하는 찬양대의 자리가 있습니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량을 안내하고 교회를 청소하는 손길들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누군가의 '코포스', 즉 뼈를 깎는 수고 없이는 결코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도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50년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50년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3대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주변에 여러 변화되는 환경에 놓여 있는 우리 연신교회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믿음을 드러내야 하는가?
우리의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우리의 수고는 어디를 향하여 흘러가야 하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오늘 나눈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요약한 갈라디아서 5장 6절 말씀, "오직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믿음과 우리 교회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믿음이 사랑으로 일할 때, 사랑은 수고가 되고, 수고는 소망의 인내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인내는 다시 믿음의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맺는 말 - 이제 2025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있습니다. 새로운 해가 다가오고, 달력이 바뀐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사랑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새해가 될 때, 너무 멀리서 구경하는 자리에만 있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저기 구석 찬장의 도자기처럼 모시지 마십시오. 믿음이 사랑으로 일할 때, 그 사랑은 거룩한 수고가 되고, 그 수고는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인내를 낳고, 그 인내는 다시 놀라운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낼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새로워지는 선순환입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엄청난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 작은 손과 발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땀방울이 모여 이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이 지역을 살리고, 다음 세대를 일으키는 놀라운 역사가 다가오는 새해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