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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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의 공동체의 기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손바닥보다 조금 큰 화면을 들여다보며 경제 상황이 좋아졌는지, 내가 바라던 지도자가 힘을 얻었는지, 혹은 내 생각대로 세상이 움직여 주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소식들이 나에게 유익하게 작용할 때 기뻐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일시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우리의 기쁨의 기준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를 소개합니다. 그는 영토를 크게 넓히고 나라를 경제적으로 번영시켰습니다. 우리가 그 시대의 백성이었다면 기뻐할 만한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도, 깊게 다루지도 않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상과 부패, 불의와 탐욕을 붙들었고, 그것을 즐거움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번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켜지고 실현되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할 존재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119:163]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될 때 기뻐하고, 그 말씀 앞에서 바르게 반응하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말씀을 읽고 되새기며, 이 땅에서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지 기준을 새롭게 정립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답게, 바른 것을 즐거워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즐거움과 찬양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승리 한 후 요단 동편의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 자기 집으로 향해 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다른 지파들과 거리상 멀어지고 있음을 깨닫자 불안했습니다. 그들은 그래서 요단 강변의 큰 재단을 쌓았습니다. 이 재단은 우리도 요단서편과 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한 백성입니다를 드러내고자 지어졌습니다. 요단 서편의 지파들은 이 사실을 모른채 그들이 불법적인 재단을 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재단은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곳에서만 지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동편의 지파와 싸울 각오로 준비를 하고 대표단을 꾸려 진위를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확인 끝에 모든 오해는 풀어졌습니다. 이후 요단 서편의 대표단은 다시 그들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32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보고하매 그들이 한 보고는 요단 동편의 지파들이 율법을 준수하고 있더라,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하려는 열심히 있더라 등의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서편의 지파들의 반응을 봅시다.
33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요단 동편에 있는 지파들에게서 지켜짐을 보고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즐거워했고, 이 일을 이끄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말씀 앞에서 가져야 할 반응을 봅니다. 이들은 과거 오류를 범했던 모습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것을 찬탈해서 혹은 성적 쾌락을 주는 우상 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다시 애굽이라는 제국을 의지해서 기쁨을 얻으려고 했던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바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 공동체 안에 살아있구나 우리 공동체가 그것을 간직하고 있구나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이끄셨구나 기뻐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사는 방식입니다. 생명의 길을 걷는 방법입니다. 시편 119편의 기자는 이런 신앙을 이렇게 말합니다. [시119: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 세상에서 가장 갚고 싶은 것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 앞으로 가나안의 삶 속에서 다르 즐거움들이 유혹할지라도 그것에 미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우상들을 수집하기를 즐거워했고, 불의를 즐거워했고, 죄에 물든 자신들을 자화자찬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실패했고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나라를 잃게 됩니다. 남유다의 선지자였던 예레미야는 이렇게 절망합니다. [애5:15]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공동체가 말씀을 붙들지 못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은혜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사60: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하나님은 이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뻐하시고 진정한 빛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주님이 오셔서 다시 말씀이 지켜지는 것을 기뻐하고 찬양하게 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주셨습니다. 그 변화가 사도 바울의 모습 속에서 나타납니다. <[빌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자신을 괴롭히고자 더욱 열심히 예수를 전하던 이들을 보고도 그럼에도 예수님이 전파될 것이라는 그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기뻐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바른 반응을 지키는 주님을 닮은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즐거워하고 찬양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소식입니까? 그런 것은 잠깐의 기쁨일 뿐 사라지고 상실감을 줍니다. 예수님께로 오셔서 “말씀을 기뻐하십시오” “공동체가 말씀을 지키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그 모든 것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세상 소식에 어두워지고 넘어지는 것이 아닌 빛 안에서 주님의 말씀이 이루 가운데서 살아있음을 보고 영원한 즐거움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바른 찬양이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기쁨이며,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 기뻐하는 백성의 바른 반응입니다. 그런 반응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