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을 원하시는 하나님(출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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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1. 들어가기
“학교에 있었던 일”
“학교에 있었던 일”
제가 여러분들 처럼 학교 다닐 때 이야기입니다. 저희 반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3명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보통의 초등학생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은 독서량도 대단했고, 오늘날로 치면 선행학습을 정말 잘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중학생들이 배우는 영어단어와 문장을 줄줄 외울 정도였습니다. 수학은 얼마나 또 잘하는지 모릅니다. 6학년 1학기 들어오기 전에 이미 5학년 때, 6학년 수학을 모두 공부하고 온 친구들이었습니다. 친구들의 실력이 이렇다 보니 시험을 치면 항상 그 3명의 친구가 1등부터 3등까지 모두 차지 했습니다.
그 때 우리 선생님은 항상 시험이 끝나고 나면, 1등부터 꼴등까지 차례대로 줄을 서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몇번째 섰는지 궁금하시죠? 그건 비밀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등수대로 줄을 서니깐, 자존심 상하는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더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 반 전체가 잘못하면 함께 벌을 서거나 손바닥을 맞도록 하셨는데, 항상 1-3등까지 하는 친구들은 제외 시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요즘이라면 인터넷이고 뉴스고 나와서 난리가 날 일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억울하다가 말할 수도 없고, 그냥 억울함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또 비슷한 일이 반에서 일어났는데, 제 친구 중에 키가 크고 잘생긴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참다가 폭발을 한 겁니다. 결국 그 친구는 교실을 뛰쳐 나가게 되었고, 그 일로 선생님은 공개적으로 그 친구와 우리반 친구들에게 사과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결국 그 모든 문제의 핵심은 “공평하지 못한 선생님의 행동”이었습니다.
“공평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
“공평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
여러분, 함께 모여서 공부를 하든지 함께 운동을 하든지 아니면 우리 처럼 예수님을 믿으며 예배하든지 하는 모임을 [공동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공동의 몸]이라는 뜻인데요. 아무튼 이 공동체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모습과 성향의 사람들이 서로 다투거나 마음 상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평함]이 있어야 합니다. 공평이 사라지면 공동체 내에 사람들은 그 곳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공평을 기뻐하신다.”
“하나님도 공평을 기뻐하신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하나님께서도 [공평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예배 공동체, 교회가 서로를 차별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대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공평함을 통해서 예배 공동체인 교회가 더욱 하나님을 닮아가길 원하십니다.
2. 본론
2. 본론
“공평이란 무엇인가?”
“공평이란 무엇인가?”
공평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 그렇다면, 공평이란 사전적으로 무엇이라고 정의할까요? 그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바르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공평은 [균형]있는 행동과 [바른 판단]을 말합니다. 상대를 차별 없이 똑같이 대하는 것과 더불어 그릇된 판단으로 상대방이 억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평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공평을 추구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
“공평을 추구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
그렇다면, 공평을 통해 균형있는 행동과 바른 판단을 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실 세상에는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학교에도 유독 정의감에 불타는 친구들이 많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아니면 자기 노력으로 공평하게 살아보겠다고 다짐을 해도 그렇게 되지 않을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나랑 친한 친구, 내가 어려운 부탁을 한 사람 등 나와 관련된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과의 사이에서는 스스로 공평함을 유지하는 일이 보기보다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모든 공평의 근원이 되시며, 우리를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잠언 11장 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속이는 것, 차별하는 것, 거짓된 말을 하여 옆에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 이런 행동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공평한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매일의 삶에서 기억하고, 그 모습을 닮기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는 삶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공평한 하나님을 닮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23장 1절-6절 말씀”
“출애굽기 23장 1절-6절 말씀”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공평하신 뜻을 우리에게 알리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해 가르쳐주셨습니다.
대지1)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서 공평하도록 법을 주셨습니다.
대지1)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서 공평하도록 법을 주셨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서 공펴도록 법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함께 1-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공동체 내에서 누군가에 대한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고, 잘못된 증언을 하며, 다수의 사람에 의견에 따라 악한 일과 부당한 증언을 한다면, 한 사람에 대한 공평이 깨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에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친구가 나랑 잘 맞지도 않다보니, 그 친구의 행동과 말투..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 대해서 있지도 않는 말을 퍼뜨리고, 여러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 친구를 따돌린다면… 여러분이 볼 때,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모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행동이 선하냐 악하냐를 넘어서 이 행동은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는 행동이 아니고, 더 나가서 예수님을 닮은 행동도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사람을 더욱 사랑하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공동체 내에 이런 공평이 깨지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에 이런 법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대지2) 원수도 하나님을 만나도록 공평의 법을 주셨습니다.
대지2) 원수도 하나님을 만나도록 공평의 법을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하나님은 같은 공동체 내에 사람 뿐만 아니라, 심지어 원수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공평의 법을 주셨습니다. 함께 4-5절을 보도록하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오늘 말씀에서는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면 그 사람에게 돌려주라고 말하며, 그의 나귀가 짐을 싣고 가다가 넘어져 있으면 그것을 도와주라고 까지 말합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유를 알지 못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원수가 괜히 원수겠어요? 얼마나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면 원수라고 하겠습니까? 학교에서도 보면, 꼭 나만 미워하는 천적과 같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내가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만 미워하고 싫어하는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떤 계기로 심하게 다툰 이후로 그 때부터 원수처럼 지내는 친구들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참 어려습니다. 더러 어떤 학생들은 이런 말도 하더라구요. 자기는 [엄마, 아빠]가 원수와 같데요. “아니 엄마, 아빠가 왜 원수야?” 라고 물으니깐, 그동안 엄마, 아빠의 만족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게 했다는 거예요.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였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살면서 원수처럼 미운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그들을 도우며, 나에게 잘하는 사람들에게 처럼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그들도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심각한 원수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나중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오셔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날… 우리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게 될 겁니다.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지옥에 가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 안타깝고 속상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원수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공평한 도움을 통해 공평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 법을 지키며 행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나를 그렇게 미워하던 친구도, 심지어 내 마음도 모르고 힘들게 했던 부모님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에 대한 미움은 이 땅에서 잠시 간직할 뿐, 우리는 영원한 천국 문 앞에서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공평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이 법을 그들에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결론
3.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공평한 행동을 통해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공평한 행동을 통해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매일 “나로부터 시작되리 찬양을 해라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해 공평의 법을 실천함을 통해서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공평함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먼저 공평함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충분히 공평하신 하나님의 법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 9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함께 보겠습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을 차별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도 예전에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하면서 많은 차별을 받았고, 그로 인해 차별 받는 서러움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통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심으로 은혜를 주셨고, 그들의 삶에 공평하게 은혜를 더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처럼 괴로움을 경험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이제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공평하게 구원의 은헤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공평함을 실천하고, 그로 인하여 공평하신 하나님을 전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내가 가장 공평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적용질문: 내가 가장 공평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분 스스로 이 말씀 앞에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공평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지 질문해봅시다. 분명히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공평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더러 어떤 친구는 밖에서 친구들에게나 선생님께는 예의도 있고 밝은 모습이지만, 집에만 오면 부모님께 툴툴되고 짜증을 내는 모습을 가진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도 공평한 모습이 아니지요. 아무튼 이런 모습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공평한 행동 한가지를 정하고 한 주 동안 실천해봅시다. 그럴 때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