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안식 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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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안식 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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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과 예수님

히브리서 4:1–11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라틴어로 인간을 묘사하는 다양한 표현 가운데 homo laborans라는 말이 있습니다.
라보란스는 영어에 labor 라는 단어가 나왔거든요
일하는 인간 혹은 노동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혹은 homo faber 라는 표현도 사용합니다
도구를 사용해서 일하는 인간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일은 우리 인간의 존재의 의미와 이유를 결정합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라고 말씀하셨고
바울사도도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5:17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하는 것을 기도나 예배하는 것 못지않게 꼭 같이 일하는 것도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장 칼뱅은
“노동을 인간에게 주어진 창조의 명령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게으름을 인간의 가장 커다란 죄로 생각했고,
성실한 노동을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삶의 태도라고 강조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0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오늘에 도달하는 산업화의 과정을 통해서 현대인, 특별히 후기 현대인, 포스트 모던 사람들은 일에 중독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일과 휴식의 균형을 강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일하면서 동시에 휴식을 그리워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휴식하기 위해 일하는 존재가 되어진 듯합니다.
(괌은 미국영인데,,, 1년 1-2달을 아예 휴가로 정하고 직장생활 하게 됩니다.)
베트남에서 선교때 1달은 아예 한국 휴가로 잡고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인간을 또한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라고 말을 했고요.
기독교 전통 안에서는
호모 오티오수스, 안식하는 인간,
본래의 인간을 안식하는 인간, 인간의 본질다운 인간 중에 하나로 안식하는 인간을 칭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 유대인 신학자인
아브라함 헷셀은
“안식일은 우리의 신부이고 안식은 우리의 여왕이다. 그래서 안식일은 시간 속의 궁전이며 시간 속의 성전이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안식이 인간에게 고귀한 가치를 선물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 신비주의자들은 안식일이 오면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이죠. 촛불을 밝히면서 여왕을 영접합시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안식일을 받아들입니다 라는 말을 여왕을 영접합시다.
위튼 대학의 문화신학자인 리랜드 라이켄 박사는 일과 여가에 대한 기독교적 전망이라는 책에서
“일과 여가는 상호보완적인 리듬이어야 한다”
고 말했고
이 두 가지가 다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일과 여가가 함께 필요하다.
그리고 둘 중에 어느 것도 우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라이킨 박사는 따라서 여가 성경적 여가 성경적 안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회복과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성경적 안식을 그리워합니다.
자 이스라엘 역사에 보면 가장 중요한 지도자가 모세죠 모세 다음이
모세 다음에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여호수와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난한 땅 다른 말로 안식의 땅으로 그 백성을 인도에 가야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8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8절을 함께 같이 읽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히브리서 4:8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결론은 이겁니다.
여호수하의 책임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식의 땅으로 인도해 가는 것이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다 이 말이에요. 여호수하가.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여호수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여호수하 누구냐? 예수다 이 말이에요. 예수님.
그래서 예수님은 여호수하보다도 더 위대한 분이시다.
히브리서에 보다 위대한 보다 탁월한 이 단어가 계속해서 나오잖아요.
그는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위대하신 분.
천사보다 위대한 예수, 모세보다 위대하신 분, 이제 여수수아 보다도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두 가지 안식을 구별해서 말합니다.
여기 히브리서 기자가 본문에서 가르치고 있는 두 가지 유형의 안식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1)출애굽은 오늘의 안식입니다.
첫째 안식은 출애급으로 말미암은 오늘의 안식,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출애급으로 말미암은 안식, 엑소도스 레스트.
출애굽 전에 애굽의 종노릇 종이었습이다 종으로 살았습니다
출애급했다는 말은 그 압제에서 해방되었어요. 안식이 온 거예요.
출애급이 안식을 준 것입니다.
애급 땅에서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 자유를 얻게 된 것.
다른 말로 하면 안식을 얻은 것. 하나님의 선물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애급당을 떠나던 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땅은 나의 심판 아래에 있다.
너희가 구원을 받으려면 너희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출애굽기 6:6–7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어린 양을 잡고 허무가 티가 없는 어린 양을 잡은 다음에
그 어린 양의 피를 너디 살고 있는 집 문설주 좌우 인방과 문설주에 그 피를 바르라.
내가 집집마다 심판할 때 심판의 천사가 그 피가 뿌려진 발라진 집을 보면 그 집을 넘어가리라.
출애굽기 12:12–13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넘어 가리라 ,,
히브리서 4:6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패스오버 넘어간다
그래서 그 집은 구원을 받는다 이 말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처방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을 경험합니다
애급을 떠납니다 광야로 나왔어요
안식을 얻었어요. 자유를 얻었어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급의 궁극적인 목표는 애급 땅을 나오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에요.
가나한 땅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죠. 가나한 땅이 궁극적인 안식의 땅, 안식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장, 4장을 여러분이 읽어보시면 계속 반복되는 단어, 안식, 안식, 안식, 안식, 나의 안식.
이 단어가 히브리서 3장과 4장에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히브리서 3:11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히브리서 3:18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히브리서 4:3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히브리서 4:5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4:8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히브리서 4:9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브리서 4:10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브리서 4:11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4장 1절도 이 단어로 시작하죠.
자 히브리소 4장 1절 말씀 다 같이 있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히브리서 4:1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다시 말하면
자 출애급으로 시작한 그들의 구원의 여정
일단 애급당에서 나오는 구원을 받았지만
가난한 땅에 들어가야 구원이 완성되는 거예요.
그런데 출애급은 했지만
가난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인하여 두려워라
이런 경고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구원을 설명할 때
혹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할 때 이 두 가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미 얻은 구원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못한 구원
이미 얻은 구원 아직은 완성되지 못한 구원
동일한 표현을 하나님의 나라에도 적용시킵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믿을 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의 통치 다스림을.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못했어요. 완성된 형태의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를 우리는 경험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미 얻은 구원, 아직 완성되지 못한 구원. 영어로 already but not yet.
이미 구원을 경험하기 시작했지만 그 구원은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이것을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을 빌려 설명하면 애급당에서 나오는 구원은 받았지만 애급당에서 나오는 것도 구원이에요.
그 바로의 압재 종살이 거기서 구원 받았잖아요. 그러나 아직 가난한 땅에 들어가는 구원의 완성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2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신약시대 여러분과 우리들이나
똑같이 복음을 전해들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복음이 뭘까요?
그들에게 과거의 복음은 가나한 땅에 들어가는 게 복음이에요.
애급을 나와 가나한 땅에 들어가는 게 구원의 완성이에요.
오늘 우리에게는 뭐예요?
우리가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았지만 아직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나라에 들어갈 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천국에 들어가리라. 옛날 이스라엘에게는 가난한 땅에 들어가리라. 보금이고 우리에게는 천국에 들어가리라.
완성된 천국에 들어가리라. 구원의 완성이에요. 똑같이 보금을 전에 들었어요.
보금을 전에 들었지만 또 전에 듣고 이미 우리는 보금의 실체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4:3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예수 믿고 안식을 경험하기 시작했어요.
이미 우리는 사탄의 종된
그리고 죄악의 영원한 형벌인 지옥에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어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미 안식을 얻었어요.
그러니까 여기 히브리서 3장에서 혹은 4장에서 구원과 안식은 거의 동의어로 쓰여지고 있어요.
구원을 안식으로 바꿔도 돼요. 안식이라는 단어를 구원으로 바꿔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도 완성되어야 할 구원의 미래를 향해서 가고 있어요.
광야를 가고 있어요.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광야의 여정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구원과 안식을 같은 차원에서 다루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하신 우리 예수님의 구원의 초대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쉼의 초대 내가 너에게 진정한 쉼을 주겠다.
어떤 뜻일까요?
이 쉼을 안식을 다른 말로 바꾸면 무슨 단어라고?
구원.
내가 너에게 쉼을 준다.
구원을 주신다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의 정체는
율법을 하나님의 법을 깨트리고
그리고 죄를 범하고
정죄된 존재로 죄책을 짊어지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안식이 없어요.
그런 우리에게 주님은 안식을 참된 쉼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니 우리가 참된 안식을 경험하도록 주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24절의 말씀
베드로전서 2:24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런데 이 말씀은, 사도 베드로의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죠.
이사야 53:4–5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왜? 우리가 안식을 얻도록 우리가 참된 쉼을 얻도록 이것이 복음이 아닙니까?
할렐루야. 그런데 이런 복음을 강조하던 히브리서 기자는 4장 3절 이하에서 지속적으로 이제 가난한 땅에 들어오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봐 경고를 하와합니다. 반복적인 경고를.
히브리서 4:3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복음이 참으로 복음이 되기 위해서는 출애급한 것을 감사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제는 가난한 땅에 들어가 궁극적으로 안식을 누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3절 또 5절에도 반복되는 경고이죠.
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아니 들어오지 못할까 봐 내가 두렵다. 하나님의 경고예요.
3절 4절에 보면 가난에서 우리가 누릴 그 안식은 사실은 창조시부터 하나님이 준비하신 거다.
히브리서 4:3–5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5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준비하신 거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매주 지키는 안식일.
그 안식일은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
천국 안식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매주 안식하다가
기쁨으로 안식하다가
유대인들은 진짜 안식을 준비해요
안식일 오기 전에 진짜 준비해요
그리고 기쁨으로 안식을 맞이해요
매주 안식을 기다리고
또 준비하고 누리고 안식일 누리다가 매주 77이 49, 49년 지나면 또 안식년이 와.
또 1년 내내 안식년을 누리다가 그러다가 하나님 부르시면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간다.
천국 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 말이에요.
매주 안식을 기다리고 준비하고
희년, 49년을 준비하고
희년도 경험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간다.
그게 인생이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매주 안식일은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예요.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사실 안식일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풍성한 안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계속 우리에게 마음으로 꿈꾸게 하시고 그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시면
요한복음 10:10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이 당신의 제아들에게
어느 날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나의 양들인 너희들에게 줄 것이 있다.
구원이에요. 구원의 약속.
요하모 10장 10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죠? 같이 읽습니다.
시작! 내가 온 것은 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이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주님은 두 가지 생명 주시려고 오셨어요.
내 양들이 생명 얻는 모습.
그런데 그것바냥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여러분 우리가 애급당에서 종살이 하고 나올 때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 생명을 얻은 거예요.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예수 믿는 순간 새로운 생명을 영생을 얻은 것이에요. 새 생명을 얻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가난한 땅에 들어가서 얻게 될 것은 그냥 새 생명이 아니에요.
젖과 꿀이 흐르는 더욱 풍성한 생명.
이게 가난한의 안식.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의 안식이에요.
여러분 새 생명으로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더욱 풍성한 생명까지 사모하십니까?
이 더욱 풍성한 생명의 누림 이것이 바로 가난한 땅의 안식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기서 누리는 출애급으로 말미암은 안식.
엑소드스 레스트. 이 안식으로 만족하지 말자. 안주하지 말자.
안식과 예수님
1)출애굽은 오늘의 안식입니다.
2)가나안의 안식을 사모합니다.
더 나아가 둘째로 미래 가난의 안식을 꿈꿀 수 있어야 된다. 사모해야 한다.
다같이 미래 가난의 안식을 사모하십시다.
옆에 사람들에게 해보세요. 미래 가난의 안식을 사모하십시다.
본문 9절의 말씀 같이 읽습니다. 시작!
히브리서 4:9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여기 안식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그런데 지금까지 히브리서 기자가 사용한 단어와 전혀 다른 안식의 단어가 쓰여집니다.
지금까지 쓰여진 안식이라는 단어는 카타파우시스라는 단어가 계속 이 단어 하나가 쓰여졌어요.
카타파우시스 카타파우시스 카타파우시스 카타파우시스

κατάπαυσις -εώς, ἡ; (katapausis), 명사. 쉼, 안식, 안식처. 히브리어 등가

일이나 행동 상태에서 원기가 회복되는 느낌을 갖고 걱정이나 긴장을 해소하도록 일을 멈춘 상태로의 변화; 특별히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것.

카타파우시스는 일을 그치고 쉰다. 소극적인 쉼을 뜻하는 단어예요.
그런데 여기 9절, 본문 9절에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아있다 할 때 안식할 때는 카타파우시스가 아니에요.
어떤 단어가 쓰이냐? 사파티스모스.

σαββατισμός (sabbatismos), 명사. 안식일의 휴식.

명사 용법

1. 안식일 지키기 — 안식일에 지정된 쉼을 지키는 행위.

여기 사파트라는 단어가 앞에 나와요.
우리가 안식일을 말할 때 샤바트라고 그러잖아요.
샤바트.
여러분 보통 우리가 일반적인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면
인사를 샬롬 이렇게 해요. 샬롬 샬롬.
그런데 안식일 날.
이스라엘의 안식이는 금요일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날.
그때 안식일 날 만나면 셜롬 하지 않고 단어를 하나 더 붙여.
셔바트 셜롬.
셔바트 셜롬.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여러분이 옆에 있는 분에게 인사할 때 그냥 셜롬이 아니고 뭐라고 인사합니까?
셔바트 셜롬.
한번 해봐요.
다 같이 옆에 있는 분에게 시작.
셔바트 셜롬.
그 단어에요.
셔바티스모스.
셔바티스모스.
이건 적극적이고 행복한 쉼이에요. 적극적이고 행복한 쉼.
이 안식은 이 쉼은 여호수와도 줄 수 없었던 지상의 가나안도 줄 수 없었던 쉼.
이것은 예수님이 예비하신 저와 여러분에서 예비하신 영원한 나라의 안식이에요. 미래의 안식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 두 가지 안식을 다 함께 말하고 있어요.
이미 경험하고 있는 안식, 비교도 안 되는 앞으로 경험할 놀라운 안식.
이게 10절과 11절에 다르게 나타나 있어요.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본문의 10절 시작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히브리서 4:10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내가 구원받으려고 혼자 몸부림치던 노력을 다 내려놓고 그분이 주시는 구원을 얻고 쉼을 얻어요.
(이순재 91세 진정한 쉼일까요? 예수 안에 스테반의 쉼)
구원의 안식. 이게 엑소도스의 안식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고 얻는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죠.
우리의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죠.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를 이제 누리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새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10절이 이미 얻은 구원을 나타내고 있다면
11절은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완성된 구원, 미래의 구원을 나타내고 있어요.
히브리서 4:11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한 자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합니다.
10절에서는 안식에 들어가서 이미 쉰다고 했어요.
11절은 안식에 들어가기를 어떻게 해야 된다?
힘써야 한다 그랬어요 저 미래의 안식은 들어가기를 우리가 힘써야 한다
두 가지가 달라요 두 가지 안식이 달라요 두 가지 구원이 달라요 자 구원도 그래서 과거의 구원과 미래의 구원을 따로 우리가
구별해서 말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이미 얻은 구원
예수 믿는 순간,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죄악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이제 지옥 안 가요. 용서받았어요. 이미 구원을 받았어요.
아멘. 여러분 이거 확실해야 됩니다. 과거의 구원이에요.
나 죄악의 형벌로부터 구원 받고 으롭다 물 받아서의 칭의 칭의 구원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 받았지만 죄의 세력 죄의 파워와
싸우고 있어요 언제 우리는 죄의 세력과 이 싸움이 끝날까요
아니 죄라는 존재에서 언제 완벽하게 벗어날까요 앞으로 미래에
주님 다시 오시고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미래의 구원이에요.
그런데 그때 부끄럼 없이 그분 앞에 서려면 우리는 노력해야 돼요.
다시 십자가의 구원은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고요.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부끄럼 없이 미래의 구원이에요.
베드로후서 3:14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디모데전서 6:14 “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주님 앞에 서려면 우리가 힘써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라.
계속 경고하세요. 본문에. 6절 경고. 6절 말씀 같이 읽어요.
다 같이. 시작.
히브리서 4:6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경고가 있어요.
7절의 경고 또 다 같이 읽겠습니다.
7절 시작
히브리서 4:7 “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마음을 강박하게 하지 말라. 완고하게 하지 말라.
그래서 출애급하고 애급당의 종사리에서 해방된 자들에게
지금부터 중요한 것이 뭐겠습니까?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난한 땅에 들어가는 날 부끄러움 없이 들어가는 것.
이게 성화예요. 성화.
그리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주님 앞에 완벽한 존재로 완성되는 그날을 바라보는 것.
그러려면 필요한 한 가지.
오늘 마음을 강박하게 하지 말고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오늘 주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자 히브리스 4장의 마지막 부분이 뭐냐? 말씀의 중요성을 가르쳐요.
히브리스 4장 12절 13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시작!
히브리서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래서 중요한 게 뭘까요?
예수님도 말씀하시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여 뭐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 붙들고 살아야 돼요.
마지막 예수님이 이 지상에서 제자들을 위해 앞으로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십니다.
요한문 17장 17절 같이 읽습니다.
요한복음 17:17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도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중요한 다섯 가지 솔라를 말했어요.
다섯 솔라는 다음과 같습니다 (라틴어 Sola는 '오직' 또는 '홀로'를 의미): 
: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선물)로 주어진다는 원칙입니다.오직 은혜 (Sola Gratia)
: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받으며,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입니다.오직 믿음 (Sola Fide)
: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원칙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이 다섯 가지 원리는 오늘날 개혁신학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교리입니다. 
: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 중보자, 주님이시라는 원칙입니다.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 성경만이 신앙과 삶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 있는 표준이라는 원칙입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교황의 권위보다 성경의 권위가 우선합니다.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솔라 스크립트라. 따라서 하라니까. 시작.
솔라 스크립트라. 오직 말씀이 말이에요. 오직 말씀.
오직 은혜와 함께 오직 말씀.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하나님이 요수아를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난한 안식의 땅에 가게 하실 때
맨 처음 요수아에게 주신 말씀이 뭐냐?
요수아 1장 8절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수아 1:8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시작! 이 율법책을 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거룩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내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내가 형통하리라.
요소와는 사실은 예수님의 그림자예요.
여러분 요소와 예수 이름의 뜻이 똑같아요.
요소와가 구원이라는 뜻이에요.
예수 구원이죠.
그렇습니다.
요소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난한 땅으로 안식의 땅으로 인도에 들어가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그럼 예수님 모셔서 우리를
바로의 압제된 마귀의 사슬된 종된 자리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용서해 주시고
이제는 우리가 말씀 붙들고 순종함으로 우리가 저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 들어갈 때까지 우리가 주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의 한 걸음 한 걸음 원스텝 원스텝 말씀 붙들고
날마다를 걸어가야 할 줄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때까지 천국 들어간 그날까지 우리가 날마다 불러야 할 찬송이 있어요.
여러분이 그 찬송 불렀어요.
그게 246장의 찬송이에요.
 246.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1)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무거운 짐 벗어버렸네
죄 중에 다시 방황할 일 전혀없으니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후렴: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살겠네)
(2)그 불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니 나 가는 길이 형통하겠네
그 요단 강을 내가 지금 건넌 후에는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3)내 주신 영혼 만나로써 먹여주시니 그 양식 내게 생명 되겠네
이 후로 생명 양식 주와 함게 먹으며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우리가 모든 짐 벗어버리고 천국의 신의가에서 안식할 그날까지 이미 주신 은혜를 붙들고
또 은혜의 수단으로 허락하신 말씀을 붙들고
순종함으로 진정한 영원한 궁극적인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원합니다
아멘!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할 때 주님 그 안식 꼭 누리는 우리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지금도 안식을 주셨지만 영원한 안식 궁극적 안식 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 부르고 동성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찬송가 440장
440.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1)어디든지 예수나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함께 가려네 예수함께 아니가면 낙없고 예수님과 동행하면 겁없네 후렴:어디를 가든지 겁낼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함께 가려네 (2)세상친구 모두 나를 떠나도 주와 동행하면 외롬없겠네 가는길이 위태하고 험해도 어디든지 예수함께 가려네 (3)어둔 그늘 나를에워 쌀때에 주가함께 계심믿고 가져네 죽은후에 천국에서 깨어나 예수함깨 길이길이 살리라
누릴 궁극적 안식, 궁극적 구원 놓치지 않고 주님 앞에 서는 우리 모두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식과 예수님
1)출애굽은 오늘의 안식입니다.
2)가나안의 안식을 사모합니다.
적용1)
1번 질문
“출애굽 이전의 애굽”처럼, 예수 믿기 전 나는 어떤 ‘종살이’(죄책, 두려움, 중독, 사람 눈치 등)를 하고 있었습니까?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볼 때, “예수님 안에서 시작된 안식”을 내가 경험한 구체적인 변화 한 가지를 나눠보세요.
적용2)
나는 ‘저 천국, 영원한 안식’을 얼마나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사모하고 있습니까?
천국 소망이 내 현재의 선택(시간 사용, 물질 사용, 관계, 가정,직장,사역)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솔직하게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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