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5번째 이야기 14장 13-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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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주제문(Theme,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가?) : 희생적 사랑
주제문으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교의(Doctrine, 특정 주제를 향한 성경적 가르침) : 예수님의 사랑도 이와 같다
창 아브라함이 롯을 건지듯이 예수님이 우리르 건져 주신다.
주제문과 교의가 말하고 있는 바 회중 가운데의 하나의 필요(Need, 성도들의 삶 속에 필요한 것을 결정) : 사랑받기를 원하나? 나도 사랑을 줘야 한다.
주제문과 결합하기 위한 하나의 이미지(Image, 설교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 : 등불
하나의 임무(Mission, 회중들에게 촉구할 행동이나 실천해야 할 내용 정하기) : 내 삶에도 사랑을 전해야 한다.

[Page 1] 성경의 문제 (Trouble in the Bible): 위기에 처한 롯, 딜레마에 빠진 아브라함

(상황 묘사)먼저 시간을 거슬러 고대 근동의 어느 날로 가보겠습니다. 요단 들판에 자욱한 먼지 구름이 피어오릅니다. 평화로웠던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전쟁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엘람 왕 그돌라오멜을 위시한 4개국 연합군이 배반한 소돔을 응징하기 위해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은 파죽지세로 내려와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의 군대를 짓밟았습니다.
패배한 소돔 성은 약탈당했습니다. 재물과 양식은 다 빼앗겼고, 사람들은 포로로 줄줄이 엮여 끌려갑니다. 그 비참한 포로들의 행렬 속에, 낯익은 얼굴이 하나 보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입니다.
롯은 어떤 사람입니까? 삼촌 아브라함 덕분에 부자가 되었지만, 더 기름진 땅, 눈에 보기 좋은 땅을 찾아 삼촌을 등지고 떠났던 사람입니다. 죄악의 도시 소돔이 주는 화려함에 취해 그곳에 정착했던 롯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 선택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습니다. 모든 재산을 잃었고, 자유를 잃었으며, 생명조차 장담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롯은 스스로 이 상황을 타개할 힘이 전혀 없습니다. 철저한 무력감, 그것이 롯이 처한 현실입니다.
(문제의 심화 - 아브라함의 갈등)이때, 도망쳐 나온 한 사람이 헐레벌떡 아브라함에게 달려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안전했고, 평화로웠으며, 하나님께 제단을 쌓던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도망자는 숨을 헐떡이며 말합니다. "아브라함이여, 당신의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습니다!"
자,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아브라함이 즉시 군사를 이끌고 나간 결과만 봅니다. 하지만 그 결단 직전, 아브라함의 내면에는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닥친 거대한 시험, 즉 '문제(Trouble)'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에게 롯은 '아픈 손가락'이자 '미운털'일 수 있습니다.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하겠다고 욕심부리며 떠난 조카입니다. "네가 선택해서 간 소돔이잖아. 자업자득이다."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더 현실적인 문제는 '두려움'입니다. 상대는 4개국의 정규군 연합입니다. 그들은 당시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군대입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일개 족장일 뿐입니다. 그가 가진 병력이라곤 집에서 기른 사병 318명이 전부입니다. 이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이 전쟁에 끼어든다는 것은, 지금 누리고 있는 마므레의 평안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 목숨과 내 가족의 안위를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내가 왜?"라는 질문이 솟구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랑하기엔 롯의 허물이 너무 크고, 구해내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Page 2] 세상의 문제 (Trouble in the World): 계산하느라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

(현대적 적용)성도 여러분, 이 아브라함의 고민이 오늘 우리의 고민 아닙니까? 우리 눈앞에도 수많은 '롯'들이 있습니다. 어떤 롯은 나의 가족일 수 있습니다. 매번 사고만 치고, 도와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지는 형제일 수 있습니다. 어떤 롯은 직장 동료나 이웃일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 고통받고 있지만, 그를 돕기 위해선 내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위기 소식을 듣습니다. 누군가 경제적으로 파탄 났다는 소식,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 관계가 깨져 울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때 우리 내면에서도 아브라함과 똑같은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죄와 한계)"저 사람 돕다가 나까지 피해 보면 어쩌지?" "지금 내 코가 석 자야. 나도 먹고살기 힘든데 누굴 도와." "그거 다 본인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잖아.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해?"
우리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이라는 나의 안전지대, 나의 평안, 나의 노후 자금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말하되,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만 사랑하려 합니다. 위험 부담이 없는 사랑, 희생이 없는 친절,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세련된 신앙생활의 모습은 아닙니까?
오늘날 세상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랑'**이 없어서입니다. 모두가 방관자가 되었습니다. 남의 일에 끼어들면 피곤해진다고 가르치는 세상입니다.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는 등을 돌립니다. 두려움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혹은 무관심 때문에 우리는 형제가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커튼을 치고 내 집 안의 평온함만을 즐기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영적인 곤경이자, 죄악 된 본성입니다.

[Page 3]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 (God's Action in the Bible): 칼을 든 사랑, 승리를 주신 하나님

(전환점)그러나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봅시다. 14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여기엔 어떤 망설임이나 계산의 흔적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소식을 '듣고', 즉시 '반응'했습니다. 그는 계산기를 던져버리고 칼을 들었습니다. 마므레의 안전지대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318명이라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를 데리고, 거대한 제국군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개입)이것은 무모한 객기였을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에서 나온 **'행동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허물을 보지 않았습니다. 롯이 처한 위기만 보았습니다. 형제를 살려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가 두려움을 집어삼켰습니다.
그 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브라함은 밤을 틈타 기습 작전을 펼칩니다. 그리고 북쪽 끝 '호바'까지 끝까지 추격합니다. 성도 여러분, 318명이 4개국 연합군을 이긴다는 것은 군사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14장 20절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은 이 승리의 비밀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 누가 싸우셨습니까? 하나님이 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계산 없이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을 때, 하나님은 그 318명의 칼날 위에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혀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작은 능력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연결된 것입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다 찾아왔더라.'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사랑이 이겼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든 그 사랑에 하나님이 승리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롯은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헌신적인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다시 생명을 얻었습니다.

[Page 4]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 (God's Action in the World): 우리를 건지신 예수, 그리고 우리의 사명

(그리스도와의 연결)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는 단순히 아브라함의 무용담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 속에 우리의 구원이 담겨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롯'에 가깝습니다. 우리도 롯처럼 세상의 화려함을 쫓아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입니다. 죄의 유혹에 빠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사망 권세의 포로가 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더 위대하신 아브라함'**이 찾아오셨습니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라는, 마므레보다 더 완벽한 평안의 장소에 계셨습니다. 우리를 모른 척하셔도 그만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었고, 원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들을 구하기 위해 내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며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318명의 군대가 아니라, 홀로 십자가라는 캄캄한 밤으로 뛰어드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우리를 끝까지 추격하여, 죄와 사망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건져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가장 위험하고도 위대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자유인으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 - 적용)이제 설교를 맺으며 여러분에게 도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희생으로 '다 찾아진 바' 된 여러분,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롯을 구하러 가라."여러분의 '롯'은 누구입니까?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가족입니까? 복음을 듣지 못해 세상에 포로 된 이웃입니까?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입니까?
이제 계산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이만큼 하면 저 사람이 변할까?" "내가 손해 보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멈추십시오. 아브라함에게 318명이 있었다면,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작은 능력, 시간, 물질, 재능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의 문제에 비하면 318명처럼 작아 보일지라도, 그것을 들고 사랑의 전쟁터로 나아가십시오.
사랑을 명사로 남겨두지 마십시오. 사랑을 동사로 만드십시오. 전화를 거십시오. 찾아가십시오. 손을 내미십시오. 지갑을 여십시오. 자존심을 굽히고 사과하십시오.
여러분이 형제를 위해, 이웃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믿음의 발걸음을 떼는 그 순간, 멜기세덱이 찬송했던 그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작은 사랑 위에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안전지대를 떠나,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내는 '행동하는 사랑'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늘 계산하고 주저하며 나의 평안만을 구했음을 고백합니다. 롯과 같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이제 우리도 그 사랑을 힘입어 세상 속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318명을 데리고 나아갈 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Page 1 : 성경 속의 어려움과 갈등
롯을 향한 아브라함의 사랑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사랑
롯의 상황 - 세상의 것들을 골라 갔던 상화 - 소돔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이었다. 결국 소돔의 전쟁 - 끌려감 이제 포로가 됨 - 아무도 신경쓰지 않음
3. Page 2 : 세상 속의 어려움
오늘날의 소돔과 롯?
갇혀 있다.
방관하는 우리 : 아브라함
4. Page 3 : 성경 속의 은혜와 기쁜 소식
5. Page 4 : 세상과 우리를 위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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