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탈출 넘버원 (최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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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삶은 위기의 연속 (약 2분)
제가 예전에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위기탈출 넘버원>이라는 프로그램인데요. 오늘 설교 제목이기도 합니다. (PPT를 가리킨다) 기억나는 두 사건을 짧게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은 아니구요. 위기탈출 넘버원 특유의 과장된 연출이라는 점을 감안하시고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첫번째 사건입니다. (슬라이드///) 점심 메뉴로 피자를 먹은 명훈씨. 그 날 저녁 사망한채 발견됩니다. (슬라이드///) 이유는 피자와 피클을 같이 먹어서였습니다. 피자에 들어있던 치즈와 피클 조합이 교감신경을 자극했고, 급성 부정맥이 발생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요. (슬라이드///)평소 용변을 보고 변기 뚜껑을 닫지 않는 습관이 있던 김모씨. (슬라이드///)변기 물이 눈에 튀어버리게 되는데. 눈에 세균이 들어가 궤양이 생기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 봐도 참 충격적인 비약이지만, 이런 충격을 통해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슬라이드)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일상 곳곳에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겁니다. 잘못 먹은 음식 하나, 사소한 부주의 하나가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실제 우리의 삶은 위기의 연속입니다. 기말고사가 코앞인데. 과제는 산더미죠. 어떻게 어떻게 기말고사라는 위기를 넘겨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크리스마스 행사, 신년 행사, 겨울 방학 때 각종 수련회와 선교 준비까지.. 계속된 위기의 파도가 우리를 덮쳐옵니다. 전도사님들, 우리는 이런 끝없는 위기 앞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본론1 - 위기 (3분)
이사야 64장은 이스라엘이 빠진 위기를 보여줍니다. 성전은 불타고, (슬라이드)예루살렘은 황폐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위기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더 치명적인 진짜 위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6절 말씀.(슬라이드///)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64:6)
당시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습관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이런 종교적 행위들을 자신의 의로움이라 여겼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더러운 옷’에 불과했습니다. ‘더러운 옷‘은 원어로 볼 때 율법적으로 가장 부정하여 작은 접촉조차 꺼려지는 혐오스러운 상태를 뜻하는데요.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은 채 행해지는 모든 사역이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더러운 옷‘이 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황폐화 된 것보다 더 큰 위기는 바로 존재적 위기였습니다.
사역에 대한 우리의 '헌신과 열정', 밤을 새워 설교를 작성하고, 말씀을 전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봉사한다 할지라도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의존 없이, 나의 수고, 나의 자랑, 나의 영광이 단 1퍼센트라도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더러운 옷’일 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교회를 살릴 수도 없는 이런 비참한 상태인 것이죠.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내 의가 ‘더러운 옷’ 같다면 나를 살리실 수 있는 분에게 나를 살려달라고 붙잡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혀 예상 밖의 행동을 합니다. 7절입니다.(슬라이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64:7)
아무도 하나님을 부르지 않습니다. 성전이 불타고 영혼이 오염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데도 침묵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백성들이 게을러서일까요? 의지가 약해서 일까요? 아니요. 이사야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7절 하반절입니다. (슬라이드///)”..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64:7)
원어 성경의 맥락을 보면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자, 하나님은 은혜의 얼굴을 우리에게 가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빛을 거두셨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회개할 능력조차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힘조차 잃어버린 완전한 무능력, 영적 뇌사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시면 우리는 스스로 분발하여 주님을 붙잡을 의지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죄의 무서움이고, '영적 무감각'의 실체입니다. 죽어가는데도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사역의 현장은 바쁘게 돌아가지만, 내 영혼은 하나님을 향해 차갑게 식어 있습니다. 문제가 터지면 챗GPT를 돌리고 사람을 찾느라 분주하지만, 정작 골방에서 하나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치열함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걷히자 하나님 없이도 사역이 돌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상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입니다.
본론 2 - 위기 탈출의 유일한 길 (1분)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을 의지조차 상실한 이 절망적인 위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요?
내 힘으로는 붙잡을 수 없기에 이사야는 8절에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호소합니다.(슬라이드///)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사64:8) 이사야의 고백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을 찾을 힘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아버지께서 찾아와 주십시오. 토기장이가 흙을 빚듯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다시 빚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품과 관계에 기대어 은혜를 구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영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결론 및 적용 - 전적인 은혜에 나를 던지라(3분)
사랑하는 전도사님들, 오늘 우리는 내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을 수조차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나를 던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맡길 수 있을까요?
두가지를 도전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처절하게 인정'하십시오. 우리가 위기 때마다 스마트폰을 켜고, 지인을 찾고,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직 '더러운 옷'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시면 우리는 끝입니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 나의 무능력을 철저히 인정하고 엎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이 나의 실력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함을 인정하고, 가장 먼저 무릎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 나의 계산기를 내려놓고, 토기장이의 '주권'에 항복하십시오.
은혜를 의지한다는 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나를 빚으시는 토기장이의 주권에 내 인생을 전적으로 맡기는 항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이해할 수 없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진흙인 우리가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드십니까?"라고 따질 수 없죠. 우리가 두드리는 계산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이 훨씬 더 정확하고 안전합니다. 세상이 보기엔 미련해 보여도, 하나님의 주권에 항복하고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소위 규모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는 코스만가 좋은 길이라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최근 지방에는 사역자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한국 교회의 불균형의 현상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역자들이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지 않고 계산하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성경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가 아닙니다. 내 계산이 틀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옳았습니다!를 은혜의 삶을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하는 증인들입니다.(슬라이드///)
(개인간증) (4분)
사실 저도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도전하고 있지만, 저 역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배우고 경험하는 과정이 있었고 오늘도 배워가고 있습니다. 10년 전, 정말 원치는 않았지만,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그런 케이스들도 많을거라 생각하는데요. 당시 저에게는 두 가지 현실적인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모님의 반대였고, 또 하나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사고였습니다. 중환자실에 의식이 없는 상태로 계셨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며 하나님께 따지듯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지금은 사역자의 길을 갈 때가 아닙니다. 일단 제가 돈을 벌어서 집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길로 나름의 살길을 찾기 위해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제 힘과 능력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3일 뒤 아버지가 깨어났습니다. 깨어난 기쁨도 잠시 상황은 더욱 처참해져갔습니다. 아버지가 의식은 회복하셨지만 후유증이 심각해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재활에만 최소 1년이 걸리고, 예전 같은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하다고 통보하셨습니다. 몸의 절반에 기능이 둔화되고 감각이 사라져 음식을 씹는 것조차 버거워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져내렸습니다.
마음은 무너져내렸지만 저의 무능력을 철저하게 인정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붙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저의 모든 생각, 계획을 내려놓고 교수님께서 소개시켜준 직장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작에 부르셨던 그 부르심을 따라 가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사역자의 길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저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재활에 1년이 걸린다던 아버지가 일주일 만에 힘겹게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운동장을 뛸 정도로 완전히 회복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교회를 다니는 분이셨는데 은혜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기적이 있고 며칠 후, 사역자의 길을 반대하시던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성아, 내가 아프면서 니 생각을 제일 많이했는데 그 때 하니님이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 니가 내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거. 지금까지는 사역의 길을 반대했지만 이제는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해라.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길이면 나도 응원하고 기도할게."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원천으로 지난 10년 동안 캠퍼스 선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올 해 신대원에 와서 나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최근 저희 가정에 계획하지 않은 셋째가 생겼습니다. 현재 8주차인데요. 아내도 부산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저는 이제 신대원 1학년 입니다. 현실적인 방안들이 나의 더러운 옷이 또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려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아멘!!!
저는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 수 없음을 또 한 번 인정하며 하나님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이시자 나를 만드신 토기장이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셋째를 기쁨으로 받겠습니다. 하나님이 셋째를 주셨다면, 기르실 능력도 주실 줄 믿습니다. 상황적 어려움때문에 부름 받은 사역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지금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전도사님들, 내 생각, 내 의로 가득찬 계획들을 내려놓고, 은혜의 걸음을 함께 걸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계산은 틀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실수가 없으십니다.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이 나의 영원한 위기탈출 넘버원임을 믿고 나의 진로, 나의 미래 나의 걱정과 염려들도 다 그분께 맡겨봅시다. 그리하여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영적 위기를 돌파하고, 다양한 은혜의 삶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